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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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캐쳐모퉁이다방 2020. 7. 5. 16:56
모성애라는 거 낳았다고 바로 생기는 건 아닌가봐. 친구가 말한 적 있다. 지금에야 둘도 없는 엄마가 되었지만 출산을 하고 난 뒤 아직 엄마가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함께 시간을 오래 보낸 지금은 서로에게 둘도 없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안방에는 침대와 서랍장, 친구가 선물해준 화분이 있다. 서랍장 위에 티비가 있고 가습기가 있고 여름이 되어 자그마한 선풍기도 마련했다. 청첩장을 담은 나무액자도 올려놓았고 이제는 향이 나지 않지만 여전히 올려둔 보경이의 디퓨저와 다이소 시계, 언젠가 솔이의 마니또 선물이었던 자그마한 조명이 있다. 침대 양옆으로 작은 공간이 있어 각자의 물건을 올려놓을 수 있다. 나는 책도 올려놓고 스탠드도 올려놓고 고무줄과 안경도 올려놨는데 남편은 딱 핸드폰 충전기만 올려놓는다.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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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근황모퉁이다방 2020. 6. 23. 22:22
시옷의 독촉이 없었다면 이 글은 아마도 아주 나중에 쓰여지거나 아예 쓰여지지 않았을 거다. 평소처럼 저녁을 먹고 요즘 흥미롭게 보고 있는 왓챠의 을 보았을 거고 그러다 벌써 11시네, 자야겠다 그러면서 씻고 정리하다 12시가 되었을 거다. 그러다 진짜 잠들었겠지. 요즘은 정말 눕자마자 잔다. 아, 아니다. 지난 주에는 밤산책도 했다. 긴 출퇴근 끝에 군포에 입성하면 외식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집에만 있는데 어느 날 동생이 자고가면서 동네 산책길을 알게 됐다. 밤에 굉장히 많이 먹고 잤는데 동생이 아침에 눈뜨자마자 걸어야겠다고 했다. 좀더 오래 걸어보고자 평소에 가지 않는 길로 갔는데 왠걸 일년 가까이 모르고 있던 멋진 산책코스가 있었다. 그 길에 몇백년 된 은행나무도 있고, 나무의자와 테이블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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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밤모퉁이다방 2020. 4. 18. 14:16
어제는 외식을 하기로 했다. 역에서 내려 마을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에 짧은 나무 길이 있는데, 그 옆으로 약국이 있고 치킨집이 있고 초밥집이 있다. 길과 가게 사이에는 작은 화단이 있는데 초밥집은 간이 테이블을 화단 너머 길가에 놓아놓고 회와 초밥을 포장해서 내놓고 팔고 있었다. 평소 지나가면서 맛집일 거라는 생각을 못했는데 어느 날 남편이 초밥집 얘길 꺼냈다. 너 걸어오는 길에 초밥집 있지? 거기 회사 사람들이랑 갔는데 꽤 맛있더라고. 언제 한번 가자. 들어가보니 정말 작은 가게였다. 작은 테이블이 세 개 있고 한쪽 벽에 1인석 바가 있었다. 메뉴도 단촐했다. 회와 초밥, 산낙지 같은 국물 없는 메뉴들. 숙성회를 파는 가게였다. 작지만 천장이 높아 그리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주방장이자 사장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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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모퉁이다방 2020. 4. 5. 19:05
집에 가려면 지하철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한번 타야 한다. 버스정류장까지는 일단 하늘다리식의 긴 통로를 지나 계단을 내려와 밖으로 나와야 한다. 요즘 자주 기웃거리는 화원을 지나 조그마한 다리를 지나고 나무길을 오분여 걸으면 횡단보도가 나온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정류장이 있는데, 정류장 가기 직전에 마트가 있다. 그리 크지 않은데 없는 게 없는 마트다. 마트 밖에는 세일하는 식재료와 과일들이 진열되어 있다. 나는 매번 그걸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유심히 들여다본다. 회원으로 전화번호를 등록해 놓은 덕분에 일주일에 두세번 세일 품목을 정리한 문자도 받는다. 한돈암돼지삼겹살 1근 9900원, 노르웨이자반 1팩(1손 2마리) 3980원, 시금치 1단 990원, 백오이(특) 1봉(5개) 2980원. 나는 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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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아와 라떼모퉁이다방 2020. 3. 21. 10:43
매번 혼자 남겨지는 사람에게 마음이 쓰였다. 고등학교 때는 혼자 있는 아빠에게 그랬고, 최근에는 동생에게 그랬다. 대학교 때 나도 혼자였는데 그건 괜찮았다. 지난 주에는 치과 때문에 하루 연차를 냈다. 남편이 동생집이 치과와 가까우니 하루 자고 바로 가면 어떻겠냐고 그래서 그러겠다고 했다. (그는 내 아침 출근길 지하철 역까지 운전을 안해도 되는 것이다! 역시나 술약속을 잡았더라!) 마침 그날 휴가자가 많아 야근을 했고 동생집에 느즈막히 도착했다. 지하철 역에서 나오자 통닭을 파는 트럭이 보였다. 나는 세상의 모든 전기구이 통닭트럭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까지 최고는 응암역 길 건너에 있던 할아버지 통닭이다. 아주 바삭하고 아주 부드럽고. 포장해주실 때도 세심하게 까만봉지를 묶어 꽉 조여주신다.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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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통모퉁이다방 2020. 3. 4. 23:30
주말부터 왼쪽 이가 욱신거렸다. 낮에는 아무 이상도 없는데, 밤에 자다가 너무 아파 깨곤 했다. 치아 상태가 엉망일 때가 있었는데, 그때도 이런 치통을 느낀 적은 없어서 주말 내내 불안했다. 다니는 치과에 전화를 했는데 화요일 야간진료 예약이 꽉 찼다고 했다. 아파서 잠을 못 잔다고 하니 와보란다. 얼마나 아픈가, 온도에 따라 통증이 있는가, 음식을 씹을 때도 아픈가 등등의 질문이 이어지고 결국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 씨티를 찍었다. 왼쪽 윗쪽 사랑니 앞의 이가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뿌리에 염증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고. 아무래도 신경치료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흑- 치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게 또 후회된다. 정말이지 치아가 튼튼한 것은 복이다. 큰 복- 평일 오전에만 가능하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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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모퉁이다방 2020. 3. 2. 22:07
남기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아무 것도 쓰지 못한 채 삼월이 왔네. 어느 날, 출근길인가 퇴근길에 가산디지털단지역 지하철 문이 열렸는데 순간 깨달았다. 이 역이 연애시절 남편네 동네에 왔다 돌아가는 길에 어쩔 수 없이 정차했던 역이었다는 걸. 주말 오전의 열차는 가산디지털단지에서 멈췄다. 이곳까지만 운영하는 열차라고 했다. 곧 기다리면 또다른 열차가 올 거라고. 그 열차는 멀리까지 갈 거라고 했다. 날씨가 흐렸다. 역사 바깥인지 안인지 그 경계선 즈음에 커다란 벚꽃나무가 있었다.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이 모두 그 벚꽃을 찍어댔다. 흐렸는데도 가득했던 벚꽃 때문인지 환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매일 지나는 역인데도 핸드폰을 보느라 잠을 자느라 그 흐린 봄날의 기억을 잊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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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2모퉁이다방 2020. 2. 5. 22:20
주례를 대신한 아버님의 말씀이 시작되고서야 알았다. 그날이 2020년 2월 2일이었다는 걸. 2를 살짝 돌리면 하트가 되는 예쁜 날 우리 아이들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은경이는 2월 2일에 결혼을 했다. 8월의 결혼식에 예의 그 발랄함으로 폴랑폴랑 뛰어와 언니 혼자 오기 그래서 남자친구와 같이 왔어요, 라고 해서 나를 놀래켰는데 그 뒤 6개월이 되기 전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 날 은경이 아버님은 단상에 올라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누구의 아내, 누구의 사위,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남편으로 살지 말고 본인의 이름 그대로 살라는 것이었다. 그 이름들은 부모님들이 몇 달 며칠을 고심해서 지은 소중한 이름들이라고. 그러니 그 이름으로 불리면서 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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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모퉁이다방 2020. 1. 5. 17:40
S씨는 남편이 내게 처음으로 소개해준 친구다. 팀장님 부부와 S씨 부부와 여섯이서 연애 초반에 만났더랬다. 그 날 S씨는 남편이 드디어 결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기분이 너무 좋다고 자기가 결혼식에서 축가를 꼭 부르겠다며 방방 뛰었더랬다. 그때 결혼생각도 없었지만 만일 결혼식을 한다고 해도 축가로 S씨는 안되겠다고 노래방에서 생각했다. 그 뒤에는 내 생일에 만났다. 회사에서 몇달동안 안 풀리던 업무가 극적으로 해결된 밤이라고 했다. 남편네 동네에서 둘이서 한잔 하고 있는데 미안하지만 너무 기분이 좋아서 올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함께 이 기쁨을 나눠야 한다고 했다. 후배와 둘이 와서 결국 노래방까지 갔는데 그날의 S씨는 얌전했다. 남편 말이 술이 덜 취해서 그런 거라고 했다. 그 뒤 결혼을 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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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옷의 책모퉁이다방 2019. 12. 13. 10:26
결국 마피아는 없었다. 조림이, 봄, 병규, 기석이가 후다닥 집을 나서기 전 마지막 게임이었다. 마피아가 아무도 없는 게임에서 모두들 결백을 주장했다. 자신이 선량한 시민이라고 거듭 강력하게 주장을 했던 조림이는 마피아가 없다는 통보를 받고 허무하고 억울하게 집을 나섰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끼리 좀더 마시기 위해 테이블을 약간 치우고 있었는데, 책상이 있는 방에 들어가 있던 소윤이와 민정이가 나를 불렀다. 언니 책들은 어떻게 정리해놓은 거야? 분류법 따위는 없고 막 채워넣었다고 답을 하니, 여기는 시집이 있네, 여기는 이런 책들이 있네, 하는데 못 보던 책들이 보였다. 잊지 않으려고 쓰는 이야기들. 헉. 아이들이 블로그 글로 책을 만들어 선물해준 것. 고맙고 부끄러웠다. 나는 책을 가질 글을 쓴 사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