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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렌지 데이즈
    티비를보다 2014. 10. 19. 20:38

     

     

     

        연인이 된 카이와 사에. 사에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몇년 전부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학교 캠퍼스에서 우연히 둘은 만나게 되고, 모난 성격의 사에를 카이는 때로는 이해하고, 때로는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마음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는 사에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그녀에게 진심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노력한다. 사에는 그 마음을 잘 알지만, 그래서 너무 고맙지만 자신의 현실 때문에 행여 그에게 누를 끼칠까봐 더 모나게 행동하기도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해가고, 좋아하는 마음을 키워간다. 카이에겐 똑 부러진 연상의 여자친구가 있었다. 두 사람은 마음만 각자 키워간다.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들키지 않을 리가 없다. 바라는 미래가 달라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된 카이. 두 사람은 그 마음을 대놓고 들켜버리고, 어느새 연인이 된다.

     

        어느 날 레코드 가게에 가게 된 두 사람.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카이를 사에는 멀리서 지켜본다. 레코드 가게를 나서며 사에가 카이에게 묻는다. 그 곡 어떤 느낌이야? 카이는 당황한다. 어떤 느낌이지? 어떤 느낌. 밴드 곡이었는데, 카이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한다. 애절한 느낌이 드는 곡이야. 사에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카이인지 사에인지 누군가가 머리 위로 손을 들어 손가락을 아래로 하고 코까지 일직선으로 떨어뜨린다. 그건 일본어로 소-. 그래, 라는 뜻의 수화다. 그날부터 카이는 그 곡의 느낌을 그림을 그린다. 사에를 위해. 나중에 완성된 그 그림에는 커다란 유리병이 있고, 그 병에 빨간 장미꽃이 꽂혀 있다. 그 병 안에 남자와 여자와 등을 마주하고 앉아 있다. 쿠루리의 곡이다. 드라마를 보고 이 곡을 계속 듣고, 가사도 찾아봤다. 그러다 맥주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날, 그 그림이 완전히 이해가 됐다. 아, 하고 혼자서 지하철 안에서 웃었다. 마음이 이상해졌다. 막 설레였다.

     

        이 드라마를 왜 이제 보게 된걸까. 예전에 한번 보려고 했었는데, 사에가 너무 모난 성격이어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 1회만 보고 그만두었던 것 같다. 끝까지 보니 그건 그녀의 성격이 아니었다.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누가 될까봐 항상 노심초사했던 착한 아이였다. 그러면서도 왜 나한테만 이런 불행이 와야 하냐고 참지 못하고 화를 내기도 했던 현실적인 아이였다. 어떤 순간은 좋아한다고 말하고, 금방 마음을 돌려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아이였다. 그건 그녀의 진심이 아니었다. 카이는 그 마음을 다 알았다. 좋아한다고 말할 때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도 그녀를 다 이해했다. 그런 사람이 있는 사에가 부러웠다.

     

        카이. 그러니까 사토시는 이 드라마에서 어찌나 빛나던지. 진짜 최고. 사토시는 진짜 사랑에 빠져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사에에게 지었던 그 표정들. 안타깝고 서운하고 서글퍼하던 그 표정들. 너는 이제 나랑 헤어지고 서른 두살이 되었을 때, 20대에 이런 저런 여자들을 만났고 그 중에 귀가 아픈 아이가 있었지, 라고 회상하게 될 거라며 이별을 통보하는 사에에게, 그럴리는 없다고, 귀가 아픈 아이가 있었지, 그 이후의 이야기는 없다고, 스물 두살의 그 이야기만 무한반복할 뿐일 거라고, 말하며 지었던 그 진짜 스물 두 살의 표정. 그 표정들 때문에 지난 일주일 간 마구 설레였다. 사에, 카이. 이제라도 만나서 다행이야. 사에와 직접 이야기를 하고 싶어 수화를 조금씩 배워오던 오렌지 데이즈의 친구들도. 이제라도 만나서 정말 다행이었다. 수화는 외국어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 나라에 가기 위해, 그 나라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 처럼. 사에를 만나기 위해 배우는 또 하나의 언어. 손으로 표현하는 아름다운 언어. 드라마에서 수화를 쓸 때 무척 좋았다. 덕분에 사토시의 목소리도 더 좋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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