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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24일 거리 - 밤의 버스를 좋아한다
    서재를쌓다 2009. 5. 24. 22:03
    7월 24일 거리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난주 옮김/재인


        요시다 슈이치의 <7월 24일 거리>는 작은 항구도시에 사는 주인공 사유리가 출근길 항구에서 나비의 시체를 보면서 시작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표본이었던 호랑나비가 항구 제방에 떨어진 것을 본 것이다. 사유리는 조금 특별하다. 이를테면 일본의 작은 항구도시에서,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꿈꾸는 여자다. 사유리는 자신의 고향의 거리들을 리스본에 있는 거리로 바꿔 부르기를 좋아한다. 물론 혼자 있을 때의 일이다. 예를 들면, 늘 버스를 타는 '미루야마 신사 앞'이란 정거장을 '제로니모스 수도원 앞'이라고 부르고, 제방과 나란한 현도는 '7월 24일 거리'라고 부른다. 재개발 덕분에 항구에 조성된 '물가 공원'은 '코메르시오 광장'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이렇게 부르면, 사유미가 살고 있는 소박한 항구 도시가 리스본의 시가지와 완벽하게 겹쳐진다는 것이다.

        우선 사유리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가 태어난 곳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곳에도 바다가 있다. 강원도 고성에도 바다가 있지만, 경상남도 고성에도 바다가 있다. 나는 그 바닷가 근처에서 태어났다. 사유리와 같이 바닷가를 지나 등하교하진 않았지만, 늘 바다가 가까이 있었다. 자주 나들이가던 곳도 그 옛날 이순신 장군이 싸웠던 당항포였고, 집 근처 시장에는 갓 잡은 생선들이 그득했다. 나중에 서울에 올라와서 서해바다도 가보고, 동해바다도 가 본 뒤에 안 사실이지만, 남해바다는 정말 아름답다. 자갈밭에 앉아 오후 내내 잔잔한 바다만 바라보고 있어도 지겹지 않을 거다. 그 곳이 그립다는 것도, 아름답다는 것도 모두 떨어져 있은 후에 안 사실들이다. 그저 내가 그 시절 안 것이라고는 길을 가면 어디서든 아는 사람을 한,둘 만날 수 있는 좁은 동네라는 사실과, 바닷가 가까이 가면 언제나 굴껍질 더미가 그득했다는 사실 뿐.

        <7월 24일 거리>의 사유리의 생각도 비슷하다. 사유리도 자신이 살고 있는 항구도시를 그리 아름답다고, 근사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리스본의 거리로 자신의 고향 지명을 바꿔 부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유리는 평범하고, 소심하고, 자신이 아름답지 못하다고, 멋진 남자에게서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와 닮은 사람이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에게 너는 근사한 아이라고 칭찬해줘도 그걸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다. 너같이 멋진 아이가 어찌하여 나같이 볼 것 없는 아이는 좋아한다는 말이니, 식의 작디 작은 아이. 

        나는 이 소설을 정말 사랑하게 되었는데, 가장 커다란 이유는 178쪽부터 펼쳐지는 풍경때문이다. 사유리는 '너의 색을 뭐하고 생각하니?'라고 묻는, 이 도시에서 낮에는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경비일을 하는, 그리고 서점에서 <포르투갈의 바다>라는 시집을 읽고 있던 한 남자를 몇 번 만나게 되는데, 소설의 후반부에 그 남자는 사유리를 자신이 경비를 서는 백화점 옥상으로 데려간다. 그 시간, 이 항구도시는 정전이었다. 영업하지 않는 백화점 내부는 어둡고 고요했다. 더듬더듬 두 사람은 계단을 올라가고, 찰그락거리며 어둠 속에서 옥상 문을 연다. 문이 열리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그리고 사유리가 옥상으로 발을 내민다. 그 순간,

    178쪽.

        그러니 사유리도 아름답다. 사유리도 멋진 남자에게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사유리도 정말 굉장한 사람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이 소설의 배경은 겨울인데, 책의 표지색도 그렇고 읽는 내내 여름을 떠올리게 된다. 여름의 강한 햇빛, 열기. 여름의 그것들이 연상되는 소설이다. 아, 내가 좋아하는 장면이 한 군데 더 있다. 나도 사유리처럼 밤의 버스를 좋아한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이번에 나온 김동률 콘서트 실황 중에서 '걱정'을 듣고 있었는데, 그 곡과 그 페이지의 분위기가 너무 잘 어울려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책을 읽으며 함께 한 번 들어보시기를. 126쪽에 있고, 소제목은 '밤의 버스를 좋아한다'이다.

        소심하고 조용한 사유미는 이 날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건다. 바로 '너의 색을 뭐하고 생각하니?'라고 묻는, 옥상으로 사유미를 데리고 올라가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알게 해 준 바로 그 남자에게. 그리고 밤의 버스는 7월 24일 거리를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간다. 김동률의 '걱정'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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