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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니,
    모퉁이다방 2008. 12. 30. 00:29
         언니. 그저께 언니에게 가는 길에 루시드 폴 음악을 들었어요. 사람이었네. 물이 되는 꿈. 오, 사랑. 삼청동. 들꽃을 보라. 그건 사랑이었지. 사람들은 즐겁다.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노랫말도 멜로디도 고운 노래들이에요. 언니가 있는 곳이 어찌나 멀던지 나 이 곡들을 세,네번씩은 반복해서 들은 것 같아요. 지하철도 두 번이나 갈아타고 택시까지 탔으니까요. 나는 그냥 빨리 도착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는데, 언니가 있는 곳에 가까워지니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거예요. 응. 그랬어요. 그리고 언니에게 도착해서도 어떤 식으로 예의를 갖추어야 할 지 몰라서 머리가 뒤죽박죽이었어요. 실수하지 않으려고 발 끝에 힘을 바짝 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언니 얼굴이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언니가 나를 보고 울어버리니깐 나도 그렇게 울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나. 언니가 너무 슬플까봐 밥도 많이 먹구요. 국도 다 긁어먹었어요. 전도 많이 집어먹구요. 응. 나 그랬어요.

        언니. 그런데 그 날 거기서 언니에게 새벽에 받은 문자 이야기를 하는데, 또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나는 그 문자가 내내 걸렸거든요. 그래요. 언니가 문자에 그랬던 것처럼 나 원래 늦게 자는 아인데, 그 날은 왜 그렇게 일찍 잤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언니 문자 받고, 답장을 보내고, 그 문자에 언니가 또 답장을 보내고. 그 밤이 그런 밤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어요. 그 밤이 생각날 때마다요. 미안했어요. 마음에 걸렸구요. 응. 그랬어요. 나. 

        언니. 언니에게 가는 길에,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여러 생각을 했어요. 음. 가는 길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함께 얼마나 많은 영화를 보았는지요. 와. 셀 수가 없겠더라구요. 우리가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만나면 영화를 봤잖아요. 부천에서 보았던 영화, 중앙시네마에서 함께 봤던 영화. 시네큐브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봐서 줄거리가 헷갈렸던 적도 있었잖아요. 그건 정말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최근에 옥션 공짜 영화 열심히 보러다닌 것까지. 영화제에서는 밥 먹을 시간 없어서 배 움켜잡고 보기도 하고, 어느 날은 너무 많이 먹어서 극장에서 꾸벅꾸벅 졸고. 생각해봐요. 그러니까 우리가 얼마나 똑같은 영상을 마음에 두고 있을지. 얼마나 똑같은 공기를 품에 안고 있을지. 얼마나 똑같은 냄새를 기억하고 있을지. 좋았어요. 언니. 언니랑 봤던 영화도, 우리가 먹었던 밥도, 술도, 우리가 나눴던 대화도, 그리고 언니도.

        언니. 돌아오는 길에는요. 그 생각이 나더라구요. 언젠가 아빠가 내게 해 준 말. 할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실 때 내게 떨리는 목소리로 건네줬던 말. 할아버지가 저렇게 편찮으시니까 아빠는 커다란 기둥이 뿌리째 흔들리는 것 같아서 힘들고 무섭다는 말. 응. 맞아요. 언니.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아빠는 정말 뿌리 뽑힌 기둥같았어요. 나는 그 야위고 야윈 등을 멀리서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자꾸만 고개를 숙였어요. 언니도. 그랬어요. 언니의 뿌리에 흙이 그득하더라구요. 그게 보였어요. 

        언니. 내가 그랬죠? 여름에 같이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거기엔 아주 커다란 나무가 있어요. 며칠 전에 거길 처음 가 봤는데요. 너무 추워서 오돌오돌 떨면서 그 나무를 봤어요. 얼마나 큰지 몰라요. 덩치가 커다란 내가 둘이나 있어야 기둥을 감싸안을 정도예요. 아니, 셋일지도 몰라요. 넷은 아닐 거예요. 아니다. 넷일지도 몰라요. 아무튼 아주 큰 나무가 있어요. 그 나무가 어찌나 큰지 그 커다란 마당 넘어서까지 줄기가 뻗쳐있더라구요. 언니, 생각해봐요. 그 커다랗고 시꺼먼 나무의 여름을요. 얼마나 많은 잎들이 솟아날지, 그 그늘은 얼마나 시원하지,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는 또 얼마나 근사할 지. 거길 가요. 여름이 되면. 카페도 있으니깐 우리가 좋아하는 맛있는 커피도 마셔요. 그리고 오후 내내 그 나무만 바라보는 거예요. 나뭇잎과 기둥과 저 아래 튼튼하게 박혀있을 뿌리까지두요. 질릴 때까지 보고 오는 거예요. 어때요? 그 때 같이 간 친구가 그러는데요. 저렇게 오래된 나무는 사실 99%는 죽은 거래요. 나이테가 100개가 있으면 가운데 하나에만 물이 흐른다는 거예요. 나는 그 말이 참 근사했어요. 1%로 저렇게 튼튼하고 근사하게 살아가는 거잖아요. 99%는 죽어있어도 1%만 살아있다면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이 적어준 글귀처럼 우린, 여름나무처럼 꿋꿋해질 수 있다는 거예요.

         언니. 나, 또 이렇게 주절주절 말 많아지고 있어요. 언니 만나면 나 항상 이렇잖아요. 쓸데없는 말 늘어놓고. 아. 아. 나 이 말을 안 했다. 사실 이 노랠 전해주고 싶어서 시작한 글인데. 그 나무를 보러 간 날에요. 이런 노래를 들었어요. 나 사실 이 노래 들으면서 눈 끝이 조금 촉촉해졌어요. 노랠 불러준 사람이 노래 부르기 전에 한 멘트 때문일 거예요. 노랠 불러준 사람이 그랬어요. 베로니카,는 저희 할머니 세례명이에요. 저희 할머니는 저의 롤모델이시거든요. 저는 할머니처럼 살고 싶어요. 이 노랜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만든 노래예요.

        언니. 오늘 여긴 눈이 왔는데. 언니가 있는 곳에도 왔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곧 만나요. 언니. 눈이 다시 내리기 전에. 오랜만에 같이 영화 봐요. 나와 함께. 맛있는 것도 먹어요. 나와 함께. 그리고 함께 울어요. 보고싶어요.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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