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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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7모퉁이다방 2021. 5. 24. 13:29
지난주에는 를 봤다. (영화 스포일러가 있어요) 남편이 갑자기 이 영화를 봤느냐고 물었다. 자신이 아는 대충의 줄거리를 말해줬는데 나는 바로 보자고 했다. 더스틴 호프만과 메릴 스트립이 부부로 나온다. 그들에게는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이 하나 있다. 어느 날 메릴 스트립이 떠나겠다고 한다. 자신을 찾기 위해서. 그동안 회사에 몰두하느라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더스틴 호프만은 아들을 혼자 키우게 된다. 아내가 떠난 다음 날 프렌치 토스트를 아침으로 만들어달라는 아들의 요청에 고군분투하지만 주방과 음식은 엉망진창이 된다. 그 뒤 그는 차츰차츰 집안일과 아들 돌보는 일에 적응해 나간다. 덕분에 회사에서 맡은 일은 엉망진창이 되어 가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아들 돌보는 일이 더 중요했다. 부족하지만 점점 좋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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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0모퉁이다방 2021. 5. 21. 10:30
그제 밤 티비를 켜고 누웠는데 오은영 선생님의 이라는 프로그램이 하고 있었다. 네 가지 애착 유형에 대해 설명 중이었다. 안정형, 집착형, 회피거부형, 두려움형. 이 유형들은 내가 남편과 연애 중일 때, 한창 많이 싸우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때, 이 연애를 잘 이어나가고 싶어 읽던 책에 있었다. 당시 남편과 내가 안정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로 인해 우리가 오랫동안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았다. 남편 집 앞 커피집에서 그 책을 다 읽었는데 야근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 서프라이즈를 하려고 기다리다 결국 만나지 못하고 혼자 돌아왔더랬다. 혼자 그 먼길을 돌아오는데 서글프거나 지치지 않았다. 나를 반성하게 되고 이제 우리 둘다 잘해나가보자는 다짐을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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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3모퉁이다방 2021. 5. 18. 17:25
진료실에 들어가면 매번 선생님이 제일 먼저 물어보신다. 돈 것 같아요? 내 대답은 항상 아니요. 초음파를 보신 선생님은 그러네, 아직 머리가 위에 있네. 오늘도 그랬다. 매번 아가 자세를 산모수첩에 그려두시는 선생님. 오늘의 그림은 제일 위 동그라미 그 아래 세로 한 줄 그 아래 산봉우리 두 개. 몸무게도 괜찮고 양수양도 괜찮고 아가는 잘 있단다. 목에 탯줄을 한 번 감고 있는데 별 문제는 없다고 하셨다. 수술 날짜를 확정했다. 5월 31일. 갑자기 디데이 날짜가 확 줄었다. 남편 전회사 동료가 있는데 나보다 예정일이 3주 빨랐다. 태명은 코코. 코코가 오늘 오전에 태어났단다. 지난주 일요일에 집에 가서 놀다왔는데 그 집 남편이 석가탄신일 하루 전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바랬는데 진짜 바램대로 되었다. 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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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2모퉁이다방 2021. 5. 12. 10:51
병원에 다녀왔다. 이제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진료를 보러간다. 새벽에 피가 나서 병원에 갔을 때 선생님이 35주까지만 잘 버티면 그때는 태어나도 괜찮다고 하셨다. 그 35주차가 되었다. 탕이는 2주동안 200그램이 늘어 있었다. 여전히 역아였는데, 머리가 가슴 바로 아래에 있다고 하셨다. 아가 머리 때문에 많이 힘드시겠는데요? 나는 요새 배가 많이 단단하다고 이게 정상인지 물었다. 머리가 위에 있어 어쩔 수 없다고 하셨다. 근종도 있고. 다행히 근종은 더 커지진 않았다. 머리 바로 옆에 발이 보였는데 아가가 지금 폴더처럼 몸을 접고 있다고 했다. 32주부터 선생님은 산모수첩에 탕이의 자세를 그려놓으시는데, 보시더니 그래도 아가가 계속 자세를 바꾸고 있다고 하셨다. 그래도 계속 역아이니 수술 확정으로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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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7모퉁이다방 2021. 5. 6. 16:42
어제는 소윤이가 전주에서 군포로 왔다. 아침 아홉시에 출발해 군포로 오니 오후 한 시. 그리고 다섯 시에 여섯시 반 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 멀리서 배부른 나를 보기 위해 와줬다. 고맙게도. 계산해보니 일 년여만이었다. 세상에. 내 평생 이만큼 커다란 꽃다발을 받아본 적이 있었나. 품에 안아야 할 정도의 풍성한 꽃다발과 밤에 잠을 잘 못 잔다는 나를 위해 어여쁜 패키지의 차 세트를 가지고 왔다. 대야미역에서 만나 남편이 좋아하는 (나도 한 번 가보고 바로 좋아하게 된) 쌈밥집에 가서 푸짐하게 점심을 먹었다. 제육쌈밥으로 3인분을 시켰다. 제육볶음과 당귀를 포함한 쌈채소와 우렁무침과 우렁쌈장, 각종 밑반찬과 된장찌개가 나온다. 한창 먹고 있으면 따끈따끈한 누룽지도 가져다 주신다. 그동안 어떻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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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0모퉁이다방 2021. 5. 3. 13:16
어제는 장난감 소독을 마쳤다. 전부 물려받은 것들이다. 세탁하지 못하는 것들은 클리너를 싹싹 뿌려 마른천으로 뽀득뽀득 닦아냈다. 세탁할 수 있는 것들은 큼지막한 세탁망에 넣어 울세탁 모드로 돌렸다. 세 번씩 돌려야 했던 손수건과 천기저귀 빨래는 평일에 끝냈다. 어제는 아가옷 빨래를 했다. 남편 지인 중에 이제 돌이 된 아가가 있어 많이 물려받았다. 뜯어진 곳이 두 군데 있어 실로 단단하게 꼬맸다. 디데이 40일이다. 탕이는 아직도 역아이니 여러모로 수술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러면 디데이는 더 줄어들겠지. 한 달도 남지 않았을 거다. 저번주에 병원에 가니 다행히 경부길이가 조금 늘었다고 했다. 그래도 35주까지는 집에서 누워만 있음 좋겠다고 하셨다. 누워만 있는 건 너무 힘들어 집안에서 조금씩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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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눕눕모퉁이다방 2021. 4. 22. 14:13
지난 정기 검진때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제 검진주기가 한달에서 2주로 바뀌었고, 마지막 진료 때 아가는 2주 사이 500그램이나 늘어 있었다. 아직 역아였지만. 선생님은 내가 많이 노산이라 아기가 돌더라도 수술을 원하면 할 수 있다고, 노산은 보통 진행이 많이 느려 골반이 좋더라도 힘들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내가 자연분만을 원하면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주변에서 수술이 나쁘지 않다고 권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 수술 쪽으로 마음을 먹고 있다. 탕이는 몸무게가 는만큼 태동도 힘차졌다. 이제 밖의 소리를 다 듣는단다. 선생님은 초음파에 아가 얼굴이 보이자 "안-녀영, 아가야." 하고 인사를 건넸다. 다음 진료 날짜를 처음으로 평일로 잡았다. 그날 막달 검사를 한다고 했다. 5월부터 휴가를 쓸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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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모퉁이다방 2021. 3. 27. 14:41
오월부터 쉬기로 했다. 연차 소진하고 출산휴가 들어가기로. 삼십대에는 단 한번도 회사를 쉰 적이 없다. 오월에 어떤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 지 기대도 되고 셀레기도 한다. 더불어 다가올 진통의 시간과 육아의 시작이 걱정도 되고. 아가는 아무래도 나를 닮은 것 같다. 입체초음파의 입이 완전 도톰한 것이 나다. 눈은 감고 있어서 잘 모르겠고, 코도 양수에 불어 있어 잘 모르겠는데 입은 딱 봐도 나다. 나를 닮은 아이가 초여름이 되면 이 세상에 존재를 드러낸다는 게 아직까지 믿기지 않고 신기하기만 하다. 오월에는 사놓은 손수건과 천기저귀 빨래도 하고 물려받은 작디작은 옷들도 빨아야지. 어제는 남편의 지인이 아가옷을 잔뜩 물려줬다. 지인의 아가는 돌을 앞두고 있는데 사실은 두번째이지만 거의 처음 보는 삼촌 이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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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모퉁이다방 2021. 3. 6. 08:02
다시 출근한지 3주가 지나고 있다. 재택을 두 달 반이나 했다. 첫 주에는 긴 출퇴근길이 고단했으나 금새 몸이 적응해 나가고 있다. 재택할 때는 늦게 일어나도 되니 밤에 잠이 잘 오지 않는 날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집에 와서 밥 먹고나면 바로 기절이다. 집에 사람이 들어오는지 바로 옆에 누가 눕는지 모를 정도로 기절하듯 잠에 든다. 일찍 일어나니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알겠다. 해가 뜨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차 타고 역까지 나가는 길이 점점 밝아진다. 초여름이 가까워지면 이 시간이 지금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환하겠지. 탕이는 출근 첫 날 지하철 안에서 지나치게 콩콩거려 나를 놀라게 했다. 이제 자신만의 하루 사이클이 생기고 외부 소리에도 반응을 한다는데 집에서 앉아 있거나 누워만 있던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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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모퉁이다방 2021. 1. 17. 18:12
퇴원을 하자마자 안방 침대 위치를 옮겼다. 침대 양옆에 작은 사이드 테이블이 있는 구조였는데 한쪽을 분리하고 침대를 벽쪽으로 붙였다. 남편은 자면서 온갖 몸부림을 치는 내가 침대에서 떨어질까 정말 불안하단다. 침대에서 떨어진 건 주문진으로 놀러가 만취했던 그 날 딱 한 번 뿐이었지만, 지금은 떨어지면 정말 큰일나니까 침대를 옮기자고 했다. 당연하게도 내 자리는 벽쪽이다. 벽 아래 두 개짜리 멀티탭을 두고 하나는 핸드폰 충전기, 하나는 집게 스탠드를 꽂아 두었다. 요즘은 배 때문에 옆으로 돌아눕는 게 편해 벽쪽으로 빵빵한 베개 하나를 두고 두 발을 휘감고 잔다. 이번주에는 배 한쪽이 단단하게 튀어나오는 증상이 있어 깜짝 놀랐는데, 찾아보고 물어보니 배뭉침이라고 한다. 처음 겪는 증상이라 이상이 있는건가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