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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가 후
    모퉁이다방 2016. 8. 16. 22:20



       거제에 갔다 삿포로에 다녀왔다. 그리고 삼일을 푹 쉬려고 했다. 토요일 저녁, 삿포로에 함께 다녀온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금령아, 아버지 돌아가셨단다. 나 지금 집에 간다.' 삿포로에서 우리는, 이 나이가 되도록 남편도 없고, 아이도 없고, 집도 없을 줄 고등학교 때 상상이나 했냐며 웃으며 맥주잔을 부딪혔다. 친구는 또 다른 하나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일요일 새벽,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깬 상태에서 티비도 켜지 않고, 음악도 틀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친구를 생각했다. 이제 아버지가 없는 삶을 살아갈 친구. 이 세상에 없는 아버지를 생각하는 삶.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삶. 친구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그 삶을 생각하다 목이 메여왔다. 몇년 전 친구는 많이 아팠다. 친구의 아버지가 소식을 듣고 진주에서부터 차를 운전해 서울의 병원에 도착했다. 그때 아버지를 처음 뵈었다. 그리고 마지막이 되었다. 아버지는 정신이 없는 친구에게 집에 가자고 했다. 친구의 이름을 계속 부르며, 괜찮다고 괜찮다고 했다. 


       친구는 계속 울었다. 국이 맛있다고 떠다 주면서, 사이다 캔을 따서 따라주면서 계속 울었다. 그리고 흐느끼며 말했다. 아버지 없이 어떻게 사느냐고.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친구에게 휴지를 건네주고, 친구가 떠다준 국을 떠먹고, 친구가 따준 사이다를 마셨다. 그리고 살아야 한다고, 아버지가 살지 못한 삶까지 더 잘 살아야 한다고, 서울에 오면 맛있는 양고기를 사주겠다고 종이에 꾹꾹 눌러 적어 건넸다. 친구 덕분에 아빠를 한번 더 보고 올라왔다. 아빠는 맛있다며 곱창전골집에 데려갔다. 가게 이름이 대장금 식당. 아빠는 내 몫으로 맥주 한병을 시켜주고, 자신은 물만 마셨다. 아빠는 위가 좋지 않은 뒤로 술을 끊으셨다. 그리고 잘 익은 곱창 덩어리들을 내 커다란 밥그릇에 듬뿍 떠 얹어 주셨다. 나는 아빠와 하룻밤을 보내고 올라왔다. 서울에 와서는 집에 바로 들어가기가 그래서 극장엘 갔다. 겨우 <덕혜옹주> 표를 구했다. 이번에도 허진호는 돌아오지 않았다. 영화의 마지막, 덕혜옹주가 말년에 적은 글이 나온다. 폭염이 한창인 거제에서 식당으로 가는 도로 위에서 아빠가 했던 말이기도 한 그 글.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김윤아의 '고잉 홈'을 들으며 불광에서 응암까지 걸어왔다. 친구에게 가사를 적어줘야 겠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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