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해당되는 글 231건

  1. 꿈꾸는 하와이 2 2014.08.31
  2. 내 누나 4 2014.08.11
  3. 마음이 풀리는 작은 여행 2 2014.08.10
  4. 잠깐 저기까지만, 2 2014.08.10
  5. 도쿄의 북카페 2 2014.08.02
  6. 소년이 온다 8 2014.06.11
  7. 청춘의 문장들+ 2 2014.06.04
  8. 새로운 오키나와 여행 3 2014.06.01
  9.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4 2014.03.12
  10. 일요일 오후 2014.03.03

꿈꾸는 하와이

from 서재를쌓다 2014. 8. 31. 22:29

 

 

 

 

 

 

 

   

 

    하와이로의 여행을 꿈꾸게 됐다. 훌라춤은 어디서 배울 수 있나 검색해봤다. 이 책을 읽고나서야 진정한 훌라춤의 의미를 알게됐다. 훌라는 하와이의 자연을 표현하는 춤이었다. 하와이의 바다, 하와이의 바람, 하와이의 파도. 요시모토 바나나가 여행한 하와이의 이곳저곳, 그리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아, 하와이는 정말 좋은 곳이구나, 생각하게 됐다. 예쁜 책이다. 작가의 친구가 찍은 사진이라는데, 사진들이 참 좋다. 에메랄드 빛 바다 속, 해질녘의 환상적인 노을, 해진 후 근사한 밤의 풍경이 글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마지막에 요시모토 바나나가 말한다. "여러분도 인생을 사랑하세요. 단 한 번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것이 잊힐 만 할 때, 하와이는 언제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날아서 만나러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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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누나

from 서재를쌓다 2014. 8. 1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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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저기까지만,>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도 작은 여행들이 나온다. 마스다 미리는 어디선가 이곳이 좋더라는 정보를 접하고 어디 그럼 한번 가볼까 하고 훌쩍 떠난다. 혼자서,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이 책에서는 편집자 네코야마 씨와 주로 떠난다. 마스다 미리가 여기가 좋다고 하던데 한번 가볼까요 하면, 네코야마 씨는 재빠르게 정보를 수집한 후, 여기 뭐가 좋고 이렇게 가면 된대요 하고 동참하는 것. 후기에서 마스다 미리는 밤새 춤을 춘 구조하치만 여행과 교향곡 9번 합창곡의 즐거운 체험이 특별히 더 좋았다고 꼽았지만, 내가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여행은 해파리 여행이었다. 신에노시마 수족관의 숙박 나이트 투어. 수족관 구경도 하고, 전시실 안에서 저녁도 먹고, 전시실 안에서 잠도 자는 여행이다. 이런 여행이 국내에도 있다면, 당장 신청하고 싶어질 정도. 마스다 미리는 한밤의 해파리를 마주하고 늘 그렇듯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해간다.

 

    빌린 담요를 펴고 어슴푸레한 해파리 수조를 바라보았다. 한 명씩 잠에 빠져들었고, 어느새 나도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한밤중에 눈을 떠서 휴대전화를 보니 새벽 2시였다. 몇 명은 의자에 앉아 해파리를 보고 있었다.

    나도 해파리를 응시했다. 움직임이 확실히 둔했고, 해파리도 밤인 걸 아는지 얌전했다. 마치 심장박동처럼 해파리는 몸을 펼쳤다 구부렸다 하며 물 속을 떠다녔다. 아무 생각도 없이 떠다니는 것 같아도 신기하게도 서로 부딪치지 않았다. 해파리는 싸우지도 않는다. 그것이 그들의 일이며 삶이다.

    밤의 수조관에서 마음이 평온해졌다.

    살아가면서 많은 실패나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고집을 부리기도 하지만, 상관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 생각이 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뭐든 용서하고 언제나 착하게 살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이상적인 나를 추구하면서 그렇지 못한 자신의 한심함에 실망하면 무엇하랴. "해파리 나이트에 같이 갈래?" 하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 나도 제법 괜찮지 않나? 이런 친구를 소중히 여기며 50대, 60대가 되는 것도 유쾌하지 않을까. 해파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해파리에 싫증이 나서 이번에는 대수조를 보러 갔다. 정어리 대가족도, 커다란 가오리도, 복어도, 쏨뱅이도, 슬로모션처럼 헤엄치는 물고기들이 매우 아름다웠다. 낮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려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거대한 수조를 밤에는 마음껏 볼 수 있었다.

   해파리 방보다 여기에서 자는 게 더 재미있었을 텐데!

   후회하긴 했지만, 해파리도 나름대로 귀여웠다.

   해파리 나이트.

   바닥이 딱딱해서 잠자리가 불편하긴 해도 인생에서 단 한 번인 하룻밤이다. 그쯤이야 어떻게든 견딜 수 있었다. 여름 끝 무렵의 신비로운 해파리 여행이었다.

- p.7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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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저기까지만,

from 서재를쌓다 2014. 8. 10. 01:14

 

    원래 여행을 좋아했던 건 아닙니다. 예전에 일본에는 47개의 도도부현이 있다 하니, 전부 한번 가보자 하고, 혼자 전국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마지못해서랄까, 떨떠름하게 시작했는데, 어느새 여행은 내 인생의 일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지금은 걸핏하면 여행을 갑니다. 혼자일 때도 있고, 누군가와 함께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잠깐 저기까지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갑니다.

    처음으로 혼자 외국여행도 경험했습니다. 핀란드에 있을 때의 '나'도, 평소의 '나'라는 사실에 안도했습니다. 그럴 때, 나는 내 인생을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사실을 새삼 실감합니다.

- p.5, 시작하며.

 

    '어제까지 몰랐던 세계를 오늘의 나는 알고 있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날 밤은 이불 속에 누우면 언제나 신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p. 194, 마치며.

 

 

    사실, 사람들이 하는 커다랗고 화려한 여행들이 부러웠다. 내가 하지 못한 모든 여행들이 부러웠다. 좀 더 일찍 그곳들에 가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스다 미리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작은 여행이라도 괜찮아. 아니, 작은 여행이라서 좋아. <잠깐 저기까지만>과 <마음이 풀리는 작은 여행>을 연달아 읽었다. 이 책들에서 마스다 미리는 작은 여행들을 한다. 길게 떠나는 여행보다 가고 싶어질 때, 그래 한번 가볼까, 하고 훌쩍 떠나는 짧은 여행들. 그 여행길에서 먹은 것들, 한 것들, 떠오른 생각들을 써내려 간다. 돌발 상황은 거의 없다. 계획했던 대로다. 그걸 담담히 써내려 간다. 엄마랑도 떠나고, 남자친구와도 떠나고, 친구들과도 떠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혼자서도 떠난다. 기차에서 바다에 잠기는 노을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고,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곳을 발견하면 줄을 서서 얼마나 맛있는지 꼭 먹어본다. 청춘이란 지난 뒤에도 어딘가 가까이 있다가 이따금 얼굴을 내미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고, 어둠 속에서 빛나는 버섯을 보고 다양한 생물이 있구나 생각한다. '즐거웠던 날이 끝나고, 언제나의 생활로 돌아와 청소와 빨래로 정신없이 바쁘네! 고맙다. 즐거운 추억이 생겼구나'라는 엄마의 문자를 받기도 한다. 언제라도 갈 수 있는 곳이지만 다음에도 같은 여행이 될리는 없다는 진리를 깨닫기도 하고, 집단에서 잘 어울리는 못하는 혼자 있는 아이를 보고 빨리 어른이라는 장소로 도망쳐 오라고, 어른이 되면 좀더 자유롭다고, 혼자 여행을 떠나도 괜찮다고 빔을 보내기도 한다. 7월에는 여러모로 우울했다. 우울한 동안 이 책을 읽었다. 이 책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8월이 되자 거짓말처럼 마음이 괜찮아졌다. 그래, 이대로도 괜찮아, 라고 생각되기 시작했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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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북카페

from 서재를쌓다 2014. 8. 2. 08:16


 

   상암동에 맥주를 파는 작은 북카페가 있다고 해서 7월에 갔었다. 상암동 지리를 잘 몰라 조금 헤맸다. 해가 진 뒤에 도착해서 맥주 한 잔을 시키고 이 책 저 책을 구경하다가 요 책을 꺼내 들었다. 처음엔 심드렁하게 보기 시작했는데, 어떤 서점의 소개글을 읽고 괜찮네, 생각이 들었다. 맥주 한 잔을 더 시키고 알딸딸해질 무렵 카페를 나오면서 결국 읽고 있던 책을 그대로 샀다. 나중에 이런 카페를 해도 좋겠다, 생각하면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던 여름밤.

 

 

 

 

  

    카페를 나서려는데, "이거 스테디셀러인데요. 헤밍웨이의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은 정말 좋아요."라며 나를 붙잡는다. 문 닫을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손님들이 돌아갈 생각 없이 눌러앉아 있자 푸념을 늘어놓는 웨이터. 그러자 나이 지긋한 다른 웨이터가 '사람은 누구나 밤늦은 시간까지 자기를 감싸줄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이 필요한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인 단편이다. 주인의 철학이 담긴 카페에는 정직함과 성실함이 있다. 이곳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소설 속 웨이터가 말하는 카페가 어딘지 모르게 이하토보의 모습과 겹쳐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p,21, 이하토보

 

   여행 관련 서적들을 들이게 된 것은 주인 부부가 둘째가라면 서러운 여행광이어서다. 진열된 책들 중 '파리 책장'에는 <지구를 걷는 법>부터 트뤼포의 <영화독본>, 프랑스 가정 요리와 인테리어에 관한 책, 프랑스 문학, 거기다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까지 꽂혀 있다. 요즘은 인터넷과 가이드북을 통해 여행에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단편적인 정보로는 그 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후치가미 씨는 소파에 몸을 맡기고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는 누구라도 근사한 여행을 할 수 있도록 책의 진열에 공을 들였다.

- p. 25, 트래블 북스 앤 커피 캣츠 크래들

 

   '북카페 괴담'을 들어본 적 있나요. 직원도 모르는 사이에 카페 서가에 놓인 책이 늘었다가 줄었다가 한다는 겁니다.

   늘어나는 것은 대체로 카페의 단골손님인 작가나 만화가들의 소행이겠지요. 자주 가는 카페에 자신의 책을 몰래 끼워 놓는다나요.

    직원 허락 하에 카페의 책을 늘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느 작은 카페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근처에 사는 노신사가 산 지 얼마 안 된 책을 가지고 와서 카페 서가에 끼워두고는 카페를 방문할 때마다 야금야금 읽어 내려간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책을 맡겨두는' 셈이지요. 책장에 진열된 옅은 색깔의 책들 중에서 그가 끼워놓은 실용서를 보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만큼 조금 튀더군요.

- p. 34, 북카페의 체온

 

   THESE의 매력은 책이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베스트셀러부터 아는 사람만 아는 진귀한 책에 이르기까지 모두 바텐더들이 좋아하는 책들로 구성돼있다. 호감이 가는 부분이다. "손님들에게 권하기 쉬운 책은 역시 제가 좋아하는 책들입니다." 그렇다. 독서 바의 매력 중 하나는 바텐더와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세계관을 한결 넓힐 수 있다는 점.

   예를 들어 위스키를 마시다가 "이게 스코틀랜드의 스카이 섬이라는 곳에서 만들어졌어요."라는 바텐더의 이야기를 들으면 책장에서 그곳의 여행기나 지도를 찾아본다. 그러고나면 스카이 섬을 상상하며 '아름다운 술'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이 책에 어울릴만한 칵테일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할 수도 있다. 상상했던 칵테일이 나올지, 아니면 생각지 못한 조합의 오리지널 칵테일이 나올지.

- p. 72, 테제

 

   하늘의 별처럼 많은 주당들의 바람 중 하나는 '얌전히 취하게 하소서'이다. 맛있게, 즐겁게, 함께한 이들도 모두 유쾌하게, 다음 날 아침도 상쾌하게.

   항상 얌전히 취하길 바라는 것이 무리이기는 하다. 그런 식으로 영리하게 처신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애당초 '주당'이라 불릴 만큼 술을 마시진 않을 테니까.

   맨 정신일 때 그렇게 얌전히 취하는 장면이 그려진 소설을 읽으면 한없이 부러워진다. 반대로 만취해 엉망진창이 된 이야기를 읽으면 '아, 나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구나'하며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린다.

    오늘 어찌되었든 한 잔 걸칠 나에게 책 속에 등장하는 술은 한없이 따뜻하다.

-p. 90, 주당의 마음을 읽는 책

 

    이 가게에서는 비영리 민간단체 NPO법인 자립생활 서포트센터가 제공하는 '고모레비커피'(*고모레비는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햇빛을 의미한다)'를 판매하고 있다. 공정무역으로 들여온 원두를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로스팅.브랜딩한 커피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사회문제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북카페의 매력이자 역할일 것이다.

- p. 99, 고엔지 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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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from 서재를쌓다 2014. 6. 11. 22:12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 게 아닙니다. 한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133페이지. 책을 읽기 시작한 날, 퇴근을 하고 그대로 소리없이 집에 들어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고 들어와 가방을 놓고 옷을 갈아 입었다. 화장실 불을 켜고 수도꼭지를 틀어 비누거품을 내 발을 씻었다. 얼굴도 씻었다. 수건으로 닦고 화장실 불을 끄고 화장대 앞으로 가 스킨과 수분크림을 발랐다. 그리고 보조등을 켜고 그대로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때 이 페이지를 만났다. 133페이지. 저 문장들은 오른쪽 제일 아래줄에 있었다. 그 뒤의 문장을 읽으려면 한장을 넘겨야 했다. 그런데 넘길 수가 없었다.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었는데, 마음이 아파 넘길 수가 없었다. 이 페이지를 넘기면 이 가엾은 소년들의 가혹했던 최후를 정면으로 마주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냥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133페이지와 함께 했다. 고요했다. 티비도 틀지 않고, 음악도 틀지 않았다. 이제 내가 133페이지에서 134페이지로 넘어가는 소리가 나야 하는데, 정말이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처음엔 소년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제목이 그랬으니까. 그런데 소년의 이야기가 끝나니 다른 한 소년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소년은 광주에서 죽었다. 다른 한 소년의 이야기가 끝나니 출판사에 다니는 여자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다른 한 소년은 광주에서 죽었다. 출판사에 다니는 여자 이야기가 끝나니 한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남자는 모나미 검정 볼펜을 볼 때마다 숨을 죽인다고 했다. 남자는 광주에서 살아남았다. 그는 그 밤 총을 가졌지만 총을 쏘지 못했다. 한 남자의 이야기가 끝나니 또 다른 한 여자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녀는 옥상에서 복숭아를 나눠먹던 봄밤을 그리워 했다. 여자는 광주에서 살아남았다. 여자는 그 후 자궁이 망가져 아이를 가지지 못한다. 봄밤을 그리워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끝나니 어머니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소년의 어머니다. 소년의 어머니다. 이어지는 또하나의 이야기. 그리고 소설은 끝난다. 모두 광주의 이야기다.

 

    절대 아침에 읽으면 안 된다. 화장을 곱게 한 아침에 더더욱. 아침에 읽다 결국 책을 덮었다. 계속 눈물이 나서. 내게 창비 홈페이지 공지글에 올라온 2014년 6월 2일에 발행된 초판 3쇄본이 배송되었다. 6월 2일 3쇄본이 무엇인고 하니, 1쇄본과 2쇄본, 그리고 다른 날 발행된 3쇄본은 모두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비가 올 것 같아." 그런데 내가 배송받은 3쇄본은 이렇게 시작한다. "전등을 타고 자꾸 안경이 흘러내린다고, 겨울엔 실내에 들어갈 때마다 안경알에 김이 서려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작은 형이 그랬는데, 더이상 눈이 안 나빠져서 안경을 안 쓸 순 없을까." 첫 페이지와 두번째 페이지가 뒤바뀌어서 제본되었다. 처음엔 이상한 소설이다. 이렇게 다짜고짜 시작하다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장을 넘기니 거기에 진짜 첫 문장이 있었다. 읽기 시작할 때는 교환을 받아야지,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나니 이것 나름의 의미 있는 책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바꾸지 않아도 좋겠다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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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from 서재를쌓다 2014. 6. 4. 17:31

 

 

    그렇게 해서 추풍령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는데, 그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였다. 추풍령을 넘어가면 거기서부터는 충청도가 시작되는데, 내 힘으로, 내 두 다리로 그렇게 먼 곳까지 갔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이었다. 나는 완전히 어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추풍령휴게소에서 우리는 김밥 같은 걸 사먹고,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다가 죽은 노동자들을 위해 세운 위령탑의 글귀를 읽고, 원숭이와 공작을 구경했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내려가는 길은 직지사 삼거리까지 페달을 한 번도 밟지 않아도 갈 수 있는 상쾌한 길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게 되니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이제 가지 못할 곳이 없었다. 서쪽으로는 양천, 남쪽으로는 남면, 동쪽으로는 아천, 북쪽으로는 직지사까지 나는 신나게 쏘다녔다. 그중에서도 직지사는 나중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김천에 들르면 한 번은 자전거를 타고 갈 정도로 자주 찾아간 곳이었다.

p. 63-64

 

 

    이 부분을 읽고 두 아이가 생각났다. <귀를 귀울이면>과 <허니 클로버>의 주인공들. 두 영화에서도 저 구절과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한 주인공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기 위해, 한 주인공은 좋아하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어딘가에 도착한다. 두 사람 다 그 끝에서 웃었던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나는 저런 성장의 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어떤 찰나의 순간을 거치며 훌쩍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요새 그런 느낌이 든 적이 있었다. 어떤 순간을 경험한 뒤였는데, 이 일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조금은 달라질 거란 느낌이 들었다. 이전의 행복감, 좌절감과는 다른 종류의 행복감과 좌절감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확신이었다. 영화 <외출>을 보면서 내가 정말 궁금했던 이야기는 손예진과 배용준이 아니라 임상효와 류승수였다. 두 사람은 어떻게 사랑했을까, 두 사람이 깨어나면 어떻게 될까 등등. 영화에서 이야기되지 않은 것들이 더 궁금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쓰여지지 않은 순간에 대해 생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일들, 그 때의 날씨, 그 때의 심정에 대해.

 

 

- 모든 연령이 다 힘든데, 인생에서 골짜기처럼 꺼지는 나이대가 있죠. 그게 마흔 살에서 쉰 살 사이에 있는 것 같아요. 그 시기에 아이는 성인이 되고, 부모는 돌아가시죠. 그 두 가지 중요한 일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오히려 모두가 나에게 기대는 시기가 찾아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빠르고 늦은 차이가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인생의 계획된 일정 같은 거예요. 그 중압감이 우리로 하여금 "아, 정말 나이가 들었구나"라는 말을 하게 만드는 거죠.

p.49

 

- 몇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김천에 내려갔다가 올라왔더니 택배가 왔다고 경비실에서 연락을 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주문했던 책들이더군요. 정신이 없으니까 까맣게 잊어버렸던 거죠. 택배 박스를 풀었더니 리디아 플렘이 쓴 <수런거리는 유산들>이라는 책이 나오더라구요. 별생각 없이 펼쳤는데, 첫 문장이 다음과 같았어요. "나이가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고아가 된다."

p.179-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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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키나와에 있는 것 같았다. 책장을 펼치면. 여행에세이와 가이드북 중 가이드북 성격에 더 가까운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만 가지고 여행을 떠나기엔 부족하지만, 이 책을 참고한다면 좀더 다채로운 오키나와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 소개된 곳들은 오키나와의 카페, 빵집, 공방, 숙소. 카페와 빵집이 압도적으로 많다. 책의 표지도 밝고, 하늘도 밝고, 사진들도 밝고, 사람들의 표정들도 밝다. 소개된 곳의 영업시간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반나절 정도인 경우가 많다. 12:30-18:30 (품절되는 대로 종료, 정기휴일 화.수요일) 12:00-18:00 (영업일 수-목요일) 11:30-18:00 (정기휴일 일.월요일) 14:00-17:00(정기휴일 수.목요일) 11:30-17:30(정기휴일 수.목요일). 이렇게 운영해도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는걸까. 소개된 사람들은 대부분 '삶'이 중요하므로, '가정'이 일보다 더 중요하므로, 라고 말하고 있었다. 일에 치이는 삶에 지쳐 이곳으로 왔다고. 이제 그런 삶은 살고 싶지 않다고. 이 곳의 시간은 느긋하고 천천히 고요하게 흐르고 있다.

 

   빵집을 열기로 결심한 뒤 홋카이도를 시작으로 오키나와까지 석달동안 여행을 떠난 빵집 이페코페의 주인. 대지진으로 가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을 때 오키나와로 옮기기로 결심한 마법커피의 주인. 우연히 발견한 작고 아름다운 해변 유반타에 오고 싶을 때 언제든 산책하러 오기 위해 근처에 집을 구한 아이디어 닌벤의 주인. 맛있는 과자를 만드는 비결을 물으니 완성된 맛을 상상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준, 제대로 상상하지 않으면 그 맛에 다다를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몽슈슈의 주인. 읽다 보면 이 곳에 가서 건강한 빵 한 쪽, 신선한 커피 한 잔, 고슬고슬 잘 지은 쌀밥 한 그릇 대접받고 싶어진다. 그리고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지금 이후의 삶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오키나와에 다녀온 N언니가 오키나와는 제주도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루시드 폴도 제주도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있고, 이효리의 블로그에 올라오는 사진들은 평온함 그 자체고, 동생이 좋아했던, 홍대 어딘가 장사가 꽤 잘 되었던 커피집은 모든 것을 접고 제주도로 이주했다고 한다.

 

    이대로 살아도 좋은걸까, 생각하게 된다.

 

 

    야마자키 아키오 씨와 아오이 씨가 마법커피의 문을 연 것은 2년 전의 일. 아키오 씨는 어릴 때부터 몹시 감수성이 풍부했다. 도시적인 삶에 대한 동경과 평온한 삶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때때로 여행을 떠나, 자신의 삶의 방식을 모색하곤 했다. 그러나 스물세 살 때, 친구를 만나러 처음 찾아간 오키나와에서 야부 료마 씨를 만났다. (...) 그리고 아키오 씨가 스물 여섯 살 즈음, 도쿄에서 하던 일에 지쳐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도 야부 씨를 찾아갔다. "오키나와로 오지 그래?" 그 한 마디에 아키오 씨는 오키나와로 향했다. (...) 주문을 받으면 손님의 얼굴을 본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커피를 마시고 싶어 할지 떠올려 보면서 커피를 만든다. "제게 드립이라는 일은 작은 기도 같은 거예요. 오리지널리티 다음에 있는 게 퍼스널리티라고 생각하는데요. 야마자키 아키오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저만의 커피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p.28-31)

 

마법커피 | 중부 | 기노완시

시간 : 9:00-18:00

정기휴일 : 월.마지막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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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란 무엇인가> 하루키 편을 읽다가 읽다 만 하루키 소설이 생각났다. <작가란 무엇인가>에서 하루키의 인터뷰는 움베르트 에코, 오르한 파묵 다음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인터뷰가 무척 궁금했지만 책의 순서대로 읽기로 했다. 그래야 즐거움이 증폭되니까. 그런데 뭐랄까. 에코와 파묵 다음에 이어진 하루키의 인터뷰는 기대했던 것만큼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한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었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존 레이의 글에서처럼, 하루키는 역시나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존 레이는 '가급적 정확한 대답을 찾으려고 오래 뜸을 들이기도 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하루키의 담백한 인터뷰를 읽고나자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생각이 났다. 다자키 쓰쿠루의 이야기를 끝내야지 생각했다.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어떤 이유 때문인지 잘 읽히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잘 읽혔다. 책장도 잘 넘어가고 재밌었다. 다자키 쓰쿠루라는 사람이 있다. 나고야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도쿄에서 대학을 다닌 사람. 그에게는 고교 시절 완벽한 멤버들로 이루어진 '그룹'이 있었다. 여자 둘, 남자 셋 모두 다섯 명으로 구성되었는데, 모두가 잘 났고 모두가 똑똑한 식의 '완벽함'이 아니라 각자의 결점들과 장점들이 하나의 그룹 안에서 잘 어우러지는 '완벽함'이었다. 그런데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던 도중 네 멤버들이 일제히 다자키 쓰쿠루를 거부한다. 영문도 모르고 그룹에서 쫓겨난 것. 누군가의 표현처럼 다자키 쓰쿠루는 조용하고 냉정하고 쿨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는 사람. 그는 죽을만큼 괴롭고 이해할 수 없지만, 이유는 묻지 않는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그만큼 그에게 그 그룹은 특별했다. 오래 앓고난 뒤,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내면도 겉모습도, 고독한 모습의 어른이 된다.

 

    소설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서른 여섯살이 된 그가 두 살 연상의 사라라는 여자친구를 만나고 그녀의 충고에 따라 네 친구를 찾아 그 때 그 이유를 묻는 여행을 시작하는 것. 사라는 그때 그 이유로 다자키 쓰쿠루의 마음이 닫혔고, 그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직접 그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다자키 쓰쿠루는 살면서 놓치고 싶지 않은 여자를 처음 만났고, 그러기 위해 친구들을 찾는 여행을 시작한다.

 

    사실 이유라는 건 김이 빠졌다. 친구들을 찾아가는 과정 또한. 당연하게도, 그들은 조금만 조사하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그곳에서 '대부분' 살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이유 또한 맥이 빠졌다. 이런 저런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이 있었음에도 읽으면서 즐거웠다. 그들 모두가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어쩌면 하루키는 우리에게, 나는 내게, 이 한 명의 독자에게 이 말을 건네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넌 정말 멋지고 색채가 넘치는 다자키 쓰쿠루야. 그리고 근사한 역을 만드는 사람이고, 지금은 건강한 서른여섯살 시민으로 선거권이 있고 세금도 내고 나를 만나러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핀란드까지 올 수 있어. 너에게 부족한 건 아무것도 없어. 자신감과 용기를 가져. 너에게 필요한 건 그것뿐이야. 두려움이나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놓쳐선 안 돼." (p.387)

 

    그나저나 가장 궁금증을 많이 남긴 인물 둘. 하루키가 가장 최소한의 정보만을 남기고 소설을 끝낸 두 사람. 사라와 하이다. 사라는 다자키 쓰쿠루의 과거와 아무 관련이 없을까? 그리고 하이다는 어떻게 된걸까? 그러고 보니 둘은 정말 완벽한 인물이었네. 완벽한 일처리와 완벽한 사라짐. 제일 인상깊었던 부분은 쓰쿠루가 죽음을 극복한 후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과 하이다가 사라진 후 쓰쿠루의 체념. 그리고 사소한 일상을 묘사한 이 부분도.

 

... 쓰쿠루가 얼굴을 보이자마자 책을 덮은 후 밝은 미소를 떠올리고, 부엌에서 커피와 오믈렛과 토스트를 만들었다. 신선한 커피향이 풍겼다. 밤과 낮을 가르는 향기이다. 두 사람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낮게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아침을 먹었다. 하이다는 평소처럼 짙게 구운 토스트에 꿀을 살짝 발라 먹었다.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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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from 서재를쌓다 2014. 3. 3.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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