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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년 4월 13일, 오사카, 두번째
    여행을가다 2013. 4. 21. 20:59

     

     오사카, 첫째날 두번째 이야기.

     

     

     

     

     

       커피집을 나서서 난바역으로 걷는데, 걷는 길이 금방 걸은 길 같기도 하고, 처음 보는 길 같기도 하다. 쭉 걷다보니 처음보는 길이었다. 난바역으로 가서 짐을 찾아야 하는데, 걷다보니 니뽄바시역에 도착. 난바역과 니뽄바시역은 한 정거장이고, 니뽄바시역에 숙소가 있다. 벌써부터 삭신이 쑤셔서 체크인하고 잠시 쉬다가 짐을 찾으러 가기로 했다. 숙소는 작고 오래된 비즈니스 호텔. 13층인데, 도톤보리 강이 내려다 보였다. 너무 피곤해 이 닦고 둘이 침대에 쓰러졌다. 잠깐만 누웠다 나가기로 했는데 동생이 잠들어 버렸다. 잠시 혼자 나가서 짐을 찾아올까 생각했다. 혼자 일본거리를 걸어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나도 금새 잠들어버렸다는 사실. 한시간 반을 자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해가 지기 전에 난바역에 가서 짐을 찾아왔다. 

     

      

     

     

     

        도톤보리는 서울의 명동 같은 느낌이다. 쇼핑할 데도 많고, 먹을 데도 많다. 복작복작하다. 사람 많은 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도톤보리에서도 고즈넉한 공간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호젠지요코쵸. 복작복작한 도톤보리 안에 거짓말처럼 고즈넉한 골목길이다. 골목길에 조그마한 주점들과 식당들이 있다. 홍등이 빠알갛게 밝혀져 있는 이 골목길을 천천히 걸었다. 골목길 한가운데 호젠지라는 아주 조그마한 절이 있는데, 바로 앞의 누각에 초록색 이끼로 뒤덮인 불상같은 것이 있다. 사람들이 골목을 지나다 이 불상 앞에 줄을 서고 자기 차례가 되면 물을 끼얹고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커다란 향로가 있었다. 향내음새가 좋았다. 술집들 사이에 절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호젠지요코쵸의 술집들은 너무 비싸보였고, 조금 허름한 술집에는 일본 아저씨들이 꽉 차 있어 결국에는 도톤보리의 번화가로 나와 술집에 들어갔다. 남자 직원들은 다소 불친절했는데, 맥주를 마시니 금새 기분이 좋아졌다. 야심차게 준비한 말, 나마비루 구다사이. 여러 번 말했다. 동생은 하이볼을 이 가게에서 처음 시켰는데, 맥주는 배불러서 못 먹겠다며 한 잔만 마시고는 그 뒤로 계속 하이볼을 시켰다. 안주는 잘 모르겠어서 꼬치 세트를 시켰다. 옆에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아저씨가 있었다. 일본 드라마에 보면 일과를 마치고 혼자 바에서 병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아저씨, 딱 그런 아저씨였다. 하이볼과 꼬치를 먹고 있었는데, 안주를 하나 더 시켰다. 메뉴에 치즈가 있었는데, 아저씨의 안주가 꼭 치즈같았다. 그래서 우리도 그걸 시키려고 치즈데스까, 라고 용기내어 물었는데, 이에 모찌데쓰,란다. 아, 떡. 그런데 아저씨가 두 개 중 하나를 건네주신다. 괜찮다고 해도 먹어보란다. 그런데 정말 맛있었다. 우리 안주를 하나 권했는데, 괜찮다고 거절하신다. 이후 그 아저씨가 시키는 안주를 유심히 봤는데 다 맛있어 보였다. 가이드북에 '저 사람과 같은 것을 주세요'가 있었는데, 왠지 민망한 기분이 들어 써 보지 못했다.

     

     

     

     

     

     

        알딸딸한 기분에 헵파이브를 타는 것이 첫째 날의 마지막 목표였다. 햅파이브는 우메다 역에 있는데, 대형 쇼핑몰 옥상에 설치되어 있는 대관람차다. 오사카 야경을 멋지게 볼 수 있다고 해서 난바역에서 전철을 타고 우메다역으로 갔다. 우메다 역까지는 헤매지 않고 잘 갔는데 (일본 지하철이 은근히 복잡했다.) 역에서 나와 지도를 잘 못 봐 헤맸다. 전혀 다른 길에서 헤매다 편의점에서 나온 여자아이에게 길을 묻는데, 그 여자아이도 잘 몰라했다. 그러다 만난 스나야마 마사키 상. 유창한 한국말로 헵파이브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걸어가다 보니 꽤 먼 거리여서 마사키 상이 아니였으면, 엄청 헤맸을 거다. 사투리를 배우고 싶어 부산에서 1년동안 유학 생활을 한 마사키 상. 일본여행 처음이냐고 해서 동생이 언니는 한번 온 적이 있어요 하니까 어디 갔냐고 한다. 홋카이도요, 하니까 놀라면서 허허 웃는다. 왜요? 도쿄에 안 가구요? 다들 그러던데. 내가 도쿄는 서울이랑 똑같다고 해서요, 하니까 아, 하면서 또 한번 허허 웃는다. 맞아요. 한국의 어디어디를 가봤냐고 물으니 다 가봤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안 가본 데가 없단다. 데려다 줘서 고마운데 대접할 게 없어, 동생이 사진을 함께 찍어도 되냐고 했다. 그럼요. 사진을 찍고 이메일 주소를 받았다. 또박또박 바른 글자로 스나야마 마사키, 라고 적는다. 그는 왼손잡이. 헤어질 때 '잘 놀다 가이소' 사투리로 인사하고 손을 흔든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헵파이브가 무서웠다. 헵파이브 말고 더 큰 대관람차는 바닥이 투명하다는데, 나는 그 관람차 탔으면 기절했을 거다. 헵파이브에는 스피커가 있어, 거기에 핸드폰을 연결하고 가을방학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들었다. 멀리 고베까지 보인다고 가이드북에 나와있었는데, 무서워 내려다보지는 못하고 멀찍하게 밤하늘만 올려다봤다.

     

        일본 지하철은 왜 이름을 같게 만들어 놓았을까. 한큐 우메다 역에서 우메다 역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다. 정말 엄청 걸은 첫 날. 어찌어찌하여 우메다 역을 찾고, 난바역에서 환승, 니뽄바시 역 도착. 계획을 많이 짜지 않아 동생 핸드폰 하나만 로밍해 갔는데, 로밍 안 해 갔음 큰일날 뻔 했다. 길 찾을 때 정말 유용했다. 숙소 앞 편의점에서 맥주 두 캔과 산토리 하이볼 한 캔, 라멘과 자가비 과자, 발에 붙이는 휴족시간을 사가지고 왔다. 씻고 휴족시간을 하나씩 장딴지에 붙였다. 동생은 바로 잠들었고, 나는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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