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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퉁이다방 2021. 5. 6. 16:42

     

     

      어제는 소윤이가 전주에서 군포로 왔다. 아침 아홉시에 출발해 군포로 오니 오후 한 시. 그리고 다섯 시에 여섯시 반 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 멀리서 배부른 나를 보기 위해 와줬다. 고맙게도. 계산해보니 일 년여만이었다. 세상에. 내 평생 이만큼 커다란 꽃다발을 받아본 적이 있었나. 품에 안아야 할 정도의 풍성한 꽃다발과 밤에 잠을 잘 못 잔다는 나를 위해 어여쁜 패키지의 차 세트를 가지고 왔다.

     

      대야미역에서 만나 남편이 좋아하는 (나도 한 번 가보고 바로 좋아하게 된) 쌈밥집에 가서 푸짐하게 점심을 먹었다. 제육쌈밥으로 3인분을 시켰다. 제육볶음과 당귀를 포함한 쌈채소와 우렁무침과 우렁쌈장, 각종 밑반찬과 된장찌개가 나온다. 한창 먹고 있으면 따끈따끈한 누룽지도 가져다 주신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하며 쌈밥을 먹었다. 소윤이의 대학원 생활, 남편의 훈련병 태담과 요즘 아이들이 사는 곳을 두고 무지막지한 말들을 한다는 서글픈 현실, 탕이의 이름 후보 등등. 이것저것 먹을 것들이 많아 공기밥은 사이좋게 반씩 남겼다. 그리고 동네로 와 좋아하는 빵집에서 좋아하는 빵과 커피를 사고 집에 들어왔다. 남편은 방에 들어가 늘 지지만 지치지 않고 보는 한화 야구를 봤고 소윤이와 나는 소파에 앉아 빵과 커피와 차를 펼쳐놓고 수다를 떨었다. 처음 먹어보는 블루베리 케이크는 상콤하고 적당히 달아 맛났다.

     

      창밖으로 어제 비가 와서 더욱 무성해진 숲이 보였고 얼마 전 큰 맘 먹고 산 풍경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왔다. 관계에 대한 소윤이의 말은 어느 때의 나 같아서 무척 공감이 되었다. 만나지 못한 사이 이렇게 또 자라 있었구나 싶었다. 소윤이는 언니 배가 정말 많이 나왔다는 말을 여러 번 했는데 소윤이가 찍어 준 사진을 보니 그 말이 실감이 되었다. 아, 나 진짜 배가 어마어마하구나. 늘 내려다보니 그냥 많이 나온 줄 알고 있었는데 배가 찍힌 사진을 보니 정말 어마어마했다. 소윤이가 이 배를 하고 얼마나 힘들겠냐고 언니 정말 고생이 많다고 했다. 이 다정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따듯해졌다. 사실 요즘 밤마다 정말 힘들었거든. 잠은 안 오고 다리는 붓고 어떻게 누워도 불편하고.

     

      소윤이가 다섯 시에는 가야한다기에 이것저것 챙겼다. 빵과 주스, 얼마 전에 사둔 비누, 포틀랜드 차 티백. 소윤이가 남편에게 밖에 나가 초록초록한 데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화장도 하지 않고 미용실도 통 가지 않아 머리도 엉망인 나는 틴트만 바르고 자연광을 고스란히 받으며 사진을 찍었다. 처음엔 너무 적나라한 내 모습에 놀랬는데 이렇게 소윤이가 오고 이 시기 우리 둘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두게 되어 다행이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사진을 계속 들여다 보니 이뻤다. 우리 둘도, 초록초록한 나무들도, 비온 뒤 오월의 좋은 날씨도.

     

      소윤이를 보내고 집에 들어와 잠시 쉬다가 당근 거래를 하러 다시 나갔다. 신생아 때만 사용하는 모빌이라는데 가격이 비싸긴 해도 꼭 필요한 육아템이라 해서 중고로 구입했다. 6월 출산 예정이라고 하니 아가의 성별을 물어봤는데 아가 옷이랑 양말을 덤으로 주더라. 고마운 판매자였다. 상품은 아주 깨끗했고 옷이랑 양말에도 좋은 세제 냄새가 솔솔 났다. 집에 와 조립해보니 잔잔한 음악소리가 나며 인형들이 천천히 돌아갔다. 저녁은 수요일마다 앞 아파트에 장이 열리는데 거기서 곱창순대볶음을 사와 먹었다. 평소보다 움직여서 그런지 간만에 정말 숙면을 했다. 오늘 일찍 일어나 꽃병 물을 갈고 분무기로 물을 뿌려줬다. 어제 쌈밥을 먹는 동안 차 안의 온도 때문에 순식간에 꽃과 잎이 시들었다. 집에 와 줄기 끝부분을 대각선으로 잘라주고 물을 듬뿍 담은 꽃병에 꽂은 뒤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니 금새 되살아나더라. 신기하게. 고운 마음이 담긴 어여쁜 꽃, 오래오래 봐야지. 꽃병은 이원하 시집 사은품인데 이렇게 적혀 있다. "나에게 바짝 다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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