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1404건

  1. 빅슬라이드 1 2022.01.28
  2. 미드나잇 4 2022.01.26
  3. 보리굴비 2022.01.07
  4. 파리로 가는 길 2022.01.05
  5. 2022 영화처럼 2022.01.05
  6. 메리 크리스마스 2 2021.12.27
  7. 아이슬란드 2 2021.12.12
  8. 여인초 2021.12.09
  9. 양꼬치 4 2021.12.06
  10. 아델 4 2021.12.03

빅슬라이드

from 모퉁이다방 2022. 1. 28. 23:16

  

  남편이 성대 낭종제거수술을 받고 왔다. 수술 전에 긴장되지 않냐고 하면 전혀- 라고 말했던 사람인데, 전신마취가 기계호흡인 줄 몰랐다고 알았으면 엄청 쫄았을 거라고 띄어쓰기 발음이 어색한 음성앱으로 말했다. 1-2주는 말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전신마취는 원래 이렇게 머리가 띵한 거냐며 이상한 거 아니지? 라고 메모장에 써서 보여줬다. 나는 호흡을 길게 하고 누워서 쉬라고 했는데, 왠지 아이를 보는 나를 두고 방에 들어가 버리는 게 미안한지 소파에 누워 일어나질 않더라. 남편이 기진맥진해 소파에 누워있는 동안 나는 아이 이유식을 먹이고, 분유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입속을 닦아주고, 침독이 가득한 입가에 로션도 발라줬다. 이제 자기만 하면 되는데 오래 칭얼대더라. 힘든 감정이 울컥하고 올라왔는데 꾹꾹- 잘 눌렀다. 한번 잠들었다 금방 다시 깼지만 참을 인자를 가슴에 새기며 토닥토닥을 수없이 하며 결국 재웠다. 거실의 남편을 방으로 보내고 아이가 침을 잔뜩 묻히고 논 장난감을 닦았다. 젖병과 이유식 용기, 우리가 먹는 저녁그릇을 닦고나니 갑자기 맥주 생각이 났다. 얼마 전에 술병이 난 이후론 (그렇습니다. 저는 최근 단유를 하였습니다) 생각이 난 적이 없는데. 아주 잘게 자른 마른 오징어도 생각이 났다. 가스레인지를 닦으며 생각했다. 일단 잔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어제 방송에서 들은, 가사가 좋았던 윤도현의 음악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집앞 편의점에 다녀오자. 딱 한 캔, 아니 딱 두 캔만 마시자. 그러자 어디에 있었는지 모를 긍정의 기운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지금 그 맥주를 마시고 있다. 윤도현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라고 노래하는 걸 들으며 사 온, 냉장고에 차갑게 해 둔 잔에 따른 바로 그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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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from 모퉁이다방 2022. 1. 26. 00:40


  저녁밥을 먹으며 남편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는데 평소 같으면 그리 생각하지 말아라로 시작하는 말을 분명히 했을텐데 오늘은 왠일인지 그러지 않고 묵묵히 들어줬다. 정말 고마웠다.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오늘은 정말 그런 사람이 내게 필요했거든. 오후에는 지난 일요일에 보지 못한 <방구석 1열>을 봤다.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나왔던 비포 시리즈 마지막편 <비포 미드나잇>의 한 장면에 손미나 작가가 말했다. 줄리 델피가 산 너머 지는 석양을 보고 아직 있다, 아직 있어, 졌다, 라고 읊조리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해는 졌지만 원래 그뒤부터 하늘은 더 아름다운 법이라고. 그러니 <비포 선라이즈>로 시작한 이들의 사랑은 변했다기보다 농익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그 표현이 너무 좋아 휴대폰 메모장을 켜놓고 메모를 했다. 그리고 이런 말은 휴대폰이 아니라 수첩에 적어둬야 하는데 생각을 했다. 요 며칠 어떤 이유로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는데 이제 떨춰버릴 때가 된 것 같다. 집에 수첩은 많지만 얼마 전 마음에 담아뒀던 작은 수첩을 하나 새로 주문했다. 그 수첩이 나의 새로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되길 바라며. 새해에는 남편처럼 마음이 단단해져서 잘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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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굴비

from 모퉁이다방 2022. 1. 7. 13:41

 

 

  지난주에는 몸과 마음이 피폐했다. 결국 남편에게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발악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밤에는 그 모습을 보인 걸 후회하지 않았으나 다음 날 바로 후회했다. 조금만 참았더라면 좋았을 걸. 아무튼 그렇게 한 번 대대적으로 폭발을 하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그 뒤로 내가 한 건 열심히 요리를 한 것. 이상하게 그렇게 되었다. 냉장고에 있는 돼지고기와 고수를 꺼내 굴소스를 넣고 볶아봤다. 상암 양꼬치집의 좋아하는 메뉴를 최대한 간소화한 것. 밑반찬 하나에 김치 하나를 내어놓고 밥 한 그릇씩 뚝딱했다. 섭섭한 마음이 남아 있던 남편도 맛있다고 했다. 다음날 점심에는 베이컨을 꺼내 잘게 썰고 계란을 추가해 볶음밥을 만들었다. 지난주에 만들어둔 유자향 피클을 곁들여 먹었다. 간단한 요리였는데 맛이 있었다. 몸을 생각하면 차라리 그 시간에 쉬는 편이 나았을텐데 요리를 하는 동안 마음이 차분하고 편안해졌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몸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아이를 돌보는 것도 지난주보다 힘들진 않았다.

 

   그 다음날은 아이 이유식 재료를 시키며 볶음용 닭 한마리도 주문했다. 아이가 노는 동안 닭을 삶고 아이가 자는 동안 살을 발라냈다. 저녁에 파를 송송 썰어넣고 닭곰탕을 따뜻하게 먹었다. 그리고 대망의 어제! 냉동실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다 지난 추석에 선물받은 보리굴비 생각이 났다. 보리굴비를 한 번도 요리해보지 못해 막내네가 왔을 때 그대로 쪄주었다가 너무 비려 나랑 제부는 손도 대지 않았었다. 정성이 많이 들어간 비싼 재료인데 요리하는 데에는 그렇지 못했구나 생각이 들었다. 작정을 하고 검색을 했다. 쌀뜨물에 해동을 시킨다. 지느러미를 자르고 비늘을 제거한다. 비늘을 제거할 때 사방으로 튀니 조심할 것. 배를 갈라 내장을 빼낸 뒤 월계수, 생강가루, 녹차잎 등을 넣고 20분 정도 쪄낸다. 후라이팬에 들기름을 두어 숟갈 두르고 바삭하게 구워낸다. 어제! 전혀 비리지 않은 보리굴비를 둘이서 뚝딱했다. 진정 밥도둑이더라. 둘 다 밥을 더 퍼서 먹었다. 오늘은 손님이 온다고 해 김하나 작가님 SNS에서 보았던 파나코타 디저트를 만들어 볼 생각. 우유와 생크림을 같은 비율로 섞어 젤라틴을 넣고 냉장고에 두면 끝이란다. 각기 다른 컵에 만들어 배달음식 먹은 뒤로 달달하게 먹어봐야지. 그러려면 생크림 사러 지금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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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로 가는 길

from 극장에가다 2022. 1. 5. 01:16

 

(스포일러가 있어요)

 

 

  <와인이 있는 100가지 장면>이라는 책을 식탁에 두고 야금야금 읽고 있다. 영화 속 와인을 마시는 장면들, 그 와인에 대한 정보 등에 대한 책인데 짤막한 글들이라 조금씩 읽기 좋다. 읽고 있으면 별로일 것 같아 보지 않았던 몇몇 영화가 보고 싶어진다. <파리로 가는 길>은 그 중 한 편. 

 

  엘레노어 코폴라 감독의 실제 경험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주인공 앤이 유명 영화감독인 남편 마이클의 칸느 출장에 동행했다가 컨디션 난조로 먼저 파리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시작한다. 이때 마이클의 사업 동료인 중년의 프랑스 남자 자크가 앤을 파리에 데려다 주겠다고 자처한다. 칸느에서 파리까지 자동차로 7시간. 하루 종일 자동차 여행을 하게 될 거라고 짐작했지만, 여행은 그 이상으로 길어진다. 자크는 파리에 가려는 마음이 있는 건지 의심될 정도로 자꾸 샛길로 빠진다. 영화의 재미는 자크의 샛길이 너무 매력적이라는 데 있다.

- p. 97-98 <와인이 있는 100가지 장면>

 

   흠. 온갖 로맨틱한 상황들이 다 나온다. 오픈카 뒷좌석에 꽃을 가득 싣고 나타난다거나 자동차가 고장나자 돗자리를 펼치고 치즈와 포도를 곁들인 한낮의 와인을 즐기는 등. 프랑스 남자인 자크 이 남자, 모든 행동들이 물 흐르듯 너무 자연스러워 나는 이 상황들이 로맨틱하게 느껴지지가 않더라. 완전 선수! 유부녀도 가리지 않는 작업남. (그런데 남편 그 자식은 뭐냐. 니가 더 나빠!) 결국 여행의 종착지인 파리에서 자크는 그리 과하지 않은 고백을 한다. (역시 선수) 영화는 앤의 묘한 표정으로 끝나는데 나는 그녀가 다 알 거라고 생각했다. 기억에 남을 특별한 여행이었다고. 그걸로 됐다고.

 

  그런 작업남 자크가 좋아보였던 장면이 있는데 베줄레이 성당에서 앤의 가슴 아픈 과거 이야기를 들은 뒤 함께 한 저녁식사 중에서였다. 앤은 여행 중 계속 사진을 찍는다. (카메라가 무려 라이카다) 습관 같은 거라고 한다. 자크는 찍은 사진들을 보여달라고 한다. 앤은 망설이다 보여준다. 자크가 놀라며 말한다. "사소한 것들을 잘 잡아내네요. 영감이 넘치는데요. 다 보여주지 않으면서 전체를 상상하게 만들죠." 자크는 남편에게 보여줬냐고 물어본다. 앤은 보여달라고는 하는데 그냥 하는 말 같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자크는 "20년간 함께 한 남자에게 왜 자기 자신을 다 보여주지 않아요?" 라고 말한다. 카메라를 들어 앤을 찍는다. 그리고 카메라를 건넨다. 봐보라고.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글을 쓰다보니 이 장면, 이 대사들 또한 자크의 작업 대사구나 싶은데 (로맨스가 온몸에 배인 남자) 오늘의 내게 뭔가 위안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 잠을 잠시 참고 기록을 남긴다. 영화를 보면 여행 가고프다. 남들 다 가는 그런 관광지 여행 말고 앤이 찍는 사진들처럼 사소한 것들을 잘 잡아내는 여행. 느긋하게 움직인 덕분에 미처 가보지 못한 곳들은 상상하게 만드는 여행.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여행. 아, 자크가 돈 갚을 때 영수증 버리지 않고 같이 클립에 꽂아준 거는 아주 좋았다. 그게 내가 본 이 영화 최고의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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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영화처럼

from 기억의기억 2022. 1. 5. 00:17

 

파리로 가는 길.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우리가 사랑이라고 믿는 것.

 

 

 

브로커.

 

헤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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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from 모퉁이다방 2021. 12. 27. 01:01

 

   크리스마스에는 아이를 재우고 늦은 저녁을 준비했다. 평일에 혼자 점심을 먹을 때 배추와 냉동삼겹살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냄비에서 익혔는데 맛이 꽤 괜찮았다. 조금 더 풍성하게 먹어볼 생각으로 이유식에 넣을 소고기를 사러 갔을 때 옆에 있는 야채가게에서 팽이버섯과 느타리버섯, 콩나물을 사왔더랬다. 크기는 작지만 깊이가 있는 후라이팬을 꺼내 물을 약간 붓고 야채와 고기 탑을 쌓기 시작했다. 이쁘게도 아니고 그냥 조금씩 적당히 쌓았다. 배추도 잘라 넣고 냉동삼겹살도 넣고 팽이 버섯과 느타리 버섯도 뜯어 넣었다. 콩나물도 넣고. 중간중간 소금과 후추도 적당히 뿌리고. 뚜껑이 안 닫힐 정도로 높게 쌓아놓고 뚜껑을 얹였다. 마지막에 맛술을 약간 두르고 가스불을 켰다. 약불에 천천히 익혔다. 익는 동안 남편의 소주를 꺼내고 내 사이다도 꺼냈다. 사이다를 따를 컵에 얼음을 가득 채워뒀다. 남편의 알타리와 파김치도 꺼내고 내 동치미 무도 꺼냈다. 소스는 정육점에서 준 참소스. 냄비를 확인해보니 야채 숨이 푹 죽어 붕 떠 있던 뚜껑이 제대로 덮혀 있었다. 뚜껑을 여니 맛있는 냄새가 훅-하고 솟아올랐다. 냄비를 식탁 중간에 두고 오목한 그릇에 각자의 소스를 담고 고기와 야채를 동시에 건져 푹 찍어 먹었다. 조금 심심한데 소스에 찍어먹으니 꽤 맛이 있었다. 손님이 오면 해줘야지, 라고 말하니 남편이 좋다좋아, 라고 했다. 건더기를 다 건져먹고 나니 기름기가 있긴 하지만 맛나 보이는 국물이 남았다. 국수를 넣기엔 양이 적었다. 남겨뒀다 내일 아침에 계란이랑 파 넣고 샤브샤브 죽처럼 만들어 먹자. 따듯하고 아침에 부담없게. 좋다좋아. 그렇게 조용히 크리스마스 밤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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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from 티비를보다 2021. 12. 12. 00:52

 

  아이는 이제 하루에 네번 혹은 다섯번 밥을 먹는다. 밥을 먹으면 트림을 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깨어난지 두 시간 즈음이 되면 칭얼대기 시작한다. 잠이 오는 것이다. 안방의 범퍼침대로 데려가 눕히고 엉덩이를 토닥여주면 잠에 든다. 눈을 자꾸 비비는데도 자지않고 계속 칭얼거리면 안고 등을 두드려준다. 좀 진정이 되면 소파에 앉아 엉덩이를 토닥여준다. 그러면 얼마 안 가 잠이 든다. 그때부터 한시간 길게는 두시간 동안 자유시간이다. 피곤할 때는 같이 자기도 하는데 그렇게 자버리면 하루 중 내 시간이 없어 아쉽고 아쉬워서 깨어있는 상태로 뭔가를 하려고 한다. 주로 밥을 먹는다. (시간이 아까워 간단히, 아주 빨리 먹는다 ㅠ) 달달한 것과 커피를 동시에 섭취하기도 한다. 책을 몇 자 읽기도 하고, SNS에 아이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티비를 보기도 한다. 

 

  정상훈, 조정석, 정우, 강하늘이 출연하는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편>은 그 시간에 본 프로그램이다. 소파에 누워 쉬려고 티비를 켰는데 올리브 티비에서 아이슬란드 편 1화를 하고 있었다. 3시에서 4시 사이였다. 남편이 퇴근할 시간이 가까워지는 시간. 마음이 살짝 놓이기 시작하는 시간. 저 멀리 춥디 추운 북유럽에서 펼쳐지는 풍경들을 군포의 작은 아파트에서 보았다. 1화를 보고 난 뒤 다음날 편성표를 확인했다. 그 날도 편성표에 있었다. 그 뒤 오후가 되면 지안이가 시간에 맞춰 잠들길 바랬다. 저 멀리 북유럽으로 잠시 떠날 수 있길 바라며. 어떤 날은 그랬고 어떤 날은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본 날도 있고 보지 못한 날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볼 수 있는 한 끝까지 봤다. 

 

  네 사람이 오로라를 본 날의 에피소드는 지안이가 자질 않아 보지 못했는데 마지막회까지 보고 영 아쉬웠다. 몇화인지 확인한 뒤 자기 전에 티빙앱에서 그 회를 틀어뒀다. 요즘의 나는 밤에 누우면 바로 골아 떨어지므로 며칠을 제대로 보질 못했다. 그리고 그저께 오로라를 드디어 봤다! 신기했다. 네 사람은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바빠서, 가난해서 잘 떠나지 못했다고 했다. 피디가 세계 각국의 아름다운 사진들을 출력해와 보여줬다. 가고 싶은 곳이 있냐고. 멋진 곳들을 다 마다하고 굳이 보고 싶지 않다던 네 사람이 한 사진에만 유독 눈을 반짝였다. 오로라였다. 그렇게 만창일치로 떠나게 된 아이슬란드 여행이었다.

 

  영상을 보며 오로라가 왜 생기는지 이해했다. 텅빈 것 같은 우주에 태양에서 나오는 플라즈마라는 것이 가득 차 있고 지구의 자기장이 이 플라즈마를 막아준다는 것. 이때 미처 튕겨나가지 않은 소량의 플라즈마들이 자기장을 따라서 남극과 북극에 모여들고 대기와 부딪혀 빛이 난다는 것. 우주를 여행하는 지구라는 우주선, 지구호의 보호막이 정상 가동 중임을 알리는 푸른 신호라는 것. 네 사람은 호텔에서 술을 마시다 오로라를 만난다. 밖으로 나가 습관처럼 하늘을 올려다본 정우가 호텔 안으로 들어와 외친다. 오로라! 밤하늘에 거대한 초록빛 띠가 드리운다. 그 띠가 움직인다. 그리고 흐른다. 우아하게 춤을 춘다. 네 사람은 오로라를 본 뒤 개별 인터뷰에서 똑같이 말한다. 지금 이 친구들과 함께여서 너무 좋았다고. 한국에 있는 아끼는 사람, 사랑하는 가족들이 생각났다고. 그들과 다시 한번 꼭 보고싶다고. 

 

   7화까지 보면서 매일 추운 아이슬란드를 상상했다. 군포의 작은 아파트에 앉아서. 얼마나 추울지. 얼마나 따뜻할지. 얼마나 아름다울지. 언젠가 나도 오로라를 꼭 보고 싶다. 나도 그 많은 사진 중에서 딱 하나 오로라 사진에서 마음이 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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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초

from 모퉁이다방 2021. 12. 9. 17:26

 

  아이는 이제 안다. 힙시트 꺼내는 걸 보면 자기를 안아줄 거라는 걸. 그래서 울다가도 울음을 멈춘다. 그리고 가만히 올려다보며 기다리고 있다. 오늘 그렇게 아이를 안아주려고 힙시트의 허리 부분을 매는데 갑자기 정인이 생각이 났다. 이제 6개월인 아이도 힙시트를 꺼내면 자기를 안아줄 거라는 걸 아는데, 그 아이도 알았겠지. 자기에게 또 나쁜 짓을 할 거라는 걸. 자기를 또 아프게 할 거라는 걸. 그리고 뉴스의 아이들 생각을 하다 눈물이 날 뻔 했다. 대신 아이를 꼬옥 안아줬다. 남편은 며칠 전 티비에서 <어린이에게 새 생명을> 시작 부분을 보더니 못 보겠다고 했다. 전에 본 안길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 영상이 생각나 또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다. 우리가 이렇게 부모가 되어가고 있나보다.

 

  아이는 이제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한다. 놀이공간을 확보해줘야 해서 매트 주변에 가드를 설치하고 화분을 창가로 모두 옮겼다. 키가 다른 화분들이 창가에 일렬로 줄지어 서 있다. 그 중 제일 키가 큰 화분 여인초의 잎이 옮긴 뒤에 또르르 말리길래 찾아보니 햇빛을 받는 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해 해가 뜨는 시간에는 스스로 잎을 만단다. 해가 지고 나면 풀고. 식물도 저렇게 스스로를 보호하는데. 그림책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나>를 아이에게 읽어주려고 꺼냈는데 관심도 없어서 혼자 읽었다. 그러다 또 눈물을 한 바가지. 아,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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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꼬치

from 모퉁이다방 2021. 12. 6. 18:19

 

 

  내일부터 이유식에 소고기를 넣어야 해서 정육점에 갔다. 가까운 정육점과 마트에는 한우를 팔지 않아서 (처음이라 비싼 한우를) 한 블럭 떨어져 있는 정육점까지 갔다. 날씨가 그리 쌀쌀하지 않아 유모차 방풍 커버 지퍼를 잠그지 않고 걸었다. 아이도 간만의 산책이라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유모차에 가만히 있었다. 주말에는 결혼식이 있어 서울에 갔다. 정말 간만의 외출이었고 별다른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마음이 허했다. 이어폰을 가져가지 않아 음악을 듣지 못했고 책은 가지고 나갔는데 읽을 기분이 들지 않아 지하철 안에서 핸드폰만 봤다. 아이 동영상을 찾아 가만히 보고 있다 내려서 남편에게 영상통화를 했다. 아이가 나를 알아보고 싱긋 웃어주는 걸 보고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엄마 얼른 갈게, 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는데 참, 나도 별 수 없구나 싶었다. 육아만 하던 엄마들이 간절히 갈망하던 혼자만의 시간, 자유를 얻게 되어 떠나게 되었을 때 결국 호텔방에서 아이 동영상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더니. 그런 시간을 잠시 가졌다고 해서, 바깥세상의 허함을 잠시 경험하고 돌아왔다고 해서 혼자만의 육아 시간이 고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무튼 지난 주말에는 그랬고 오늘은 아이와 함께 잘 보내고 있다.

 

  한 시간 걷다 왔는데 벌써 저녁이네. 이 동네에 가게가 거의 없다가 최근에 많이 생기고 있는데, 산책을 하며 새로 생길 가게를 탐색하는 일이 재미나다. 동네 사람들도 모두 그런지 가게가 하나 생기면 오픈발이 장난 아니다. 그러다 맛없는 가게는 바로 한산해지고. 최근에 곱창집 두 군데와 미국식 햄버거집, 떡볶이집, 떡집, 양꼬치집이 문을 열었다. 양꼬치집은 문전성시다. 남편 친구 부부와 한 번 갔는데 희안한 메뉴가 많았다. 맥주를 마시게 되고 아이가 앉아 제 몫을 밥을 먹을 수 있게 되면 (흑흑 언제?) 자주 가게 될 것 같다. 양꼬치 하면 상암에 진짜 맛난 집이 있었는데 동생과 정말 자주 갔었다. 가면 너무 맛나서 배가 부른데도 음식을 더 시키고 술도 더 시키고 그랬더랬다. 나중에 남편도 데려가고, 독서모임 사람들도 데려가고, 고향친구도 데려갔는데 다들 맛있다고 했다. 고향친구는 얼마 전에 양꼬치를 먹는다고 오랜만에 연락을 해왔다. 상암 양꼬치 맛이 생각이 난다며, 정말 맛있었다며. 동생이 검색을 해보니 그 맛있는 상암집은 코로나 전후에 폐업을 한 것 같단다. 그 소식을 전하는 동생이나 듣는 나나 너무 안타까웠다. 추억이 많은 곳인데. 거리가 멀어졌지만 언젠가 작정하고 한 번 가볼 생각이었는데. 아무튼 오늘 산책을 하며 탐색을 해 본 결과 12월에 정육점이 집 가까이에 하나 더 생기고 1월에는 닭꼬치집이 생긴다. 

 

  창밖은 어두워졌고 아이는 오늘의 마지막 낮잠을 자고 있다. 아이 물건 가득한 거실을 마주하고 아델 노래를 틀어놓고 추억의 양꼬치집 생각을 하니 마음이 뭐랄까 이상해진다. 서글픈 것 같기도 하고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시간들을 가질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싶어 따듯해지기도 하고. 지하철에서 내려 그 가게로 가던 길, 문을 열면 문 바로 앞 테이블에서 기다리고 있던 동생, 숯불이 들어오고 양꼬치를 올리던 순간, 마늘을 시켜 다 먹은 꼬치에 끼우던 순간이 마치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북경소주는 거기서만 팔았다. 꼬치를 다 먹고 나면 고수가 가득했던 돼지고기 볶음요리를 시켜 칭따오와 함께 하곤 했다. 그 요리는 먹을 때마다 기가 막혀서 먹을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했다. 고향친구는 거기서 술을 마시고 택시에 겉옷을 두고 내렸다고 했다. 남희언니는 거기서 결혼선물을 건넸다. 크기가 다른 접시 두 개였는데 정말 잘 쓰고 있다. 접시를 쓸 때마다 언니 생각이 난다. 그 접시를 건네주며 언니가 했던 말들도. 동생이랑 나는 퇴근 후 거기서 만나 양껏 먹고 택시를 잡아 함께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갑자기 많이 그리워지네, 별 것 없는 시절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나보니 참 좋은 시절이었던 그 시절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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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

from 음악을듣다 2021. 12. 3. 15:01

 

  화요일 아홉시. 남편은 아이를 목욕시키고 동네에 사는 후배와 술 한 잔 하겠다고 나갔다. 아이를 재우고 동생이 알려준 공연 시간에 맞춰 티비를 켰다. 배철수와 오프라 윈프리의 소개로 공연의 막이 올랐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시작해 완전히 밤이 찾아온 뒤까지 이어진 공연이었다. 그리피스 천문대를 배경으로 한 일몰 풍경은 아름다웠고 아델의 목소리는 깊었다. 제일 좋았던 곡은 I drink wine. 번역된 가사를 보며 적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놀고 열심히 일하고 희생 속에 균형을 찾으라 하지. 하지만 진정 만족하며 사는 사람 못 봤어." "날 이겨 내는 법을 배우고 싶어. 다른 누구인 척 그만두고. 서로 대가 없이 사랑할 수 있게. 모두 내게 뭔가를 원하지만 당신은 나만을 원해." "왜 난 어쩌지 못하는 것들에 집착하는 걸까?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는 걸까?" "못 믿겠지만 그댈 위해 울었어. 저 파도 만큼. 그댈 간절히 원하지만 불을 불로 맞설 수 없으니." 인터뷰에서 아델은 말했다. "나는 좌절이 창피하거나 부끄럽지 않아요." "저는 깊은 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사람이니까요." 현실에서 자신은 그렇게 깊이 있는 사람이 아닌데, 자신의 노래를 보면 무척 깊이가 있다고.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던 감정과 생각들을 부르고 있다고. 자신의 어떤 깊은 곳에서 노래가 만들어지고 불러지는데 그곳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모른다고. 만들어진 곡들을 들어보면 어느새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김윤아의 고잉홈이라는 곡을 무척 좋아해 수십 번 들었더랬다. 얼마 전 <라디오스타>에 나와 그 곡은 무척 개인적인 곡이고 힘든 일을 겪은 동생에게 힘이 되고 싶어 만든 노래라고 그렇게 지극히 개인적인 노래가 그렇게 큰 사랑을 받을지 몰랐다고 했다. 김민철 작가도 책을 쓸 때 매번 이렇게 개인적인 글을 누가 볼까 수십번 생각한다는 글을 보았고. 그러니,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좌절 따위 창피하거나 부끄러워 하지 않고 깊은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둘러보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런 사람들이다. 내게 창피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좌절과 자신의 이야기를 깊게 해 준 사람들. 이제 한 달이 지나면 마흔셋이 된다. 아델은 이제 서른인데, 세상에 나는 마흔 셋이라니. 하나도 둘도 아니고 셋은 완벽한 중년의 느낌이다. 좌절을 창피해하거나 부끄러워 하지 않고 깊이 있게- 완벽한 중년이 될 내년의 나의 신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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