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다방'에 해당되는 글 450건

  1. 9월을 위한 다짐 10 2016.08.29
  2. 7월의 일들 10 2016.08.20
  3. 휴가 후 2 2016.08.16
  4. 문자들 2016.07.15
  5. 안녕, 주정뱅이, 안녕, 권여선 2 2016.07.04
  6. 6월의 일들 6 2016.07.03
  7. 화요일의 기록 3 2016.06.21
  8. 5월의 일들 14 2016.06.05
  9. 여섯번째 봄 2 2016.06.01
  10. 생일전야 14 2016.05.26

9월을 위한 다짐

from 모퉁이다방 2016. 8. 29. 21:47



   쉬는 날 아침에 보는 영화를 좋아한다. 제일 좋은 건, 이른 새벽에 보기 시작하는 영화. 휴일인데 일찍 일어났고 다시 자버리기는 아까울 때, 보고 싶었던 영화들을 찾아본다. 너무 밝지 않고, 너무 어둡지 않은 그런 영화. 그런 영화를 찾아냈으면, 이불을 다시 덮고 비스듬하게 누워서 영화를 보기 시작하는 거다. 너무 느리디 느린 영화를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게 되는데, 그런 일이 참으로 많았다. 지루하지도 않고, 마음 깊이 남는 장면이나 대사가 하나 이상이 되는 꽤 괜찮은 영화도 있었다. 영화가 끝날 즈음 해가 완전히 뜬다. 그렇게 되면 아침도, 그날 하루도 뿌듯하다. 그런 이유로 극장에서 보는 영화도 조조가 좋다. 아침에 부지런을 떨며 황급하게 나가는 일도 좋고, 아침 할인이 되는 샌드위치와 따뜻한 커피를 사는 일도 좋다. 사람이 거의 없는 상영관도 좋고, 앞머리 까고 두터운 안경 쓰고 가도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 좋다. (물론 돌아오는 길에는 난처하지만) 그러다 좋은 영화를 만나게 되고, 기분도 좋고, 날씨도 좋으면, 집까지 걸어오는 데 그 날은 말할 필요도 없이 성공한 휴일인 거다. 오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나는 하나의 이야기를 만났고, 감동했고, 그로 인해 오늘부터 조금 달라져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지난 주말, 그런 영화를 만났다. 틸다 스윈튼은 존 버거와 함께 만든 사과파이와 같은 음식의 레시피를 읊으며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식욕

좋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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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구월이 올 거니까, 여기에 구월을 위한 다짐들을 나열해본다.


좋은 책을 읽는다.

마음이 움직이는 음악을 듣는다.

소중한 사람에게 엽서를 쓴다.

마음이 담긴 영화를 본다.

좀더 수다스러워 지기 위해 영어를 배운다.

언젠가를 위해 일본어 단어를 외운다.

무인양품에서 얇은 수첩을 여러 권 사서 표지에 리장, 나가사키, 치앙마이라고 적어둔다.

향이 좋은 커피를 마신다.

그 사람 욕을 하지 않는다.

정말 하고 싶을 때는, 한 번, 아니 세 번까지 생각해본다.

일주일에 두 번, 요가를 빠지지 않는다.

요가를 하지 않는 날은 만보를 걷는다.

고기를 줄이고, 일주일에 한번 샐러드를 주문한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한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빠 병원에 갈 때, 여유롭게 가서 맛있는 커피를 마신다.   

추석을 잘 보낸다.

바다를 보러 여행을 간다.

그곳에서 언니에게 편지를 쓴다.

부여에 가서 탑을 보고 올 날짜를 정한다.

아침마다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매일 조금씩 좋은 사람이 되어 간다.


   오늘은 친구가 여름이 시작될 때 선물해 준 '썸머 위시'라는 이름의 초를 켰다. 아마도 합정에서 맥주를 마신 날일 거다. 기분 좋게 마시고 헤어지려는데,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 지하철 화장실을 다녀왔다. 친구가 양키 캔들 가게 앞에서 조그만 봉투를 들고 있었다. 여름초라며, 좋은 날 켜라고. 향이 좋다. 오늘 새 손수건을 썼다. 빨래를 돌려 널었고, 방을 닦았다. 설거지도 했다. 이번주 샐러드를 주문했고, 돌을 맞은 친구의 아이에게 얼마 전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그림책을 보냈다. 선물 받은 서점이 배경인 책은 오늘 마지막 장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보고 싶어했던 영화는 결국 함께 보지 못했다. 영화를 선물했고, 내 것도 다운받고 있다. 함께 보지 못했지만, 각자 보고 만나 얘길 나눌 거다. 호란의 새 앨범에서 마음에 드는 곡을 발견했다.


   틸다 스윈튼이 나오는 존 버거 다큐에 이런 나레이션이 있었다. 계절은 닥쳐오는 것이 아니라, 살아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여름을 살아내었고, 가을을 살아나갈 것이다.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괜찮은 여름이었다. 가을은 흠, 좀 멋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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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일들

from 모퉁이다방 2016. 8. 20. 10:17


잊지 않으려고 찍어둔 이야기들.


원래도 많았지만, 여름이 되니 맥주사진이 더욱 많아졌네. 이번주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름이 곧 가겠구나. 여전히 덥지만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약간 달라졌다. 견딜만해졌다. 이천십육년 여름맥주를 마실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8월에는 맥주 사진을 따로 올려봐야겠다. 9월에는 요가를 해보려고 신청해뒀다. 남은 여름아, 잘 부탁한다!





7월에 만난 6월의 시옷의 모임.

새 멤버가 들어왔고, 이 날 간만에 독서모임답게 책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비가 아주 많이 왔다.




오키나와에서 사온 프랑프랑 미키접시의 활용. 동생이 비리다고 해서 혼자 꾸역꾸역 다 먹었다.




동생이 독일에서 사다준 맥주 마지막 캔. 먼길 오느라 고생했다. 잘 가라. 




오키나와에서 사온 맥주 티셔츠 개시.




소윤이랑 아트나인에서 <우리들>을 보고, 김밥과 국수를 먹고, 맥주를 마셨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눈물이 났다. 영화의 '우리들'이 현실의 '우리들'이 되는 순간. 소윤이는 바보같이 착하게 살면서 당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우리들'은 영화를 보고 각자의 포부를 다졌다.




퇴근하고 잔치국수가 급 땡겨, 집에서 후다닥 만들어 먹었다.




동생과 이곳에 가려고 좁은 망원길을 일렬로 걷고 있었다. 동생이 갑자기 쾌 발랄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길래 고개를 들어보니 육중완이 있었다. 육중완도 웃으면서 인사해줬다. 실물이 더 잘생김.




동생이 발견한 망원동 핫플레이스. 합정 퓨전선술집에 계시던 분이 개업한 곳이라고. 그러고보니 퓨전선술집에서 보았던 분이더라! 가격이 비싸긴 했지만, 맛있었다. 그렇지만, 무조림은 퓨전선술집이 더 맛있었다.




소윤이랑 만원에 삼겹살 무한리필해주는 식당에 갔는데, 첫 고기를 씹는 순간 느꼈다. 이건 못 먹을 고기다! 그래도 티내지 않고 몇번 리필해서 더 먹었다. 며칠 뒤에 만나서 말했다. 그건 못 먹을 고기였다고. 얼마나 딱딱한지. 소윤이는 자기도 그랬다고 했다. 하지만 만원이 아까웠으므로 꾸역꾸역 먹었다고. 그 날, 우리는 배트민턴 동호회 가입에 실패했지만, 오비맥주 천씨씨를 파는 저렴한 술집을 찾아냈지. 소윤이는 배트민턴을 포기하고, 수영을 시작했다.




2200번 버스. 서서가는 자리 중에 제일 좋은 명당자리. 칸막이가 있어 기댈 수 있고, 자유로 뷰가 좋으다. 어느 날은 가로등이 일제히 켜지는 순간을 목격하기도 했다.




퇴근길. 아침에 주문한 책이 와 있다는 소식.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이번달에 나온다는 소식.




소윤이의 집구하기 프로젝트. 망원에 저렴하고 맛있는 초밥집이 있다.




다시 천씨씨 오비맥주집 방문. 천씨씨 너는 사랑. 김 빠지기 전에 천씨씨를 마실 수 있는 나는 능력자.




아침에 벌떡 일어나 동생이랑 조조로 <미 비포 유>를 보러 갔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동생이 만들어준 포토카드. '줄무늬 스타킹을 당당하게 신어요'를 넣어줘, 라고 주문했다.




휴일 점심. 집앞 삼겹살 집의 수제 맥주.




소윤이가 '정글'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아이스크림을 맛나게 먹었다고 해서, 먹어 보았다.




7월의 시옷의 책, 쇼코의 미소. 좋았다. 모임 때 봄이가 '그 부분 있었잖아' 라고 했는데, 내가 바로 페이지를 말해줬다. 아, 뿌듯. 봄이랑 나는 뭔가 코드가 맞나보다, 라고 생각한 7월. 모임 때 다들 지각을 해서 봄이랑 둘이서 시간을 보냈는데, 봄이가 미국에 있는 친구가 소울메이트를 만난 이야기를 해줬다. 그 친구의 말도 좋았고, 그 말을 전해주는 봄이도 좋았다. 동생은 7월에도 여전히 파리에 빠져 있었다.




남희언니와 나는 일년 전 쯤 마크 로스코의 전시를 함께 봤다. 언니는 전시를 본 날, 헤이리의 클래식 카페로 나를 데려갔다. 우리는 드뷔시의 '달빛'을 신청해 들었다. 일년 후, 보고싶었던 마크 로스코 연극을 하길래 같이 보기로 했다. 언니는 이 날, 발가락 뼈가 박살이 났다. 우리는 공연장 앞 식당에서 동남아 음식을 시켜 나눠 먹었다. 언니에게 그 친구 잘 있어요? 라고 물었는데, 언니가 금령아, 그 친구 죽었어, 라고 말했다. 언니는 한동안 맥주를 마시지 않았다고 했다. 너무 흥이 나는 술 같애서.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고. 위스키를 마시기 시작했다는 언니는 함께 가고 싶은 위스키바가 있었다며 다음에 꼭 가자고 했다.



그렇다.




수요일의 도리는, 내겐 그저 그랬다.




좋아하는 작가의 사인본이 도착한 날.




이번 여름, 빠져 있었던 스타벅스 콜드 브루 라떼.




소윤이가 내가 작년에 선물해준 포르투갈 와인과 함께 찍은 이벤트 사진을 전송해줬다. 아직까지 마시지 않고, 소중히 간직해주다니. 이쁜 것.




퇴근길. 여름 퇴근은 기분이 좋으다. 해가 이렇게 쨍하고 떠있으니.




또 다른 퇴근길.




친구에게 치맥을 하자고 하니 집으로 오라고 했다. 길상사 가는 길에 맛있는 치킨집이 있다고 얘기 들었다며, 사다 놓겠다며. 흠. 결론은, 그래, 우리 티비 맛집은 믿지 말자. 우리 동네 할아버지 전기구이 트럭이 더 맛있다는 결론.




최고은과 방백을 만난 날. 친구는 맥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음료로 맥주를 냉큼 선택했다. 빈 속에 맥주에, 음악까지 들어가니 기분좋게 알딸딸했다.




아빠가 약을 부지런히 먹지 않아 속상했던 날. 아빠 약 타러 병원에 다녀왔다. 여기 병원 커피가 맛있는데, 비오는 날이라 따뜻한 라떼를 시켰다.




따뜻한 칼국수도 한그릇 먹고, 약국에서 약을 타고 집으로 왔다.




동생 친구 어머니의 정성.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친구의 새집에 놀러갔다. 내가 하고 간 머리띠를 둘러줬더니 귀여운 토끼로 변신한 찬이. 이제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니, 다음번에 만날 땐 서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 날의 침대 웃음은 잊을 수 없다는.




모든 요일의 기록.

모든 요일의 여행.




아침에 일찍 나가 스타벅스에서 커피 마시며 책 읽는 시간의 행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좋은데, 그렇게 부지런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첫 책을 워낙 좋아해서 그런지, 1년여 만에 나온 두번째 책은 우려했던 대로 좀 아쉬웠다. '모든 여행의 행복'이라고 바꿔도 될 정도로 여행의 좋은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캬-




그리하여, 기네스.




출근길과,




퇴근길.




이날 하늘이 무척 예뻤다. 한 정거장 일찍 내려 걸었다.




엄마. 잔멸치를 좋아해서 떨어지면 항상 보내주신다. 흑미도 잘 먹을게요, 라고 보냈더니 검은 깨야, 라는 답변이. 깨밥 지어먹고 깨방정 떨뻔 했다.




이번에 산 회사 치약. 색이 예뻐서.




동네에 맛있는 아나고 가게가 있다. 여기 파김치도 맛있고, 명이나물도 맛있고. 다만 아쉬운 건 맥주. 카스 뿐이다. 카스에 대한 애정이 점점 식어가고 있는 나. 막내가 쏜 날.




사촌모임이 있었다. 같이 한정식을 먹고, 차를 마셨다. 압구정 쪽에 괜찮은 카페 발견. 더위도 식히며 한참을 있었다. 가방 안에 넣어뒀는데, 자기껀 줄 어떻게 알고 찾아내서 가지고 놀고 있었다. 똑똑한 서진이. 잘 지내보자아.




동생이 극찬하던 황작가의 자두주스를 먹어 보았다.




정말정말 간만에, 비엔나 커피도 마셔 보았다. 달았다.




책갈피의 겨울, 오키나와의 여름.




친구가 회사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어 공원에서 혼자 울고 있다고 했다. 나는 이 날 한 시인의 유료 낭독회에 갈 예정이었는데, 돈도 벌써 입금을 했는데, 거길 가지 않고 친구에게 오라고 했다. 치킨과 맥주를 먹자고. 욕도 실컷 하고, 수다도 왕창 떨고 집에 가면 잠이 잘 올 거라고. 치킨 주문할 때는 아주 바삭하게 튀켜 달라고 했다.




사실은 가마쿠라에 갈 계획이었다.




7월에 만난 7월의 시옷의 모습. 이 날도 비가 아주아주 많이 왔다.




마음.




꼬밍이를 임신한 친구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동생을 함께 만났다. 아주 더웠던 날.

 





상수 쪽에 있는 태국 음식점인데, 정말정말 맛있었다. 시킨 것들 모두 맛있었다. 우리는 태국에 가서 함께 태국 음식을 먹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함께 가고 싶은 도시들을 이야기했다. 그래, 바르셀로나가 좋겠어, 까지 이야기했다.




나는 결국 저 맥주 라벨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살살- 조심스럽게 떼어내 수첩에 끼워뒀다.




베트남 선물 + 서울 선물




주말 1_본죽




주말 2_황작가커피




주말 3_오늘 뭐 먹지 삿포로편 휴유증




주말 4_후다닥 스파게티




주말 5_태풍이 지나가고


조조로 <태풍이 지나가고>를 봤다. 나는 이번 영화가 참 좋았다. 소설을 쓰지 않는 (혹은 쓰지 못하는) 주인공이 매일 벽에 그날의 기억에 남는 문장을 써서 포스트잇에 붙이는 것도 좋았고, 낡은 아파트에서 오래 전에 만들어 놓은 카레우동을 만들어 먹는 것도 좋았다. 아역배우의 얼굴이 맑아 좋았고, 시원하게 속이 뚫리는 것 같아 사실은 태풍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누군가의 대사도 좋았다. 태풍이 부는 순간도 좋았고, 그 시간의 라디오 소리도 좋았다. 그 시간에 함께 하는 사람들도 좋았다. 태풍이 지나가면 함께 할 수 없는 걸 알면서 함께 하는 그 마음을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저릿했다. 그러고보니 올 여름에 태풍이 한 번밖에 없었네. 나중에 극장에서 다시 한번 보고 싶다.



8월 말에 쓰는 지난 7월의 이야기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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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후

from 모퉁이다방 2016. 8. 16. 22:20



   거제에 갔다 삿포로에 다녀왔다. 그리고 삼일을 푹 쉬려고 했다. 토요일 저녁, 삿포로에 함께 다녀온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금령아, 아버지 돌아가셨단다. 나 지금 집에 간다.' 삿포로에서 우리는, 이 나이가 되도록 남편도 없고, 아이도 없고, 집도 없을 줄 고등학교 때 상상이나 했냐며 웃으며 맥주잔을 부딪혔다. 친구는 또 다른 하나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일요일 새벽,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깬 상태에서 티비도 켜지 않고, 음악도 틀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친구를 생각했다. 이제 아버지가 없는 삶을 살아갈 친구. 이 세상에 없는 아버지를 생각하는 삶.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삶. 친구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그 삶을 생각하다 목이 메여왔다. 몇년 전 친구는 많이 아팠다. 친구의 아버지가 소식을 듣고 진주에서부터 차를 운전해 서울의 병원에 도착했다. 그때 아버지를 처음 뵈었다. 그리고 마지막이 되었다. 아버지는 정신이 없는 친구에게 집에 가자고 했다. 친구의 이름을 계속 부르며, 괜찮다고 괜찮다고 했다. 


   친구는 계속 울었다. 국이 맛있다고 떠다 주면서, 사이다 캔을 따서 따라주면서 계속 울었다. 그리고 흐느끼며 말했다. 아버지 없이 어떻게 사느냐고.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친구에게 휴지를 건네주고, 친구가 떠다준 국을 떠먹고, 친구가 따준 사이다를 마셨다. 그리고 살아야 한다고, 아버지가 살지 못한 삶까지 더 잘 살아야 한다고, 서울에 오면 맛있는 양고기를 사주겠다고 종이에 꾹꾹 눌러 적어 건넸다. 친구 덕분에 아빠를 한번 더 보고 올라왔다. 아빠는 맛있다며 곱창전골집에 데려갔다. 가게 이름이 대장금 식당. 아빠는 내 몫으로 맥주 한병을 시켜주고, 자신은 물만 마셨다. 아빠는 위가 좋지 않은 뒤로 술을 끊으셨다. 그리고 잘 익은 곱창 덩어리들을 내 커다란 밥그릇에 듬뿍 떠 얹어 주셨다. 나는 아빠와 하룻밤을 보내고 올라왔다. 서울에 와서는 집에 바로 들어가기가 그래서 극장엘 갔다. 겨우 <덕혜옹주> 표를 구했다. 이번에도 허진호는 돌아오지 않았다. 영화의 마지막, 덕혜옹주가 말년에 적은 글이 나온다. 폭염이 한창인 거제에서 식당으로 가는 도로 위에서 아빠가 했던 말이기도 한 그 글.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김윤아의 '고잉 홈'을 들으며 불광에서 응암까지 걸어왔다. 친구에게 가사를 적어줘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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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들

from 모퉁이다방 2016. 7. 15. 00:37



   나는 7시 13분에 '아침부터 맥주얘길하다니, 무척 신난다아.'라고 보냈다. 동생은 8시 58분에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커피 내리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7월에 생일인 친구는 '담주부터 제주도 근무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친구는 그곳으로 돌아갈 거고, 어쩌면 나는 서울에서보다 더 자주 볼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21시 12분에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다음에 약속 다시 잡게 되면 얘기할게.'  

​​   8월에 함께 떠나는 친구에게 8캔의 맥주를 사갔다. 친구는 나를 위해 올해 첫 에어컨 시동을 했고, 우리는 그걸 다 마셨다. 그리고 좋았던, 속초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더이상 욕실 청소를 하지 않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행히 막차는 아니었다. 지하철 안에서 이승열의 '솔직히'를 들었다. 나는 말하고 싶었다. 니가 생각하는 것 만큼은 아니야. 이해해줄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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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수요일에는 궁금했던 서점에 갔다. 권여선 작가와의 만남에 참석하기 위해서. 나는 일찌감치 도착해 서점 구경을 했다. 소설만 파는 서점이었다. 좋아하는 책들이 그득했다. 이미 한 권 있지만, 권여선의 새 책을 한 권 더 샀다. 책을 한 권 사니, 생맥주 한 잔을 공짜로 줬다. 권여선 작가는 아주아주 말랐다. 깡말랐다, 는 표현이 맞아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예뻤다. 그녀는 소설만 가득한 책장 앞에 앉아 고독과 결핍과, 끝내 명랑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 조금 메모를 해 놓은 종이가 어디 있었는데, 어디 갔지? 종이가 없으므로, 저 세 단어는 정확하지가 않다.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단어들이다. ㅠ) 그리고 자신의 고독과 결핍과 끝내 명랑함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지금 우리는 너무 고독하지 않다는 것. 고독해야 뭔가가 창조될 수도 있는 것. 어딘가로 가는 과정의 시간들을 아까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게 버리는 시간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고독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도 했다. 우리에겐 그 시간이 꼭 필요하고, 그 시간들이 우리의 하루하루를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자기 전의 시간이 자신에게 참 중요한데, 자기 전에 핸드폰도 보지 말고, 티비도 보지 말라고 했다. 그저 불을 끄고 누워서 잠을 기다리는 것이다. 핸드폰을 보고, 티비를 보면 꿈도 내가 아닌 그것들것의 꿈을 꾸게 되지만, 불을 끄고 고독을 온전히 받아들이면 진정한 나의 꿈을 꿀 수 있다고 했다. 주정뱅이 답게, 술과 함께 하는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행복해 보였는데, 그건 술과 '함께'하는 것들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게 음식일 수도 있고, 사람들일 수도 있고, 고독일 수도 있고, 결핍일 수도 있고, 끝내 명랑함 때문일 수도 있고. 

 

   옆자리에 앉았던 분이 행사 시작 전에 계속 말을 거셨다. 많이 좋아하세요? 나는 좋아하는 소설들이 꽤 있다고 했다. 나도 되물었는데, 권여선을 이제 읽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것들이 좋아서 왔다고. 혹시 백석역이 어디 있는지 정확하게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충 안다고 했다. 걸어왔다고. 그러면 끝나고 같이 가줄 수 있냐고 했다. 핸드폰 밧데리가 꺼져서 그렇다고, 이 동네가 처음이라 길을 잘 모른다고 했다. 나는 그곳에서 친구의 친구를 처음 만나 인사를 하고, 다음에 꼭 셋이 만나 술을 마시자고 했다. 친구의 친구는 이 책의 편집자였는데, 끝나고 작가와 함께 술 한잔을 한다고 했다. 나는 옆자리 분과 백석역을 향해 걸었다. 걷다 보니 이 동네에 근사한 곳이 많았다. 엘피를 가득 쌓아놓고 문을 활짝 열고 음악을 틀어놓고 있는 작은 술집도 있었다. 바람이 선선했다. 옆자리 분이 말했다. 애가 둘이에요. 이렇게 혼자서 밤에 돌아다니는 거 진짜 오랜만이에요. 정말정말 좋아요. 나는, 애가 둘이에요? 그렇게 안 보이는데, 말했고 몇살이냐고 물어봤다. 나보다 한 살 아래였다. 어쩌다 나는 내가 일하는 곳을 말했고, 옆자리 분은 부럽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화목하게 가정을 꾸리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가 있어요. 맞아요. 지금도 좋은데, 그래도 부러워요. 그 자유로움이요. 좋아하는 것 보러 이렇게 밤까지 돌아다닐 수 있고. 남편이 좋은 사람인가 봐요. 우리는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백석역까지 십 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낯선 사람과 어색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며 밤길을 걸었다. 그리고 전철역 앞에서 헤어졌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름도, 전화번호도 모르는 사이. 그렇지만 이 여름밤에 이것저것 재지 않고 속마음을 아주 잠깐 털어놓으며 걸었던 사이.

 

   요즘은 내 곁에 좋은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다. 가족 말고, 적당한 거리가 있는 진짜 어른. 얼마 전 회사 건강검진에서 만난 나이가 많으신 선생님은 내 이름을 한자로 적어달라고 하고 그 글자를 오래 들여다 보며 이야기하셨다. 좋은 이름이라고. 그리고 내게 잘하고 있다고 하셨다. 해조류도 많이 먹고, 햇볕도 많이 쬐고, 자주 걸으라고 하셨다. 나는 회의실을 나오며 안심이 됐다. 그런 어른을 좀더 자주, 좀더 오래 만나고 싶다. 일단은, 소설을 읽어야지. 끝내 명랑하기 위해! 안녕, 주정뱅이, 안녕, 권여선- 귀여운 주정뱅이 작가는 내게 '반갑습니다'라고 적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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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일들

from 모퉁이다방 2016. 7. 3. 11:30

 

6월에는 많이 걷기로 했다.

 

 

 

초여름은 좋아하는 계절.

좋아하는 것들은 죄다 짧다.

짧아서 아쉽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것.

 

 

 

 

6월에 내게 온 책들. 하루키 책을 사면 공짜로 주는 저 비매품 책이 참으로 괜찮았다. 오키나와 여행가서 가방에 넣고 다니며 읽었다. 얇아서 가볍고 좋았다. 김동영, 손보미, 오지은, 정이현의 에세이가 특히 좋았다. 정혜윤의 교토 이야기 중 "덕분에 즐거운 여행을 했어요. 혼자 왔으면 보지 못했을 것을 봤어요." 이 말은 마음에 계속 남았다. 누구에게든 이런 여행친구가 되고 싶다.

 

 

 

회사 근처, 좋아하는 식당 메뉴.

먹으면 건강한 느낌이 막 드는 비빔밥!

 

 

 

이런 여름.

여름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세상에, 내가 여름이 좋다지다니.

그러니까, 사계절을 모두 좋아하고 있는 것.

 

 

 

 

합정에서 집까지 쭉 걸을 생각이었는데, 계획을 바꿔 합정과 망원 사이의 좋아하는 카페에 갔다.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고, 엽서도 쓰고, 해가 져 깜깜해지는 풍경을 보고 나왔다.

 

 

 

 

 

그리고, 다시 걷는 길.

 

 

 

5월의 흔적들.

6월에는 영화를 많이 못 봤다.

7월에는 좀더 봐야지.

 

 

 

엽서를 보내는 아침.

 

 

 

포르투갈 갈 때 가지고 갔던 포르투갈 가이드북 쓰신 분이 이탈리아 가이드북을 내고 이탈리아 여행지에 대한 강의를 한다기에 동생과 함께 갔다. 중간중간 질문을 하고 맞추는 사람에게 이탈리아 가이드북을 주었는데, 나는 카사노바를 맞추고 가이드북을 얻었다. 사인을 받을 때, 작년에 덕분에 여행 잘했어요, 알려주신 대로 포르투의 미술관에서 점심도 먹었어요, 하니 무척 좋아해 주셨다. 그게 제 첫 책이었어요, 라며. 언제든 이메일을 보내도 된다고 하셔서, 곧 이메일을 보내 내년의 여행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다. 정성스럽게 써야지. 임신을 하고 계셨는데, 이쁜 아이가 태어나기를!

 

 

 

 

 

동생은 약속이 있어 헤어지고, 집에 바로 들어가기 아쉬워 궁금했던 가게에 혼자 갔다. 오픈 전이라고 하셔서 맥주 한 잔만 마시고 가겠다고 했다.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고. 비어라오를 팔길래 시켰다. 비어라오는 라오스를 다녀온 사람 모두 칭송한 맥주. 남희 언니도, 은경이도. 언니는 다녀온 후 라오스병에 걸려 어렵게 어렵게 구해서 마셨다고 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맥주가 되었다. 그만큼 라오스도 변했겠지.

 

 

 

 

 

애정하는 광화문.

애정하는 잡상들.

 

 

<또, 오해영>에서 조개 구워 먹는 장면을 보고, 조개가 계속 땡겼는데, 마침내 먹게 되었다. 오해영의 조개는 통통했지만, 우리의 조개는 홀-쭉했다. 오해영은 내일 죽을 것처럼 열심히 사랑하라고, 감정불구도 진짜 인연을 만나면 열렬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말해준 좋은 계절, 좋은 시간에 찾아와 준 참으로 고마운 드라마.

 

 

 

 

마스다 미리의 새 만화책을 사서 저번처럼 먼저 읽고, 친구에게 줬다. 친구는 마스다 미리 만화를 거의 다 가지고 있다. 이번 책은 만화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전, 고향에서 회사생활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인데, 생각보다 좋았다. 그 시절 누구도 몰랐겠지. 마스다 미리의 만화가 이렇게 바다 건너의 사람들에게까지 사랑받을 줄은. 마스다 미리 자신도 몰랐겠지. 삶은 이렇게 예측불가의 놀라운 것이다. 그러니 꿈을 포기하지 말고, 계속 꿈꾸며,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교훈을 다시 한번 느낀 책.

 

 

 

우리는 일주일에도 몇번씩 만나던 사이였는데, 이제는 한달에 한번 만나기도 힘들어졌다.

찬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더 자주 만날 수 있기를. 더 자라면 밖에서 셋이 만나도 되겠다!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가기 전 이렇게 종일 흐리고 번개도 친댔는데, 날씨가 괜찮았다. 그래,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였다. 어떤 상황에서든 좋은 마음만 있으면 좋은 여행이 되는 거였다.

 

 

 

여행 가기 전날, 이번에 함께 하지 못한 둘째 동생과 맥주 한 잔.

딱 한 잔만 하고 꽤 오래 걸었다.

 

 

 

 

여행은 잘 다녀왔다. 좋았던 순간도 있었고, 다퉜던 순간도 있었지만 여행이 끝나자마자 모든 순간이 그리워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사람과 한번씩은 꼭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우리는 언제 무슨 일을 겪을지 모르고, 함께 한 여행이 있으면 언제든 그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좋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이곳에서도 우린 무척 좋지만, 다른 곳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일은 아무래도 무척 특별한 것 같다. 여행의 기억들이 쌓여갈수록, 나는 점점 여행이라는 녀석이 참으로 철학적인 아이구나 생각하고 있다. 혼자 여행을 하고도 싶지만, 끊임없이 함께 여행을 하고도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맥주 그림 티셔츠를 샀고, 동생은 미키마우스 접시를 각각 취향에 맞는 색깔로 세개 샀다.

 

 

 

참지 못하고 거하게 저녁을 먹게 되는 날은 늘 후회투성.

그렇지만 무척 맛나다. 아, 정말 다이어트란 녀석은.

 

 

 

바닷마을 다이어리 일곱번째 이야기.

그녀들이 성장하고 있다.

"후쿠멘만주 먹으러 안 갈래?"

"방금 전에 사왔잖아."

"그... 그건 치카 언니 거고! 그리고... 언제든지 내 얘기 들어준다고 그랬잖아."

"...좋아."

 

 

 

이번에 알게 된 사실. 아빠는 추어탕을 좋아하지 않는다.

 

 

 

친구의 생일.

태국 음식을 먹고,

 

 

 

정직하게 초를 밝혔다.

 

 

 

택시가 안 잡혀 결국 볼링장에 갔다.

세 게임 했는데 어마어마한 금액이 나왔다.

 

 

 

세 자매가 함께 한 CGV 그린시네마.

이만원 내고 갔는데, 먹을 것을 넘치게 주고, 세 팀의 공연과 영화도 보여줬다.

 

 

 

DDP는 처음 가봤는데, 꽤 근사했다.

 

 

 

퇴근길, 응암.

 

 

 

공 따라하기.

공의 사진에는 별모양 블루베리가 많았는데.

 

 

 

회식도 하고.

 

 

 

회사의 생일 모임도 있었다.

 

 

 

누구에게 쓸지 정하지 못하고 써 두었던 엽서를 읽는 아침.

 

 

 

걷다가 만난 반가운 네온사인.

 

 

 

보경이를 만나 오키나와 음식을 먹으며 오키나와 이야기를 했다.

 

 

 

기석이와 소윤이가 좋다고 한, 유희경 시인이 낸 시집만 파는 서점에도 갔다.

보경이가 시집 한 권을 사줬다.

 

 

 

 

 

연남동을 걸었고,

 

 

 

뒤늦게 오키나와 기념품을 정리했다.

 

 

 

동생이 소개해 준 드라이한 스파클링 와인. 맛있었다.

 

 

 

나의 미키는 빨간색.

콩이 가득한 카레를 데워 먹은 날.

 

 

 

소윤이가 연극을 보여줬다. 맥주가 가득한 연극이었는데, 그래서 나와 함께 봐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연극의 말미에 술을 많이 마시고 병이 난 사람들이 있어, 맥주를 좀 덜 마셔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우리는 맥주를 마시러 갔다. 연극의 처음, 한 아이가 한 아이의 가족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엄마가 그러던데 니네 집은 주정뱅이 집안이래, 등등. 한 아이는 당연히 화를 냈다. 연극은 이 집안의 이야기이다. 소윤이는 그랬다. 남들이 보기엔 그냥 주정뱅이 집안이지만, 그냥 주정뱅이들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고. 이들은 신나는 한때를 함께했고, 그건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이들에게만 가능한 시간들이었다. 우리 모두에게도 그런 시간들이 있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는 나를 37살의 노처녀로만 보겠지만, 그렇게 표현해 버리기에는 나의 37살에는 남들이 가지지 못한 즐겁고 행복한 나만의 온전한 순간들이 너무나 많았다. 간만에 간 '따로 또 같이'는 여전히 좋았다. 

 

 

 

 

좋아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 이 시간을 선물해준 아이.

한장 한장 아껴서 읽다보면 더 정성스럽게, 더 열심히 마시고 싶어진다.

고마운 사람.

 

 

그린시네마에서 보았던 영화는 <굿바이 싱글>이었다. 영화 홍보 때문에 김혜수 인터뷰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 중 참 좋았던 김혜수의 답변. 완벽에 가깝게 서로를 터놓을 수 있는 친구들. 이 말, 좋다. 정말.

 

*

 

7월에는, 운동을 다시 열심히 하겠다. 틈나는대로 걷겠다. 책도 많이 읽겠다. 영화도 많이 보겠다. 좀더 일찍 일어나겠다. 기록도 많이 하겠다. 나쁜 마음들을 줄이겠다. 그러니까, 열심히 살겠다, 고 다짐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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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의 기록

from 모퉁이다방 2016. 6. 21. 22:38



   김중혁은 빨간책방 팟캐스트에서 <바닷마을 다이어리> 만화책 이야기를 하면서, 이 만화책은 무조건 사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책을 소유하고 있는 건, 그 책이 담고 있는 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걸으면서 방송을 듣고 있었는데, 이 말이 참 좋았다. 그 책을 소유하고 있는 건, 그 책의 세계를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언제든 내가 원할 때 펼쳐볼 수 있는 세계. 이 크지 않은 신국판 즈음의 책에 내가 좋아하는 세계가 잔뜩 담겨 있는 것. 


   오늘 나는 회사에서, 10년차 카피라이터 김민철이 쓴 세계를 줄곧 생각했다. 나는 이 책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집에 가면 바로 그녀의 세계로 정확하게 빠져들 수 있었다. 퇴근을 하고, 1층의 쌀국수 집에서 사온 스프링롤을 먹고, 어제 먹다 남겨둔 오잉도 먹고, 우유도 한 잔 마시고, 손과 발과 얼굴을 씻고, 팩을 하고, 수분 크림을 바르고, 설거지를 하고, 방을 한번 닦고 난 뒤, 방에 몸을 바삭 대고 오늘 내내 그리워했던 세계를 불러냈다. 그 세계는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리고 오늘 마음속에 계속 맴돌았던 말. 팔십팔페이지, 박웅현의 말.

 

   "민철아, 여기가 지중해야. 봐봐. 여기가 지중해야. 다른 곳에 지중해가 있는 게 아니야."

   "알아요. 팀장님이랑 같이 카뮈도 김화영도 다 읽었잖아요. 제가 제일 잘 알아요. 이 가을에, 이 은행잎에, 이 노란빛에, 이 비에, 이 술에. 여기가 지중해죠. 지금, 여기가. 알아요. 너무 잘 알아요."

   "그런데 왜 가려고 하는 거야."

   "그러니까요. 근데 가야 할 것 같아요. 정신의 지중해는 알 것 같은데, 육체의 지중해는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잖아요. 저는 지중해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고요."

   "그럼 갔다 와. 회사는 그만두지 말고. 갔다 와."

   "아니 그게 아니라..."

   술을 마셨고, 가을이었고, 은행잎이 떨어지고 있었고, 노란 조명과 그 은행잎이 만나서 세상이 다 노랗고, 예뻤고, 선선했고, 기분이 좋았고, 젠장, 이곳이 지중해였다. 내가, 지금, 여기를 이보다 더 오롯이 살 수는 없는데, 지구 반대편에 지중해가 무슨 상관인 건가. 여기가 지중해인데. 내가 지금 좋은데. 팀장님 말이 다 맞았다. 그런데 나는 가고 싶었다. 동시에 안 가고 싶었다. 오래도록 이야기했다. 나는 흔들렸고, 팀장님은 잡았고, 갔다 오라고 말하고, 얼마든지 갔다오라고 말하고, 술은 맛있고, 나는 흔들 흔들 계속 흔들.

   그리고 나는 지중해로 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있는 휴가를 다 끌어모르고, 토요일, 일요일을 있는 대로 갖다 붙였다. 3주 반, 그러니까 거의 한 달에 가까운 휴가가 생겼다. 모두 지중해에 쏟아부었다. 혼자서 카뮈의 무덤이 있는 남프랑스 루르마랭과, 김화영이 70년대에 유학을 했다는 엑상프로방스와 파리와 아를과 니스로 떠났다. 그러니까, 나는 결국 그만두지 않은 것이다. 결국 머물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나는 결혼을 했다.

- <모든 요일의 기록> p.88~89



   아, 내가 열살만 어렸음 좋겠다. 카뮈의 세계를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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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일들

from 모퉁이다방 2016. 6. 5. 16:06


5월은 전주에서 시작했다.




4월의 마지막 날도 전주에서.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로또는 여전히 꽝.




마른 기침을 했더니, 차장님이 선물해주셨다. 아주아주 달다.




고마운 카드도 받았다.

이런 문장이 있었다. 금령씨 눈으로 본 서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아, 맥주를 앞에 두고 읽길 잘했다. 고마워요, 지현씨.







김종관에 빠져 있었던 날들. 열심히 읽었다.

5월 시옷의 모임 때 이 책 얘길 했는데, 봄이가 공감해줘서 좋았다.




어린이날은 충무로에서 <초인>을 봤다. 친구는 그리 보고 싶어 하지 않은 눈치였는데, 영화가 끝나고 고맙다고 했다. 좋은 영화였다고. 나는 사실 어떤 이유 때문에 영화 중반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이었다. 영화가 해피엔딩이어서. 친구도 좋아질 거다. 우리는 각자 조금 울었다. 크게 웃기도 했고.







그리고 4차까지 달렸다. 친구의 오랜만의 휴일이었다.




친구는 남은 해물을 길냥이에게 계속 가져다줬다. 임신을 한 길냥이는 해물을 아주 좋아했다.





사려 깊은 솔이는 우리들의 시옷의 모임 입성 1주년이 되었다며,

각자의 분위기에 맞는 엽서를 골라 좋아하는 시 구절을 적어줬다. 내 엽서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언니의 사랑스런 일상과 좋아하는 것들과 빛나는 마음을 나눠주어 정말로 고마워. 따뜻한 솔이.

 

 

 

기석이는 맥주 만화책을 줬다.

 


 

맛있고 널찍한 양고기 집을 알게 되었고,

 


 

고운 연등을 올려다보던 날도 있었다.


 

 

주윤하의 새 노래 중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던 가사.


 

 

퇴근길.

 


 

그림책 소개를 보고 친구의 아가생각났다.

그림책을 선물하다보니 나도 읽어보고 싶은 책이 많았다.

그래서 이 책은 먼저 읽고 직접 선물했다. 아가가 무럭무럭 잘 자라길.

 


 

여름을 맞이하야 머리를 잘랐다.

큰 맘 먹고 비싼 미용실에 가 보았다.

 


 

운동 가기 싫어서 동네를 계속 걸었다.

동네에 전기구이 통닭 할아버지가 1주 넘게 안 나오고 계셨다.

무슨 일이 생기신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동생이 우여곡절 끝에 유럽 여행을 가게 됐다.

동전 지갑이 필요하다고 해서 다이소에서 적당한 걸 사서 방문하는 도시들을 수놓아 선물했다.

봉주흐라고 적힌 샛노란 수첩도 선물했다.

하루키의 문장을 적어줬다. "여행지에서 모든 일이 잘 풀리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

 


 

동생은 잘 도착했다고 했다.

 

 

 

친구에게 지난 겨울에 주었어야 할 생일선물을 이제야 건넸다.

 


 

친구는 가족들과 함께 하와이에 다녀왔다.

 


 

펠트 커피의 간판은 은파피아노. LP를 틀어주는 곳이다.

아이스 바닐라 라떼가 맛있다고 해서, 비가 오는 날, 아이스를 마셨다.

 


 

친구의 남편, 그러니까 오빠가 스파게티도 사주고, 피자도 사주고, 아이스크림도 사줬다.

여행에서 비싼 양주를 사왔으니 집에 와서 하루 자고 가라고 했다.


 

 

내게 온 책들.

 


 

어느새, 여름.

 

 

 

서울에서 곡예사 언니를 만난 날.

함께 <요노스케 이야기>를 보려고 했는데, 결국 개봉하지 않았다.

언니는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고, 나는 그 공간을 상상했다.

 


 

친구가 초를 이렇게 가져왔길래, 왜? 라고 물었다.

친구는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나이야.

그래, 이제 우리들의 생일엔 좋았던 나이의 초를 꽂자.


 

 

2시간 동안 무제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에 갔다.

정확히 2시간이 지나고 직원이 와서 말했다. 2시간이 지났습니다.

 


 

친구가 꽃을 선물해줬다. 

꽃을 선물받는 일은, 사랑받고 있는 느낌을 선물받는 것 같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기분이 무척 좋으다.

 

*

 

그리고, 여기서부턴 아주 대놓고 자랑이다.

이렇게 대놓고 하는 자랑은, 쑥스럽고 간지럽고 재수없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5월은 오래 축하를 받아 무척 행복했으므로,

이 곳은 잊지 않으려고 쓰는 곳이니까,

이렇게 대놓고 올려봅니다.

 










 

 

 

 

아빠의 문자는 왠지 슬프게 느껴져서 매일매일 전화를 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 아빠의 기분이 좋아졌음이 느껴졌다.

예전에는 아빠가 내게 힘내라고 자주 말해줬는데, 요즘은 내가 아빠에게 그런다.

아빠가 힘냈으면 좋겠다아! 파워 업-

 


 

타코야끼를 포장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서 맥주 한잔을 혼자 마셨다.

마시는 동안, 친구가 이소라의 '믿음' 동영상을 보내줬다.

덕분에 눈물이 날 뻔 했다.

 


 

얍!

 


 

하루 늦게 차려 먹은 생일밥상.

막내가 처음으로 진짜 미역국을 끓여줬다. 감동!

막내는 몇년 전 생일에 인스턴트 미역국에 소고기를 사서 넣고 진짜 미역국을 직접 끓인 것처럼

귀여운 연기를 한 적 있는데, 조미료 맛이 느껴져 바로 들켜 버렸다.


 

 

예상하지 못한 엽서를 받는 기쁨이란.

 


 

많은 사람들이 추천했던 너무 한낮의 연애는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보경이가 추천해준 권여선의 새 소설집.

보경이는 밖에서 절대 읽지 말라고 했다. 눈물이 막 쏟아진다고.

주정뱅이라는 단어가 귀엽게 느껴지는 제목, 이라고 생각하며 한 편의 소설을 읽었다.

 


 

<나의 소녀시대>를 보고 기분이 몽글몽글해져서 집까지 걸었다.

엄청나게 유치한데, 나쁘지 않고, 좋기까지 했다.

나는 요즘 이런 유치한 것들에게 끌리는 것 같다.

 

 

 

5월의 영화.

<싱 스트리트>는 정말정말정말 좋았다.

기분 좋게 울 수 있었다.

 


 

드디어, 전기구이 통닭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한마리 포장해달라고 하고 안 나오셔서 무슨 일이 있나 했어요, 하니

할아버지는 수줍어 하시며 떨이니까 천원 깎아준다고 하셨다.

 


 

동생도 돌아왔다!

독일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서 독일 맥주를 잔뜩 사왔다.

 


 

노팅힐 에코백도 사왔다.


 




 

그러고보니, 황작가 커피집에는 지난 달보다 덜 갔네.

 




 

단란했던 5월의, 시옷의 모임. 사진은 모두 소윤이-

이번 달 책을 읽지 못해 솔이한테 무척 미안했다.

그렇지만 언제고 꼭 읽을 거다.

5월의 책은 <고도를 기다리며>였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결정이 되었지만,

언젠가 간절하게 꿈꿨던 오키나와에 가게 됐다!

.

.

.

6월에도 부지런히 살겠다, 고 결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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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번째 봄

from 모퉁이다방 2016. 6. 1. 22:43


 

   동생이 산낙지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오늘부터 다이어트를 결심했지만 (매일 결심한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으니 그러자고 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산낙지 한 접시랑 맥주 한 병을 시켰다. 동생의 유럽 얘기, 회사 얘기가 이어지다, 나의 생일날 이야기가 이어졌다. 동생은 그때 파리에 있었고, 그곳에서 미역국 이모티콘을 보내줬다. 내가 말했다. 역시 좋았어, 라고. 동생이 말했다. 지금 짝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던데.

 

    "마흔 여덟살이 되었어요." 이소라가 말했다. 이천십육년 오월 이십칠일에. 나는 서른 일곱살이 되었다. 서른 일곱살의 생일날, 나는 꿈꿨던 대로, 별일없이, 이소라의 공연장에 혼자 앉아 있었다. 공연은 여덟시를 조금 넘은 시간에 시작됐다. 무대에 긴 별빛을 닮은 장식물이 내려왔다. 그 안에서 이소라와 밴드가 노래했고, 연주했다. 두 곡이 끝나자, 그 별빛 위에 희미한 달이 새겨졌다. 노래를 가만히 듣다보니 그건 "이렇게 여윈" 눈썹달이었다.

 

    이소라는 딱 두 번 멘트를 했다. 첫 멘트 때에 오늘 이런 곡들을 부르겠다고 말했다. 단 한번 쉴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대로 했다. 나는 그녀의 위트있는 멘트를 좋아해서 멘트 시간이 그리웠지만, 노래만 줄곧 이어지니 그녀가 왜 노래를 줄곧 부른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소라'다웠다.

 

   내 옆에 앉은 혼자 온 여자아이가 몸을 들썩이며 울기 시작한건 중반 즈음, 이소라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였다. 처음에는 볼에 흐른 눈물만 닦아냈는데, 나중에는 들썩이기 시작했다. 가방 안에 휴지가 있었는데, 그 휴지를 건네주고 싶어 혼났다. 그애에게 휴지를 건네면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할 것만 같아 꾹 참았다. 그래도 알아주고 싶었다.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도 전혀 모르는, 단지 두 시간 즈음 옆자리에 앉아 있을 뿐인 한 사람이 당신이 이 노래를 들으며 흐느낄 수 밖에 없는 걸 이해한다고. 나도 모르게 그녀의 사연을 가사의 흐름에 맞춰 상상하게 됐다.  어떤 사연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이 곳에 와 혼자 울고 있는 그녀가 부러웠다. 그녀는 이 라이브 한 곡으로도 어느 정도 상처가 치유되었으리라.

 

   나도 '아멘'을 들으며 울컥했지만, 끝내 울지는 않았다. 서른 일곱의 나는 이소라의 라이브를 듣고도 더이상 울지 않는다. 그녀가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좀더 건강해서, 그녀의 새 노래를 오래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그녀처럼, 어느 날의 첫 별을 보고 새로운 시작을 기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의 어떤 가난이, 나의 어떤 방황이, 어느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결국 맥주를 샀다. 공연장을 나와 이대역에서 캔맥주 하나를 샀다. 빨대 하나도 챙겼다. 그날 들은 곡들을 찾아 재생목록에 넣었다. 이어폰 볼륨은 잔뜩 높였다. 그렇게 이대에서 홍대까지 그녀의 노래를 다시 들으면서 맥주를 마시며 거리를 걸었다. 금요일 밤이라 사람들이 무척 많았는데,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마흔 여덟의 이소라가 서른 일곱의 나에게 노래했다.

 

  오늘도 말 한마디 못한 채 니 옆에 떠 있는 날 기억해.

  함께 우주에 뿌려진 우린 수많은 별 그 중에 처음 마음 내려놓을 곳.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강하게 하고 평범한 불행 속에 살게 해.

  더 외로워 너를 이렇게 안으면 이렇게 그리운 밤 울고 싶은 걸.

  나 혼자 일어난 미친 아침은 맑아도 눈물입니다.

  나 너 지금 이 곳 다시 별처럼 저 별처럼.

  날 울게 해.

  나의 방황을 나의 가난을 별에 기도해 다 잊기로 해.

 

   꿈틀거리는 산낙지에 맥주를 마시며 생각했다. 다행이다고. 그녀가 사랑하고 있어서. 좋은 노래를 만날 수 있겠다. 놓치지 않고 함께 한, 그녀의 여섯번째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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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전야

from 모퉁이다방 2016. 5. 26. 23:51



   집에 돌아오면 혼자인 일주일을 보내고 있다. 동생은 우여곡절 끝에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마지막까지 정말 스펙터클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못가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이 일정을 줄여 떠날 수 있었다. 동네 문방구에서 '봉주흐'라고 쓰인 샛노란 수첩을 사서 첫 장에 이렇게 적어 선물했다. "여행지에서 모든 일이 잘 풀리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다." 하루키의 새 여행책 보도자료에서 본 문장이다. 동생은 떠났고, 막내는 이번 주에는 집에 오질 못한다고 했다. 이번주 평일 내내 혼자다. 잠에서 깨어날 때도, 집에 돌아올 때도. 처음에는 외로움이 짙었는데, 점점 괜찮아진다. 내일은 막내가 올 테고, 온전히 혼자인 밤이 끝난다는 사실이 아쉽기까지. 동생들이 오면 집은 또다시 쑥대밭이 될 거다. 흑-


   동생은 지난주 금요일에 떠났다. 지난 주말은 막내와 함께 했고, 월요일 밤부터 온전히 혼자였다. 집을 치우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했다. '내'가 어지르지 않으면 집이 그대로인 이 상태를 얼마나 꿈꿨던가. 월요일은 야근을 하고 늦게 와서 혼자 요를 깔고 누웠다. 화요일은 Y씨랑 양고기와 맥주를 먹고 와서 혼자 요를 깔고 누웠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집에서 <또 오해영>을 봤다. 맥주를 두 잔, 하이볼을 한 잔 마시고 온 화요일에는 오해영을 보며 계속 울었다. 아, 오해영 엄마는 왜 저렇게 멋있는 거야.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힘내라, 오해영. 아, 월요일에 멸종위기동물 우표가 붙여져 있고, 시가 적혀 있는 엽서를 받았다. 이런 문장이 있었다.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수요일에는 지하철을 타고 가다 상암에서 내려 혼자 영화를 봤다. 한달에 한번 영화값이 오천원하는 날이었다. 수요일 밤, 동네 사람 모두 대만의 아주아주 유치한 영화를 보러 왔더라. 작은 상영관이긴 했지만, 매진이었다. 영화는 아주아주 유치했는데, 나는 계속 미소짓고 있었다. 쉬-따이위-. 모두들 좋다고 추천한 소설은 나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는데, 이런 유치한 사랑놀음이 늦봄 출렁이는 나의 마음을 계속 간지럽힌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져서 사십 분을 걸어 집까지 왔다. 그리고 혼자 요를 깔고 누웠다. 그리고 오늘, 목요일도 야근을 했다. 내일, 혼자인 생일을 보내기 위해서. 내일은 나의 서른 일곱번째 생일이고, 나는 혼자 이소라 공연을 보러 간다. 티켓은 오래 전에 배송되었고, 나는 내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올 거다. 좋은 생일이 될 거다. 그렇게 믿는 밤. 내일은 친구가 미리 선물해 준 새 셔츠를 입어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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