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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후로부터 두번째 사랑
    티비를보다 2014. 6. 7. 23:25

     

     

     

        나, 이 언니에게 완전히 반했다. 이름은 치아키. 나이는 46살. 독신이다. 직업은 드라마 프로듀서. 이야기는 치아키가 카마쿠라라는 도쿄 근교 도시의 오래된 주택을 구입해 살면서 시작된다. 이 언니는 이쁘고, 당당하고, 예의도 바르다. 할 말은 확실하게 하고, 남의 이야기도 잘 들어준다. 그래서 이 언니의 집에는 상담손님이 제 집인양 끊임없이 방문해서 며칠씩 자고 가기도 하고, 맥주를 그냥 막 꺼내 마시고, 주인없는 집에 먼저 와 기다리고 있기도 한다. 완벽해보이지만 이 언니에게도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 그래서 더 인간적이다. 거의 먹여 살린 연하의 남자가 포스트잇으로 이별을 고하기도 했고, 카마쿠라에서 다 같이 살자는 술자리 친구들의 말을 믿고 바로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결국 치아키만 카마쿠라에 집을 얻었다. 이 언니가 정말 멋진 건, 어떤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좋아하게 된 남자가 불치병에 걸렸었고 재발하면 살지 못한다는 고백을 해도 아직 병에 걸린 게 아니잖아, 하면서 힘을 준다. 옆집의 히키코모리 여자아이가 사랑한다고 고백했을 때에도, 치아키는 웃으면서 고마워, 라고 말한다. 사귀는 사람의 형이랑 술에 잔뜩 취해 키스를 했다고 생각했을 때나, 결국 하게 되었을 때도 정색하는 남자를 보고 자신에게서 그런 순수함은 언제 빠져나가버린 걸까 생각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46살이 된 여자와 50살의 남자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이 때문이 아니다. 둘이 함께 있으면 이야기가 끊임이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구 갈궜다. 겉으로는 기분 나빠하면서도, 속으로는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스페셜 드라마를 보니 여자는 남자와 이야기를 하면 여동지와 얘기를 하는 느낌이라고 하고, 남자는 남동지와 이야기하는 느낌이라고 한다. 뻥 뚫린 곳에서 한참을 떠들더니 남자가 말했다. 속이 시원해졌다고. 두 사람은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고, 마음을 줬다. 출근길의 전철에서 우연히 마주치면서, 퇴근길의 개찰구에서 여자가 카드를 찾지 못해 가방을 뒤적거리는 걸 매번 보면서, 전철역에서 걸어나와 기차길을 함께 건너고 골목길을 걸으며 집으로 돌아오면서, 어느 날은 동네 술집에 들러 걸쭉하게 술을 마시면서, 매일매일 말꼬리를 잡으며 옥신각신 다투면서, 술에 잔뜩 취해 평소보다 열배는 더 분위기 업 되어 큰소리로 웃고 서로의 몸을 찰싹거리면서. 여자의 생일 날 남자는 46개의 초를 준비한다. 여자는 큰 거 4개, 작은 거 6개나, 이쁜 숫자초를 준비하지 이게 뭐냐고 투덜거린다. 남자는 그건 초의 갯수만큼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 보내는 박수라며 전혀 창피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여자는 남자의 51살 생일을 51개의 초로 축하한다. 흠. 46개나 51개나 초에 불을 붙이면 케잌에서 불이 나는 것 같다.

     

       한 회 한 회 지날수록 이야기며 인물들이며 좋아져서 나름, 아주 천천히 아껴봤다.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다 사랑스러운데, 치아키의 친구들도 그렇다. 치아키와 친구들은 만날 때마다 술을 마신다. 셋 다 독신. 술을 마시며 결혼해서 누군가 옆에 있는 삶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이제 아이는 가질 수 없을 삶에 대해 아쉬워하기도 한다. 23살 여자아이의 케잌을 보고 딱 절반이구나 하고 자신들의 나이를 곱씹기도 하고, 선택받지 못한 채 몇 바퀴를 계속 돌다가 결국 버림을 받는 회전초밥집의 3종모듬초밥접시에 자신을 투영하기도 한다. 치아키가 그런다. 드라마의 마지막에. 앞으로 사랑이 다가오면 그게 우리 삶의 마지막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말자고. 마지막에서 두번째 사랑이라고 생각하자고. 외로움을 감추지 위해 사랑을 하진 말자고. 사랑이 없어도 멋진 인생은 분명히 있다고. 46살 독신. 인생에의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외롭지 않은 어른따윈 없다고. 자신의 미래를 사랑하자고. 이 언니, 정말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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