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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림캐쳐
    모퉁이다방 2020. 7. 5. 16:56

     

       모성애라는 거 낳았다고 바로 생기는 건 아닌가봐. 친구가 말한 적 있다. 지금에야 둘도 없는 엄마가 되었지만 출산을 하고 난 뒤 아직 엄마가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함께 시간을 오래 보낸 지금은 서로에게 둘도 없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안방에는 침대와 서랍장, 친구가 선물해준 화분이 있다. 서랍장 위에 티비가 있고 가습기가 있고 여름이 되어 자그마한 선풍기도 마련했다. 청첩장을 담은 나무액자도 올려놓았고 이제는 향이 나지 않지만 여전히 올려둔 보경이의 디퓨저와 다이소 시계, 언젠가 솔이의 마니또 선물이었던 자그마한 조명이 있다. 침대 양옆으로 작은 공간이 있어 각자의 물건을 올려놓을 수 있다. 나는 책도 올려놓고 스탠드도 올려놓고 고무줄과 안경도 올려놨는데 남편은 딱 핸드폰 충전기만 올려놓는다. 지난 달까지만 해도 내가 안쪽에서 잤다. 부부라는 것도 결혼했다고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닌 거겠지. 새벽에 나쁜 꿈을 꾸다 깨는 날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올해 늦봄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좋지 않은 꿈을 자주 꾸었고 그때마다 새벽에 깼다. 그러면 내 옆에 동생이 아닌 남편이 누워 있는 게 어색하게 느껴지곤 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우리 둘이 어느 날부터 한 침대에서 자고 깨는 게 생경하게 느껴졌다. 싸우거나 안 좋은 일을 겪은 것도 아닌데 그 새벽에 땀을 조금 흘리며 깨고 나면 이상하게 그랬다. 결혼한 직후도 아니고 여러 달을 함께 살았는데도. 그럴 때면 친구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옆사람에게 나쁜 꿈을 꾸었다고 말하고 다시 잤다. 그러면 잠결에 응? 그랬어? 라고 대답해줬다. 언젠가 동생이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날이 늘었다면서 침대가 딱딱해서 그런가봐 했는데 아마도 같은 이유일 것 같다. 늘 좁은 방에서 복작거리며 잤는데 혼자 자고 깨는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경해지는 새벽이 있을 것이다. 남편도 그럴테고. 

     

       그 날은 비가 오는 금요일이었는데 동생에게 줄 게 있어 퇴근하고 동네로 간다고 했다. 양꼬치가 땡겨 함께 먹기로 했다. 역시 양꼬치 좋아하는 남편이 여차여차해서 동생네 동네까지 온다고 했다. 셋이 만나 일차로 양꼬치를 먹고 이차로 멍게해삼을 먹었다. 시간은 늦었고 비도 오고 술기운에 몸이 느슨해져 동생네 집에서 삼차를 하고 자고 가기로 했다. 동생이 터를 잡은 동네는 오래된 곳이라 구석구석 맛있는 노포들이 많다. 동생은 우리를 좁은 계단이 있는 이층의 맥주집으로 데려갔다. 와 본적은 없는데 맛집이래. 그리고 능숙하게 차가운 소세지와 치즈를 포장해달라고 했다. 집에 와 그 안주를 늘어놓고 와인을 마셨다. 우리가 선물해준 커다란 나무 테이블에 셋이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동생이 칫솔을 꺼내줬고 침대 아래에 요를 펴줬다. 동생은 침대 위에서 우리는 침대 아래 요에 누워 셋이 한 방에서 잤다. 그야말로 숙면했다. 동생은 일찍 일어나 아침을 해먹인다고 식빵을 사왔다. 양배추 넣은 계란토스트 만드는 냄새에 잠에서 깼다. 남편은 그뒤로도 혼자 편안하게 계속 잤다. 토스트를 먹고 번갈아 샤워를 하고 커피까지 마시고 나왔다. 남편이 좋았다, 라고 했다. 편했다고. 그 밤의 풍경이 가끔 생각이 난다. 가습기를 틀어두고 자그마한 방에 셋이 옹기종기 모여 잔 밤. 동생은 그 날도 말했다. 또 와요, 형부. 어제는 방문에 달아두었던 소윤이의 언젠가의 선물을 창문 위에 옮겨 달았다. 방문을 늘 열어두니 잘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잘 보인다. 바람이 불면 살짝살짝 춤을 추는 모습까지. 드림캐쳐라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악몽을 걸러주고 좋은 꿈만 꾸게 해준다는 의미로 만들었던 토속 장신구이다. 지난 달에는 잠자리를 바꿨다. 남편이 안쪽에서 자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책이며 스탠드며 안경을 모조리 옮겼고 안쪽 공간에는 핸드폰 충전기 하나만 놓여져 있다. 남편은 옮긴 자리가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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