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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40
    모퉁이다방 2021. 5. 3. 13:16

     

     

      어제는 장난감 소독을 마쳤다. 전부 물려받은 것들이다. 세탁하지 못하는 것들은 클리너를 싹싹 뿌려 마른천으로 뽀득뽀득 닦아냈다. 세탁할 수 있는 것들은 큼지막한 세탁망에 넣어 울세탁 모드로 돌렸다. 세 번씩 돌려야 했던 손수건과 천기저귀 빨래는 평일에 끝냈다. 어제는 아가옷 빨래를 했다. 남편 지인 중에 이제 돌이 된 아가가 있어 많이 물려받았다. 뜯어진 곳이 두 군데 있어 실로 단단하게 꼬맸다. 

     

      디데이 40일이다. 탕이는 아직도 역아이니 여러모로 수술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러면 디데이는 더 줄어들겠지. 한 달도 남지 않았을 거다. 저번주에 병원에 가니 다행히 경부길이가 조금 늘었다고 했다. 그래도 35주까지는 집에서 누워만 있음 좋겠다고 하셨다. 누워만 있는 건 너무 힘들어 집안에서 조금씩 움직인다. 빨래도 하고. 초음파를 보는데 아가가 양발을 머리에까지 올리고 있더라. 발 길이를 재주셨는데 7센치였다. 집에 와 줄자를 꺼내 7센치를 만들어봤다. 여기가 앞머리예요. 선생님이 가리켜 주신 곳에 잔디같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귀여운 아가에게 귀여운 머리카락까지 생겼다. 남편은 요즘 "오백이십칠번(남편은 내 생일에 아이가 태어나 매년 생일을 한번에 치르길 바란다 -_-;) 전탕이 훈련병, 잘 있었나? 점호 시작!"하며 태담을 시작하는데 앞머리 영상을 보더니 진짜 훈련병 머리를 하고 있다며 신기해했다. 이제 탕이는 2.4키로가 되었다. 다음주에 가면 더 자라 있겠지. 더 나올 수 있는 건가 싶은 배가 더 나왔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 아이 생각이 많지 않았다. 가지지 말자고까지 말했다. 둘이서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우리 둘다 아이를 가지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고. 나는 가질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고 둘이서 계속 행복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되었다. 어중간한 상태로 어중간한 노력을 하며 일년이 흘렀다. 남편은 올해, 그러니까 작년이 지나면 둘다 아예 생각도 하지 말자고 했다. 내년은 아이를 가지기엔 너무 많은 나이라고. 여수 여행에서였다. 남편이 우리 둘이 살아가려면 취미도 공유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많은 노력을 해야 될 거다 라고 말했다. 나는 남편의 그 말에 아이 없이 늙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상상해봤다. 

     

      여행을 가기 한 달 전쯤 난임병원에 갔더랬다. 문제가 있으면 깨끗하게 포기를 하든지 시술을 해보자고. 둘 다 문제는 없었다. 시술은 결심이 서지 않아 날짜를 받아왔다. 잘 되지 않았다. 시술을 하는 문제로 친구들과 동생들 앞에서 싸우기도 했다. 남편은 빨리 시도를 하고 포기를 하든지 하자고 했다. 나는 시술을 하면 휴가도 많이 써야 하고 몸도 걱정이 되었다. 어느 날 퇴근길, 셔틀버스 안에서 생리가 시작되는 듯한 느낌이 왔다. 결국 이번 달도 안되었구나 생각했다. 휴가를 최대한 적게 쓰고 시술을 하는 방법이 뭔지 고민했다. 집에 와 속옷을 갈아입으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색이 이상했다. 사놓고 단 한번도 쓰지 않았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 테스트기를 꺼냈다. 헉 이게 뭐지? 선명한 두 줄이었다. 믿어지지도 않고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약속이 있어 술을 마시고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사진을 보냈다. 마찬가지로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한 남편은 내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산한지 얼마되지 않은 지인에게 바로 물어봤단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와 말했다. H가 그러는데 이건 빼박 임신이라는데?   

     

      그날 아침 꿈을 꿨다. 너무 생생하고 느낌이 좋은 꿈이었다. 그 당시 친구가 이사 문제로 고민이 많았던 시기라 친구일이 잘 풀릴 거라 생각했다. 일어나자마자 친구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내가 이런 꿈을 꿨는데 잘 될 것 같아. 꿈에 맑은 물이 나오면 좋은 거래. 꿈에서 나는 친구집에 있었다. 한참 놀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친구에게 샤워를 하고 가도 되냐고 물었다. 친구는 물론이지, 라고 했다. 나는 친구네 욕실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어놓고 나왔다. 친구와 한참 이야기를 하다 맞다, 나 물 틀어놨잖아, 하면서 욕실로 다급하게 들어갔다. 들어서자 친구의 욕실이 대중목욕탕만큼 커져 있었다. 길쭉한 탕이 생겼고 거기에 방금 받은 물이 그득했다. 친구에게 나 때문에 수도세가 어마어마하게 나오겠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친구가 괜찮다고 했다. 따뜻한 탕 안으로 들어갔다. 단번에 기분이 좋아졌다. 친구와 오빠(친구의 남편)가 밖에 앉아 내 얘기를 들어줬다. 그러다 갑자기 남편이 탕 속에서 나타났다. 길쭉하게 생긴 탕을 기분 좋은 얼굴로 유유히 배영하고 있었다. 순간 더할 나위없이 안락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태명이 '탕이'가 되었다. 친구의 이사 문제도 잘 해결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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