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다방450 에스프레소 어제는 남편이 저녁약속을 잡았다고 해 뭔가를 시켜먹어야지 했다. 내가 내린 커피 말고 남이 내린 커피와 달달한 간식이 땡겨 좋아하는 샌드위치 가게에 아예 2-3인 세트메뉴를 시켰다. 음료가 두 잔 포함되어 있고 샌드위치 하나, 샐러드 하나, 식빵에 카야잼 바르고 버터를 끼운 디저트가 있는 메뉴이다. 늦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 세트 하나로 해결하면 될 것 같았다. 음료 두 개는 뭘 고를까 고민하다 당장 마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랑 두고 먹을 에스프레소 한 잔을 시켰다. 언제든 뜨거운 물이나 차가운 얼음을 채워 마시면 되니까. 남편이 어제 통닭을 사들고 귀가해주시는 바람에 (많이 컸다. 빈손으로 들어와 나를 화나게 하기 일쑤였는데) 샐러드와 샌드위치 반쪽, 에스프레소가 남았다. 지안이 낮잠1 재우기에 .. 2022. 2. 18. 9.2키로 요즘 지안이는 낮잠을 두 번 잔다. 오전 아홉시에서 열시 즈음에 한 번, 오후 두 시에서 세 시 사이에 한 번. 짧으면 사십분 길면 두시간까지. 두 번을 합하면 낮잠시간이 세 시간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옆으로 눕혀 토닥토닥해주면 잘 자기도 했는데 혼자 앉을 수 있게 되면서 시도때도 없이 앉는다. 코-오 자보자 눕히면 얼굴 가득 웃음기가 돌면서 앉고, 새벽에 잠에서 깼을 때도 가만히 앉아 어둠 속에서 뭔가 잡을거리를 찾아 혼자 사부작사부작 한다. 그러다 자기 깬 걸 엄마가 계속 모르면 칭얼대는 소리를 내며 이제 그만 일어나라 하고. 오늘은 옆 아파트 경은씨가 유모분만을 하는 날이라 했다. 내 수술날 생각이 났다. 수술 앞뒤로 받은 격려의 문자들과 그날 아침 사촌동생의 부재중 전화. 사촌동생은 그 날 전화.. 2022. 2. 17. 빅슬라이드 남편이 성대 낭종제거수술을 받고 왔다. 수술 전에 긴장되지 않냐고 하면 전혀- 라고 말했던 사람인데, 전신마취가 기계호흡인 줄 몰랐다고 알았으면 엄청 쫄았을 거라고 띄어쓰기 발음이 어색한 음성앱으로 말했다. 1-2주는 말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전신마취는 원래 이렇게 머리가 띵한 거냐며 이상한 거 아니지? 라고 메모장에 써서 보여줬다. 나는 호흡을 길게 하고 누워서 쉬라고 했는데, 왠지 아이를 보는 나를 두고 방에 들어가 버리는 게 미안한지 소파에 누워 일어나질 않더라. 남편이 기진맥진해 소파에 누워있는 동안 나는 아이 이유식을 먹이고, 분유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입속을 닦아주고, 침독이 가득한 입가에 로션도 발라줬다. 이제 자기만 하면 되는데 오래 칭얼대더라. 힘든 감정이 울컥하고 올라.. 2022. 1. 28. 미드나잇 저녁밥을 먹으며 남편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는데 평소 같으면 그리 생각하지 말아라로 시작하는 말을 분명히 했을텐데 오늘은 왠일인지 그러지 않고 묵묵히 들어줬다. 정말 고마웠다.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오늘은 정말 그런 사람이 내게 필요했거든. 오후에는 지난 일요일에 보지 못한 을 봤다.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나왔던 비포 시리즈 마지막편 의 한 장면에 손미나 작가가 말했다. 줄리 델피가 산 너머 지는 석양을 보고 아직 있다, 아직 있어, 졌다, 라고 읊조리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해는 졌지만 원래 그뒤부터 하늘은 더 아름다운 법이라고. 그러니 로 시작한 이들의 사랑은 변했다기보다 농익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그 표현이 너무 좋아 휴대폰 메모장을 켜놓고 메모를 했다. 그리고.. 2022. 1. 26. 보리굴비 지난주에는 몸과 마음이 피폐했다. 결국 남편에게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발악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밤에는 그 모습을 보인 걸 후회하지 않았으나 다음 날 바로 후회했다. 조금만 참았더라면 좋았을 걸. 아무튼 그렇게 한 번 대대적으로 폭발을 하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그 뒤로 내가 한 건 열심히 요리를 한 것. 이상하게 그렇게 되었다. 냉장고에 있는 돼지고기와 고수를 꺼내 굴소스를 넣고 볶아봤다. 상암 양꼬치집의 좋아하는 메뉴를 최대한 간소화한 것. 밑반찬 하나에 김치 하나를 내어놓고 밥 한 그릇씩 뚝딱했다. 섭섭한 마음이 남아 있던 남편도 맛있다고 했다. 다음날 점심에는 베이컨을 꺼내 잘게 썰고 계란을 추가해 볶음밥을 만들었다. 지난주에 만들어둔 유자향 피클을 곁들여 먹었다. 간단한 요리였는데 맛이 있었.. 2022. 1. 7.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에는 아이를 재우고 늦은 저녁을 준비했다. 평일에 혼자 점심을 먹을 때 배추와 냉동삼겹살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냄비에서 익혔는데 맛이 꽤 괜찮았다. 조금 더 풍성하게 먹어볼 생각으로 이유식에 넣을 소고기를 사러 갔을 때 옆에 있는 야채가게에서 팽이버섯과 느타리버섯, 콩나물을 사왔더랬다. 크기는 작지만 깊이가 있는 후라이팬을 꺼내 물을 약간 붓고 야채와 고기 탑을 쌓기 시작했다. 이쁘게도 아니고 그냥 조금씩 적당히 쌓았다. 배추도 잘라 넣고 냉동삼겹살도 넣고 팽이 버섯과 느타리 버섯도 뜯어 넣었다. 콩나물도 넣고. 중간중간 소금과 후추도 적당히 뿌리고. 뚜껑이 안 닫힐 정도로 높게 쌓아놓고 뚜껑을 얹였다. 마지막에 맛술을 약간 두르고 가스불을 켰다. 약불에 천천히 익혔다. 익는 동안 남편의 소주를.. 2021. 12. 27. 이전 1 2 3 4 5 6 7 ··· 7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