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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서재를쌓다 2018. 7. 16. 22:15




       가끔 회사를 그만두면 무얼 해야할까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게 되면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곤 한다.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일을 하게 될까. 다른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나는 왜 기술이 있는 일을 하지 않았을까. 돈은 계속 벌 수 있을까. 지금 너무 낭비하고 사는 게 아닐까. 아끼고 아껴 좀더 모아야 하지 않을까 등등의 생각. 지금까지 해 봤던 일과 전혀 다른 일을 하면 어떨까. 아니,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일이 좋을까. 책을 좋아하니까 조그만 책방은 어떨까. 어느 월요일, 조금은 울적한 마음으로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다 이 책이 떠올랐다. 장바구니에 오랫동안 담아놓고, 매번 주문 때마다 슬쩍 빼버린 책. 지금이야말로 주문해서 읽을 때라고, 책방을 운영하는 일이 어땠을지, 왜 책방 문을 닫아야만 했는지 읽어보고 싶어졌다. 


       책은 술술 잘 읽힌다. 퇴사를 결심하고, 희망으로 가득찬, 작가의 애정이 듬뿍 담긴 책방을 여는 것에서부터 운영을 중단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최종 정리를 하기까지의 일들이 소소하게 담겨 있다. 현실적인 문제들도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역시 책방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혼자 운영을 하면 저녁과 주말이 없어지는 거였어, 책 몇 권 팔아서는 책방 유지를 할 수 없는 거였어, 그래서 책방들이 죄다 커피며 맥주까지 파는 거였어, 등등의 작가가 직면했던 현실적인 어려움을 내 것인양 안타까워하며 읽어나갔다. 언젠가 조그만 책방을 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은 금세 접혔다. 나는 망할 게 틀림없었다. 역시 월급을 받는 편이 훨...ㅆ


       어디선가 보고 이대에 있었던 여행책방 <일단멈춤>을 꼭 한번 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계속 생각에만 그쳐 결국 작가가 말한 것처럼, SNS로만 염탐하는 손님에 그치고 말았지만. 가이드북과 여행에세이들이 그득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소설도 있었네. 그래, 여행하는 소설도 있지. 작가가 책방 공간에 어떤 책을 주문할 지 고심하는 에피소드를 읽고 내가 작가의 입장이 되어 잠시 생각해봤는데, 참 좋더라. 책방 주인이 되면 그게 참 좋을 것 같다. 책방과 어울리는 책을 고심해서 주문하고, 예쁘게 진열하고, 볕 좋은 날 한 손님이 들어와 그 책을 만지작거리고, 뒤적거리다 끝내 구입해가는 풍경. 흠. 나는 커피를 파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맥주도.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다, 읽은 책을 그대로 사가지고 온 경험이 내게 있으니.


       나는 실패가 늘 두렵지만, 모든 실패가 진짜 실패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수많은 실패를 하는 것이 어떤 성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 성공이 크든 작든간에. 언젠가 할 수 있지도 않을까. 작가가 책의 말미에 말한 것처럼. 그때 또 실패해도 상관없지. 어떤 성공으로 느리게 느리게 걸어 가고 있는 거니까. 끝내 가보지 못한 이대 책방의 처음과 끝을 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역시 모든 책은 때가 있는 거였어.




        북토크를 세 시간이나 앞두고 책방에 도착한 작가 부부의 손에는 커다란 솥과 가스버너, 식재료 상자가 들려 있었다. 미리 삶아온 쌀국수 면에 판매용 육수를 부을 거란 짐작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녀는 각종 향신료를 넣은 솥에다 생닭을 흐드러지게 끓여낼 작정이었다. 예상치 못한 작가의의 '큰 그림'에 그만 크게 웃고 말았다. 책방에서 닭 육수를 고아낼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지금의 엉뚱한 상황이 그저 즐겁기만 하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북토크 신청자들이 하나둘 책방에 도착했다. 두 시간 동안 팔팔 끓인 육수 냄새가 바깥의 찬 공기와 뒤섞이면서 푸근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드나들 때마다 꼭 웃풍이 심한 어느 시골 식당에 놀러 온 것만 같다. 고명으로 얹을 고수와 으깬 땅콩, 매끈하게 익은 면까지 준비되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난로를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 앉았다. 금방 퍼올린 쌀국수 그릇이 손에서 손으로 옆 사람에게 전달됐다. 더운 나라에서 건너온 음식은 서울의 추운 겨울과도 제법 잘 어울렸다. 그날 저녁 우리는 여름날의 치앙마이를 함께 추억했다. 
    - 114-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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