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다방'에 해당되는 글 450건

  1. 안산 2017.03.07
  2. 12 2017.03.02
  3. 12월의 일들 2 2017.03.01
  4. 맥주학교 2 2017.02.26
  5. 아름씨 2 2017.02.13
  6. 만년필 2 2017.02.09
  7. 아빠 4 2017.02.06
  8. 11월의 일들 6 2017.02.05
  9. 설연휴 2 2017.02.03
  10. 10월의 일들 10 2017.01.15

안산

from 모퉁이다방 2017. 3. 7. 22:28























  토요일에는 안산에 다녀왔다. 경기도가 아니라 서울 서대문에 있는 안산. 역사 이야기를 잔뜩 들으며 걸을 계획이었다. 기대했던 만큼 역사 이야기는 잔뜩 듣지 못했지만, 다시 가고 싶은 좋은 산책로를 발견했다. 이 날 들었던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신목사상'에 관한 이야기. 옛날 사람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나무를 한 그루 심었단다. 여자아이는 시집갈 때 만들 장롱을 위해서, 남자아이는 죽을 때 쓸 관을 위해서. 옛 사람들에게 나무는 아주 큰 의미이자 소중한 존재였는데, 힘들 때면 자기 나무를 힘껏 안고 위안을 받기도 했단다. '내' 나무라니. 좋았겠다. 미세먼지 때문에 먼 곳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꼭대기에 올라가 내려다보니 집들이 참으로 많더라. 아파트도 많고. 이 날 이만육천보 넘게 걸었다. 많이 걷고, 버스도 타고, 맥주도 마셨다. 해가 지는 광경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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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모퉁이다방 2017. 3. 2. 21:31




낙서가 있거나, 흠집이 있지만, 책을 읽기엔 무리가 없는 책들입니다.

선물을 받거나, 사인을 받아두었던 책이기도 해요.

그래서 그냥 버리기엔 아까운 책이라 나눕니다.

가지고 있는 봉투가 책이 최대 3권까지 들어가서, 1인당 3권까지만 나눌게요.

읽고 제게 엽서를 한 장씩 보내주시면 됩니다. 그거면 됩니다.


이름 / 주소 / 전화번호 / 읽고 싶은 책

댓글로 남겨주셔요.


곧 봄이 오고, 좋은 일들이 마구마구 생길 겁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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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일들

from 모퉁이다방 2017. 3. 1. 00:20


2017년 3월을 시작하며 기록하는 2016년 12월의 일들.

아, 벌써 1분기 마지막 달이다.




상수에서 아름씨를 만났다. 우리는 세일을 하는, 가격이 꽤 나가는 맥주를 한 병 시켜 나눠 마시기로 했는데, 센스있게 세일가를 저렇게 현금으로 장식해주셨다. 아름씨가 산미가 꽤 있을 거라고 했는데 적당하게 맛있었다. 단둘이서 첫만남이라 나름 긴장했던 저녁.        




지은씨와 지숑님이 합류하여 2차까지 갔다. 지숑님은 날의 술자리를 굉장히 특이했던 술자리로 회자하고 계시는데. 이제 네덜란드 이야기가 나오면 슬며시 웃는 지숑님.




사촌동생에게 좋은 일이 생겼고, 다같이 축하해줬다.




그러니까 퇴근 후의 삶이 필요하구나, 생각했던 저녁. 토마스 쿡의 입담은 여전했다.




원주행 버스를 타기 위해 서둘렀던 주말 아침.




원주.




스키장이 내다보이는 숙소에서 복작복작하게 하룻밤을 보냈다.




최근에 깨달은 건데, 나는 여행지의 숙소를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비싸고 화려한 숙소를 말하는 게 아니다. 내 마음에 쏙 드는 그런 숙소들이 있다. 첫눈에 반해버리는. 그런 숙소에서 보낸 여행들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상암 북바이북. 자존감 수업. "되는 것만 합시다. 달리 방법도 없어요."




드디어 목도리 완성. 저 라벨은 아무래도 어색해서 떼어냈다.




주말 점심. 마음에 드는 중국집을 발견했다. 볶음밥이 아주 맛있다.




맥주 마신다고 매번 못 가서 마음에 걸렸다.




12월의 어느 주말, 광화문.




우리답게 끝나고 맥주로 꽁꽁 언 몸을 녹였다.




나 맥주수업 들으니까 이런 맥주도 먹으러 가보자.




하지만 파워플랜트는 너무나 비싼 것. 다신 오지 않기로 한다.




왕십리까지 가서 아이맥스관에서 <라라랜드>를 봤다. 모두가 좋다는데, 심드렁했던. 12월에는 자주 그랬던 것 같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영화들은 왠지 그냥 그랬다. 기대를 잔뜩 해서 그런건지.




영화를 보고 성수로 이동해서 어메이징 브루어리에 가보았다.




나 맥주수업 들으니까 이런 맥주도 먹으러 가보자 2.




전날 은경이가 친구들이랑 소주로 신나게 달리는 바람에, 그런데 나는 극장에서 맥주를 한 캔씩 사놓고 기다린 바람에, 그리하여 <라라랜드>를 보면서 조는 지경까지 가는 바람에, 간단하게 마시고 헤어졌다.




친구는 괌에 놀러가서 괌맥주를 사오고, S는 유럽에 가서 보자마자 내 생각이 났다며 한정판 하이네켄을 사오고, 막내는 대만에 가서 대만맥주를 사온다. 아, 맥주 선물은 어찌나 벅찬지.




막내가 대만 야시장에서 사온 애지중지했던 선물인데, 나는 이 아이가 우리집 앞 알파문구에서 1,500원에 팔리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IPA에는 순대라고 해서.




술술 읽혔던 <분노>, 이제는 갈 수 없는 아침 스타벅스.




12월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한 사람은 14년간 다니던 회사의 퇴사를 결심했고, 한 사람은 죽다 살아났다. 정말 죽다 살아났다.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몸은 누워 있는데, 그걸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우리는 그 얘길 고기를 먹으면서 들었다. 왠지 그렇게 들어선 안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은 나중에 들었다. 팀에서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회사를 그만뒀다.




나는 원래 남자 미용사가 머리를 만지는 걸 불편해했는데, 이 미용실을 다니면서 바뀌었다. 가만히 다가와 내 냄새를 오랫동안 맡아댔던 미용실 고양이.




맥주학교 1학년과 2학년 사이, 1학년 모임과 뚝도 페어링.




고도수 맥주들로 엄청 달렸다.




스타우트와 초콜릿을 같이 먹으면 맛나다.





숙취란 녀석이 바삭 안겨오면 이제 나는 평생 아무술도 마시지 않겠노라 다짐하지만, 그 녀석이 슬금슬금 뒷모습을 보이면 그렇지, 세상엔 참으로 맛있는 맥주가 많은 것이야,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는. 지나고 보니 좋은 추억이 된 노래방. 카스에 IPA를 약간만 섞으면 IPA가 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 곳!





12월에는 많은 일이 있었지. 그러니 야근도 많았다. 어느 날 답답해 혼자 나와 휴게소 우동을 먹었다.




애정하는 자유로 휴게소.




소윤이가 전주에 가게 됐다. 출판단지에서 일했지만 단지 안에서는 잘 보질 못했다. 정말 우연히 2200번 버스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버스에 탔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런데 울고 있었다. 소윤이는 그 날, 아무래도 회사를 그만둬야 될 것 같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는 합정에서 김밥과 우동을 나눠 먹고 헤어졌다. 나는 그날도 소윤이에게 말했다. 힘이 되는 말을 못해서 미안하다고. 우리는 2016년 파주에서 함께 했다. 소윤이를 생각하면 언제나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그러길 위해서 좋은 마음과 좋은 몸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소윤이의 급벙개로 만나게 된 우리. 사랑에 푹 빠진 봄이의 그!도 만났다. 흐흐- 그날의 낙성대의 결론, 우리는 넓고도 깊다!




집에 챙겨놓았다는 선물을 가지러 가서 얻어마신 일본에서 사온 맥주. 두번째 방문이었고, 마지막 방문이 되었다. 다음엔 전주의 자취방으로.




주인을 찾은 목도리. 초록초록한 빨간머리 앤을 사랑하는 소윤이. 생일 축하했어. :)




이 맥주 정말 맛있다. 위트위트 사장님도 강추. 결국 1월에 6호라인 공구까지 이어진 부쿠 IPA.




오겡끼데스까. 새봄씨의 엽서로 따뜻해진 겨울.




아침비.




친구가 크리스마스 이브를 함께 보내자고 했다. 만삭의 친구집에서 하룻밤 자고 왔다.

우리들이 빈 세 개의 소원. 나란히 깐 두 개의 침구. 내가 꾼 하나의 꿈.




그리고 말이 필요없다, 뿅족.




소원.




만삭의 몸으로 아침도 차려줌. 육즙 가득하다고 자랑했던 만두는 결국 처참하게 속을 드러냈다.




크리스마스는, 이제 돌이 되는 아가가 있는 친구의 집으로.




아가는 자신이 곧 잠들어야 하는 줄도 모르고, 찝찝했던 기저귀를 간 뒤 이모들 이제 본격적으로 놀아볼까, 하며 꽃웃음을 꺄르르 꺄르르 마구마구 날렸지만, 아가의 아버지는 가차없이 아가를 방으로 데려 갔다는 슬픈 이야기. 많이 컸다, 찬이. 잘 웃는 아가. :)




크리스마스 다음날은 막내의 생일.




막내가 한번 가보고 싶어했던 가게로 갔다.




생맥주 무제한 행사를 하길래 달라고 했는데, 생맥주가 떨어지랑 말랑 한다면서 병맥주를 계속 가져다주신다. 아, 여기 괜찮다, 생각했으나 결정적으로 음식이 맛이 없고 비싸서, 이제 안 갈 것 같아요. 흑흑-그러나 잘 마셨습니다!




S가 중국출장 다녀와서 선물해준 팬더 초콜릿. 귀여워서 먹을 수 있겠나.




고마운 사람에게서 받은 엽서. 벌써 많이 늦었지만 답장을 늘 생각하고 있어요. 기다려주세요- :)




이제 파는 수 밖에 없다. 사고 싶은 책이 계속 생기니. 합정의 중고서점에 가서 처음으로 팔아봤다.




겨울.




회사 동료 송별회 끝나고 가서 만난 12월의 시옷들. 봄은 자신의 파리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꼬막이 이렇게 맛있는 지 처음 알았다. 완전 꿀맛. 이 날 너무 맛있어서 다른 날도 기회가 있음 시켜봤는데 이 맛이 안 나더라. 시옷 효과인가. 결국 노래방에서 계속 잤다. 최고령자 체력의 한계.




마니또, 멋진 사진 찍기에 이어, 이번에는 연말 선물 이벤트. 나는 솔이의 아름다운 램프를 받았다. 이 선물은 나 뿐만 아니라 동생도 좋아해서 집에서 술 마실 때마다 켜두고 있더라. 무척 이쁘다. 




집에서 영화보다 이 대사에 꽂힘. 흐흐-




동생 친구 어머니가 챙겨준 과메기. 덕분에 이번 겨울에도 과메기를 먹고 지나갔다!




솔과 하진, 이토록 다정한 시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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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사다난했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지만, 꽤 많은 일이 일어난, 많은 것을 느꼈고, 많은 것에 성공했고, 또 많은 것에 좌절한 2016년 끝났다. 늦은 2016년의 일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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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학교

from 모퉁이다방 2017. 2. 26. 17:27

  

   토요일. 응암역에서 강남역까지 가는 중이었다. 주말 오후, 지하철은 한산했다. 이번 주에는 좋아하는 작가들이 술에 빠져 살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부러 문가에 서서 갔는데, 책을 읽다 창밖으로 지상 풍경이 펼쳐지면 책을 잠시 덮었다.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에서 두 사람이 탔다. 여자는 일반석으로 가려는 다른 여자에게 엄마 여기, 라고 외쳤다. 두 사람은 노약자석에 앉았다. 여자는 다른 여자에게 엄마, 그래서, 엄마, 그 사람이, 라고 쉴새 없이 이야기했다. 다른 여자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다음 정거장인 신대방역에서 내렸다. 백발의 등이 굽은 엄마와 긴 생머리의 중년의 딸이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을 한참을 내다봤다. 그리고 어느 역에서는 노약자석이 꽉 차 있었고, 뽀글뽀글 머리를 한 할머니가 타셨다. 노약자석에 앉은 중년의 친구 중 한 명이 일어났다. 할머니는 한 정거장만 가면 된다며 괜찮다고 했다. 중년의 친구는 마음이 편치 않으니 한 정거장이라도 앉으시라고 했다. 그리고는 아주 맛있다고 해서 일부러 가서 샀다면서 빵 한 봉지를 내밀었다. 드셔 보세요. 할머니는 한 봉지에 얼마냐고 물었고, 중년의 친구는 한 봉지에 얼마라고 이야기했다. 할머니는 잘 먹겠다고 인사했다. 한 정거장이 되어 내릴 때도 다시 한번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리고, 가을부터 겨울까지 함께한 맥주학교가 끝났다. 마지막 소감을 이야기할 때, 얼마 전 만삭의 곡예사 언니와 나눈 대화를 이야기했다. 언니는, 곧 맥주를 함께 마실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언니 이제 카스따위 마시지 말아요, 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맥주 제조법을 이야기했고, 언니는 금령아 그거 어디서 배웠니? 맥주학교에서 배웠니?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해, 라고 이야기했다. 그 얘길 맥주학교에서 했는데, 사람들이 웃어줬다.


    좋은 토요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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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씨

from 모퉁이다방 2017. 2. 13. 00:30




   아름씨에겐 내가 먼저 연락을 했다. 맥주학교 1학년 마지막 시간, 맛있는 음식과 맥주를 함께 나눠 먹다가 지숑님이 이야기해줬다. 아름씨가 우리 회사에서 제일 책을 많이 읽어요. 이 말에 아름씨는 그렇지요, 라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 뒤 내게 있는 책이 한 권 더 생겼는데, 갑자기 아름씨 생각이 났다. 맥주학교 밴드에서 아름씨 번호를 찾아 문자를 보냈다. 아름씨, 이 책 읽었어요? 가지고 있는 책인데 또 한 권 생겼다고, 혹시 읽지 않았으면 선물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름씨는 읽지 않은 책이라고 했고, 수업이 시작되면 주겠다는 나의 말에 2학년 수업 때까지 시간이 너무 머니 만나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아름씨는 긍정왕이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집으로 가서 책을 읽을 생각에 매일매일이 신난다고 했다. 고전도 많이 읽고 있었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데, 아름씨와의 첫 시간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편안하기도 했다. 그건 아름씨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맥주를 마시고, 책을 읽는 사람이 되자고 이야기했다. 나중에 지은씨도 왔고, 지숑님도 왔다. 처음으로 넷이서 맥주를 마셨는데, 좋았다. 긍정왕, 여행왕, 로맨티스트와의 만남이었다. 


   아름씨는 열심히 책을 읽고, 미련없이 헌책방에 팔고, 또 읽고 싶은 책을 산다고 했다. 어머니가 책을 좋아하셔서 읽은 책을 가져다 드린다고도 했다. 룰루랄라, 라는 표현을 자주 쓰면서 계속 웃었다. 겉지가 있는 양장책은 꼭 겉지를 벗겨서 읽는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소설책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의 속색깔을 처음으로 보았다. 예쁜 민트색이었다. 우리는 비싼 맥주를 한 병 시켜 나눠 마셨다. 그리고 포스트잇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건 무척 중요하다. 내 주위에는 책에 연필로 밑줄을 긋는 사람이 여럿 있다. 나는 그것이 무척 근사해 보여 따라해보았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결국 원래대로 포스트잇을 붙였다. 제일 좋은 포스트잇은 세로의 길이가 얇고, 접착제 부분이 투명한 것이다. 그래야 접착제 부분의 글씨도 말끔하게 보이기 때문에. 아름씨도 포스트잇을 붙인다고 했다. 우리는 포스트잇을 붙이는 습관에 대해 이야기했다. 2학년이 시작되고, 몇주 만에 다시 만난 아름씨에게 문구점에서 산 얇은 포스트잇을 선물했다. 이천원 남짓의 그 선물을 받고 아름씨는 좋아해주었다. 2017년에도 좋은 친구들이 생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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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from 모퉁이다방 2017. 2. 9. 23:12



   

   그녀는 실리의 책상으로 다가가 첫번째 서랍에서 그것을 찾아냈다. 납작한 가죽 필통에 만년필이 들어 있었고 그게 언제나 거기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끈으로 묶인 가죽 필통을 열 때 허둥댔다. 실리의 만년필이 거기 있었고 그녀는 만족스러워 그것을 손에 쥐었다. 종이에 글을 적을 때는 만년필로. 그건 그녀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실리의 생각이었다. 실리는 자주 그렇게 말하곤 했고 평생 두 자루의 만년필을 가졌는데 어쩌면 그녀가 모르는 만년필을 한 자루쯤 더 가졌는지도 몰랐다. 누가 알겠나. 그녀는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그런 생각을 했다. 누가 알겠나...... 그녀는 서랍에 든 잉크병을 쥐고 뚜껑을 비틀어보았다. 검푸른 가루가 떨어졌다. 잉크는 고체가 되어서 병을 뒤집어도 흐르지 않았다. 펜촉도 잉크를 머금은 채로 굳어 있었지만 그것에 관해서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그녀는 만년필을 부엌으로 가져가서, 생전에 실리가 자주 했던 것처럼, 유리컵에 따뜻한 물을 받아 펜촉에 담갔다.

- p, 93 황정은 <아무도 아닌> '명실'



   지하철 안이었을 거다. 이 부분을 읽고 있었던 게. 불현듯 어떤 장소가 떠올랐다. 신촌에 있는 커피집의 단체석. 2주에 한 번씩 모여 누군가가 써온 걸 두고 이야기하는 장소였다. 모두 참석하면 다섯 명 정도 였는데, 늘 그렇진 않았다. 그 시간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 나와 친구, 그리고 그 분. 친구가 만년필 리필액을 한 묶음 샀는데, 너무 많다며 반을 내게 줬다. 나는 오랫동안 쓰지 않고 있던, 친구에게서 선물받은 만년필을 필통에서 꺼냈다. 다 쓴 잉크액을 빼내고 새 잉크액을 꽂았다. 종이에 글씨를 써 보려는데 나오지 않았다. 그 분이 이야기했다. 따뜻한 물을 받아서 잠시 담궈두면 되요. 그때부터 만년필을 따뜻한 물에 담겨놓을 때면 그 공간에 세 명이 함께 있었던 그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그 시절, 나는 참 부끄럽고 창피했던 게 많았다. 지금에 와서야 좀 부끄러우면 어때, 좀 창피하면 어때, 라고 생각하지만. 친구의 말대로 그걸 이겨내고 그대로 나갔다면 어땠을까.


   어제, 친구는 아기띠를 하고 아가를 앞에 안고 나를 배웅해줬다. 찬 바람이 쌩쌩 부는데, 너무 더웠다며 외투도 걸치지 않고 따라나왔다. 네 시간 가까운 시간동안 아이들 돌보느라 셋이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헤어지던 참이었다. 우리는 횡단보도까지 같이 걸었다. 친구가 말했다. 오늘 할 얘기가 많았는데, 아쉽다. 그리고 몇 발자국 더 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금냉, 나 암이래. 언젠가 금냉, 나 임신했어, 라고 말했던 것처럼. 심각하지 않은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어떻게 알았고, 어떻게 했으며, 어떻게 할 것인지 말해줬다. 친구와 헤어져 택시를 탔는데, 최백호의 목소리가 나왔다. 언젠가의 밤택시에서도 최백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때도 최백호가 라디오를 하네, 찾아서 들어봐야지, 생각했는데.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게 떠올랐다. 많은 것들이 그냥 지나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도. 우리가 그런 나이가 되어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도.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친구가 먼저, 말해주는 게 언제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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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from 모퉁이다방 2017. 2. 6. 22:34




    지난 금요일에는 엄마의 검진으로 아버지와 엄마가 올라오셨는데, 시간을 잘 보내다 마지막에 성질을 내버렸다. 내가 울먹였는데, 아버지는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마음이 내내 아팠다고 했다. 나는 아무 것도 듣지 않고, 읽지 않은 채 전철을 타고 집에 와 핸드폰을 꺼두고 자려고 노력했다. 초저녁부터 내내 누워 있었다. 아버지는 동생에게 내가 마음이 너무 약해서 걱정이라고 했단다. 나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성질을 부릴 수 있는 날들이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하다 먹먹해졌다. 나는 나이를 어디로 먹고 있는 걸까. 언제쯤 굳건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버지는 '오늘 애썼다'로 시작하는 긴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은 동네 커피집에 들러 아침에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오십 페이지의 책을 읽었고, 몇 정거장을 걸었다. 내일 아침에 먹을 순대국과 귤도 사왔다. 영어방송은 듣지 못했지만, 저녁은 우유가 들어간 커피로 대신했다. 올해는 좀더 자주 기록하고, 자주 결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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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일들

from 모퉁이다방 2017. 2. 5. 20:38



추워지면 몽글몽글 라떼가 진리.




요즘엔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그것이 탄생하게 된 역사가 제일 궁금하다.

그리하여 맥주의 역사에 대해 읽어보았다.




동생이랑 평일 저녁 산낙지.

다이어트 한다고 산낙지만 주문했는데, 결국 낙지전도 추가 주문.




황작가 커피.




퇴근을 하고 셔틀버스 타러 내려갔는데, 차장님과 H씨가 서 있었다.

금령아, 브루어리 갈래? 그렇게 가게 된 플레이 그라운드.

교통이 불편한 곳에 있는데도 사람들로 복작거렸다.

안주들도 맛있었다.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버스를 타고 제일 뒷자리에 앉아 쓸쓸한 음악을 듣는 일.




집에서 마시려고, 캔도 사왔다.




다이어트 시도는 계속 되었지만,




합정점에서 시옷의 책 득템.

책을 사고 단톡방에 이 사진을 올리니, 몇 시간 전에 하진이가 다녀갔다고.

재고 두 권 중에 한 권은 하진이가, 한 권은 내가 획득하였다.




주고 받을 것이 있어 만난 소규모 시옷.

모과가 맛있는 순대국집을 알아냈는데, 우리가 다녀가고 얼마 뒤 수요미식회에 나왔다.




이 날, 또 하나의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하고,




신청곡도 들었다.




술집에서 각자 읽고 있는 책을 자랑하는 시옷.




주고 받은 것들 덕분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슬로우 댄스>가 갑자기 너무 그리워져 찾아 보았다.

보다보니 왜 그리워졌는지 알 수 있었다.




아, 맥주는.




밤산책.




봄이가 파리에서 보낸 엽서가 도착한 밤.

단정한 봉투 안에 봄이가 사랑한 파리가 깔끔하게 담겨 있었다.




이제 마트에 가면 병맥주 코너 먼저 보게 된다.




밤 산책, 은평구 미키.




빛과,




낙엽.





힘을 내어야겠다는 생각.

계속 꿈을 꾸어야겠다는 생각.

늦지 않았다는 생각.




맥주학교에서 받은 컵.




흠, 그저 그랬다.




돌아오는 길에 맥주.




맥주 수첩도 마련했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합정역 붕어빵.

냄새가 엄청 좋았는데,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흐물흐물해진 붕어.

맛이 없었다는.




하지만 맥주수첩은 몇장 쓴 뒤로 자취를 감추었다는.

어디로 갔니?




아침.




그 여름.

영화를 보고 설레여 한참을 걸었던 그 날의 여운.




아버지는 돈까스를 좋아하신다.

가족판정단에 의해 맛이 없다는 결론이 난 나만의 맛집.



흠, 결국 버렸다.

맥주는 사먹는 걸로.




주말.




건강검진, 연차.




아버지로부터 다리의 알통이 심각해보이더라, 라는 말을 들은 날 아침. 흑흑-




그래야 한다!




응, 괜찮은 책이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라고 결심한 날.




응원하고 싶은 잡지.

잡지 안에 좋은 사람들이 그득했다.

나는 좋은 사람들이 좋다.




다시, 뜨개질을 시작한 밤.




아침.




선영이랑 오빠가 동생과 나를 초대했다.

비싼 양주가 있으니 와서 양껏 마시라고.




그러나 양주는 나랑 맞지 않고.




선영이가 챙겨준 곤드레밥.

도시락으로도 싸갔는데 약간 심심한 게 딱 좋더라.




패턴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시작하는 목도리.




주말, 맥주학교 가는 먼 길.




한산한 지하철에 앉아 있다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이했다.




그리고 11월에도, 나의 애정하는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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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

from 모퉁이다방 2017. 2. 3. 08:10



















   장유에서 고성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면서 엄마가 누군가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고성에서 내려 보니 키가 아담하고 선하게 생긴 젊은 캄보디아 남자였다. 이전에 엄마는 이 캄보디아 남자와 같이 일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엄마는 숙모가 싸준 가방에서 커다란 사과 하나를 찾아 건넸다. 이거 집에 가서 묵어라. 남자는 괜찮다고 거절을 하다 엄마가 계속 사과를 내밀자 고맙다고 받아서 자기 가방에 넣었다. 터미널을 나가면서 엄마와 남자는 요즘에는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느냐 등의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사투리 가득한 엄마의 말을 남자는 용케 다 알아듣고 대답을 했다. 엄마는 남자와 헤어지자마자 말했다. 참 성실하고 착하다고. 여기서 일한 돈을 모아 집에 보낸다고. 언젠가 캄보디아 집 사진을 보여줬는데, 참 근사하더라고. 엄마는 내게 없는, 캄보디아 친구가 있다.


   엄마가 일을 하는 동안, 동생들과 아버지와 통영에 갔다. 엄마가 서피랑을 가보라고 추천했는데, 동피랑과 달리 올라가는 도중에도 그렇고 올라가서도 그렇고 풍경이 한적해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라는 거였다. 엄마는 혼자서 그 길을 올라가 본 적이 있다고 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아버지가 박경리의 글에 나온 우물이 서피랑 근처에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 우물을 글로만 접했는데, 풍경이 예전부터 궁금했다면서 꼭 한번 들르고 싶다고 했다. 예전에 아녀자들로 복작복작했을 우물은 날씨 때문인지 을씨년스러웠다. 아버지는 그리 넓지 않은 우물가를 천천히 둘러봤다. 서피랑 올라가는 길에 박경리 생가가 있어 골목길을 박경리 글귀들로 꾸며 놓았는데, 아버지는 하나하나 멈춰서서 소리내어서 읽어보았다. 동생은 박경리의 시 '산다는 것' 앞에 아버지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다. 거기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골목길에서 아버지는 박경리의 지독하게 고독했을 삶과 이를 버티게 한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다찌집 화장실에서 법정 스님의 구절을 보았다. (처음 가본 다찌집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토록 푸짐한 한 상이라니.) 거기에 '맑은 가난'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맑은 가난. 맑은 가난. 맑은 가난. 나는 이 표현을 곱씹고 곱씹었다. 나도 그러한 삶과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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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일들

from 모퉁이다방 2017. 1. 15. 22:20


2016년은 내게는 좀 특별한 해여서 미뤄두었던 기록들을 남겨본다.

2016년 10월의 일들.




하진이는 9월의 모임에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했다. 세심한 하진이.




언제나 옳은 치맥.




언제나 옳은 거품.




김연수의 문장을 읽는 가을.

서울 구석구석을 오래된 사람의 시선으로 산책하고 싶어졌다.


"이제 서울 시내에서 답교할 다리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나는 명절이면 집집마다 수박들, 붕어등과 풍경을 내다걸고 부녀자들이 소원을 빌며 다리를 걸어다니는 광경을 그리워한다. 백 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우리가 가졌던 가장 아름다운 광경들이 모두 사라졌다. 내가 세태소설을 유난히 좋아하는 까닭은, 박태원의 천변풍경을 두고두고 읽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마트에서 구입한 가을.




상암의 저렴하고 맛난 커피집도 발견했다.




늘 혼자가던 극장을 둘이서 가니 이런 메뉴도 먹을 수 있고,




영화도 좋았다.




나의 애정하는 산책길.




공사장 안내 문구도 마음에 든다.




친구의 새 책이 나왔다.

덕분에 보물상자 같은 소포를 받았다.




내게는 혜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가 여럿 있는데, 작년 리스본에서 나는 두 혜진에게 엽서를 썼고, 한 명의 혜진에게 두 엽서를 모두 보냈다. 10월, 한 명의 혜진이 잘못 도착한 엽서를 보내줬는데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믿어져요? 혜진씨. 지금 리스본이라구요!" 이 엽서의 본래 수신인인 혜진씨는 10월에 혼자 유럽을 여행 중이었다. 갑자기 많은 일들이 아득해 지는 순간이었다.




퇴근길.




사인을 받을 때 슬그머니 고백했다. "한지가 너무 좋아요." "그런데 글씨가 이래서 죄송해요." 작가님은 통통한 하트를 그려줬다. 누군가 말했다. "오늘 와보니, 소설과 작가님이 일치되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일산에 가서 소설가의 이야기를 듣고 왔다.




구름들.




출근길.





상암은 좋은 동네같다. 1인분 양이 많은 양꼬치 집도 발견했다.




동네 생선구이집에서 아침을 먹고,




동네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시는 주말.




열심히 걷고 느긋하게 먹을 것.




10월, 내게 온 책들.



아침 일찍 일어나 불광천길을 걸어 영화를 보러 갔다.




마이크를 쓰라던 야유가 쏟아지던 교실에서부터,

새로 이사온 동네가 떠나갈 듯 큰소리로 인사를 하기까지.




휴일 아침.




휴일 빛.




휴일 점심.




고기 포식.




야쿠르트 아주머니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키리를 사고 있다.




맛은 없었지만, 샤이니 맥주




체중이 늘기 시작해 걸어야 겠다고 생각한 10월. 최은영 작가가 나온 팟캐스트를 들으며 걸었다.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낭독을 하는데, 좋더라. 덕분에 나쁜 기운을 잊었다.




소윤이가 선물해준 치맥 양말 인증샷.




고작 책 두 권 읽었다고, 영화 몇 편 보았다고 그를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런 착각에 빠져 내게는 두 번째이고, 그에게는 첫번째인 책을 읽었다. 그의 새영화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빛나는 류승범.




영화 그물을 보고 불광천 걸은 날. 동네 만두집에서 다음날 먹을 만두를 샀다.






친구 따라 제주도에 다녀왔다.




회식이 있었다. 고기집을 나오는데, 차장님이 이 새하얀 신발이 우리껀가? 물으셨다. 차장님, 저 신발 샀어요. 차장님이 이쁘다며, 금령아 새 신이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준대, 라고 얘기해주셨다. 좋아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맥주학교에 처음 간 날.




초록초록. 구두 신고 출근한 날.





10월의 시옷의 책. 

야근을 하고, 한 정거장 일찍 내려 걷다 책을 30분만 읽고 가자 결심한 날. 그리고 이런 문장들,

- 인간은 혼자 있을 때 가장 솔직해진다.

- 남이 보는 내가 아닌, 내가 보는 내가 진실할 때, 그것이 자유다.




슈가맨에서 첫 눈에 반한 맥주병.




오랜만의 혼술.




주인언니가 맥주 좋아하냐면서 남은 시음술을 계속 가져다줬다.




화장실에서 친구가 좋아하는 테레비오또상을 발견하고,




이쁜 노을을 보며 귀가한 토요일.




아빠에게 면세점에서 산 담배를 보냈고,




막내가 대만에서 사온 차를 같이 포장해줬다.




제주의 행운은 이어지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황작가. 황작가에 손님이 많아져서 전만큼 자주 가질 않는다.




흠. 기대가 컸나보다.




괜찮지 않을까?




10월의 연차, 든든한 아침.




여의도.




책 읽다 와인 좋아하는 동생에게 보낸 페이지.




아쿠. 야쿠르트 아주머니를 또 만나 버리고.




동네에 오래된 맛집에서 옛날돈까스를 혼자 먹었다.

혼자 먹을 땐 참 맜있었는데, 나중에 가족들 모두 갔는데 다들 별로라고. ㅠ




불금.





10월의 시옷의 모임.





극명했던 2차와 3차.


너무나 반가웠던 엽서.




결국 첫눈에 반한 병과 마주하였다.




복층에서 누워 예전에 본 드라마를 다시 보는 재미.




병맥주를 사기 시작했다.




이 맥주는, 제주의 추억.




이 맥주는 괌에서 친구가 사다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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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10월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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