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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전거 여행 - 아름다운 문장들
    서재를쌓다 2009. 6. 15. 13:29
    자전거 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생각의나무

    
        5월에는 정기승차권을 다 썼다. 정기승차권은 한 달 동안 지하철만 60번 이용할 수 있다. 한 달이 지나면, 횟수가 남아도 소용이 없다. 다시 한 달을, 60번을 충전해야 한다. 몇 달을 정기승차권을 샀지만, 어느 달도 60번을 다 쓴 적은 없었는데, 5월에는 다 썼다. 이건 내가 5월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일. 발발거리면서 5월의 거리를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는 증거다. 나는 5월에 공연장에도 가고, 극장에도 가고, 술집에도 가고, 카페에도 가고, 서점에도 갔다.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아, 5월에는 친구에게서 예쁜 하얀색 운동화도 선물받았다. 6월에는 더 많이 걸어야지.

       그리고 이건 6월에 생긴 습관. 아침마다 7호선 건대입구에서 2호선 건대입구로 갈아탄다. 특별히 아침시간에 기분이 좋을 때가 있다. 7호선에서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 날씨가 잔뜩 흐릴 때, 좋은 책을 읽고 있을 때. 거기다가 조금 빨리 갈아타는 곳에 도착했을 때, 시간이 살짝 남을 때면 2호선 지상의 건대입구역 자판기에서 600원짜리 설탕없는 큰 컵 라떼를 뽑아 마신다. 맛나다. 그리고 나무벤치에 앉아, 그 라떼를 꿀꺽거리며 마시며, 읽고 있던 책 표지를 어루만져준다. 고맙다, 책아. 그리고 성수행 열차를 보내고, 다음에 오는 순환선 열차를 탄다. 이건 6월에 시작한 일이다.

        고맙다, 책아. 그러면서 자주 어루만져 준 책. 6월 초에 나는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읽었다. 그리고 아침에 자주 600원짜리 설탕 없는 라떼를 마셨다. 기분이 좋은 아침시간이 잦았다. 모두 이 책 덕분이다. 책을 읽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이건 시,로 그득한 문장들이라고 생각했다. 김훈의 산문을 칭송하는 내게 H씨는 로쟈가 김훈의 산문들에 대해 말한 문장들을 보여줬다. 그는 김훈의 에세이를 숭배한다고, 김훈의 산문들이 국어교과서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김훈의 문장은 고상하고 아름답다고 적어 놓았다. 물론 그는 그렇기에 김훈의 소설을 읽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만. <자전거 여행>의 문장들은 정말 아름답다. 풍경들도 아름답고,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아름답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아침시간이 아름다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여수 돌산도 향일암을 꼭 한 번 내 눈으로 보고 싶어졌다. 향일암의 벼랑 위의 절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고 싶어졌다. 쑥이 들어간 된장국 생각에 침이 꿀꺽 넘어갔다. 군산의 옥구염전에서 '소금이 온다'고 중얼거리고 싶어졌고, 미천골 자작나무 숲 한 가운데 서서 'ㅅㅜㅍ'이라고 맑고 깊은 울림을 내고 싶어졌다. 산불이 났던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에 가서 불 타 버린 숲이 스스로 숲을 이루어 가는 풍경을 들여다보고 싶어졌고, 영일만 바닷가를 자전거로 달리면서 '아아아' 소리치고 싶어졌다.

        처음 60페이지 정도까지 포스트 잇을 덕지덕지 붙이다가, 60페이지를 넘어가면서 포스트 잇 붙이기를 관뒀다. 책이 300페이지 정도 되는데, 포스트잇이 100개 정도는 필요할 것 같았다. 나를 울리는 문장들이 그리 많았다. 어젯밤에는 맥주를 마시고 2권을 주문했다. 친구에게도 한 권 보내줬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하고 다녀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6월에는 모두들 아름다운 문장들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생각들을 하고, 아름다운 아침을 보낼 수 있기를. 모두들에게 건대입구역 600백원짜리 설탕 없는 라떼를 한 잔씩 뽑아 건네주며,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어디선가 자작나무 나뭇잎들이 사르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거라고. 바닷물이 소금이 되는 묵직한 소리가 들릴 거라고. 언 땅을 제일 먼저 뚫고 나오는 쑥의 청록색 소리가 들릴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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