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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84

2013년 4월 14일, 교토, 네번째 철학자의 길을 걷고 걸었더니 다리가 아팠다. 다시 왔던 길을 걸어 돌아가는 일도 막막했고, 끝까지 걸어가기도 너무 지치고, 중간중간 보였던 카페들도 이제는 보이지 않을 무렵, 둘 다 지쳐 있었다. 지금 있는 위치가 어디쯤인지 몰라 지도만 계속 들여다보고 있다 일단 큰 길로 나가서 버스 정류장으로 가기로 했다. 어차어차해서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다음 목적지인 청수사에는 어떻게 가야할지 막막한 상태. 들여다 봐도 알 길이 없는 정류장의 노선도를 동생은 계속 들여다 보고 있었고, 나는 정류장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일본 여자 분이 우리가 딱해보였던지 무어라 말을 걸었다. 일본말이라 알아들을 길이 없었지만, 이상하게 들렸다. 어디로 가는 거냐, 도와주고 싶다는 뜻이었는데, 우리가 가이드북을 내.. 2013. 4. 28.
2013년 4월 14일, 교토, 세번째 이름도 멋지다. 철학자의 길. 은각사를 나오면 바로 이어지는 고즈넉한 길이 있다.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가 즐겨 산책하는 길이라, 이름이 붙여진 곳이라 한다. 철학자의 길이라니. 우리가 갔을 때는 벚꽃이 많이 졌을 때였다. 아쉬웠지만, 걸으면서 벚꽃이 만개했을 이 곳의 풍경을 상상하며 걸었다. 길이 계속 계속 이어져 아주 오래 걸어서 다리가 무척 아팠지만, 그래서 짜증이 나서 동생이랑 다퉜지만, 바람도 적당했고, 앞옆으로 늘어서 있던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카페와 기념품 가게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그냥 걸었다. 꽤 오랫동안. 같이 걷기도 하고, 따로 걷기도 하고. 고요하게. 사월 십사일 일요일, 그 곳의 풍경들. 누군가 길 중간에 잘못 나온 폴라로이드 사진을 남겨 놓았다. 벚꽃이 만개한 철학자의 길을 배경.. 2013. 4. 28.
2013년 4월 14일, 교토, 두번째 어제 헤맨 덕에 헤매지 않고 우메다 역 도착. 한큐 우메다 역으로 이동해서 급행열차도 무사히 탑승. 교토까지 사십 분 넘게 가야 해서 편의점에서 커피도 샀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열차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재빨리 자리에 앉아야 하는 터라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다. 교토로 가는 중에 일기도 쓰고, 음악도 듣고, 창밖도 바라봤다. 토토로 이불이 널려 있는 베란다, 피기 시작하는 벚꽃나무, 동생에게 온 사투리 가득한 마사키 상의 답메일, 그리고 가을방학의 '언젠가 너로 인해'. 히가시야마 역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탔다. 일본에서 처음 타 보는 시내버스다. 은각사로 가는 길. 궁금했던 금각사는 너무 멀다고 해서 일정에서 뺐다. 일본버스는 뒷문으로 타서 앞문으로 내린다. 내릴 때 요금을 내는데, 마지막 사람이 내.. 2013. 4. 25.
2013년 4월 13일, 오사카, 두번째 오사카, 첫째날 두번째 이야기. 커피집을 나서서 난바역으로 걷는데, 걷는 길이 금방 걸은 길 같기도 하고, 처음 보는 길 같기도 하다. 쭉 걷다보니 처음보는 길이었다. 난바역으로 가서 짐을 찾아야 하는데, 걷다보니 니뽄바시역에 도착. 난바역과 니뽄바시역은 한 정거장이고, 니뽄바시역에 숙소가 있다. 벌써부터 삭신이 쑤셔서 체크인하고 잠시 쉬다가 짐을 찾으러 가기로 했다. 숙소는 작고 오래된 비즈니스 호텔. 13층인데, 도톤보리 강이 내려다 보였다. 너무 피곤해 이 닦고 둘이 침대에 쓰러졌다. 잠깐만 누웠다 나가기로 했는데 동생이 잠들어 버렸다. 잠시 혼자 나가서 짐을 찾아올까 생각했다. 혼자 일본거리를 걸어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나도 금새 잠들어버렸다는 사실. 한시간 반을 자고 .. 2013. 4. 21.
2013년 4월 13일, 오사카, 첫번째 어쩌다 이번 여행을 가게 되었을까. 우리는 돈도 없었는데. 3월의 어느 날, 동생이 컴퓨터를 하다가 티몬에 오사카 여행 상품이 저렴하게 나왔는데 갈까 했다. 언젠가 동생이 전해들은, 사실 동생만 전해들은 건 아니지. 젊어서 여행은 빚을 내어서라도 가야한다는 말을 떠올렸고, 우리는 그럼 가볼까 했다. 티몬의 여행상품은 말만 2박3일이지, 온전한 2박3일 상품이 아니었다. 일단 결제해두고 다시 검색을 해보다 결국 하나투어 상품으로 결정. 자매가 둘다 게을러 중간에 가네 마네, 포기할까 말까 이야기가 많았다. 결국 오사카, 교토로 2박3일 봄여행을 다녀오기로 결정. 진작에 가이드북을 사뒀지만, 몇번 들춰보지도 못했다. 다급해져서야 계획을 세웠지만, 사실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였다. 대신 테이크 웨더라는 어플을 .. 2013. 4. 21.
겨울, 다시 경주 그처럼 감각이 둔하고, 감성적 반응이 느리고, 자신의 감각에 자신감이 없었던 인문대학 국사학과 학생 중에 인호라는 남학생이 있었다. 그는 내 강의를 듣고 경주답사에 따라온 적이 있었는데, 과에서 답사를 왔을 때 다 보았다는 식으로 시큰둥해하더니 감은사탑 앞에 이르러서는 "선생님, 정말로 장대하네요."라며 나보다 먼저 그 감흥을 흘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내게 좀 쑥스러웠던지 "제 생전에 돌덩이가 내게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 경험은 처음입니다."라며 탑쪽으로 뛰어가서는 이 각도에서도 보고 저 각도에서도 보고 올라가 매만지며 즐거워하였다. 그런 감은사탑이다. (...) 만약에 감은사 답사기를 내 맘대로 쓰는 것을 편집자가 조건 없이 허락해준다면 나는 내 원고지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쓰고 싶다. 아! 감은사.. 2013. 3.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