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낮의 목욕탕과 술
    서재를쌓다 2016. 8. 30. 22:00





       동생이랑 오사카-교토 여행을 갔을 때, 우리는 들떠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동네 사람들만 갈 법한 자그마한 술집에 들어가 꼬치를 시키고, 맥주를 시키고, 사케와 오뎅탕을 시킬 작정이었다. 일본어를 전혀 못하면서, 들어가면 훈훈한 분위기에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 믿으며 그렇게 생각을 했더랬다. 그래서 오사카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돌아다닐 때 일부러 큰 길 쪽에 있는 가게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골목과 골목 사이를 거닐면서 여긴 어떨까, 여기가 더 낫다,며 많이도 기웃거렸다. 그러다 이 가게다 싶은 곳이 있었다! 크기도, 밖에서 언뜻 보이는 분위기도 딱이었다. 살며시 문을 열었는데, 벌써 만석이었다. 자리가 없었다. 아주 작은 가게였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고, 몇 번을 거절 당하다, 결국 큰 길로 나와 체인점인 것 같아 보이는 커다란 꼬치구이집에 들어갔다. 바 자리에 앉아서는, 그냥 마셔 버리자며 손가락짓과 '구다사이'를 연발하며 생맥주와 꼬치구이와 하이볼을 시켰다. 옆에 앉은 혼자 마시러 온 아저씨가 먹는 치즈 꼬치가 맛있어보여 계속 훔쳐보며 시킬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아저씨가 맛보라며 하나를 줬다. 치즈가 아니라, 떡이었다. 치즈 같이 맛있는 떡이었다.


       이번에 오키나와에 갔을 때는, 숙소 근처에 저녁에만 여는 허름한 술집을 발견했다. 작은 실내 포장마차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낮에 닫혀 있을 때부터 가보고 싶었다. 혼자서 미술관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술집이 열려 있는 걸 발견했다. 해가 지지 않았는데도 좁은 공간에 손님들이 꽉 차 있었다. 모두 근처에 사는 동네 사람들 같았다. 가게가 좁아서 다들 따닥따닥 붙어 앉아 있었다. 용기있게 들어가 생맥주 한 잔을 달라고 하고, 간단한 안주를 시키고, 어색하지 않게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그러면 동네 사람들이 나의 어색한 일본어를 듣고 힐끔힐끔 쳐다보겠지. 맥주를 반 잔쯤 마신 나와 눈이 마주쳐 씩-하고 웃으면 아저씨가 물어보겠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여긴 왜 왔냐고, 덥지 않냐고, 맥주가 맛있냐고, 언제 돌아가냐고, 너에게 이 곳은 어땠냐고. 자신의 안주로 시킨 꼬치 하나를 내게 건네줄 지도 모른다. 나는 이 곳이 좋으다, 참으로 좋으다, 생각했을 지도 모르고.


       그 날, 나는 결국 그 작은 술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8월의 시옷의 책인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들어가지 못한 술집과, 들어갔던 맥주집과, 언젠가 들어갈 수 있을 그 곳을 생각했다.


    -


       목욕을 하고 나와 꼬치구이집에서 생맥주, 일본의 여름이다. 모기향이라도 피워놓았더라면 가슴이 뭉클했을 게다.

      차가운 생맥주는 한순간 여기가 어딘지 잊어버리게 할 만큼 맛있었다.

    - p. 169


       컵에 맥주를 따르고 단숨에 쭈욱.

       그리고 후우, 숨을 내쉬었다. 멀고 먼 추억이 이 맛에 깊이를 더한다.

       오늘의 기본안주는 녹미채. 아직 따뜻하다.

       풋콩과 빨간무절임을 시킨다. 맥주 다음은 소주로 하자.

       이곳은 독특한 방식으로 소주를 내놓는다.

       조막병에 상온의 소주를, 알루미늄 물통에 뜨거운 물을 담아 술잔을 낸다. 뜨거운 물에 각자 소주를 섞어 홀짝홀짝 마신다.

       술꾼들에게는 이렇듯 가게 특유의 방식이 묘한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어딘가 어린애 같은 면이 있어서일 것이다.

       두부볶음이나 고구마튀김도 맛있다. 젓갈이나 락교도 더 시키고 싶다.

       아직 손님은 아무도 없다.

       열린 문으로 늦여름의 바람이 불어온다.

       조금만 지나면 퇴근한 샐러리맨이나 근처 대학생이 길가를 메울 것이다. 해로쿠의 카운터도 단골로 가득 찰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소란스러운 기운이 가게 안을 다정하게 채울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전에 계산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설 생각이다.

       아직 저녁 햇살이 남은 거리를 따라 오차노미즈 역에서 주오선을 타고 서쪽으로, 약간 취기를 거느린 채 흔들거리며 돌아가야지.

       오늘이 남아 있다는 기쁨을 천천히 곱씹으면서.

    p. 214~215


    -


       '비어홀'이라는 단어가 책에 나오는데, 참 좋은 말 같다. 비어와 홀이라니. 이 세 음절만으로 그 장소의 맛과 들뜸과 왁자지껄함이 연상이 된다. 언젠가 비어홀에 가야지. :)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