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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고기무국
    모퉁이다방 2020. 7. 14. 22:24

     

       일요일에는 비가 왔다. 혼자 있는 동안 자두를 두개 꺼내 먹고 티비를 보다 잠이 들었다. 선잠이었다. 책을 읽으려다 실패했다. 갑자기 소고기무국 생각이 났다. 냉장고에 반쯤 남은 무가 있었다. 맑고 깊게 국을 끓여 새로 한 밥을 말아 푹 익은 김치를 얹어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귀리를 섞어 쌀을 씻은 뒤 밥솥을 닦고 취사 버튼을 눌러뒀다. 집에서만 입는 얇은 원피스 위에 가디건을 걸치고 츄리닝 바지를 입었다. 우산을 쓰고 정육점에 갔다. 롯데슈퍼는 휴무였다. 슈퍼에 갔으면 뭔가 더 살 게 있었는데 정육점이어서 국거리용 소고기만 샀다. 정육점에 들어가기 직전에 백종원 레시피를 검색한 터라 수입산 국거리 소고기 200g 주세요, 라고 정확하게 말했다. 아저씨는 냉동인데 괜찮아요? 물었고 좋다고 했다. 두덩이를 꺼냈는데 4천원 정도였다. 100g 더 달라고 했다.

      

       집에 오니 갑자기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다. 카모메 식당을 틀었다가 끄고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을 틀었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이들이 화면에 차례차례 등장했다. 영화는 여전했다. 등장인물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으며 무국을 끓였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순간들도 있었다. 키친타올로 핏물을 살짝 빼고 저울을 꺼내 무의 무게를 재봤다. 껍질을 벗기고 꼭지를 떼어내면 레시피의 무게가 될 것 같았다. 무도, 양파도 먹기 좋게 잘랐다. 백종원의 레시피에는 양파가 들어갔다. 참고한 블로그에는 이 양파가 소고기의 누린맛을 없애주는 것 같다고 했다. 들기름을 두르고 핏물을 뺀 소고기를 넣었다. 소고기가 적당히 익어 썰어둔 무를 넣었다. 무가 적당히 익자 맥주잔 500cc에 물을 채워 세 잔을 냄비에 부었다. (그렇다. 집에 호프집 500cc 맥주잔이 있다!) 까나리액젓이 없어 멸치액젓과 국간장을 넣었다. 간마늘도 넣었다. 그리고 푹 끓였다. 아주 푹. 그렇게 혼자 만든 무국을 둘이서 나눠 먹었다. 과연 마지막에 넣은 파와 양파가 국을 더 깔끔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았다. 일요일이니 이거면 되었다고 생각되는 맛이었다. 이상하게 이번주는 고되네. 화이팅, 이라고 조그맣게 외쳐보는 화요일 밤이다. 여름밤바람이 위안이 된다. 몬스테라 화분이 두 개 있는데, 하나가 잎을 펼쳤고 또 하나가 잎을 준비하고 있다. 식물들도 힘을 내고 있으니 인간들도 화이팅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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