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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쓸쓸한 밤이예요
    모퉁이다방 2009. 2. 12. 01:22
        쓸쓸한 밤이예요,로 시작하는 문자를 보내려고 했다. 오래간만에 버스를 탔다. 창가 자리에 바짝 기대 앉아 쓸쓸한 밤이예요,로 시작하는 문자를 쓰려다 말았다. 내가 쓸쓸한 밤이예요,라는 문자를 보내려고 했던 사람은 늦은 밤의 문자임에도 불구하고, 다정하고도 따듯한 답문을 보내줄 게 분명한 사람. 결국 쓸쓸한 밤이예요,라고 시작하는 문자는 보내지 못했다. 너무 길어질까봐, 내 지금 기분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할 것도 같았다. 그래서 그냥 보내지 않았다. 쓸쓸한 밤이예요,라고 시작되는 문장들을.


        쓸쓸한 밤이예요. 잘 지내고 있죠? 어느새 겨울의 끝자락이예요. 봄 좋아한다고 했었나요? 우리가 그런 질문과 답을 했던가요? 기억이 안 나요. 오늘은 술을 마셨어요. 요즘 거의 매일 마시고 있지만. 아무튼 오늘도 술을 마셨어요. 그런데 오늘은 뭔가 이상했어요. 술맛도, 기분도, 날씨도. 창 밖은 안개가 그득했죠.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분이 좋았다가, 그렇지 않았다가 그랬어요.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킬 때는 좋았다가, 두 번째로 잔을 들면 안 좋아지는 거죠. 그런 느낌 있잖아요. 내가 소리내는 말이 누군가에게 전해지지 못하고 공기 중에 흡수되는 느낌. 내가 하는 행동들이 맞은편의 사람들에게 보여지지 못하고 사라지는 듯한 느낌. 안개 때문인가요? 오늘 보라색 색종이를 멍든 부위에 붙여놓으면 멍자국이 빨리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신기한 거예요. 색종이가 멍의 색깔을 흡수하는 거잖아요. 세 번째 모금을 들이킬 때 그 보라색 색종이가 생각이 났어요. 내 안의 뭔가가 내가 모르는 세상 어딘가로 흩어지는 듯한 느낌.

        그래서 집에 들어와서 세수를 하고, 발도 씻은 뒤 벽에 기대고 앉아 오늘 다이어리 한 귀퉁이에 옮겨 적었던 글귀들을 읽어봤어요. 역시 위로가 되더라구요. 들어볼래요? 혹시 지금 쓸쓸하다면, 그래서 눈물이 날 것도 같다면, 마음이 닫히는 소리가 철커덩하고 들린다면, 확실하게 효과가 있을 거예요. 

        스콧 피츠제럴드의 '오월제'라는 단편에 있는 글귀. 그리고.

        이건. 어느 책 속의 작가의 말에 나오는 글귄데. 책 제목이 생각이 안 나요. 흠. 언젠가 친구는 내게 넌 약해 보이지만 의외로 강한 사람,이라고 했지만. 난 때때로 강하기도 하지만, 약하고 여린 부분이 많은 사람이예요. 그래서 상처도 잘 받는 사람인 거예요. 오늘은 많이 쓸쓸한 날이었어요. 지하철에 앉아서 내가 끄적거린 글귀가 있는데, 그건 보여주진 못하지만 오늘의 기분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들이예요. 거기엔 끝,이라는 단어가 있고 시작,이라는 단어도 있어요. 혹시 나처럼 쓸쓸한 하루를 보낸 건 아니죠? 이 모든 게 안개 때문이예요. 안개. 잘 지내요. 사실 오늘 아침, 계단을 오를 때도 연락하고 싶었어요. 결국 못해버리고 말았지만. 봄이 오면 봄바람이 부는 야외에서 술 한잔 마셔요. 커피도 좋아요. 꼭 우리, 그렇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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