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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144

배 불러 터져도 좋을 행복한 만찬 행복한 만찬 공선옥 지음/달 사실 저는 아무 것도 한 게 없어요. 공선옥 작가가 다 차려놓은 행복한 밥상에 숟가락 하나 들고 열심히 떠 먹은 것밖에, 라며 배를 두드리기라도 해야할 것만 같은 이 기분 좋은 포만감. 공선옥 작가의 행복한 산문집을 읽었다. 읽는 내내 나는 따땃한 아랫목에 자리잡고 앉아 작가의 흙내나는 밥상을 염치없게 내어주는대로 받아 맛나게 먹었다. 됐다고, 배부르다고, 이제 더이상 못 먹겠노라고 손사래 치는 일 없이 나는 그녀가 내어주는 음식을 그릇소리가 나도록 싹싹 긁어가며 맛나게 비웠다. 그러면 그녀는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아, 이것도 있다며 구수한 냄새 그득한 오래된 부엌으로 달려가 금세 무치고 부쳐 땅내 고스란히 담긴 음식을 뚝딱 만들어왔다. 그녀의 음식들은 값비싼 재료로 만든 것.. 2008. 7. 6.
7번 국도 - 2000년의 너와 마주하는 일 7번 국도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까지 마쳤다. 속 나와 재현이 포항에서 속초까지 7번 국도를 거슬러 올라갔듯이 나도 김연수의 책들을 거슬러 읽었다. 절판된 과 는 조금 멀리 떨어진 도서관까지 땡볕에 걸어가 빌려왔다. 처음 가는 길이라 무작정 버스 노선을 따라 걸어 빙 둘러가 도착해보니 늘 가던 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던 곳이었다. 바보같이. '2001년 문학 활성화를 위해 문예진흥원이 뽑은 좋은책'이란 동그란 스티커가 붙여져 있는 를 펼치니 놀랍도록 어린 김연수가 불테안경에 주황색 스웨터를 입은 채 이 보다 더 활짝 웃을 순 없다는 듯 아주 방긋 웃고 있었다. 초판의 인쇄가 1997년 11월 17일. 그러니 그는 1997년의 김연수. 무려 십여년 전. 김연수를 거슬러 읽으며 감탄했던 책은 과 . 설레여.. 2008. 7. 1.
돌의 내력 - 고독한 주문을 외자 돌의 내력 오쿠이즈미 히카루 지음, 박태규 옮김/문학동네 나는 이 책을 '돌의 내력'을 담은 장편소설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144페이지에서 뚝 끊겼다. 그래서 큰 챕터가 나눠진 것이라 생각하고 '세눈박이 메기'를 읽었다. 이건 전혀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 것이었다. '돌의 내력'은 144페이지가 마지막이었다. 그러니까 은 '돌의 내력'과 '세눈박이 메기' 두 중편소설을 담은 책이다. '돌의 내력'을 읽다 가슴이 시릴대로 서늘해진 나는 갑자기 밝아진 분위기의 '세눈박이 메기'를 그냥 덮어버리고 읽지 않으려 했다. 이건 순전히 '돌의 내력'의 서늘함 때문이었다. 그러다 '돌의 내력'을 쓴 작가라는 생각에 끝까지 읽어냈다. 그러다 이 문장을 발견했다. 279페이지. "세계는 그야말로 웅대하고 산뜻했다." 이 짧.. 2008. 6. 27.
검은책 - 읽는 것은 거울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검은 책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민음사 내가 가진 유일한 세계지도, 삼성지능업 세계지도에서 보자면 터키를 대표하는 건 성 소피아 성당이다. 포털 검색창에서 '터키 성 소피아 성당'이라고 치니 성 소피아 성당을 앞에 우뚝 세우고 가지각색의 하늘이 펼쳐진다. 사파이어 빛깔의 파아란 하늘, 금세 쏟아질 것 같은 회색빛 하늘, 노을을 품은 주홍빛 하늘, 야경만 환히 빛나는 까아만 하늘. 성당의 지붕, 돔 위에 하얗게 눈이 내려앉은 사진도 있다. 이 즈음이 의 계절일테지. 이 곳에서 쓰여진 책을 읽었다. 언젠가 친구가 꼭 가보고 싶어했지만 결국 계획에서 빼버릴 수밖에 없다고 했던 나라, 터키. 내겐 사람에게도 그렇듯 책에게도 첫인상이 있다. 물론 사람에게도 첫인상을 착각해 나랑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 2008. 6. 26.
썸걸즈 - 그건 굿, 바이의 해피엔딩 사실 그런 질문은 애시당초 꺼내지 말았어야 했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굿은 아니지만 바이를 했고, 상황은 디 앤드되었으니까. 부산역 근처 호프집에서였다. 헤어진 지 5년이 지난 뒤였다. 잘 지냈느냐, 살이 좀 쪘네 마네, 맥주잔 언저리를 매만지며 어색한 말들을 주고 받고 있던 중에 갑자기 내 입에서 그 질문이 튀어 나와 버렸다. 정말 그 날 나는 바보 같았다. 너무 바보 같았다. 친구가 택시를 잡고 뒷좌석에 들어가 앉는 순간부터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그야말로 엉엉 울었다. 그 당시에는 쪽팔려서, 바보 같아서, 살이 쪄버려서 이렇게 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건 그제서야 끝난 굿, 바이였다. 그냥 바이가 아니라 굿바이였다. 내 마음에 한 톨의 미련도, 후회도 남지 않은 완벽한 해피앤.. 2008. 5. 29.
청춘의 문장들 - 판매자 김영하가 건네준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마음산책 알라딘 중고샵에서 '김영하'라는 판매자 이름을 발견했다. 김영하? 그 김영하? 정말? 판매자 김영하가 내어놓은 중고책 리스트를 봤다. 책의 권수도 많았고, 그 중에 한국소설도 많았다. 아, 이 책을 왜 파는거지? 소장하시지 않고? 나는 판매자 김영하를 그 김영하로 확신하기 시작했다. 그래, 이런 책은 출판사에서도 보내주고 직접 구입도 하고 그러그러해서 두 권이 생긴 걸거야. 그래서 알라딘 중고샵도 오픈했다, 재밌겠다 그런 생각으로 이렇게 대방출하는 거겠지. 언젠가 책이 너무 많아 둘 곳이 없어서 한번씩 헌책방에 판다는 이야기를 읽은 것도 같다. 아, 그래도 이 책은 가지고 계시는 게 좋을텐데. 그러다 상품상태에 구입날짜와 서명이 적혀져 있다는 책들을 발견했다. 오호라,.. 2008.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