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살 생각은 없었는데, 동생이 출근길에 이 책의 첫 글인 '눈물병'이 실린 페이지를 보내줬다. 서른 여섯살 여동생이 결혼을 했다. 가족 모두 울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경미 감독 혼자서만 울었단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여동생네와 식사를 하고 동생네는 돌아가고 엄마와 함께 뒷산을 실렁실렁 올랐던 시간에 대해 쓴 글이다. 감독은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정말 다 짝이 있을까?" 그리고 말한다. "내 짝은 왔다가 갔어, 이미." (그런데 책을 끝까지 읽으면 이 말은 당연하게도 사실이 아니다. 흐흐-) 그리고 이 구절이 있다. "사랑을 잃었다고 무너지면, 나는 끝난다. 나한테는 나밖에 없다. 매일 매시간 매초, 나를 때리며 악으로 버텨왔는데, 창피한 줄 모르고 아무 때나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그렇게 매번 눈물을 흘리고 나면 마음은 편해졌다. 숨 쉴 수 있어서 좋았다. 그냥 내가 마흔을 목전에 둔 서른아홉 가을에 그랬었다는 이야기." 시큰해지더라. 다른 글들도 궁금해졌다.


   두 편의 장편영화를 만드는 동안, 아니 그 전, 그 후, 감독의 일상과 생각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읽으면서 내가 좀더 묵직한 걸 기대했었나 생각이 들었다. 술술 읽힌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변 사람이 아빠와 엄마, 그리고 결국 남편이 된 백인 필수씨인데, 다들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엄마의 문자를 따로 모아놓은 페이지들이 있는데, 킥킥대면서 읽다가 마음이 짠해졌다. 직설적이고, 외모와 건강에 대해서 잔소리하고, 말도 안 되는 이상한 경고 문자를 주의하라고 꼭 전달하는 걸 보면 꼭 우리 엄마 같기도 하고. "어두운 망망대해 위에 혼자 남은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 때, 엄마의 문자는 그날 밤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빛이었다." 책은 여동생의 결혼으로 시작해 감독 본인의 결혼으로 끝난다. 초반에 혼자 지낸 힘든 시기들이 많이 적혀 있어서 그런가, 동반자를 찾은 (무려 13살 아래!) 이야기로 끝나니까 해피엔딩인 것만 같다. 이 책이. 한밤중에 마지막 장을 넘겼는데, 뭔가 긍정의 기운이 마구 솟아나는 느낌이랄까. 긍정적인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참 신기했다. 이상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나를 믿는 일이 제일 어렵다.


어쨌든,

아주 조금씩 가고 있다. 

2010.04.04


- 254쪽




  1. BlogIcon wonjakga 2018.08.27 23:39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 이것도 읽었는데. 헤헷 두 권이나 겹쳤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