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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극장에가다 2017. 10. 28. 20:16



        8시 20분 영화였다. 어젯밤에 확인을 하고 잤다. 7시 30분 즈음 일어났다. 귀찮았지만, 주말 아침 자전거를 타고 가 조조영화를 보는 뿌듯함을 알기에 세수를 하고 크림과 선크림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도착하면 표를 끊고, 투썸에서 따뜻한 라떼를 사먹어야지 생각하며 룰루랄라 자전거를 타다가, 커브길에서 반대편에서 오던 자전거를 피하지 못했다. 아직 자전거를 능숙하게 타지 못해서 사람들이 별로 없는 직진의 길에서만 신나게 탈 수 있는데, 그래서 다리로 진입하는 커브길에서는 내려서 걷거나 소심 운전을 하곤 하는데, 다리 위에 자전거가 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심하지 못해 아저씨와 부딪혔다. 아저씨가 왜 그러냐고 하셔서, 아직 잘 타지 못해서 그렇다고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를 드렸다. 어디 다치는 데 없으시냐고 물어보니 몸은 괜찮다고 그냥 가려고 하시다가 브레이크를 잡아보고 고장이 난 것 같다고 하셨다. 계속 고장이 났다고만 하셔서, 지금 현금이 없으니 계좌번호를 알려주시면 수리비를 이체해드린다고 했다. 아저씨는 지금 출근길이라 고치러 갈 시간도 없는데 하시면서 계좌번호를 바로 불러주셨다. 전화번호도 알아야죠, 하면서 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셨다.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 나도 수리를 해봤어야 알지, 하시면서 고민하시다가 우선 삼만원을 보내주고 만일 남으면 다시 이체를 해 준다고 하셨다. 극장까지 다시 직진의 도로를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나쁜 생각을 했다. 아저씨의 자전거가 낡았었거든. 자전거를 반납하고 바로 삼만원을 보내드렸다. 죄송하다는 문자와 함께. 상암 CGV에 8시 30분에 도착했는데, 무인발권기에서 발권이 되질 않았다. 10분 지나서 그런가 하고 번호표를 뽑아 직원에게 갔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서 발권 자체가 안된단다. 내가 10분동안 광고를 하지 않나요? 하니 시작하고 15분 뒤엔 발권 자체가 되질 않거든요, 해서 지금 10분밖에 안 지난 걸요, 하면서 어젯밤에 확인한 시간표를 핸드폰으로 보여줬다. 직원이 자세히 보더니 말했다. 손님, 이건 불광이네요. 아아. 오늘 아침은 다 망했구나.


       보려고 했던 영화의 첫 시작이 10시가 넘는 시간이라 마포구청 쪽의 투썸으로 갔다. 커피집은 한산했고, 원래 영화를 보면서 마시려고 했던 따뜻한 라떼를 시켰다. 창가 자리에 앉아 이번 달 시옷의 책인 <애도 일기>를 펼쳤다. 책은 반쯤 읽었는데, 마음에 든다. 언젠가 마주하게 될 나의 상황에 대입해서 읽으면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 문장들이 있다. 10시가 되어 머그컵을 반납하고 나오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아메리카노 두 잔을 앞에 두고 (한 잔은 비어있다) 줄이 그어진 조그만 수첩에 볼펜으로 무언가 신중하게 적고 계시는 걸 봤다. 상체를 테이블에 바짝 숙인 채로. 커피집을 나와서 핸드폰에 '마음이 움직였던 순간들'이라는 메모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상암까지 걸어가 영화를 봤고, 조금 울었다. 영화를 보곤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왔던 불광천 길을 걸어 왔다. 접촉이 있었던 커브길에서 브레이크를 둘 다 잡지 않은 걸 후회하면서. 응암역 근처에 일본라멘집이 새로 생겼는데, 동생이 알려준 블로그에 의하면 손님들이 많다고 했다.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손님이 거의 없어 들어가볼까 하다가 그냥 집에 왔다. 집에 와서 냉동실에 있는 제육볶음을 해동시키고 국수를 삶아 함께 먹었다. 동생이 칭따오에서 사다 준 칭따오 맥주도 한 병 마셨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오늘 사만원짜리 영화를 보았다. 티비를 보고 뒹굴거리고 있는데, 저녁에 문자가 왔다. 아침의 아저씨였다. "자전거 수리비가 남았습니다. 계좌번호 주시면 보내드릴께요. 15,000원입니다." 영화는 유치했지만, 마음에 들었다. 나는 잘 살아보자고 말하는 이야기들이 언제나 좋다. 영화를 보고나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제목이 완전히 달라진다. 글자는 그대론데, 정말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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