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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서양문화 수용사
    서재를쌓다 2016. 9. 6. 22:44



       소설 <침묵>을 읽고, 그 시기의 일본이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 책인데, 읽으면서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심각한 내용일 줄만 알았는데, 서양 문물을 처음 접하고, 거기에 적응해 가는 그 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꽤 재미나게 묘사되어 있다. 같은 시기의 우리나라 모습도 궁금해졌다. 한 권의 책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또 다른 책을 찾게 하고,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나게 하며, 언젠가 깊고 풍성한 여행으로 이어질 거라 믿고 있다.


    - - -


       16세기에 스페인에는 카스텔라 왕국이 있었다고 한다. 성이 많아 카스텔라라고 불렸는데 일본인이 일본에 와 있던 포르투갈인에게 포르투갈에서 건너온 과자를 가리키며 "이 과자의 이름은 무엇인가?"라고 묻자 "카스텔라지방에서 만든 과자"라고 대답한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혹은 선교사들이 가져온 과자의 포장에는 성곽이 그려져 있었는데, 일본인이 과자에 대해 질문하자 선교사는 성곽을 물은 것으로 생각하고 카스텔로라 대답하여 카스텔라라고 불리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쉬어가는 이야기로 이는 '캥거루'의 경우와 같다. 처음 호주대륙에 도착한 영국인들이 들판을 뛰어다니는 이상한 동물을 보고 원주민에게 이름을 묻자 "나는 몰라요"라는 의미로 원주민이 "캥거루"라고 답한 것을 영국인은 이름으로 착각하여 캥거루에게 '캥거루'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니, 캥거루나 카스텔라의 이름의 유래는 결국 동문서답의 결과라 할 수 있다.
    - p. 34

       바타비아(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옛 이름으로, 당시에는 네덜란드 식민지였다)를 떠난 네덜란드선박은 1-2척으로 계절풍을 따라 대개 6-7월에 나가사키에 입항하였다. 1621년부터 1847년까지 일본으로 온 네덜란드선은 모두 715척이었고 난파한 배는 27척이었다고 한다(그 중 2척이 우리나라에 표착하였다).
    - p. 58

    (...) 이 행사 역시 유명하여 나가사키 판화에 여러 모습으로 등장하였는데, 1818년에 편집된 <장기명승도회>에는 큰 뚜껑요리, 닭고기, 카마보코, 계란 버섯, 소고기 튀김, 돼지구이 통구이, 소시지, 햄, 연어와 가자미의 보토루(버터)조림, 스프 등이 등장하고 "일본의 콩 비슷한 것을 부셔서 더운물에 끓여 백설탕을 넣고 마신다"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p. 62

    (...) 시볼트가 쓴 나가사키의 일기에도 카스텔라와 보토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내가 가지고 있던 보토루는 저장법이 나빠 짜고 악취가 났는데 나를 방문한 일본인의 신사들은 카스텔라 위에 발라 네덜란드의 맛이 난다고 즐거이 먹었다"고 전한다. 시볼트는 일본인이 서양식사를 동경한다고 생각하였는데, 당시 버터는 폐병의 특효약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 p 63

       가나가키 로분이 쓴 <아구라나베>는 저렴한 소고기 전골가게를 무대로 소고기의 맛과 효능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한량, 창기, 서생, 인력거 차부 등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계층의 인물들이다. 싸구려 회중시계에 금도금을 한 줄을 달고 아로마의 일종인 오데콜론의 향기를 피우는 겉멋 들은 남자는 "이렇게 맛있고 영양있는 소고기를 미신 때문에 여태 먹지 않았다니!"라고 흥분한다. 이어 <아구라나베>에는 "소고기는 최고의 맛이에요. 이 고기를 한번 먹으면 멧돼지나 사슴고기는 못 먹어요. 이런 청결한 것을 지금까지 먹지 않았다니!" "이제 우리나라도 문명개화가 되어서 소고기를 먹게 되었다는 다행이네요. 야만의 풍습이라니, 육식을 하면 신불에 합장할 수가 없다느니, 부정 탄다느니, 그런 촌스러운 말은 과학을 알지 못하니까 그런 거예요. 후쿠지와씨의 <육식의 설>이라고 읽히고 싶네요." 등등의 실감나는 표현이 여기저기에 배어 있다.
    - p. 78

    (...) 오오노가 개업한 '카이요테이'에서 소개하는 서양요리집의 풍경을 살펴보면 스프를 마시려다 흘리고 고기를 나이프로 자르려다가 입술을 잘라 피가 나는 상황도 연출됐다.
    - p. 80

       너 소야 너는 느린 성질인데 빠른 사람을 먹여 살린다. 네가 만약 사람을 먹여 살리지 않는다면 이 나라에 문명은 없다. 나라는 문명이 없으면 개화는 없다. 그러니 개화의 덕은 너에게 나온다고 말해도 좋다. 그러므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 쌀을 살 돈으로 너를 초대한다. 한 근의 고기를 살 능력이 없어도 너를 생각하고 침을 흘리지 않는 날은 없다. 잘 때는 너의 꿈을 꾸고 눈을 뜨고는 너를 생각한다. 배가 고프면 너를 만나고 먹어도 너에게 질리는 일은 없다. 나와 너의 교제는 실로 깊은 것이다. 따라서 나는 너를 내 배 안에 묻고 오랫동안 너의 묘로 삼겠다. 찌꺼기는 비록 화장실에 흘릴지라도 너의 혼은 내 배에 자리 잡는다. 너의 혼에 혹시 영험한 힘이 있다면 나의 어리석음을 양질의 지식으로 바꾸고 한 달에 얼마만이라도 이득을 보게 해다오. 3년 동안 먹었는데 아직 관직도 얻지 못했고 돈도 모이지 않았다. 너는 단명을 한탄하여서는 안 된다. 살신성인이란 너를 말하는 것이다. 죽어서 이익을 준다면 어찌 이 세상에 원한이 있겠는가. 네가 늙어 찌꺼기 속에서 죽는 것보다 냄비에 들어가서 성불하는 것이 좋다. 최근에 듣기로 너는 가끔 미인의 입에도 들어간다는데 이야말로 극락정토의 왕생이다. 어느 때는 영웅의 배에 묻히고 어느 때는 미인의 장 속에 들어간다. 이것 또한 인연이 아니겠는가. 도로에서 죽어 허무하게 썩는다면 이런 장례를 할 수 있겠는가. 소여 너는 울어서는 안 된다. 한탄하여서도 안 된다. 나는 아무리 애써도 장관이 되지 않고 지갑을 아무리 열어 보아도 미인의 손을 만질 수는 없다. 너는 죽은 고기인 주제에 살아있는 나보다 훨씬 재수 좋지 않은가.
    - p.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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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내가 찾던 이야기도 찾았다.


    (...) 부채꼴 모양으로 완성되는 인공섬 데지마는 무역기간 동안 나가사키에 체재하고 계절풍을 이용하여 다시 마카오로 돌아가는 포르투갈 상인이 일본 체재기간 동안 거주할 시설로 지어질 예정이었다. 이것은 포르투갈 상인을 일본사회와 격리시키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고, 한편으로는 무역을 행하면서 기독교 금교정책을 궁극적으로 완성시키기 위한 시책의 일환으로 계획된 것이었다.
    - p. 46~47
     
    (...) 기독교를 불교의 일파 정도로 생각하던 일본은 스페인이 세계각지에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는 이유가 선교사가 우선 어느 지역에 들어가 기독교를 전파하고 이후 점차 군대가 들어와서 그 지역을 정복하기 때문이라는 것과, 기독교의 배후에는 스페인과 같은 국가가 존재하여 전략적으로 선교사들이 파견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 p. 40


        그리하여 소설 <침묵>과 같은 기독교 박해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전에는 활발히 교류하였고, 인정하였고, 허가하였던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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