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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여름에도 남산에 가야지
    모퉁이다방 2009. 4. 13. 23:03

        아무리 집 안에서 뒹구는 걸 좋아하는 나지만,  저번주 토요일은 도저히 집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날씨 때문에. 그런 날씨에 방 안에 처박혀 있으면 바보라는 생각밖에. 그래서 갔다. 남산에. 초여름이 되면 남산에 가자,고 얼마나 노래를 불렀던가. 동대입구에서 친구랑 만나 냉면집에 들어가 왕만두랑 회냉면을 맛나게 먹고 (이 집 왕만두 맛은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었다는. 냉면도. 요즘 맛있는 음식 먹으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 흑흑.) 서울타워를 향해 걸었다.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길가에 봄꽃인지, 사람꽃인지.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 황정민은 '지난 토요일에 남산에 갔어요.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요' 라는 문자 메시지를 소개해줬다. 잠결에 그걸 누워서 듣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는데, 황정민이 그런다. '저도 그 때 남산 갔었어요. 원래 한적한 게 매력인 곳인데, 사람 엄청 많더라구요.' 헉. 생각해보니, 막내동생도 그 날 남산에 갔다. 너도 나도 남산 생각이 나던 토요일이었구나. 그러니 그렇게 사람이 많았지. 특히 연인들. 여자들은 죄다 높은 구두를 신고 내 앞에서 '예쁘게' 남산을 오르더라. 

        아. 원래 핸드폰이 뭐 때문인지 몰라도 컴퓨터랑 연결이 안 되었는데, 이번에 갑자기 연결이 되더라. 그래서 핸드폰 사진도 올릴 수 있다. 그 날은 카메라를 안 가져가서 핸드폰으로 풍경들을 찍었다. 그렇게라도 찍을 수 밖에 없었다. 꽃들이 너무나 고왔으므로. 그리고 이 꽃들이 이 달 안에 다 질 것이므로.




        이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국립극장에 들러서는 자판기 커피도 한 잔 했다. 벤치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바람이 스르르 불더라. 정말 그대로 누워서 낮잠이라도 자면 싶을 정도로 시원했던 바람. 해가 길어져서 늦게 출발했는데도 쨍쨍했다. 덕분에 벚꽃이랑 진달래랑 눈부시게 빛나고.




        남산 타워랑 팔각정에 사람들이 얼마나 바글바글하던지. 날이 어두워지면 한산해지겠거니 생각했는데, 이게 웬 걸. 더 많아지더라. 다들 삼삼오오 짝지어서 맥주를 마시고, 커피를 마시고, 염장질도 하고. 우리도 그 사이에 끼어서 맥주를 마셨다. 냉면집에서 남겨서 싸온 만두도 먹고 (심지어 식어도 맛있다), 맥주도 마시고, 언덕길에서 파는 오징어도 푹푹 찢어 먹고, 또 맥주도 마시고, 짭잘한 알땅콩도 먹고, 또 맥주도 마셨다. 화장실이고 편의점이고 한참을 줄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그렇게 사람이 많은데도, 사람이 많은 건 싫어하는데도 좋더라. 바람도 좋고, 꽃들도 좋고, 기분도 좋고. 


                                                                         그러니까,


                                            이랬던 남산이,



                                                                            이렇게 변해갈 동안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내려와서 또 맥주를 마시고, 청계천을 걸었고. 버스를 타고 내려오기 전, 친구가 화장실을 간 사이에 저 야경들을 바라보는 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시간에도 내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이 중에 분명히 우리가 아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아니면 나중에 알게 될 사람이 있을 거라고. 언젠가 오늘과 비슷한 바람이 불어오고, 꽃들이 코 앞에서 팔랑거리면, 그 사람도 나도 오늘이 생각 날 거라고.

        그러면 그 사람이 그러겠지? 2009년 봄에 남산에 간 적이 있었는데, 사람이 엄청 많았어요. 화장실 가는 데만 한참을 걸렸지 뭐예요. 커플들이 바글바글 으. 그럼 내가 그러겠지? 저두요. 맥주 산다고 편의점에서 한참을 줄을 섰다니까요. 그러면 그 사람이, 서울타워 기둥에 레이저로 불쇼같은 것도 했었는데? (근데 이건 주말마다 하는건가?) 그러면 나는, 맞아요. 맞아. 올라가는 언덕배기에 아줌마들이 쥐포랑 오징어도 팔았는데, 냄새가 완전 좋아서 사 먹었잖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과 나는 같은 날 같은 장소에 있었던 것이고, 우리는 같은 기억을 가진 것이고, 같은 바람을 들이킨 것이고, 같은 꽃을 본 것이고. 사는 게 영화나 드라마라면, 그걸 누군가 찍어 니네가 그 때 이렇게 스쳐 지나갔었어, 보여줄텐데. 꼭 그 사람이 남자가 아니더라도, 여자라도 좋겠다아, 라는 생각.




                                               이건 인증샷. 남산에 올라갔으니깐 서울타워를 찍어야지.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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