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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 앰 히스 레저
    극장에가다 2017. 10. 30. 22:16



        퇴근할 때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는데, 김주혁이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세상에, 그 김주혁이? 말도 안돼. 네이버를 켰더니 기사가 있었다. 얼마 전에 그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싶다고,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 세상은 정말이지 모르겠다. 이렇게 허망할 수 있나. 당장 내일의 삶도 장담할 수 없으니,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사랑할 수 밖에. 나는 김주혁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을 좋아했다. <싱글즈>도, <광식이 동생 광태>도 여러 번 봤었다.


        시월의 어느 금요일 밤에는 히스 레저를 보러 극장에 갔다. 나는 이제 히스 레저보다 그의 부인이었던 미셸 윌리엄스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가 좋은 작품을 고르고, 좋은 연기를 할 때면 어김없이 그를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훌륭한 여자를 좋아했구나, 역시 사람 보는 눈이 있구나. 다큐 속의 히스 레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활동적이고 역동적이었다. 그는 에너지가 넘쳤고, 사람들을 좋아했고 믿었다. 언젠나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그는 자신과 친구들을 직접 찍으면서 연기와 영화를 알아나갔다. 언제나 재미있는 무언가를 찾았고,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베풀길 좋아했고, 일회성이 아닌 깊고 짙은 좋은 연기를 하고 싶어했다. 자신이 청춘스타로써 소비되길 원하질 않았다. 아내과 딸을 무척이나 아꼈다. 어느 날은 친구에게 그랜드 피아노를 선물하며 딸을 위한 자장가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자신이 그렇게 일찍 죽을 것을 예감이라도 한 것처럼, 잠이 없었고 언제나 새로운 무언가를 생각해냈다. 그렇게 달려나가다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시간이 멈췄다. 그의 친구는 그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았고, 하던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며칠을 그와 함께 지낸 어린시절을 떠올렸고,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본 이베어의 '퍼스'라는 노래가 탄생했다. '퍼스'는 히스 레저의 고향이다. 연평균기온 18℃, 여름 평균 기온 32℃, 겨울 평균 기온은8℃, 지중해성 기후에 속하여 살기에 좋은 곳. 이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가 해변에서 신나게 파도를 타며, 배우의 꿈을 키워 나갔을 시간들이 상상이 된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내내 그의 딸아이를 생각했다. 그가 살아있었을 적 딸과 함께 찍힌 파파라치 사진들을 봤을 때 깜짝 놀랐다. 너무 히스 레저 판박이여서. 나중에 그가 죽고 나니 이해가 됐다. 아이가 아빠를 꼭 빼닮은 이유가. 아이는 잘 클 것이다. 아빠도, 엄마도, 훌륭한 배우이니, 아이도 좋은 예술가가 될 지도 모른다. 영화에 이안 감독 인터뷰가 나오는데, 감독은 미셸 윌리엄스를 두고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했다. 언젠가 그 아이가 우리에게 들려주지 않을까. 길지는 않았지만, 아빠와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들에 대해서. 아빠와 함께 한 놀이들, 말들, 표현들. 언젠가 그것을 듣거나, 읽게 된다면 정말 좋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구년이란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엊그제였던 것 같기도 하고, 아주 먼 옛날 일 같기도 하고. 구년 씩의 나이가 든 친구들이 카메라 앞에 앉아, 역시 구 년의 나이가 든 나에게, 그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때로는 행복해하며, 때로는 슬퍼하며, 그를 기억해냈다. 나이를 먹지 않은 건 그이 뿐이었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 서른여덟의 나이에 생각해보니 너무 아까운 것이다. 너무 좋은 나이에 가버린 거다. 스물 여덟이라니. 그런데도 그렇게 많은 걸 이뤘다니. 오랜만에 <브로크백 마운틴>이 보고 싶어졌다. 이안 감독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주먹을 꽉 쥐고 몸에 잔뜩 힘을 준 채 웅얼거리며 대사를 했는데, 정말 신기한 건, 그렇게 많은 대사를 했는데도 사람들은 그가 연기한 배역이 무척이나 과묵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고. 히스 레저가 그렇게 보이게 해낸 거라고. 신이 그의 재능을 질투한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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