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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히 있는 기적
    티비를보다 2012. 5. 7. 21:50

     

       지하철에서 내린 여자가 한 중년의 남자를 본다. 그 사람의 모습이 이상해 자꾸만 걸음을 멈춘다. 지하철을 타려고 올라오던 남자가 여자를 본다. 그리고 여자가 바라보는 남자를 본다. 지하철이 들어오는 순간, 여자와 남자가 함께 뛰기 시작한다. 안돼요. 죽으면 안돼요. 남자와 여자는 한 때 죽으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절망을 한 중년의 남자에게 봤다. 다른 사람에겐 그저 지하철을 타려고 서 있는 사람일 뿐인데, 두 사람 눈에만 그게 보였다. 뒷모습. 어찌할 줄 모르는 뒷모습. 행복하지 않은 뒷모습. 그렇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났다. <흔히 있는 기적>은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소소한 기적들에 대한 이야기.

     

       이야기나 드라마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다소 고전적이긴 했지만, 보는 내내 좋았다. 카세 료 때문에 봤다고 할 수 있다. 카세 료가 연기하는 인물도 좋았고, 그 인물을 연기하는 카세 료도 좋았다. 극 중 카세 료가 사는 아담하고 복작복작한 집도 좋았고, 그의 아빠랑 할아버지도 좋았다. 이런 사람과 사는 일상은 어떨까 자꾸 상상을 했다. 조용한 사람. 선한 사람. 성실한 사람. 꾸밈 없는 사람. 한때 죽으려고 했던 사람. 아일랜드 춤을 좋아하는 사람. 매일 상대방의 이름으로 시작하는 긴 문자를 보내는 사람. 아빠와 할아버지를 위해 저녁을 만드는 사람.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 체크남방이 잘 어울리는 사람. 조용한 오후 거리를 걷는 사람. 집나간 엄마를 미워하는 사람. 집나간 엄마를 그리워하는 사람. 좋아하는 여자가 아이를 못 가진다는 걸 안 사람. 그래도 상관없다고 하는 사람.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라는 여자의 말에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는 사람. 이런 사람과 결혼을 해 아담하고 복작복작한 이층 집에서 사는 일상은 어떨까. 조용하고 평범한 그런 하루하루를 생각해봤다.

     

       <와니와 준하>가 계속 생각나서 결국 오늘 중고 DVD를 주문했다. 와니같은 사람과 와니네 집에서 살아가는 여름날에 대해서도 상상해보고 있다. 바람과 풍경소리, 연필냄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소리, 시계소리, 호스로 물을 뿌리면 쑤-욱 소리를 내며 1센치는 자랄 거 같은 나무와 풀들, 보드라운 조약돌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매미가 우는 소리, 커피물 끓는 소리, 티비소리. 조용하고 소소하고 잔잔하게 평화로운 날들에 대해 상상해본다. 내일은 비가 온다니, 믹스 커피가 맛나겠다. 빗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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