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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서재를쌓다 2016. 7. 2. 16:52

     

    어제 시옷의 모임이 있었고, 이건 어제의 페이퍼.

     

     

     

     

    [7월에 만나는 6월의 시옷 -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빠져들려면 기슭을 떠나야 한다. 구명대 없이. 뭍에서 팔을 몇 번 젓는지 세지만 말고 말이다.” - p.13

     

        우리는 함께 줌파 라히리의 이탈리아어 이야기를 읽었고, 이것은 나의 이야기입니다.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어라면, 나는 일본어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처음은 오다기리 죠였습니다. 나는 그 시절, 일본의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드라마며 영화며. 이야기가 좋아 보다보니, 사람이 좋아졌고, 사는 모습도 좋아보였고, 특유의 억양들도 좋아져 혼자 흉내를 내곤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저와 같은 사람들이 꽤 있어서 일본의 배우들이 내한을 해 무대 인사나 관객과의 대화를 가지는 일이 곧잘 있었습니다. 그때 그와의 만남 자리에 당첨되어 가게 되었어요. 지금 봐도 특이한 패션으로 그는 무대에 섰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의 옆에는 통역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말하면, 옆에 있던 사람이 통역을 해줬습니다. 객석에 있던 관객이 질문을 하면, 옆에 있던 사람이 그에게 통역을 해줬습니다. 그 질문에 그가 답했고, 그러면 옆에 있던 사람이 그 말을 또 통역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가 말만 했는데, 그곳에 있던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커다랗게 웃었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통역을 해주기 전에 말이에요. ,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 다들 아주 재미나게 웃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나는 사람들의 웃음이 잦아든 다음에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말은 재미나지 않았습니다. 웃음이 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일본말에서 우리말로 한차례 바뀌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때 나는 내가 좀 바보 같았습니다. 아마도 그 생각 때문에 웃기지 않은 것 같아요. 모두들 그의 말을 알아듣는데, 나는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만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 나도 그들처럼 그의 말을 바로 알아듣고 싶다, 그런 생각들을 한 것 같아요. 물론 조금만 기다리면 누군가가 그의 말을 내게 무척이나 익숙한 언어로 최대한 정확하게 옮겨주겠지만, 그건 그의 온전한 말이 아닌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의 온전한 말을 알아듣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외국어라는 게, 줌파 라히리도 그랬듯, 그리 쉽게 익혀지는 게 아니니까요. 저는 줌파 라히리에 비하면 게으르고, 성실하지도 않은 사람이니까요. 그렇습니다. 나는 어떤 환경에서든 쉽게 포기를 할 수 있는 작심삼일형 인간입니다. 그리하여, 그 뒤로 수도 없는 결심과 다짐을 했고, 시작을 했고, 당연한 듯 포기를 했습니다. 줌파 라히리가 수도 없이 건넌 호수에 발만 담그고 너무너무 깊다고 투정만 부려댔습니다. 언어란 그리 쉬운 것이 아닌데 말이에요. 어느 학원 선생님이 그랬어요. “여러분, 분명히 슬럼프가 옵니다. 각자 다르겠지만 언제든 와요. 그때 꾹 참고 어떻게든 하다보면, 결국 해낼 수 있어요.” , 슬럼프는 왔습니다. 여러 번 시도했을 때, 각각의 속도로 어김없이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예외 없이 열심히 포기했습니다. 그러면 다음번에 시작할 땐 포기한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면 될 것 같은데, 언어라는 녀석은 끊임없이 망각하게 만드는 냉정하고도 무정한 녀석이라, 처음부터 다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언제나 제자리였습니다. 계속 발만 담그고 물장구만 치는 겁니다. 첨벙첨벙. 건너고 싶단 생각만 하면서, 수영도 열심히 배우지 않고. 첨벙첨벙.

     

       일본어 공부에 대한 열정은 들쭉날쭉 변덕스러웠지만, 드라마와 영화에 대한 애정은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는 꽤 괜찮은 세상이 있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있어도 괜찮을까요?” 라고 물었을 때 있어서 좋아.”라고 말하는 세상, '잊고 싶지 않은 것'이라는 노트에 누군가 '남의 집에서 먹는 카레, 이유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라고 쓰는 세상, 어금니를 누르면 '소리가 나는 여자아이가 있는 세상, 각각의 자리에서 폭설을 견딘 아버지와 아들이 숲 속의 고요한 커피 집에서 끝내 재회하는 세상, 10년 전 사라진 비행기가 다시 나타나는 세상, 나이를 먹지 않은 10년 전의 남자친구가 10년의 나이를 고스란히 먹은 나에게 나도 널 만날 수 있어서 좋았어. 10년 후의 널 사랑할 수 있게 돼서 좋았어. 또 만나자.”라고 말하며 이별하는 세상,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두 사람이 자살을 결심한 사람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그를 함께 구하고, 사랑에 빠지고 마는 세상, 내 여동생을 죽인 남자의 여동생을 사랑하게 되는 세상, 아버지를 미워했던 아들이 아버지의 죽은 얼굴을 마주하고 어린아이처럼 목 놓아 우는 밤이 있는 세상, 한 테이블에 앉아 정갈한 안주와 함께 한 사람은 맥주를, 한 사람은 청주를 마시는 세상.

     

       나는 이런 세상들을 화면으로 보면서, 마음에 오래 담아두었습니다. 일본에 가면 진짜 이런 세상이 있겠지, 가보자! 했던 건 아니고, 그때그때 조건이 맞아 몇 번 여행을 갔습니다. 홋카이도에 갔을 때는 일본어 공부를 시작할 때 사둔 (지금 보면 무척 크고 무거운) 자주색 전자사전을 가져갔습니다. 패키지여행이었고, 버스는 관광지와 숙소에 정확하게 내려주었고, 가이드님은 식당에서 밥을 정확하게 시켜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불행히도, 사전을 펼치는 일은 없었습니다. 매일 밤 숙소에서 친구와 우리말을 하며 맥주만 실컷 마셨습니다. (맥주를 살 때도 말은 필요 없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됩니다.) 오사카에 갔을 때는, 겨우 저녁 6시였는데, 외국인이라 말이 안 통해서 그런지 재료가 다 떨어졌다는 팻말을 보이며 팔로 엑스 표를 만드는 가게주인의 기세에 주눅이 들어 매일 밤 생맥주와 꼬치구이만 먹어댔습니다. 꼬치구이 집은 메뉴판에 사진이 거의 있었습니다. 손가락을 가리키며 구다사이- 구다사이-만 하면 되었습니다. 도쿄에 갔을 때는, 드디어 조금의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옹알이 수준의 말이었지만요. 그리고 아리가또 고자이마시따라는 말을 알았습니다. 같이 간 일본어를 잘 하는 언니가 가르쳐줬는데, 일본 사람들은 가게에서 나올 때 감사합니다라고도 하지만, 주로 감사했습니다라고 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라니. 우리말과는 다른 표현이다! 가게를 나오며 감사했습니다, 를 직접 내뱉을 때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언니 없이 혼자 다닐 때는 죄송합니다, 저는 일본어를 못 합니다라는 말을 애용했습니다. 영수증 드릴까요? 죄송합니다. 저는 일본어를 못 합니다. , 그렇군요. 이런 식입니다.

     

       그리고 이번 달 초에 오키나와에 다녀왔습니다. 오키나와에서 나는 이런 말들을 했습니다. 일본어로요.

     

    미안합니다 / 안녕하세요 (아침인사) / 안녕하세요 (점심인사) / 안녕하세요 (저녁인사) / 감사합니다 / 감사했습니다 / 얼마입니까? / 체크인해주세요 / 이것이 이것입니까? / 빗이 있습니까? / 이것과 이것과 이것을 주세요 / 이것 하나 주세요 / 이것 두 개 주세요 / 생맥주 둘 주세요 / 두 명입니다 / 슈리성에 갑니까? / 미바루비치에 갑니까? / 여기가 어디입니까? / 돌아오는 버스는 어디서 탑니까? / 즐거웠습니다 / 오키나와는 무척 덥습니다 / 아침밥이 있습니까?

     

       마지막 날, 버스 안에서는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는데, 할아버지는 내게 이런 말들을 했습니다. 일본어로요.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 한국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 도쿄에서 택시 운전을 했습니다 / 한국에서 오키나와까지 비행기가 얼마입니까? / 20살입니까? 30살입니까? / 결혼은 했습니까? / 30살에서 40살까지는 결혼하기 힘드니, 빨리 하세요 / 북한은 가난하지요? / 오키나와 좋았습니까? / 수영은 했습니까? / 비가 와서 못했습니까? / 오키나와가 많이 덥습니까?

     

       물론 정확하게 알아듣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할아버지와 나는 30여 분 동안 띄엄띄엄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옆에서 내게 익숙한 언어로 통역해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할아버지와 나 둘 뿐이었습니다. 일본인 누군가가 옆에서 들었다면 형편없는 대화였겠지만, 내게는 이 경험이 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예상했겠지만, 전 얼마 전 또 포기를 했거든요. (한결같은 포기입니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로마가 있고, 각자의 이탈리아어가 있습니다. 그럴 겁니다. 사실 이 책은 그동안의 줌파 라히리의 소설에 비하면 아주 실망스럽고, 밋밋한 책이었습니다. 나는 책을 읽으며 나의 로마를, 나의 이탈리아어를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풍성하고 깊은 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필코 호수를 건너보자고 결심했습니다. 나의 현재가 이곳에서 저곳이 될 수 있도록.

     

    난 올여름 문학 축제에 참가차 로마에 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럴싸한 이유 같았다. 이탈리아어가 내게 영감을 줬다고 속마음을 밝히지 않았다. 이탈리아어를 잘 알고 싶은 희망, 아니 꿈을 품고 있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내 삶과 관계가 없는 언어를 유창하게 말할 방법을 찾고 있노라 이해시키지도 않았다. 이 괴로움으로 애를 태우고 있으며 나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한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마치 이탈리아어는 열심히 쓰지만 완성할 수 없는 책 같았다.” - p.31-32

     

       모두에게 궁금한 것! 당신의 로마는 어디인가요? 당신의 이탈리아어는 무엇인가요? 왜 그 언어인가요? 그 언어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그 언어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나 문장이 있나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모두가 예상하고 있겠지만 -입니다. -루 중에서도 나마비-. ! -루와 아이데스. 이츠데모 와따시니 비-루오 구다사이. (그럼) 미나상, 아리가또고자이마시따. 간바리마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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