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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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기모퉁이다방 2019. 7. 10. 23:19
좋아하는 것을 과감하게 첫번째로 먹는 사람과 아끼고 아끼다 제일 마지막에 먹는 사람 중 나는 후자다. 어제는 소중한 친구의 엽서를 받았다. 언제 연락을 주나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우편함에 엽서가 꽂혀 있는 걸 본 순간 너무나 반가웠다. 익숙한 글씨체. 심플한 수박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단번에 읽지 않고 다른 일을 하며 참고 참다가 읽었다. 그동안 잘 지냈던 거죠? 흑흑. 얼마나 궁금했었는데요. 오늘은 보경이가 좋은 글을 읽었다며 그 글을 복사해 메일로 보내준 걸 받았다. 실은 월요일에 보냈던 거였는데, 오늘에서야 봤다. 유진목 작가가 등장하는 글이었는데, 조금 읽다 점점 좋아져 창을 닫았다. 조금 뒤에 좋은 시간일 때 읽자, 생각했다. 그때 읽음 더 좋은 글이 될 것이다. 좋은 글을 읽고 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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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모퉁이다방 2019. 7. 9. 22:53
지난주에는 같이 살 집엘 갔다. 사전점검 기간이었는데, 처음 내부로 들어가 보는 거였다. 여기서 회사를 다니려면 멀고 또 멀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들어가자마자 잘 다닐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단번에 들었다. 거실에서 나무들이 잔뜩 보였거든. 가까이에 낮은 산이 있었다. 숲이 보이는 집이었다. 단번에 방의 용도를 정했다. 나머지 숲이 보이는 방에는 책상과 책을 두기로 했다. 나즈막한 편안한 의자도 하나 사야지. 주문진에서 딱 한번 함께 펴본 캠핑의자를 가져와 숲이 보이는 창문 앞에 나란히 뒀다. 창문을 열어두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아, 좋다. 동시에 말했다. 여기에 소파를 두고, 여기에 식탁을 두고, 여기에 책상을 두고, 여기에 침대를 두고. 최대한 심플하게 살자고 말했다. 친구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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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구원모퉁이다방 2019. 7. 3. 23:16
요즘은 평일 저녁에 꼬박꼬박 헬스장엘 간다. 약속 있는 날과 의욕이 없는 날을 제외하고. 후자의 날들이 무척이나 많았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살이 빠져야 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간다. 가서 핸드폰을 보면서 엄청나게 느린 속도로 걷더라도 가긴 간다. 요일별로 헬스장에 오는 사람들 수가 차이 나는데, 확실한 건 금요일에는 좀 절박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나를 포함해서. 갈 때 꼭 이어폰을 챙긴다. 8시 즈음에 시작하는 뉴스를 보고 나오면 딱 좋다. 어떤 우울한 날에는 너무나 괴로운 뉴스들이 많아 이 세상은 왜 이모양인가 하며 절망하지만, 대부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빨리 40분이 지나길 바라면서. 이번주에 가지고 다니는 이어폰이 고장이 났다. 헬스장에는 동그란 단자로 된 이어폰만 연결이 가능한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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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뒤모퉁이다방 2019. 6. 25. 21:56
작년 팔월에는 울릉도를 여행했었다. 아침 일찍 강릉에서 출발해 세 시간 가까이 배를 타고 울릉도에 도착했다. 걱정했던 멀미는 없었다. 도착하는 순간부터 비현실적인 쨍-한 느낌이 있었다. 하늘은 새파랬고, 나무들은 짙은 녹색 그대로, 해도 짱짱했다. 무더웠는데, 어디선가 바람이 불면 땀이 한순간 훅-하고 식었다. 바다색깔은 말할 것도 없었다. 섬 자체가 원시적인 느낌이었다. 울릉도에서 하룻밤만 잘 계획이었다. 첫째 날은 해안도로를 한바퀴 돌기로 했다. 섬을 완전히 연결해 줄 마지막 구간의 도로가 공사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끝까지 갔다 다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해물이 잔뜩 나오는 짬뽕을 먹고 나와 커다란 지도를 보고 있는데, 주차비를 정산해주던 아저씨가 어떤 코스로 돌거냐고 물어봤다. 그냥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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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치집모퉁이다방 2019. 6. 15. 08:26
요즘 동생은 집 계약 문제로 고민이 많다. 세상 일이라는 건 정말 쉬운 게 하나도 없구나. 퇴근길에 합정역에서 6호선을 타려는데, 상암에서 축구 하는 날이라 사람이 정말 미어터지게 많았다. 그 와중에 누가 잘못 건드린 건지 화재경보기도 울렸다. 이렇게는 도저히 못 타고 갈 것 같아 역을 빠져나왔다. 하늘과 바람이 무척 좋은 날이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초여름 날씨. 고민 많은 동생(답답할 땐 수다와 걷는 것이 최고다)과 6호선을 타지 못한 나(그 날의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다는)는 마포구청역에서 만나 함께 걷기로 했다. 불광천 길은 올곧아서 옆에서 냄새로 유혹을 하는 고깃집도 없고, 자주 멈춰야 하는 횡단보도도 없다. 그냥 쭉 걷기만 하면 된다. 그 길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다가 동생이 집 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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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모퉁이다방 2019. 6. 5. 23:32
유월의 첫째주 토요일에 망원동의 너랑나랑호프에 있었다. 예약은 안된다고 했는데, 8시 즈음에 손님이 나가게 되면 그 테이블을 받지 않고 있을테니 잽싸게 오라고 했다. 그렇게 8시에 테이블에 안착했다. 고민을 거듭하다 갓김치와 파김치가 있는 육전과 국물떡볶이와 오백 다섯 잔을 시켰다. 맛난 맥스 생맥주였고, 김치들은 먹기 좋게 가지런히 잘라 주셨다. 육전은 따끈할 때 먹을 수 있도록 조금씩 나왔다. 길다란 떡이 들어간 떡볶이가 무척 맛있었다. 호프집은 손님들로 꽉 찼고, 맥주를 마시고 있었나, 마시려고 하고 있었나 하는데 늦게 도착한다고 했던 소윤이가 가게 바깥에서부터 케잌에 불을 붙이고 환한 얼굴을 하고서 들어왔다. 마치 짠 것처럼 호프집 사장님이 생일축하음악을 틀어주셨고, 진짜 짠 것이 맞는 맞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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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대기모퉁이다방 2019. 5. 14. 22:53
요즘은 늘 스마트폰이다. 지하철 안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화장실 안에서도, 그 짧은 에스컬레이터 위에서도. 어쩌다 이렇게 중독이 되었을까. 오늘 출근길에 셔틀이 파주에 거의 도착했을 때 스마트폰에서 손을 놓고 밖을 내다 보았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없던 물 웅덩이들이 생겼더라. 논에 물을 대는 시기구나 생각했다. 물이 가득 채워진 논이 참 예뻤다. 물에 하늘이 비치고, 옆의 산도 비치고, 나무도 비치고. 이렇게 멋진 풍경이 많은 계절에 나는 스마트폰만 보고 있구나. 한심하지만 퇴근길에 또 한참을 들여다 보고 있고. 의식적으로 줄여 나가야 겠다. 이렇게 바보가 될 순 없다! 요즘 내게는 여러 소소한 고민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너무 많은 말이다. 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나와 뭐든 너무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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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야채스프모퉁이다방 2019. 5. 10. 17:01
4월의 어느 금요일 밤에 곡예사 언니의 집에 갔다. 우리는 라자냐를 먹고, 통닭을 먹고, 맥주와 까바를 마시면서 다이어트에 대해 이야기했다. 언니는 내게 어떤 글을 보내줬는데, 자신이 몇년 전에 이 방법을 알았더라면 이것대로 했을 거라고 했다. 언니는 몇년 전에 수영으로 시작해 개인 피티로 끝나는 몇달을 보냈는데, 그때 10키로를 뺐다고 했다. 그 글에는 운동없이 한 달에 10키로를 뺄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하얀 것을 먹지 말 것! 하얗게 생긴 것은 물론이거니와 몸 안에 들어가서 하얗게 변하는 것들도. 잡곡도 먹지 말라고 했다. 단 과일도 먹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먹느냐면 토마토와 아보카도. (-_-) 토마토는 맛이 없어서 싫어했는데, 최근 짭잘이 토마토를 맛보고 어쩌면 토마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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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모퉁이다방 2019. 5. 8. 22:58
아직 추웠고, 잠실이었다. 간만에 셋이 모였다. 가격이 꽤 해서 뭔가 더 시킬 때마다 부담스러웠던 수제맥주집에 있다 근처에 생맥주를 파는 맥주집으로 이동을 했다. 동네의 저렴한 술집을 찾는 거였는데, 거기도 잠실인지라 그렇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결 편안해진 기분으로 안주를 시키고, 맥주를 추가해서 마셨다. 술잔을 기울이며 더듬어 보니 우린 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왔고, 그게 새삼스러웠다. 셋이었을 때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주로 함께 여행을 간 일. 그 여행길에서 한 헛짓들. 엄청나게 짠 대게를 길 위에서 사고, 맥주가 모잘라 긴긴 밤길을 걷고, 나간 두 사람을 한 사람이 기다렸던 일. 맥주가게 무제한 맥주축제를 기다렸다가 셋이 가서 엄청나게 큰 잔으로 엄청나게 마셔댔던 밤. 내 오랜 친구는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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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직통모퉁이다방 2019. 2. 27. 00:25
통영에서 미러리스 카메라를 쓰려고 간만에 꺼내 충전을 했다. 저장공간이 부족해 지울 사진이 없나 첫 사진부터 쭉 봤다. 왠지 모르겠는데, 클라우드에 따로 옮겨놨는데도 지우질 못하겠다. 간만에 오래된 사진들을 보는데 뭔가 뭉클했다. 그곳에 리스본이, 포르투가, 바르셀로나가, 삿포로가, 오타루가, 강릉이, 울릉로가 있었다. 얼마 전 방영을 시작한 에서 류준열이 그러더라. 사진을 원래 찍지 않았는데,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기록이 없으니까 기억이 자주 변형되더라고. 기억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류준열의 사진기 속에 쿠바의 풍경이, 거리에서 인사를 나눴던 사람들의 모습이 생동감있게 담겼다. 올해는 여행을 많이 하고 싶다. 좋은 풍경도 많이 담고 싶고, 모르는 사람과도 인사를 나누고 싶다. 그러다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