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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짧은 여행 후에 깨달은 것. 서울 경기를 벗어나는 여행은 적어도 하루 자고 올 것. 시간의 여유가 없으니 많이 돌아다닐 수 없었다. 해가 지니 집에 갈 시간이 걱정되고. 이 년 만에 함께 떠난 대게 여행. 대게 여행이라고 이름 붙이고 갔지만, 사실 대게는 너무 비싸 먹을 수가 없었다. 속초홍게여행, 이라고 하자. 포항을 가고 싶었는데, 이동시간이 너무 길어 속초로 갔다. 먹고, 걷고, 바다 보고, 먹고, 또 걷고. 그렇게 셋이서 일요일을 보냈다. 하루 자고 오는 거면 계획했던 휴휴암에 갔을 텐데. 하루 자고 오는 거면 낙산사에도 다녀왔을텐데. 하루 자고 오는 거면 멋이 없는 대포항에서도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네, 우리에겐 내일이 있잖아, 했을텐데. 하루 자고 오는 거면 택시 아저씨 말대로 조용하고 분위기 좋은 장사항으로 가 회를 먹었을텐데. 아니면 동명항으로 다시 가 숯불을 피워 조개와 생선을 구워주던, 테이블은 하나 뿐인, 그 테이블을 아저씨들이 차지하고 소주를 마시고 있던 그 길가의 가게로 가서 조개구이를 먹었을 텐데. 하루 자고 오는 거면 대포항에서 바다를 마주하고 맥주를 마시다 모자라 편의점으로 갔을 때 팔던 홍등을 하나 사서 세 면에 각자의 소원을 적고 밤하늘로 띄워 봤을텐데. 아쉽지만, 그래도 또 오래 기억에 남을 여행이었다. 어둠이 내린 대포항은 그럴 듯 했고,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취해 있었다.
새벽. 집을 나서면서. 저 불빛들 중에 달이 있다.
일찍 간 이유는 이것 때문. 커피를 마시며 책 읽는 여유를 부리고 싶어서.
속초 도착. 역시나 우리의 낮술. 낮술은 우리의 여행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대게는 비싸서 실한 홍게 세 마리로 주문.
맛있었다. :)
그녀의 자리.
말이 필요없는 비주얼.
싹싹 다 긁어 먹었다.
대게 먹고 나와 중앙시장 구경.
그리고 갯배.
그리고 바다.
그리고 모래.
동명항.
파도.
친구는 파도에서 암바사 맛이 날 거라고 했다.
얼마나 파도가 거센지 내려다보고 있으니 속이 시원해졌다.
대포항의 회. 중간에 횟집으로 단체손님이 들어왔는데, 한참을 먹다 갑자기 한계령 시를 쓴 시인이 동호회에 있다면서 시인의 시를 들어보는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그 가게에 동호회 사람이 아닌 손님은 우리를 포함해 다섯 명 뿐. 시인은 시를 읊었고, 친구들은 차례로 화장실을 다녀왔고 나는 가만히 앉아 소주를 마셨다. 이거 뭔가 홍상수 영화스러워, 라고 화장실에 다녀온 친구에게 말했다.
그럴 듯해진 대포항. 밤바다. 그리고 일요일의 마지막 맥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