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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아름다움 기석이가 고른 책은 다 기석이 같다. 그동안의 책 중 가장 얇고, 글자가 적은 덕분에 다 읽었지만, 녹록치 않았다. 읽다가 나도 모르게 두 장을 한꺼번에 넘긴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계속 읽었다. 무심코 앞장을 넘기다 너무나 생경한 페이지가 있어 앞뒤를 넘겨보니 내가 건너뛴 페이지였다. 어제는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내가 읽고 있는 기석이라는 사람에게도 그런 페이지가 있는 건 아닐까. 건너뛴 페이지가 자연스러웠다면, 돌아가 부러 발견하고 다시 읽는 게 좋은 걸까, 그 페이지 쯤은 발견하지 않은 채 흘러 가게 두는 게 좋은 걸까. 누구에게나 그런 페이지가 한 두장씩은 있겠지. 제목과 표지가 무척 아름다운 2017년 첫 시옷의 책 . 세 개의 포스트잇을 붙여뒀다. 14페이지, 그는 행복한 듯.. 2017. 2. 15.
염소의 맛 예전부터 궁금했던 책이었는데, 지난 늦여름 노홍철의 책방에 가서 뭔가를 구입하기 위해 두리번거리다 발견했다. 벽면에 전시되어 있던 책 딱 한 권이었는데, 계산을 하려고 할 때 노홍철이 이 책을 왜 사느냐고 물었다. 궁금했던 책이라고 말했고, 자기는 이 책을 다 읽고나니 '그래서 어쩌라구?'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읽고나면 어떤 느낌인지 꼭 알려달라고도 했다. 책을 사고 친구들을 기다리면서 버스 정류장에서 읽었는데, 그때의 빛에 담긴 표지의 빛깔이 참 좋았다. 참 이쁜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백하건데 나는 제목의 '염소'를 동물로 알았다. 수영장 그림이 있는데도 염소를 그 염소로 생각하지 못했다. 아쿠- 책을 다 읽고 나니 노홍철의 말이 이해가 됐다. 잔잔한 이야기에 미스테리한 결말이다. 여자아.. 2017. 1. 15.
심야 이동도서관 거기서 나는 위안을 찾았다. 손등으로 코를 훔치고 서가를 둘러보았다. 꽃에서 정성스레 추출한 향이 향수에 담겨 있듯이, 책장에 꽂힌 책들에는 내 삶이 스며 있었다. 나를 바람맞힌 소개팅 상대를 기다리며 카페에서 읽은 바버라 터크먼의 이 보였다. 여러 번 읽어 두툼해진 도 있었다. 나는 를 집어 들었다. 책을 펼치자 글이 57쪽까지만 있고 그 뒤로는 없었다. 끝까지 읽지 못한 책이었다. 내가 읽다 만 페이지에 아이스크림 막대가 꽂혀 있었다. - 오드리 니페네거 中 혼자 있을 때, 자다 읽어났는데 혼자이고, 어느새 해가 늬엿늬엿 지고 있을 때, 마찬가지로 혼자가 된 사람들을 생각해보는 순간이 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난 뒤 사무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아버지,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2017. 1. 3.
사라지고 있습니까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다 결국 주문했다. 은 사두고 시간이 꽤 지난 뒤에 읽었지만, 이번 책은 도착하자마자 바로 읽었다. 책 두 권 읽고, 영화 몇 편 보았다고 그 사람을 다 안다고 할 수 없지만, 나는 그런 착각에 빠져 책을 읽었다. 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이 에세이가 너무 적다는 거였는데, 이번 책은 모두 에세이다. 좀더 그의 일상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마음껏 들었고, 좋았다. 가난했던 어린시절의 추억, 영화를 하기 전 고단했던 날의 이야기, CCTV에서 오랜 연애를 끝낸 연인의 걸음거리를 찾아내려 노력했던 시간, 유부녀가 된 예전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밤, 눈이 많이 내린 날 청주의 대학교에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모텔에 가 쓸쓸하게 누워 있었던 기억,.. 2016. 10. 12.
일본의 서양문화 수용사 소설 을 읽고, 그 시기의 일본이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 책인데, 읽으면서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심각한 내용일 줄만 알았는데, 서양 문물을 처음 접하고, 거기에 적응해 가는 그 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꽤 재미나게 묘사되어 있다. 같은 시기의 우리나라 모습도 궁금해졌다. 한 권의 책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또 다른 책을 찾게 하고,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나게 하며, 언젠가 깊고 풍성한 여행으로 이어질 거라 믿고 있다. - - - 16세기에 스페인에는 카스텔라 왕국이 있었다고 한다. 성이 많아 카스텔라라고 불렸는데 일본인이 일본에 와 있던 포르투갈인에게 포르투갈에서 건너온 과자를 가리키며 "이 과자의 이름은 무엇인가?"라고 묻자 "카스텔라지방에서 만든 과자"라고 대답한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혹은 선교사들이 .. 2016. 9. 6.
낮의 목욕탕과 술 동생이랑 오사카-교토 여행을 갔을 때, 우리는 들떠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동네 사람들만 갈 법한 자그마한 술집에 들어가 꼬치를 시키고, 맥주를 시키고, 사케와 오뎅탕을 시킬 작정이었다. 일본어를 전혀 못하면서, 들어가면 훈훈한 분위기에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 믿으며 그렇게 생각을 했더랬다. 그래서 오사카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돌아다닐 때 일부러 큰 길 쪽에 있는 가게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골목과 골목 사이를 거닐면서 여긴 어떨까, 여기가 더 낫다,며 많이도 기웃거렸다. 그러다 이 가게다 싶은 곳이 있었다! 크기도, 밖에서 언뜻 보이는 분위기도 딱이었다. 살며시 문을 열었는데, 벌써 만석이었다. 자리가 없었다. 아주 작은 가게였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고, 몇 번을 거절 당하다, 결국 큰.. 2016.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