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아이가 있다. 최근에. 그 애는 순식간에 그 사람에게 빠졌다. 좋아하게 됐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전화가 오면 전화를 받자마자 웃고, 늘 그 사람 생각을 한다. 왜 그 사람은 나한테 이 말을 하지 않을까? 그 사람은 나를 안 좋아하나봐. 나를 마주할 때마다 그 사람 이야기 뿐이다. 그 사람을 만나고부터 밤에 잠을 잘 못 자고, 입맛도 없어졌단다. 주말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예쁜 집에서 살고 싶어졌어, 라며 청소를 하기 시작하기도 한다. 평소에 절대 청소를 하지 않는 아이가. 사랑의 힘은 이런 거구나. 긍정적인 기운이 그 아이 주위에 가득했다. 그래, 연애, 해 볼만 한 거구나 생각했다.

 

   아이가 사랑에 빠진 동안 이 책들을 읽었다. 김남희가 1년 동안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고 온 얘기. 그 책에서도 화두는 '사랑'이다. 김남희는 남미를 여행하다 사랑에 빠졌다. 유희열과 이적과 윤상도 여행했던 바로 그 곳, 페루의 쿠스코에서.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호탕했고, 붙임성도 있었다. 베테랑 여행자인 여자와 초보 여행자 남자. 둘은 보름을 함꼐 어울려 다녔다. 때로는 둘이, 때로는 여럿이. 남자는 불꽃놀이를 보고 숙소에 있는 여자에게 달려갔다. "빨리 옷 입고 나와요. 불꽃놀이가 엄청 아름다워요." 남자는 여자에게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름다운 것을 함께 보고 싶었다. 남자는 일정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갔고, 여자는 혼자 남았다. 여자는 남자를 생각했다. 남자도 여자를 생각했겠지. 두 사람은 그 뒤로 계속 연락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남자가 노래로 고백을 했다.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그곳엔 푸른발부비새가 산다. 빼어난 수직 낙하 다이빙 실력을 가진 새. 그런데 알을 훔쳐가기가 너무 쉬워 '얼간이'라고 불린단다. 김남희와 같이 에콰도르를 여행을 하던 지인이 말한다. "언니, 부비가 물속으로 다이빙하듯 사랑 속으로 뛰어들어요." 이 구절을 사랑에 빠진 아이에게 이야기해줬더니 보여달란다. 그래서 읽어줬더니, 너무 좋다, 그런다. 역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은 다 똑같구나.

 

   이상하지. 이걸 읽기 위해 이 책을 샀는데. 김남희가 남미 여행 중에 사랑에 빠졌다, 라는 소개를 보고 읽기 시작했는데, 그녀의 사랑이 남자가 다시 남미로 날라와 이어지자, 그래서 여행기가 오직 남자 '감자씨'로 가득하게 되자, 심지어 1년 뒤 다시 찾은 브라질에서도 혼자 두고 온 아픈 남자를 생각하고, 안타까워하고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바뀌자, 이 여행기가 내게 좀 시들해졌다. 그래서 1권은 설레기까지 하면서 신나게 아침이며 저녁이며 빠른 속도로 읽어댔는데, 2권은 좀 더뎠다. 1권에는 포스트잇을 잔뜩 붙였는데, 2권에는 4개만 붙였다. 나만 이럴까, 궁금해졌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읽고 있는지, 그리고 읽을지.

 

    에콰도르에 가고 싶어졌고, 혼자 하는 여행의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김남희가 이혼을 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그동안 꽤 많은 책을 읽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여행에 대해 생각했다. 여행의 장단점에 대해. 어떤 여행이 좋은 여행인가에 대해. 분명한 건, 내가 하는 여행이 최고인 건 맞지만, 내 여행만이 언제나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더 많은, 다양한 여행을 하고 싶다는 것. 천천히, 그리고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여행을 시작한 이후 죽어가던 내 안의 촉수 하나가 슬며시 깨어나고 있다. 한때는 그 어떤 두근거림도 없던 날들을 평화롭다고 생각했다. 사무친 외로움도, 떠올릴 얼굴 하나 없는 밤들이 여유롭다고 믿었다. 그래서 슬픔도 외로움도 모른 채 한 줄의 일기조차 쓰지 못하는 날들을 보냈다. 길 위에서 나는 다시 외로움에 사로잡힌 볼모가 되었다. 날마다 흔들리고, 질문하고, 만나고, 헤어지며 생생히 깨어 하루하루 보내는 날이 없다. 결국 내게 행복한 삶이란 이런 것일까. 아직은 여행만이 내 심장을 고동치게 만들고, 살아 있다는 느낌으로 가득 차오르게 한다. 나이 마흔을 넘기고도 여전히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 있다는 것, 삶이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임을 매일 느낄 수 있다니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지!

- 135쪽 <라틴아메리카 춤추듯 걷다>

 

 어떤 장소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그곳에 새겨진 추억이다. 나의 아마존 여행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건 함께한 이들 덕분이었다. 활기 넘치고, 호기심 가득한 벗들이 있어 매 순간이 즐거웠다. 우연히 만나 이곳까지 동행한 아저씨 또한 최고의 여행 친구였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길 위에서 마음을 단단히 여민 채 걷고 있었다. 헤어지고 혼자 남겨지는 일이 두려웠기에. 지난 다섯 달간, 며칠을 함께 보낸 이와 헤어질 때면 나는 조금 쓸쓸했지만 울지는 않았다. 눈물은 내게서 사라졌고, 아무렇지 않은 날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이 대륙이 품고 있는 경이로운 자연에 위로받았지만 사람 때문에 울고 웃는 날들은 아니었다. 가뭄에 바싹 말라가는 논바닥처럼 건조한 내 모습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메마름이 질척함보다는 낫다고 여겼는데... 아저씨는 다시 길 위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다시 나를 울게 만들었다. 아저씨와 헤어진 후 나는 조금 용감해진 걸까. 일정 따위는 무시한 채 벗을 찾아 야간버스에 오르는 걸 보니. 세계 최대의 습지인 판타날에서 일주일을 함께 보낸 베키와 필을 만나기 위해 나는 지금 볼리비아의 남쪽 도시로 가고 있다. 일정이 좀 꼬이면 어때. 그게 여행인 걸. 헤어진 후에 좀 울게 된다 해도, 잠깐 만나고 오래 그리워해야 한다 해도, 괜찮다. 어차피 여행은 정들어 익숙한 것들과 헤어지는 연습을 하는 거니까. 삶은 결국 이별하는 과정이다.

- 199쪽 <라틴아메리카 춤추듯 걷다>

 

    여행이란 결국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고립이다. 그 고립과 단절이 자신과 타인에 대해 더 예민한 감성의 촉수를 일깨우고, 주변의 세계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선을 가능케 한다.

- 248쪽 <라틴아메리카 춤추듯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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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from 서재를쌓다 2014. 11. 22. 14:00

 

 

    공판이 끝났다. 법원을 나와 호송차에 오르면서, 나는 아주 잠깐 여름 저녁의 냄새와 색깔을 알아차렸다. 내 움직이는 감옥의 어둠 속에서 나는 마치 피로의 밑바닥으로부터인 듯, 내가 사랑했던 도시의, 내가 행복을 느끼곤 했던 어떤 시간들의 모든 친숙한 소리들을 하나하나 찾아낼 수 있었다. 이미 나른해진 공기 속에서 신문팔이들이 외치는 소리, 공원의 마지막 남은 새소리, 샌드위치 장수의 부르짖음, 도시 고지대의 커브길에 울려대는 전차의 비명 소리, 그리고 밤이 항구 위로 내려 앉기 직전에 울리는 하늘의 웅성거림. 이 모든 것들이 내가 감옥에 들어오기 전 너무나 잘 알던 것이었는데 이제 내게는 눈 먼 여행길로 재구성되고 있었다. 그랬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내가 만족하던 시간이었다. 그때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언제나 꿈도 없는 안락한 잠이었다. 하지만 이제 무언가가 바뀌었는데, 왜냐하면 다음 날에 대한 기다림과 함께 내가 다시 대면한 것은 내 감방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여름 하늘에 그어진 친숙한 길들이 순결한 잠으로 이끌어 가듯 아주 쉽게 감옥으로도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처럼.

p. 133-134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다. 1부의 마지막 장에 합정 편의점 파라솔에 떨어졌던 올 가을의 단풍잎이 빳빳하게 말라 있었다. 친구는 논란이 많은 이정서 번역을 샀는데, 빌려주면서 그냥 <이방인>만 읽으라고 했다. 이 책의 반은 <이방인>이고, 반은 기존 번역을 까는 역자노트이다. 사실 이렇게까지 역자노트를 길게 넣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좋은 번역은 이런 역자노트로 평가받는 게 아니라,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 아닌가. 친구의 조언대로 <이방인>만 읽었다. 다 읽고 검색해보니 이 역자노트 마케팅 때문에 이 책이 베스트셀러 수준으로 팔렸다고 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엄마의 장례식 부분이 지나고, 정말 푹 빠져 읽었다. 주인공 뫼르소에도 빠져 있었다.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짧은 출근길에도 읽고, 피곤한 퇴근길에도 읽고, 잠이 쏟아지기 전에도 읽었다. 다 읽고 나니, 내가 잘 읽은건가 싶었다. 다들 <이방인>이 무척 어렵다고 하는데. 좋은 고전을 읽고 나면 항상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내가 잘 읽은 것인가. 결국 읽는 사람이 중요하니까, 잘못되었더라도 내가 읽고 느낀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나는 뫼르소가 1부와 2부에서 각각 다르게 체감하는 '자유'에 대해 골몰했다. 당연시 여겼던 자유가 그에게서 빼앗겨 졌을 때 그가 느꼈던, 그리고 괴로워했던 생각들. 그것에 푹 빠져 있었다. 그래서 위의 저 인용 문장을 읽을 때 단어 하나하나에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카뮈가 썼던 미국판 서문을 찾아 읽었다. 그 서문에서 카뮈는 '거짓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가 창조해낸 그의 주인공 뫼르소는 '거짓말을 거부'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카뮈는 뫼르소를 통해 '우리들의 분수에 맞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그리스도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했다. 알라딘에서 에코백 이벤트를 할 때, 색깔이 마음에 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헤밍웨이를 주저없이 택했는데, 카뮈의 에코백이 색깔이 좋았던 이유가 있었구나. 그때 <이방인>을 읽었다면, 색깔이 좋은 카뮈 에코백을 주저없이 택했을 텐데. 역시 더 늦기 전에 많이많이 읽어야겠다. 생각해보니, 1부의 마지막 장, 단풍잎이 곱게 말라져 있던 그 장에서 뫼르소의 육체적 자유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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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from 서재를쌓다 2014. 11. 20. 23:14

 

 

   내겐 파란색 책이 왔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우표가 그려진. 예약판매 중인 이 책을 주문해놓고 타이완에 다녀왔다. 주문할 때 보니, 돌아왔을 때 받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정말 돌아온 다음날 받았다. 나는 이 책을 15년 동안 얼굴을 보아온 친구에게도 선물하고, 2년 동안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한 친구에게도 선물했다. 신기하게도 우리 셋에게 각각 다른 색의 책이 왔다. 말랑말랑한 산문집일 줄 알았는데, 왠걸 의외로 단단한 작법책이었다.

 

    프루스트 책으로 1년 계획을 세우는 소설가, 자신을 미남 소설가라고 (미안합니다, 말도 안되는) 자뻑 농담을 건네는 소설가, 자신을 정승 스타일이라고 이야기하는 소설가, 출근길 아침 나로 하여금 'Creep'를 듣게 한 소설가(무척 좋았다), 옌벤에서 또 독일에서 오래 머물며 글을 쓰는 (아니 때론 글을 안 쓰고 끼니와 포도주를 챙겨 먹기도 한) 소설가. 책장에 좋은 소설과 좋은 비소설 순위를 매겨가며 꽂아두는 소설가, 나이가 들어도 유머를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설가, 한때 자신을 비난했던 사람들을 책에서 은근하게 까고 있는 소설가, 11세기에 일본궁녀가 쓴 수필집을 비소설 쪽 4위에 꽂아둔 소설가, 사전 만드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소설가, 줄리언 반스, 무라카미 하루키, 폴 오스터를 좋아하는 소설가, 그 분들이 두꺼운 소설을 써내면 읽어 보기도 전에 훌륭한 작품이라 생각하는 소설가, 천천히 뛰면서(때론 그저 걸으며) 평소에 보지 못했던 풍경을 느껴보라는 소설가, 해가 저물 무렵 편의점 파라솔에서 한 두개의 캔맥주를 마시는 소설가, 아버지를 떠나보낸 소설가, 소설가의 일을 하는 소설가, 소설가의 일을 쓴 소설가.

 

    소설가가 말하는 소설가의 일이란 간단하다. 계속 쓰는 것. 끊임없이, 꾸준히 쓰는 것. 쓰다보며 알게 된다고, 그러니 쓰라고, 이상한 생각 그만하고 일단 손을 움직여 한 문장이라도 시작해보라고 말한다. 그러면 소설가가 될 수 있다고. 이건 꼭 소설에 국한되는 일은 아니라고.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하고 싶은 일은 하자고. 실패해도 시작해보자고. 그러면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고.

 

    소설가, 김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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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가구라자카에서 닛포리 역으로 바로 갈까 했다. 두껍긴 하지만, 반팔을 입고 나와서 너무 추웠다. 계속 비 맞고 다니니 다음날 감기에 걸려 하루를 온종일 날려 버릴까봐 걱정도 됐다. 보고 싶었던 야나카 산책 거리는 타바타 역에서 시작해 닛포리 역에서 끝난다. 책에 의하면 3~4시간 소요. 어차피 보고 싶은 것은 닛포리 역에 다 있으니까 닛포리 역으로 바로 갔다가 조금 둘러보고 숙소로 일찍 돌아가서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고 언니를 기다리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일본까지 왔는데, 라는 생각이 들어 두 정거장 더 가 타바타 역에서 내렸다.

 

   일단 첫번째 코스. 타바타문사촌기념관이다. 타바타에는 문인들이 많이 모여살았다고 한다. 동네가 좋아 모이고, 함께 사는 사람들이 좋아 모이고 그랬던 모양이다. 문인들이 함께 모여 살며 풍요로운 인연들을 많이 이어간 모양이다. 기념관은 아주 작은데, 원고들 같은 것이 전시되어 있었다. 중년의 남녀가 기념관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일본어를 모르니 그냥 물건들을 빠르게 둘러보고, 작가들이 실제로 살았던 마을을 본떠 만든 모형 앞에 썼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도 타바타에 살았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한자이름을 더듬더듬 찾아 버튼을 누르니 오른쪽 가장자리에 주황색 불이 들어왔다.

 

 

 

 

 

 

 

 

 

 

 

 

   야나카 산책하기. 책의 설명은 이랬다. "타바타 역을 마주하고 오른쪽 옆에 있는 건물 3층으로 올라가면 니시닛포리 역으로 가는 전철 선로와 평행한 길이 나온다. 길을 따라 20분 정도 걸으면 니시닛포리 역이 보이는 육교가 나오는데 육교 위로 올라가면 닛포리 공원과 사찰을 지나 언덕길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 언덕길에서 좌회전하면 마주하는 것이 유야케단단이고, 오른쪽이 야나카긴자 입구다.(도보 40분)"

 

   건물 3층을 올라가라고? 진짜 이상했지만, 올라갔다. 그러자 전철길과 평행한 주택 길이 나왔다. 와! 3층에서 시작되는 타바타 -니시닛포리 길을 보는데, 막 가슴이 설레였다. 여기 안 왔으면 어쩔 뻔 했나. 딱 내가 원하는 길이었다. 한적했고, 전철과 함께 걷는데 옆에는 또 집들이 있어 특별했다. 이 길에서도 이어폰을 꺼냈다. 출발하는 전철도 보고, 비 맞고 있는 공중전화 부스도 보고, 불이 켜 있는 집들도 보고, 사람도 없고 비도 와 조금은 으스스했던 절에도 들어가 봤다. 좋았다. 역시 두 정거장 더 온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신나서 걷다보니 금새 닛포리 도착. 물론 그 사이사이 소소한 헤맴은 있었다. 이 길을 걸어보려고 결심한 건 이 문장들 때문이었다.

 

    타바타에서 니시닛포리 그리고 닛포리까지 걷는 길은 가장 일본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닛포리는 '히구라시노사토' 즉, 해가 질 때까지 있어도 질리지 않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경치가 아름다워 에도시대 문인들이 사랑했다고 한다. 일본의 예술인과 문학인들의 작업터, 사찰과 묘지, 드넓게 펼쳐진 전철길, 오랜 시간 비바람과 지진을 견뎌온 나무들, 오며가며 마주치는 동네 고양이까지 모든 '일본'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동네다.

- p.98 <도쿄 일상산책>

 

 

 

   

 

  

 

 

 

   저녁노을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계단이 있다고 했다. 이름하야 유야케단단. 이걸 제일 보고 싶었는데. 흠. 하지만 소용없었던 건 말해서 무엇하랴. 하루종일 비가 오고 있었는 걸. 근사한 노을은 보지 못했지만, 스산한 초가을 비내리는 거리를 걸으며 이것저것 동네 구경을 했다. 일요일이라 문을 닫은 가게들이 많았지만, 책에서 본 각 가게의 특성을 그대로 표현한 동그란 그림 간판은 구경할 수 있었다. 지붕 위에 있었던 생생한 모형 고양이들도. 책에서 어두워지면 으스스해지니 가지말라고 했던 묘지에도 갔는데,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묘지 앞에 나팔꽃을 닮은 이름 모를 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동네 빵가게, 동네 반찬가게, 오래된 동네 커피집, 한국식당 '짠', 깔끔한 동네 이발소, 서서 술을 마시는 술집 (팟캐스트에서 말로만 들었던!), 아기자기한 것이 많았던 소품가게, 동네 마트, 맥주 자판기 등. 여기저기 구경했다. 산책하는 동안 동네에 스피커로 음악이 울러퍼졌는데, 경음악이었다. 음이 잔잔한 것이 조금 쓸쓸한 날씨와 잘 어울려 나의 산책길을 더욱 근사하게 만들어주었다. 언니와 7시에 메구로 역에서 만나 저녁을 먹기로 했다. 닛포리 역에 도착하니 그때부터 몸이 으슬슬했다. 자판기에서 따뜻한 녹차 패트를 뽑아 들고 전철을 탔다. 닛포리에서는 고양이 엽서를 한 장 샀다. 여름 축제에 가는 고양이의 모습을 그린 거였는데, 숙소에서 언니에게 보여주니 진짜 귀엽다고 했다. 아, 닛포리에서 고양이도 한 마리 봤다. 진짜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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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다바시 역과 가구라자카 역 사이 언덕에 있는 가구라자카는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루면서 공존하는 느낌을 준다. 그 옛날 기모노를 차려입은 게이샤들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뿌렸을 이곳은 조용히 마음을 비우고 걷기에 좋다.

   수많은 인연이 밟고 지나다녔을 돌길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아득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잠시 멈춰 서서 숨을 죽이고 귀 기울이는 수고를 해야 한다. 그 바람의 이야기에 매료된 사람들은 이곳에 둥지를 틀기도 한다. 일본의 셰익스피어라고 알려졌으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쓴 나츠메 소세키도 이곳에 머물면서 작품활동을 했다.

p. 26 <도쿄 일상산책>

 

 

 

   

 

 

 

 

    

    이 책이 이번 여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덕분에 길을 많이 헤매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해야겠다. 헤맨 건 가구라자카에서. 메인 가이드북이라기 보다는 서브 가이드북이라 지도가 정확하게 그려져 있지 않다. 대략의 아기자기한 그림지도인데, 혼자 다닌 둘째날 이다바시 역에서 몇번 출구로 나가야 하느냐부터 나의 문제는 시작되었다. 정확한 출구번호가 없어서 헤매다 나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정확한 출구였다. 하지만 ㅠ) 나가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책의 설명에 따르면 오른쪽 같기도 하고, 왼쪽 같기도 했다. 캐널 카페는 분명 저걸 말하는 것 같은데. 일본인 젊은 남녀가 내가 나온 출구 부근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와세다 도리 뭐라뭐라고 했다. 앗! 내가 찾는 길인데! 그들을 따라갔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초행길 티를 너무 많이 냈다. 내게는 책이 있었고, 그들에겐 핸드폰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을 따라갔어야지. 그런데 왼쪽에 와세다 도리라는 팻말이 있어 길을 헤맬 그들을 비웃으며 왼쪽으로 걸었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오른쪽으로 갔다. 흠. 한 30분 넘게 아주아주 한적한 길을 비를 헤쳐가며 걸었다. 너무 한적한데 생각이 들 무렵, 길을 잘못 찾아왔다는 느낌이 들었고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으이구. 혹시나 싶어 다시 길을 돌아가 젊은이들이 간 오른쪽으로 길을 건너 가보니 거기가 바로 내가 찾던 가구라자카 길이었다. 으이구. 바보 멍충이.

 

 

 

 

 

 

 

 

   가구라자카에 온 건 <친애하는 아버님께> 배경지이기도 했지만 (사실 드라마는 2회까지밖에 못 봤다;;) 존 레논의 단골 장어집이었던 타츠미야에서 장어덮밥을 먹기 위해서. 이다바시 역에서 길을 헤맬 때 초조했던 건 길을 잃어서이기도 했지만 런치 타임 시간에 늦을까봐. 이 시간에 가지 못하면 장어덮밥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가구라자카 길을 찾았을 때의 안도감이란. 타츠미야는 헤매지 않고 금방 찾았다. 그 앞에 절이 있다고 해서 절 부근에서 골목길을 유심히 보며 걸으니 간판이 보였다.

   

    줄을 서야 할 줄 알았는데, 가게 안은 한적했다. 손님은 나 뿐이었다. 나중에 단골 할아버지인 듯한 분이 들어왔고. 연습한대로 장어덮밥 중자와 맥주를 시켰다. 빙비루밖에 없다고 해서 다이죠부라고 말했다. 빅 오어 스몰이라고 물으시기에 (당연히) 빅이라고 말했다. 티비가 켜져 있었는데, <전국노래자랑>같은 티비 프로가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일요일 점심 때다. 뭔가 우리랑 다르지 않구나 생각했다. <전국노래자랑>이 끝나자 날씨 뉴스가 나왔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태풍이 굉장한 것 같았다. 다이소 우비가 튼튼하다고 해서 사왔는데, 영 부실했다. 벌써 어깨죽지가 조금 찢어졌다. 사실 아침을 먹고 얼마되지 않아서 배가 그리 고프지 않았는데, 아주아주 비싼 장어덮밥이기 때문에 밥 한톨, 맥주 한 모금 남기지 않고 깨끗히 먹었다. 밥도 먹고 맥주도 마시니 다시 걸을 기운이 났다. 운동화는 완전 젖어 버렸지만, 청바지는 이미 흠뻑 젖었지만. 아자! 아리가또 고자이마시따. Y언니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고 기억해뒀다. 장어집을 나서며 인사를 건넸다. 조용하고 친절한 곳이었다.

 

 

 

 

 

 

 

 

   그리고 걸었다. 소매가 스칠 정도로 골목이 좁다고 해서 '소데스리자카'라는 수식어가 붙은 효고요코초. 산책 책에서는 이 곳을 가구라자카의 숨겨진 보물같은 곳이라고 표현했다. 좁은 골목길만 찾아서 걸었다. 걷다보니 길이 막히기도 했고, 누군가 집에서 나와 길을 비켜주어야 했다. 비가 오는데도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산책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같은 관광객도 보였다. <친애하는 아버님께>는 조금밖에 보지 않아서 그 배경 골목길이 어딘지 정확하게 몰랐는데, 어떤 집 앞에서 커다란 대포 카메라를 들고 웃고 있는 두 명의 사내아이를 보고 저기구나 알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맞더라. 산책 책에 소개된 화장품가게에 가서 더듬거리며 책에서 추천해준 상품을 말했더니 친절하게 한국어 팜플렛을 줬다. 추천 상품은 곤약 스펀지였는데, 친절한 언니가 내 손에 직접 시연을 해 줬다. 포장해달라고 하고 다른 추천 상품은 없나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어떻게 알고 여기를 왔냐고 물어본다. 그래서 책에 나와있어서 왔다고 하면서 책을 보여주니 스고이, 하면서 일본 언니들 특유의 감탄사를 내지르며 좋아했다. 친애하는 아버님께 골목길에서는 한 일본 아주머니가 내게 길을 물어봤다. 물론 일본어로;

 

 

 

 

 

   걷다 보니 몸이 으슬으슬해져 커피도 한 잔 마셨고, 숙소에서 언니랑 먹으려고 페코짱 붕어빵도 샀다. 팥 하나랑 치즈크림 하나랑. 붕어빵 페코짱에 눈알이 없어 어째 좀 무서웠다.

 

 

 

 

 

 

 

 

 

   그리고 이 길을 걸었다. 나는 이 길이 산책 책에 소개된 그린로드인 줄 알았다. 방금 전까지. 정말 그런 줄만 알았는데. 아마도 더 내려갔어야 했나 보다. 책을 보니 느낌이 좀 다르네, 비가 와서 그런가 싶었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니 아랫길 같다. 그런데 이 길이 참 좋았다. 이어폰을 끼고 걷는데, 사람도 없었고, 옆으로는 전철이 지나가고, 녹차빛 강물이 흐르고, 비 때문에 조금 쓸쓸한 기분까지 드는 것이. 하지만 그래, 비가 오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 하루종일 비를 맞고 다니니 추웠다. 운동화는 흠뻑 젖어 질퍽거렸지만, 걸으면서도 생각했다. 고생한 여행이 나중에 더 기억에 남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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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급스러움이 피부로 느껴지는 시로가네라는 명칭은 피천득의 수필 <인연>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다. 1947년 구가 통합되면서 시바구가 미나토구로 변경됐지만, 도쿄로 유학한 그가 머물던 사회교육가 선생의 집이자 어리고 귀여운 꽃 아사코가 살던 지역이 '시바구 시로가네'다. 창문과 지붕이 뽀족한 집에서 함께 살자고 속삭였던 소녀 아사코와 피천득의 인연이 짧고도 길게 얽힌 동네가 바로 이곳이다.

- p. 392 <도쿄일상산책>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이 책이 출간됐다. 제목도 컨셉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도쿄는 서울과 많이 비슷하다는데, 그 중에서도 일본스러움이 느껴지는 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화려하지 않고 소소한 구경거리가 있는 곳. 서울로 따지면 서촌이나 북촌, 광화문 같은 곳. 산책하기 좋은 길을 천천히 걷고 싶었다. 그렇지만 비가 왔다. 그냥 비가 아니라 태.풍.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손님이었다. 반갑지 않지만 꼭 올 손님. 둘째날은 언니와 나랑 각자 가고 싶은 곳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내고 저녁에 만나기로 한 날. 일어나 커튼을 열어보니 어김없이 오셨다. 비님이. 우선 씻기로 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언니가 가져온 유산균과 아사히베리를 챙겨 먹고, 숙소를 나섰다. 아침은 메구로역 근처의 저렴한 규동집에서 규동세트. <사랑이하고싶어사랑이하고싶어사랑이하고싶어>를 보고 규동 체인점에서 꼭 한번 규동을 먹고 싶었는데 소원 풀었다. 심야식당 보면서 늘 먹고 싶었던 돈지루도 시켜 같이 먹었다. 그것도 소원 풀었다. (밤에 인터넷 검색을 하던 언니가 무시무시한 소리를 했지만. ㅠ)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원래의 계획에서 약간 수정됐다. 산책 책에서 봤던 피천득의 그곳, 시로가네까지 걸어갈 수 있으니 그리로 가보기로 했다. 책에 소개된 이 길에는 자연교육원이 있고, 프라치나 가로수길이 있고, 하포엔이 있다. 우리는 자연교육원 담장 길을 걸어서 (공사 중이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런데 무척 좋아보였음.), 프라치나 가로수길로 가게 되었는데, 그 중간에 있던 길이 좋았다. 커다란 나무들이 있었고, 집들이 있었다. 중간에 조그만 사원도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그 길의 느낌이 참 좋았는데, 역시나 아쉬웠다. 지금도 좋지만, 비가 오지 않았으면 정말 정말 좋은 길이었을텐데. 걷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운동화와 양말은 흠뻑 젖었고, 입은 우비도 썩 편하지가 않았다. 사진을 찍고 싶은데, 우산을 써야 하니 쉽게 꺼낼 수가 없고, 비가 오지 않았으면 볼 수 있었을 선명한 그곳의 색들을 볼 수 없었다. 대신 따뜻했다. 몸은 비에 젖어 점점 차가워지는데, 오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비가 와서 상점들이 대부분 전등을 켜놓았다. 그 주황색 빛 때문에 저녁길을 걷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나라에 온 거 같지 않게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하포엔은 사실 기대가 없었다. 도심 속 정원이라길래 얼마나 좋을까 했다. 그런데 산책 책에 나온 것처럼 들어가자마자 배꼽인사를 하는 관리인을 보니 뭔가 심상치 않은 곳이구나 싶었다. 아주 잘 꾸며진, 넓은 일본식 정원이었다. 책의 설명에 따르면, 이 곳은 에도시대 초기 오쿠보 히코자에몬이 여생을 보낸 곳. 도쿄에서 아름다운 정원 중 하나로 꼽혀 결혼 예식이나 행사 장소로 인기를 끈다고 한다. 우리가 간 날이 일요일이었고, 그날도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일본 전통 의상을 입고 지나가는 신랑과 신부도 봤고,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신부와 신랑도 봤다. 반듯하고 정갈하게 잘 가꾸어진 정원을 비를 맞으며 걸었다. 조금 있으면 물들 단풍나무들이 있었고, 팔뚝만한 잉어들이 있었다. 하포엔은 무료 개방이라 우리처럼 결혼식이나 행사 참석이 아니라 관광하러 온 외국인들도 많았다. 모두들 팔뚝만한 잉어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시로가네 길을 걸으면서는 그렇게까지 느껴지진 않았는데, 하포엔에 들어오니 여기가 얼마나 부자 동네인지 알겠더라. 하포엔에서도 생각했다. 흑. 좋은데, 비만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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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는 흐렸다. 여행 첫날이었다. 이른 아침에 인천에서 출발했는데, 도착해보니 낮인지 저녁인지 모를 정도로 흐렸다. 그래서 걷기 좋았다. 비도 오지 않았고, 원래 흐린 날을 좋아하기도 하고. 넥스를 타고 고탄다에서 내려 1시간 넘게 기다려 스테이크를 먹고, 메구로의 숙소로 이동했는데 Y언니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감기가 오려고 하고 있었다. 이날의 원래 일정은 고탄다에서 함박스테이크 런치를 먹고 (우린 늦어서 런치를 못 먹었지 ㅠ), 메구로 숙소에 짐을 풀고, <최고의 이혼> 배경지 나카메구로를 걷고, 부유한 동네라는 다이칸야마를 구경하고, 에비스에서 저녁으로 유자라멘을 먹는 것. 아, 에비스 전에 일정이 있었다. 에비수 맥주박물관에서 갓 나온 신선한 에비수 생맥주를 마시는 것. 결국 언니는 다음날 일정을 위해 숙소에서 몸을 추스리기로 하고, 나 혼자 길을 나섰다. 언니에게서 에비스 가는 방향 설명을 들었다. 숙소 앞에서 길을 건넌 뒤 쭉 직진을 하다 우회전을 하면 된다고. 언니 말대로 쭉 직진을 하다 나타날 때쯤 됐는데 생각이 들었을 때 우회전을 하니 가든 플레이스가 보였다. 거기서부터 가이드북 지도를 보고 맥주박물관을 찾아가는데, 지도에 있는 건물들이 나오지 않자 정신이 혼미해졌다. 헤매다 어떻게 할까 용기내서 경비원에게 물어볼까 생각하고 있던 차에 나타났다. 맥주박물관!

 

    말이 박물관이지 그리 크지 않았다. 오래된 맥주병, 잔들을 훑어보고 바로 테이스팅 살롱으로 이동했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이곳에서 갓나온 신선한 생맥주를 마실 수 있다 했다. 지난 오사카 여행에서 남은 동전 400엔을 넣고 에비수 코인으로 바꿨다. 코인 하나에 생맥주 한 잔씩을 마실 수 있다. 스테이크를 먹고 얼마되지 않은 터라 안주 없이 맥주만 마시기로 했다. 에비수 프리미엄 맥주와 에비수 흑맥주를 반씩 섞은 프리미엄 믹스로 주문했다. 고레 히또쯔 구다사이. 맥주를 주문 받으면 그 맥주에 맞는 컵받침을 준다. 그걸 옆 맥주대에 보여주면 거기에 맞는 맥주를 따라서 짠-하고 올려준다. 따르는 걸 봤는데, 맥주거품이 넘치도록 따른 후에 자 같은 물건으로 거품을 맥주 잔에 딱맞게 잘라낸다. 그리고 컵 주위에 묻은 맥주를 닦아내고 건네준다. 한 잔을 들고 구석자리에 가서 앉았다. 의자와 테이블이 높았다. 거기서 맥주를 마시며 이 책을 읽었다.

 

    먹거리의 추억.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먹었는가?

    잊어버린 기억이 더 많지만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도 많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고 해서 그날이 특별한 날이었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내가 콜라를 처음으로 마신 날도, 흔하고 흔한 여름날의 오후였다. 

   친구가 살던 단층의 연립주택. 햇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부엌. 그대로 선 채 콜라를 마셨던 환상적인 그날의 나. 옆에 있던 친구도, 친구의 어머니도 수다를 떨며 웃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여름날에 누군가가 함께 웃고 있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무것도 아닌 날들이 쌓여 과거가 되는 것이기에 그 날, 아무것도 아닌 날에 웃고 있던 예전의 나를 추억하게 해 주는 콜라의 존재.

    과연 작았을까?

    오히려 최초의 한입은 미래의 자신에게 용기를 복돋아주는 커다란 한입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p. 214-215, 끝내면서.

   

    끝내면서, 부터 읽었는데, 이 부분을 읽고 왠지 코끝이 찡해졌다. 벌써 취한건가, 생각하며 높은 테이블에서 내려와 이번 여행을 위해 새로 환전한 천엔짜리 지폐를 꺼내 자판기에 넣고 버튼을 눌렀다. 이번 코인으로는 퍼펙트 에비수를 주문했다. 여기저기서 한국어가 들렸다. 두번째 맥주를 받을 때 조그맣게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라고 했더니 뭐라고 한마디를 더 해준다. 흑. 그렇지만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코인을 받는 총각이 잘 생겼었다! 두번째 맥주를 마실 때는 이어폰을 꺼내 김동률을 들었다. 그리고 구석 높은 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혼자 책을 읽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는 중년의 남자도 있었고, 나랑 같은 가이드북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도 있었다. 그 한국인 무리는 두 명이서 맥주 한 잔과 두 잔을 각각 마시고 떠났다. 책을 읽고 있는 중년의 남자가 내 앞에 또 있었는데, 그 사람 등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 등이 좀 외로워보였는데, 쓸쓸해보이지는 않았다. 그 미묘하고 기묘한 차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렇게 두 잔을 마시고 가든 플레이스의 야경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1시간 전만 해도 생소했던 길이었는데, 한 번 걸어봤다고 익숙해져 버린 그 길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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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떠나보내며, 잊지 않으려고 옮긴 구절들.

 

   리장 고성이 유명해진 건 지진 때문이다. 1996년 리장이 속한 윈난성 일대에 대지진이 발생했는데 리장 고성 내의 전통 가옥들은 아무런 피해없이 멀쩡했다. 발 빠른 중국 정부는 이 사실을 알리고자 리장 고성에 많은 돈을 투자했고, 1999년 이에 화답하듯 유네스코가 이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서서히 이름이 알려졌다. 그때부터 대대적으로 진행된 개보수 끝에 리장 고성은 관광지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관광지로 거듭났다.

   "도대체 얼마나 좋은 곳이기에 그 무서운 버스를 타나 했는데,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네!"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버스에서의 무용담과 그 끝에 찾아낸 보물에 대해 조잘대는 엄마의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 있다. 엄마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느려졌다를 반복한다. 이들이 저만치에 있든 아니든 상관없이 요리조리 참 잘도 돌아다닌다. 과연 엄마의 호들갑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리장 고성은 소문대로 무척이나 아름답다.

    맨질맨질한 돌담길이 미로처럼 끝도 없이 이어져 있는데, 워낙 곳곳이 아름다워 발걸음을 딛는 곳마다 모두 옳은, 나만의 길이 된다. 고풍스런 기와지붕이 여기저기 넘실대고, 깜찍한 수로들이 부지런히 골목골목을 휘감아 돈다. 도대체 언제부터 저곳에 있었을까 싶은 키 큰 버드나무는 우아하게 몸을 흔들며 우리를 유혹한다. 더불어 골목 어디에나 피어 있는 수많은 꽃들은 세상의 모든 색을 늘어놓은 듯 화사하다.

   너무 인위적이라느니 너무 관광지화되었다느니 말도 많은 곳이지만, 그 모든 말이 시샘처럼 느껴질 정도다. 딱 봐도 리장은 원래 미인이다. 민낯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자기를 보러 오는 이들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이 살짝 분을 찍어 바른 것뿐이다. 한참을 걸은 끝에 찾아낸 숙소마저 마음에 쏙 든다. 짐을 풀기 무섭게 엄마가 여전히 상기된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는다.

   "아들, 가능한 한 여기에 오래 머물자."

-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p.72-73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와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를 읽으면서 제일 마음에 남았던 구절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엄마와 아들의 해외여행은 장장 300일간 이어지고 런던에서 그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리장은 여행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만난 여행지이다. 빠른 여행 속도와 불편한 환경에 지쳐갈 즈음 도착한 곳. 엄마와 아들은 리장에서 바램대로 오래 머물며 심신을 회복한다.

    그리고 리장에서 예순 살의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살면서 처음으로 내일이 막 궁금해져."

 

    엄마와 아들은 몇년 뒤 다시 여행을 떠났다. 엄마가 그렇게 바랬던 남미로. 현재 여행 중이고, 작가의 블로그에는 매일매일 그날의 이야기가 업데이트된다. 책으로 엮어질 그들의 남미 이야기를 기다리며.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종류의 여행의 꿈을 키워줄 고마운 책에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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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잔인한 달

from 서재를쌓다 2014. 9. 27. 16:12

 

 

    여름의 시작 즈음, 내게 초대장이 도착했다. 그 곳은 캐나다 퀘벡에 있는 자그마한 마을. 세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 곳. 이름하야 스리 파인스. 조용하고 평화롭고 화목해보이던 이 작은 마을에 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사연이 있어 폐가가 되어버린 저택 안이었고, 그녀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죽은 사람을 불러내는 교령회 모임을 하던 중이었다. 교령회 도중 갑자기 죽어버렸다. 공포에 질린 채. 모두가 심장마비일 거라 추측했지만, 마을에 나타난 그는 그녀가 살인을 당한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수사를 진행한다. 그는 바로 가마슈 경감.

 

    그녀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 옆에 있으면 어리석고 서투른 존재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하지만 가마슈 옆에 있으니 온전한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p. 365

 

    나를 스리 파인스로 초대해 준 사람은 이 책을 이렇게 소개했다. '예쁘고 착하고 사랑스럽고 따듯한 추리소설.' 두꺼운 책이라 자주 들고 다니지를 못했다. 조금씩 천천히 읽었다. 그렇게 읽혔다. 흠. 살인사건을 하나의 조그만 점이라고 생각하자. 점은 짙은 녹색이다. 그 점이 하얀 종이 중간에 찍혀 있다. 그 위로 작은 물방울이 떨어진다. 조그만 양의 잉크가 천천히 종이의 가장자리까지 퍼져간다. 마침내 진녹색 점은 커다랗고 옅은 민트색의 무늬가 되어 종이를 꽉 채운다. 그게 이 이야기이다. 그 무늬 속에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는 감정은 소설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었던 '슬픔'. 자극적인 사건보다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감정들, 그 감정을 갖기까지 살아온 각자의 시간들에 집중하는 소설이라 생각보다 읽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마지막 반전에 흥분되어 뒷부분은 후다닥 읽었지만.

 

   "이해가 잘 안 됩니다." 마침내 머나에게 다시 눈을 맞추며 가마슈가 말했다.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겠습니까?"

   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정과 연민이 제일 이해하기 쉬워요. 연민은 교감을 필요로 하죠. 고통받는 사람과 동등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요. 하지만 동정은 달라요. 누군가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사람은 그 누군가에게 우월감을 갖는 거라고 할 수 있죠."

   "두 감정은 서로 잘 구별이 잘 안 되는데요."

   "정확한 지적이에요. 감정을 느끼는 당사자에게도 구별이 어렵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은 연민을 느낀다고 주장해요. 연민은 숭고한 감정 중 하나니까요.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건 동정이에요."

- p. 336-337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머릿 속에서 종이 울렸다. 아, 맞지. 그렇지. 늘 느꼈던 어떤 미묘한 감정이 몇 줄의 문장들로 논리 정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동정과 연민. 이 두 감정에 대한 정의는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소설의 범인이 평생 느껴왔던 감정이기도 했고,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느끼고, 느낌을 당해왔던 것이기도 했다. 이 문장들을 읽고 나자 나는 이 작가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우연의 일치일까요? 스리 파인스라는 마을의 광장에 소나무 세 그루가 있다는 거요." 

   "아닙니다. 이 마을은 미국독립전쟁 당시 미국에서 국경을 넘어 도망온 연합제국 왕당파들이 세웠습니다. 그땐 다 숲이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가마슈가 그녀 옆에 섰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마을과, 마을 너머의 울창한 수풀을 바라보았다.

   "왕당파들은 언제 안전해질지 확실히 알지 못했죠. 그래서 암호를 만들었습니다. 빈터에 세 그루 소나무가 있으면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안전하다는 뜻이군요." 잔이 말했다. 그녀는 나른해 보였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녀가 속삭였다.

   가마슈는 부드러운 황금빛 태양 아래 서서 잔이 안으로 들어갈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 p. 236-237

 

    작가 소개에 따르면 가마슈 경감이 등장하는 가마슈 시리즈는 벌써 10편이 출간되었단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캐나다에서 TV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단다. 이 소설은 그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인데, 물론 이 책만 읽어도 별 무리는 없지만 시리즈의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첫장부터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들과 안면을 익히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1, 2편의 배경도 스리 파인스이고,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모두 등장한다고. 내게 스리 파인스 초대장을 친절하게 보내준 고마운 사람은 이 책을 옮긴 이. 다 읽고 정중하게 하려고 감사 인사를 아직도 하지 못했는데. 고마워요. 덕분에 좋은 작가를 알게 되었어요. 보내준 말처럼,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달만이 가득하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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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이 되고 경주를 세 번 갔다. 한 번은 무더운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불국사 길을 걸었다. 한 번은 추운 겨울에.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문무대왕릉을 보러 갔다. 그리고 올해 늦여름. 부산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날, 경주에 있었다. 비를 쫄딱 맞으며 양동마을을 걸었다. 그리고 서울에 올라왔더니 딱 때를 맞춰 이 책이 출간되었다. 마침 옛다, 읽으렴, 이라는 듯. 세 번이나 다녀왔으니 경주를 좀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으니 나는 아직도 경주를 모른다. 하긴 소개팅을 해도 세 번을 만나고 더 만날 사람인지 그만 만날 사람인지 알 수 있듯이. 이제 나는 겨우 경주의 마음에 든 것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제 더 친해질 일이 남았다. 깊어질 일만 남았다. 때론 토라질 일도 있겠지만. 책은 경주에 정착하게 된 소설가가 꽃피는 봄에, 능의 풀이 무성한 여름에, 벼가 익는 가을에, 그리고 겨울에 경주의 이곳 저곳, 이 골목 저 골목을 산책한 뒤 쓴 글들이다. 책을 읽고 나니 내가 다녀온 곳보다, 갈 곳이 더 많았다. 생각보다 많은 곳을 가지 못했더라. 앞으로 더 많은 곳을 갈 수 있을 것이라 기뻤다. 경주와 나는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칠레의 시인 네루다는 "꿈의 궁전에서 살듯이" 아름다운 지명에서 살기를 좋아했다. 꿈은 시인의 특권이라 싱가포르, 사마르칸트에서는 지명의 발음을 음미하며 살았다고 한다. 매혹적인 지명이 분명 있으니 나는 전에 '아스파한에서의 하룻밤'이라는 단편을 읽고 아스파한을 오랫동안 꿈꾸었다. 티베트의 수도 라사도 나를 사로잡았던 이름이어서 '라사'를 제목으로 넣어 장편소설을 쓰기도 했다.

 

    신라라는 옛 이름을 불현듯 떠올리고 뒤늦게 몸을 돌린 것은 인도 여행 뒤다. 농경민의 후예처럼 좁은 땅에 붙박여 살다가 인도의 드넓은 대륙에서 삶의 본질을 보고 경주로 향했다. 자연인 듯 이지러져 천오백 년 전 고분이 도심에 솟아 있는 풍경은 근원적이었다. 김씨 왕들의 거대 능을 산책하며 내 속에 유목민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알았고, 비로소 한국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다. 신라라는 찬란한 이름을 만나기 전 나는 디아스포라였다. 경주는 모태와 같으니, 이 책은 유목민의 금빛 꿈이 묻혀 있는 고도에서 발길 닿는 곳마다 길어올린 사색의 우물이다. 나와 우리들의 뿌리에 대한 소박한 찬미이다.

 

   신라- 당신도 시인처럼 이 아름다운 발음을 음미해보라.

- p. 6-7

 

 

    그래, 내가 경주에 가야겠다고 결심한 처음도 능 때문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대학로의 조그만 한 극장 안이었다. 그 날 추상미가 나오는 독립 영화를 봤다. 추상미가 서울에서 내려와 친구 차를 타고 경주 시내로 들어갔는데, 곳곳에 커다란 능이 있었다. 우회전을 할 때도, 좌회전을 할 때도 고운 선이 보였다. 그때부터 반했다. 경주의 고운 능선에. 신-라-. 신-라. 발음해보니 능 위로 조그만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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