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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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가족극장에가다 2014. 8. 3. 16:30
아침이었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이 해가 떠오르기 전, 한 사람이 숨을 거뒀다. 늙은 남자는 도쿄의 한 병원 옥상에 있다. 지금 막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 깨어나기 시작한 도쿄의 아침을 내려다보고 있다. 늙은 남자를 찾아 젊은 남자가 옥상으로 올라왔다. 늙은 남자가 젊은 남자에게 말한다. 쇼지, 오늘 니 엄마가 죽었다. 사토시는 진짜 배우가 된 것 같다. 예전에도 잘했지만, 최근의 연기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그의 팬이었던 것이 뿌듯할 정도다. 이 영화에서 사토시가 제일 빛났다.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었다. 내가 첫째 아들이, 첫째 딸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좀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죽음이 곳곳에 산적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 아는 동생의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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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잡극장에가다 2014. 7. 21. 22:23
토요일에 부천에 다녀왔다. 간만에 영화를 연이어 봤다. 을 보고, 을 봤다. Y언니가 올 부천의 화제작 예매에 일찌감치 성공했다. 그것도 쾌적한 자리로. 아마도 나의 올해 부천은 이 두 편이 다일 듯 한데, 두 영화 다 좋았다. 둘 다 일본영화인데 스타일도,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너무나 달라서 연이어 보는데도 무리가 없었다. 도 좋았지만, 이 더 좋았다. 간만에 극장에서 여러 번 크게 소리내어 웃은 듯. 유쾌하고 상쾌한 영화였다. 영화의 배경이 숲이다. 내내 나무가 나온다. 주인공이 대입에 실패하고 '허무하게' 고른 직업이 임업 관리직. 커다란 나무들로 둘러쌓인 숲에서 나무를 돌보고, 베고, 심는 일이다. 이야기는 뻔했다. 휴대폰도 안 터지는 산골에서 기묘한 음식들, 곤충들과 고된 작업으로 힘들어하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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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뷰티극장에가다 2014. 6. 29. 12:19
사실 무슨 이야기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저 영화가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단 한 편의 소설로 성공한 뒤, 다음 작품을 발표하지 못한 혹은 하지 않은 남자가 있다. 남자는 세 명의 여자를 만난다. 첫 번째 여자는 첫사랑. 두 번째 여자는 친구의 딸인 스트립 댄서. 세 번째 여자는 104살의 수녀. 첫 번째 여자. 첫사랑이 죽었다는 소식을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듣는다. 순간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는데, 그 주름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진짜 슬픔이었다. 두 번째 여자. 병을 치료하느라 번 돈을 다 썼던 스트립 댄서로 그보다 먼저 죽는다. 그녀는 아름다움을 알아 차릴 수 있는 여자였다. 세 번째 여자. 104살의 이가 다 빠진 수녀가 홍학떼가 남자 집의 테라스로 몰려들던 믿을 수 없이 신비로웠던 새벽에 그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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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극장에가다 2014. 6. 7. 14:47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되는거야. - 1904년 1월, 카프카, 저자의 말, 변신 중에서 이 영화를 특별히 만든 건 리스본의 풍경과 제레미 아이언스의 연기 같다. 주인공 그레고리언스는 어느 날, 다리에서 자살을 하려는 빨간 코트의 여자를 구하고 그녀가 남기고 간 한 권의 책과 마주한다. 그 책 속에는 리스본행 야간열차 티켓이 있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코트와 책과 티켓을 전해주기 위해 역으로 향한다. 간신히 열차 시간에 도착한 남자. 남자는 여자를 만나지 못하고, 얼떨결에 열차를 타게 된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그리고 그 뒤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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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 H에게극장에가다 2014. 5. 31. 16:20
반성한다. 나는 너의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지었었다. 그건 곧 끝나버릴 거라고, 너는 지금 그것에 미쳐서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거라고 단정했었다. 달콤함은 곧 끝날 것이고, 현실이 코앞에 다가오면 너도 너의 지금 그 사랑이 힘겨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옳다고 생각했다. 니가 틀렸다고 자만했었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극장 시간표를 보다 마침 시간이 딱 맞아 달려가서 본 이 영화를 볼 때도 그랬다. 그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형의 컴퓨터와 하는 사랑. 영화는 달콤했지만, 나는 그 달콤함에 취해 곧 끝나버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끝을 기다렸다. 영화의 결말 부분, 내가 예상한 대로 사랑의 끝이 왔다. 사랑도 끝났고, 영화도 끝났다. 나는 내가 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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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극장에가다 2014. 3. 15. 15:17
사실은 어제 보고 싶었다. 퇴근하고 늦은 시간에 혼자 보고 밤산책하며 집까지 걷고 싶었다. 그러면 요란하지 않고 완벽한 금요일 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야근을 하는 바람에 계획 취소. 대신 오늘 조조로 봤다. 이른 시간이나 늦은 시간에 사람이 많지 않을 때 보고 싶어서 일찍 일어나 서둘렀다.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 가지고 들어갔는데, 커피집에서 가져온 휴지가 모자랐다. 영화 보는 내내 울었다. 몇 번은 의자가 흔들릴 정도로 흐느끼며 울었다. 이야기는 예고편에서 봤던 그대로였다. 짐작할 수 있었던 그대로 이어졌다. 새로울 것도 없었다.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좋았다. 우리 이제 더이상 그러지 말자고. 그렇게 악해지지 말자고. 나빠지지 말자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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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르윈극장에가다 2014. 2. 11. 22:16
을 봤다. 아무 것도 모른채 보았으면 어땠을까. 길을 걷다 포스터를 보고 무슨 영화지, 하고 충동적으로 보았으면 어땠을까. 평론가들이 준 별점이 너무 좋아서 잔뜩 기대를 하고 봤다. 사실 그 별점 때문에 보러 간 셈이다. 나 언제 벅차 올라야 하는거야, 중반부터 내내 생각했던 것 같다. 내겐 좀 어려웠다. 영화를 본 뒤, 이해가 안 되서 찾아본 이야기들 중에 재미난 것은 많았지만 영화보는 내내 온전히 마음으로 느낄 수는 없었다. 영화를 보고 서촌을 걸었는데, 가려던 술집이 문을 닫아 그 앞에 있던 박노수 가옥에 들어갔다. 일제시대 때 지어진 집인데 박노수 화백이 구입해 살았다고 한다. 이층의 벽돌집이었다. 고인이 된 박노수 화백의 가족이 기증을 해 미술관으로 개장을 했단다. 정원도 있었다. 작은 동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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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들의 히치하이킹극장에가다 2014. 2. 4. 21:55
설날에는 사촌동생들이랑 볼링도 치고, 인기 만발이라는 도 봤다. 은 너무 기대해서인지 생각보다는 그냥 그랬다. 연휴 마지막 날 올라왔다. 고성에서 가는 표가 없어 사천까지 와서 탔다. 올라오는 길은 생각보다 안 막혀서 금방 왔다. 이번 명절은 나름 괜찮았다. 재밌기까지 했다. 서른 다섯 싱글의 명절이 재밌었다니. 그래서 더 신나게 마무리하기 위해 동생이랑 나는 네네 파닭 치킨을 시키고, 냉장고에 있는 캔맥주를 꺼내놓고, 이 영화를 봤다. . 극장에서 보고 싶었는데, 엘지티비에 올라와 있더라. 연휴 마지막 날이니까, 뒤가 볼록한 옛날 티비에 무려 만원짜리 영화를 봤다. 결과는 대만족. 처음엔 뭐 이렇게 개고생하면서 그 풍경 좋은 유럽에서 이동하는 영상만 찍고 있나 싶었는데, 중반쯤 가니 그 개고생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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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호른극장에가다 2014. 1. 18. 22:14
낮잠을 자고 일어나 샤워를 했다. 갑자기 영화를 봐야겠단 생각이 들어 시간표를 부랴부랴 검색하고 지하철을 탔다. 6시 15분에 시작하는 네덜란드 영화 . 잔잔하게 마음을 적시는 영화인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좀 달랐다. 굉장히 명확한데,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는 영화였다. 돌아올 때는 걸어왔다. 처음엔 바람이 매서웠는데 걸다보니 따뜻해졌다. 집으로 돌아와 찾아본 영화 관련 기사 중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이 영화는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누군가를 꼭 껴안아줄 수는 있을 것 같다. 영화에는 이미 삶에 찌들어 더이상 변화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자신을 가두고 있던 것을 깨뜨리고 나오는 순간의 아름다움이 뭉클하게 담긴다." (씨네21) "불편한 유머코드-이상한 매력-왠지 모를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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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극장에가다 2014. 1. 11. 13:42
우리는 대학교 1학년 때 만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친구다. 다툴 때도 있었지만, 함께할 때가 많았다. 어떤 일로 마음 상할 때도 있었지만, 함께 해서 위로받는 일이 많았다. 친구가 중국에 가 있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 친구도 중국에서 한 번의 이별을 겪었다. 처음으로 국제전화카드를 샀는데, 전화를 하면 거의 친구의 룸메이트가 받았던 것 같다.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옛 일이지만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나는 내 상황을 전하며 울먹거렸던 것 같다. 친구는 믿어지지 않는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던 것 같다. 그때, 그리고 또 한번의 중국생활을 제외하곤 우리는 늘 부르면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하숙집 위 아래층에 산 적도 있다. 친구는 크리스마스 때면 약속이 없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