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집4

순간의 꽃 오늘도 누구의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다 돌아오는 길 나무들이 나를 보고 있다 * 소쩍새가 온몸으로 우는 동안 별들도 온몸으로 빛나고 있다 이런 세상에 내가 버젓이 누워 잠을 청한다 *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 4월 30일 저 서운산 연둣빛 좀 보아라 이런 날 무슨 사랑이겠는가 무슨 미움이겠는가 * 여보 나 왔소 모진 겨울 다 갔소 아내 무덤이 조용히 웃는다 * 이런 시들에 포스트잇을 하나 둘 붙이다 시집이 포스트잇으로 너덜너덜해졌다. 박웅현은 이렇게 말했단다. "처음 읽고 줄 친 게 열 개였어요. 그다음에 다시 읽었더니 스무 개로 늘구요. 다시 읽었더니 오십 개로 늘어요. 그런 책입니다." 아, 나는 세월이 지나고 다시 읽게 되면 시집 전체에 포스트잇을 붙이게 되겠다. 2014. 9. 28.
서봉氏의 가방 행성 관측 3 천서봉 추억을 오후 두 시의 하늘 밑에 널어놓고 나면 간밤의 독설이 둑둑 물소리로 듣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이다 내 머리 몇가닥 하얀 물이 들듯 그렇게 사람을 잊는다. 흩어진 설탕을 손가락으로 다시 모으듯, 쓸쓸한 약속이 뒤섞인 오후에는 모서리 뭉툭해진 내 안구가 조금 흔들렸고 흐린 밥물 같은 색깔로 한꺼번에 피었다 지는 봄꽃들 사이 사람을 잊는다. 동경 126도 59분, 북위 37도 34분, 돌아와 홀로 찌개를 데우는 시간, 듬성듬성 가위로 잘라놓은 김치들, 미처 끊어지지 않은 머리라든가 목대, 몸부림 따위를 밥 위에 얹어 꿀꺽 삼킬 수 있다면 그렇게 너무 커다란 저녁이 오고 나는 사람을 잊는다. 너무 늦지 않게 돌아와, 말하지 못하고 하필이면 오늘 저렇게 빛나는 별이 사람을 잊는다. 누군.. 2012. 6. 14.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 앤드루 포터! 여기는 아득한 청춘의 그림자들이 고요히 스며들던 한 생애의 뒷골목, 저녁이면 녹색의 별들이 뜨는 리스본 7월 24일 거리 나는 7월 23일의 거리를 걸어 한없이 그대에게로 가고 있었는데 그대는 여전히 7월 24일 거리에서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테지 우리의 청춘은 늘 시차가 다르던 생의 거리 - 리스본 7월 24일 거리 중에서 이번 주 내내 장소들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이야기들이 시작되고, 성장하고, 끝을 맺게 되는 장소들을 찾아 헤맸다. 여전히 찾고 있지만. 어제는 조금 늦게 회사에서 나와 Y씨랑 사람들이 꽉 찬 이천이백번을 타고 합정으로 왔다. 그냥 집에 들어가기 아쉬워 산책길을 걸어 떡볶이와 맥주를 먹으러 갔다. 가는 길에 누군가를 본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본 것 같아요. Y씨.. 2012. 1. 14.
봄밤 시를 읽는 봄밤. 오래간만에 시집을 샀다. 집에 가는 길에 화장실이 급해 교보에 들렀는데, 오늘 보았던 어떤 시집이 생각났다. 지하철을 타려다 마음을 바꿔 버스를 탔다. 시집을 뒤적거리다 시 한편을 찬찬히 읽고, 졸았다. 어느새 집 앞. 목련꽃이 환하다. 봄밤같다. 이제 자야지. 푹 자야지. 내일부터는 다이어트다. 상처를 이야기하는 누이들에게 김승강 너희는 상처를 이야기해라 나는 술을 마시겠다 어제는 통닭튀김에 생맥주가 간절히 생각나 생맥줏집에 갔다 통닭튀김에 생맥주가 놓인 풍경은 주기적으로 머릿속에 서 떠오른다 너희는 상처를 이야해라 나는 술을 마시 겠다 비가 내린다 긴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 나는 반가워 또 술을 마신다 어제 한 맹서는 하루 만에 거둔다 너희는 상처를 이야기해라 나는 술을 마시겠다 아.. 2011. 4.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