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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빅슬라이드
    모퉁이다방 2022. 1. 28. 23:16

      

      남편이 성대 낭종제거수술을 받고 왔다. 수술 전에 긴장되지 않냐고 하면 전혀- 라고 말했던 사람인데, 전신마취가 기계호흡인 줄 몰랐다고 알았으면 엄청 쫄았을 거라고 띄어쓰기 발음이 어색한 음성앱으로 말했다. 1-2주는 말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전신마취는 원래 이렇게 머리가 띵한 거냐며 이상한 거 아니지? 라고 메모장에 써서 보여줬다. 나는 호흡을 길게 하고 누워서 쉬라고 했는데, 왠지 아이를 보는 나를 두고 방에 들어가 버리는 게 미안한지 소파에 누워 일어나질 않더라. 남편이 기진맥진해 소파에 누워있는 동안 나는 아이 이유식을 먹이고, 분유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입속을 닦아주고, 침독이 가득한 입가에 로션도 발라줬다. 이제 자기만 하면 되는데 오래 칭얼대더라. 힘든 감정이 울컥하고 올라왔는데 꾹꾹- 잘 눌렀다. 한번 잠들었다 금방 다시 깼지만 참을 인자를 가슴에 새기며 토닥토닥을 수없이 하며 결국 재웠다. 거실의 남편을 방으로 보내고 아이가 침을 잔뜩 묻히고 논 장난감을 닦았다. 젖병과 이유식 용기, 우리가 먹는 저녁그릇을 닦고나니 갑자기 맥주 생각이 났다. 얼마 전에 술병이 난 이후론 (그렇습니다. 저는 최근 단유를 하였습니다) 생각이 난 적이 없는데. 아주 잘게 자른 마른 오징어도 생각이 났다. 가스레인지를 닦으며 생각했다. 일단 잔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어제 방송에서 들은, 가사가 좋았던 윤도현의 음악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집앞 편의점에 다녀오자. 딱 한 캔, 아니 딱 두 캔만 마시자. 그러자 어디에 있었는지 모를 긍정의 기운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지금 그 맥주를 마시고 있다. 윤도현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라고 노래하는 걸 들으며 사 온, 냉장고에 차갑게 해 둔 잔에 따른 바로 그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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