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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한산성 - 누군가가 울면서 토한 진달래 빛
    서재를쌓다 2007. 6. 5. 21:15
    남한산성
    김훈 지음/학고재

        우연히 진달래꽃의 전설을 검색하게 되었습니다. 진달래꽃은 두견이의 전설로 인해 두견화라고도 불린다고 합니다. 옛날 촉나라의 임금 두우가 억울하게 죽어 그 넋이 두견이가 되었는데, 이 두견이라는 새는 목구멍에 피가 날 때까지 밤낮으로 운다고 합니다. 두견이가 울면서 토한 피가 두견화, 진달래가 되었다지요. 혹여 누군가 아침에 그 새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면,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잠시 진달래의 빛깔을 생각해보고, 두견이의 울음소리는 얼마나 구슬플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남한산성>의 표지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왜 분홍빛일까,입니다. 소설 속 겨울내 내렸던 눈의 빛깔이라던지, 소설 내내 침울할 수 밖에 없었던 마음의 무채색의 빛깔이 아니라, 왜 이리도 어여쁜 분홍빛일까요.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인터넷 창에서 진달래꽃 전설 페이지를 찾아보면서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무 일 없는 듯 끝나버린 남한산성의 꽃에도 진달래가 화창하게 피었겠지요. 누군가가 울면서 토한 피의 빛깔을 하고서요.


       저는 <남한산성>을 읽는내내 한 첩의 잘 그려진 커다란 산수화를 감상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산성의 겨울을 묘사한 군더더기 없이 짧고 명쾌한 문장들은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그 문장들이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까지 이어졌을 때, 어찌 이리 짧을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곤장을 맞는 이시백의 아픔도 단지 '중곤 스무대'로만 표현되었습니다. 목을 메어 생을 마감하려하는 김상헌도 그러하고, 결국 칸에게 고개를 숙이는 순간의 임금의 마음도 그러합니다. 깊게 생채기 난 마음들을 길지 않고 짧게만 표현합니다. 혹은 그 마음을 쓰지 않고 행동만이 짧게 한두 줄 표현됩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이 점이 야속했습니다. 조금 더 깊게, 그리고 오래 그들의 아픈 마음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무언가 짧기만 하다는 생각과 책장은 함께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 읽기를 마치고 책을 완전히 덮어버린 후에 알았습니다. 어떤 영화든 제가 길게 감동을 받은 작품들은 여백이 많은 작품들이였죠. 사랑한다,고 해야 할 말을 끝내 하지 못하고 돌아서 지내온 어느 세월처럼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는 장면이 제게는 더욱 더 깊고 긴 감동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영화들은 꼭 긴 세월을 두고 다시 한번 봅니다. 그러면 또 다른 여백의 순간이 보이고, 그것은 내게 또 다른 깊고 긴 감동의 순간을 가져다줍니다. <남한산성>도 그러했습니다. 영화로 치자면 굳이 여러 말을 내뱉지 않고 깊은 곳 생채기를 손의 움직임으로, 눈가의 주름으로, 떨구어진 고개의 각도로 표현해 주었다는 장면들 같았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깊고 길기만 합니다.

       내년 봄에는 남한산성에 한번 가 보아야겠습니다. 김훈 선생님이 자전거를 타고 수없이 오르고 내렸을 그 길을 따라 걸어보고, 흙의 냄새를 맡아보고, 누군가가 울면서 토한 진달래 빛을 오랜시간 들여 들여다 보고 와야겠습니다. 그리고 책은 책장에 곱게 꽂아 두었다가 어느해 눈이 조곤조곤 내리는 겨울이 되면 다시 꺼내 읽어보아야겠습니다. 추운 겨울에 읽게 되면 그들의 이야기가 더욱 더 깊게 들릴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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