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BGM 김동률_취중진담
이승환_다만
01. 헤헤. 알라딘 TTB 리뷰에 뽑혔다. 적립금 5만원 받았는데, 우리 가족이 모두 5명. 읽고 싶었던 책을 골라서 주문하기로 했다. 이거 기분 좋구만. :)
02. 요즘 동생이 도서관에서 빌려온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를 읽고 있다. 이 책 장난이 아니다. 얼마나 눈물을 빼놓는지 모른다. 기억에 남아 메모해 놓지 않고는 못 배길 구절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이런 책이 내게 온 것에 감사, 또 감사.
03. 오늘 오래간만에 비가 듬뿍 왔다. 뭐 하루종일 온 거 아니지만. 이제 개는거야? 하면 쏴아 오고, 이제 그만 오는거야? 하면 또 쏴와아 오고. 요즘 너무 더우니깐 비 오는 날이 좋아.
04. 동생이랑 저녁에 집에서 삼겹살이랑 돼지갈비를 구워먹으면서 매화수 일잔했다. 그러면서 동생이 얼마 전에 라디오를 들었는데 너무 좋았다고 노트북을 가져다가 다시듣기를 해줬다. 조정린 강인의 친친이였는데, 이소은과 일락이 게스트였다. 이런 저런 사연들을 읽다가, 일락이 이런 사연을 읽었다. 김동률에게 직접 보내는 편지라면서, 어쩌자고 이런 노래를 만들었냐고. 강인과 일락은 이 노래가 남자들의 로망이라고 했다. 김동률의 '취중진담'. 다시 들어도 여전히 명곡이다. 나는 매화수를 일잔하며 이건 남자의 로망만이 아니야, 라고 외쳤다. 내게도 술에 취해 노래를 불러주겠다고 안 되는 목소리를 꽥꽥 올려가며, 지 흥에 취해서 이렇게 저렇게 노래를 부르던 남정네가 있었단 말이지. 이제는 그런 남정네따위 '취중진담'을 들으면서 기억조차 희미해졌지만. 연애세포를 살려야 해. 이 생각뿐이다.
덧, '다만'이 김동률이 작사, 작곡한 노래구나.
아, 좋구나. 아득한 시간.
'모퉁이다방'에 해당되는 글 450건
- 오늘 07.07.11 2007.07.12
-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는 이유 15 2007.07.05
- 그 사람, 잘 지내고 있을까? 4 2007.07.03
- 오후 두 시의 늦잠 2007.06.04
- 조성우의 영화음악 콘서트 2007.06.04
- 주말의 라디오 2007.06.03
- 메리의 라디오 살인 2 2007.06.01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7.05.21
- 도서관 2007.05.15
- 괜찮다. 2007.05.05
얼마전 술 마시고, 물건 세 가지를 잃어버렸다.
핸드폰.
핸드폰 이어폰.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핸드폰은 택시에 두고 내린 거였다. 아저씨랑 협상 끝에 3만원을 드리기로 하고 집 앞까지 와 주셨다. 아는 분에게 '오늘 핸드폰을 택시에서 잃어버렸는데, 아저씨가 3만원에 가져다 주셨어요. 아저씨가 착하신 거 같아요.' 라고 했더니, 3만원 받고 착한 아저씨였다고 하는 세상이라니, 라고 하시더나. 잃어버린 내가 바보인게지.
요즘 핸드폰으로 라디오도 듣고 음악도 들어서 꼭 필요한 게 이어폰인데, 다시 찾을 방법이 없을 것 같아 인터넷에서 저렴한 가격을 찾아 주문했다. 그런데 이어폰이 너무 엉망이다. 예전 이어폰은 음질 최고였는데, 이번 이어폰은 너무 웅웅 울려서 음악을 잘 들을 수가 없다. 어찌나 예전 이어폰이 그립던지. 다시 사야되는거야?
술 마시러 가는데 왜 책을 가지고 나갔는지. 그것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혹시나 주은 사람이 우체통에라도 넣어줘서 도서관에 반납되지 않을까 일말의 희망으로 반납일까지 기다렸는데, 오늘로 연체 1일이다. 도서관에 전화해서 분실했으니 사서 반납해도 되냐고 문의를 하고, 방금 인터넷에서 주문했다. 다 읽지도 못했는데, 연체는 벌써 시작되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며,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도 새책 신청해서 어제 들어왔던데 그새 누가 빌려가겠구나. 언제 읽을 수 있을까나.
아, 역시 술은 과하면 안되는 것이니라. 요즘 내가 금주하고 있는 이유다. 그나저나 이어폰의 행방은 궁금하지가 않은데, 면목정보도서관이라는 바코드가 박혀있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누군가 주워서 읽고 있을까? 메타포에서 끊겨버린 나의 우편배달부.
여름, 겨울의 버스정류장을 생각하다.
스물 한 살의 늦가을이였나, 초겨울이였나. 그 사람을 만났다. 울퉁불퉁한 골격에 어울리지 않게 수줍게 고개를 숙이며 웃어대던 그 사람. 이제는 성이 조씨였나, 이씨였나 기억이 희미한 그 사람.
한 가지 또렷한 기억은 버스정류장에 서 있던 그 사람의 뒷 모습이다. 담배를 피웠던 그 사람은 제법 쌀쌀한 버스정류장에 서서는 자꾸만 타야할 버스를 그냥 보냈다. 한 대를 보내고, 두 대를 보내고, 세 대를 보냈을 때, 피우던 담배를 발 끝으로 껐다. 금방 차를 마셨으면서 한번 더 커피숍에 들어가자고 했다.
따뜻한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시킨 그 사람 손이 떨렸다. 찻잔을 잡은 그 커다란 손이 덜덜덜 떨렸다. 담배를 한 대쯤 더 피웠던 거 같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말했다. 그 몇십여분의 행동들이 얼마나 옆에 있는 사람을 설레이게 만들었는지 나는 다시 커피숍을 나와 버스정류장을 지나 지하철역까지 걸으면서 그러자고 말했다.
나는 서툰 사람이 좋았다. 능숙하게 고백하거나 멋진 말을 건네는 것보다 서툴게 건네는 마음이 좋았다. 나도 서툰 사람이였으므로.
그 사람은 그날 나를 덕수궁 돌담길로 데려갈 작정이였다고 했다. 그 길을 나란히 걸으면서 이 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걸으면 결국 깨지게 된다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자, 라고 말할 작정이였다고. 그랬다면 나는 와르르 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너무 촌스럽잖아. 나는 그 사람의 떨리는 손이 훨씬 좋았다. 초조하게 담배를 피워대던 정류장의 뒷모습이 훨씬 좋았다.
결국 그 사람과 나는 그 뒤 딱 한번 더 만났을 뿐이지만, 조씨인지 이씨인지 모를 그 사람의 뒷 모습과 그 때 내가 살던 춥고 조용했던 곳의 버스 정류장, 그리고 설레였던 나의 마음은 아직도 생생하다. 특히 오늘같이 더이상 버스정류장에서 담배를 피지 못한다는 뉴스를 접한 날에는.
그 사람, 잘 지내고 있을까?
오후 두 시. 일요일의 늦잠.
깨어나고 싶지 않은 꿈을 꿨다.
잡을 수 있다면, 잡고 싶은 꿈.
First One Up
Paul G. Oxborough
나는 빠순이다. 나를 미치게 만드는 오빠야들이 몇몇 있다. 그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요 라인. 유지태, 허진호, 조성우로 이어지는 너무나 환상적인 라인.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도 <봄날은 간다>.
어제 <시네마 인 오케스트라> 공연에 다녀왔다. 신지혜의 영화음악을 듣다가 초대이벤트 멘트를 듣고, 가고 싶은 마음 꾹꾹 담아 신청했는데 이벤트에 당첨되었다. 이 공연때문에 금요일 하루종일 얼마나 설레였는지 모른다. 예전에 이병우의 영화음악 콘서트에도 다녀왔었다. 우리나라 영화음악가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는 이병우와 조성우. 이병우의 음악은 구슬프고 독특한 느낌이고, 조성우는 아련하고 아름다운 느낌이다. 사실 이병우도 좋지만, 나는 조성우 음악들이 더 좋다. 스크린 속에 이야기들을 따라가고 있다가 조성우의 음악의 첫소절이 흐르기 시작하면 가슴이 탁하고 막히는 벅차는 순간들이 있다. 영화 속에 더 빠지게 만드는 그 마법의 선율들.
콘서트는 영화 속 장면들을 무대 뒤 스크린으로 보여주고, 오케스트라가 그 영화음악들을 연주하는 형식이였다. 초대석이라 그런지 자리가 2층 거의 뒤여서 무대도 작게 보이고, 스크린도 반이나 잘려서 보였지만, 반밖에 나오지 않는 스크린으로 어떤 장면인지 어떤 표정인지 생생하게 머릿 속에 그려졌다. 이 영화들은 한번, 혹은 두번 세번 보았으니까. 벚꽃 길 위에서 은수가 뒤돌아서 걸어가고 그때의 상우의 희미한 표정, 해변가에서 낯선아이에게서 사랑하는 사람이 작곡한 음악을 우연히 듣게 된 연희의 막막한 표정, 진국을 사랑하던 연순의 젊은 날의 수줍은 사랑의 모습들, 효신과 시은이 누워있던 눈부신 지붕의 풍경들, 남편의 불륜으로 저지른 교통사고로 죽은 이의 상가집을 다녀오는 길에 도로 위에서 엉엉 울음을 토해내던 서영의 몸짓. 모두가 생생했다.
조성우는 천재같아. 어떻게 이런 곡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공연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큰 공연에 오를 때마다 떨려서 술을 마시게 된다고 하던 어떤 인터뷰기사가 생각이 났다. 그는 오늘도 술을 마셨을까. 허진호 감독이 무대 위로 올라와 우린 대학동기예요, 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이 놀라며 웅성거리던 이유, 일찍 빠져버린 머리카락들만큼 얼마나 영화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까. 이 날 공연에 축하해주려 온 허진호, 이명세, 김태용, 박흥식, 오기환, 유지태, 손예진. 콘서트가 끝나고 다 같이 술자리를 가지며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겠지. 나도 그쯤에 끼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들.
너무 빠순이티 많이 냈나? 다녀와서 미니홈피에 가지고 있던 조성우 음악들로 죄다 걸어놓았다. 당분간 또 요 음악들에 빠져서 지낼테다. 아, 나를 꿈꾸게 만드는 음악들.
2006/07/22 12:48 이글루스
다시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을 때, 가장 신기했던 건 문자로도 사연과 신청곡을 받는다는 사실이였다. 어찌나 신기하든지. 세상이 변하긴 변했구나, 감탄했었다. DJ들이 읊어주는 휴대폰 끝 4자리의 숫자에 님이라는 존칭이 붙여지는 그 소리의 감촉이 참 좋았다. 특히 조규찬의 조곤조곤한 소리로 발음되어질 때.
그러던 어느 날, 나도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문자를 보내면 답문이 온다는 사실도 알았다. 비록 미리 저장되어진 멘트가 자동으로 전송되는 것이지만. 어떤 방송의 답문은 계절에 관한 인사였고, 어떤 방송의 답문은 시간에 관한 것이였다. 결국 단 한번도 내 휴대폰 뒷 끝자리의 숫자는 읽혀지지 않았지만, 문자를 보낸 날이면 왠지 나만의 고 4자리 숫자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아 귀를 쫑긋 세우고 긴장하면서 듣곤 했었다.
약수터까지 산책을 하게 된 토요일 저녁. 나는 이 길을 걷고 있는 나의 기분, 공기의 촉감,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하늘의 색깔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었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길을 걸으면 꼭 라디오의 DJ와 나란히 함께 걷는 것같은 기분 좋은 착각이 들곤 한다. 문자 3통에 글자들을 꾹꾹 눌러담아 평소 저장해 놓은 번호로 전송에 전송을 시도했다. 3통 안에 하고 싶은 단어들을 다 넣으려니 어찌나 한 통당 제한 글자수가 적게만 느껴지는지. 길가에 서서 십여분이 걸려서야 전송완료를 하고 뿌듯해하고 있던 차였다. 이처럼 상콤한 문자는 DJ가 읽어줄 수 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 차에, 동생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 라디오는 주말에는 거의 다 녹음방송이야.
그 순간, 나는 얼마나 분개했던가. 라디오 DJ들도 작가들도 PD들도 주5일제였단 말인가. 이럴수가 있는가. 생각해보니, 오늘 방송에 신청곡을 받는다는 DJ의 멘트는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사연과 음악 뿐. 일주일동안 도착한 사연들을 녹음방송해주는구나. 라디오마저도 주5일제구나. 그래, DJ들도 주말에는 쉬어야지. PD들도, 작가들도. 그래야지. 그래, '뭐 주말에 우리도 쉬어야 하지 않겠어요? 안 그럼 데이트는 언제한단 말입니까! 라디오, 주5일제입니다'라고 오프닝 멘트를 하고 시작할 수도 없지 않겠어? 미처 모르도 문자질을 해댄 내가 바보지. 마음을 추스렸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주말 라디오 방송은 잘 듣지 않는다. 왠지 주말의 라디오는 가짜인 것만 같다.
마이앤트메리
마이앤트메리 공연을 다녀왔다. 요즘 하루종일 메리 노래들만 듣는다.
공연을 하면서 중간중간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는 자유로운 메리이모들.
노래들은 손에 쥐고 있던 맥주와 담배를 내던져버리고 콩콩 뛰어올라야 될 것만 같은 느낌들.
아, 내가 지금까지 이 감미로운 밴드를 모르고 지내왔다니.
아, 내가 지금까지 이 멋진 남정네들을 모르고 지내왔다니.
후회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못 들은 것만큼 몰아서 무한정 반복해서 듣고 있다보면
어느 순간, 심장이 콩콩 뛰다 떨어져 나갈 것만 같다. ^ ^
이 봄, 행복한 이 느낌. 키핑해두고 싶다.
라디오
요즘은 라디오를 듣는다.
예전에는 티비를 켜놓고 자지 않으면 무섭고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 티비소리가 소음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요즘은 집에 혼자 있을 때는 티비도 끄고 어떤 날은 라디오도 켜지 않고
집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만들어 내지 않고 창문 밖의 동네 골목길에서 나는 소리만 듣고 있다.
동생이 KBS 라디오를 좋아해서 우리집 라디오 주파수는 거의 89.1이다.
이번주를 마지막으로 KBS 라디오가 대대적인 개편에 들어간다.
DJ들이 대거 바뀌게 되고, 기존 DJ들이 이번주에는 게스트들과 모두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다.
월요일의 게스트에게는 그동안 고마웠어요,
화요일의 게스트에게는 다른 곳에서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요,
수요일의 게스트에게는 수고하셨어요.
이 인사들을 매일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듣고 있다보면 슬퍼진다.
유열도, 김구라도, 강수정도, 이금희도, 제일 좋아하는 방송이었던 김동률도.
모두들 이별을 슬퍼하지 말자면서 밝은 목소리로 쾌활하게 인사를 하는데, 왜 이리 슬플까.
특히 김동률이 안녕,이라고 말하고 이소은이 깔깔거리며 웃으면서 헤어져요,
하는데 눈물이 고여 버렸다.
익숙한 것.
늘 그 시간, 그 자리에 존재하던 것들이 통째로 사라져 버리는 것.
그리고 마지막이라는 단어.
마지막 방송.
마지막 멘트.
마지막 인사.
라디오 DJ들의 안녕,이라는 인사를 듣고 있다보면
늘 같은 시간, 방송국에 출근해서 라디오 부스에 앉았던 그 익숙한 두 시간동안을
개편 첫날, 그 시간에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혼자서 상상해보곤 한다.
살인의 해석
신문에서 광고를 보자마자 바로 주문했다.
살인을 해석하는 프로이트와 융.
책은 500페이지가 넘게 두꺼웠고,
알고 있지만 여전히 모르는 심리학 이론들이 책 구석구석 박혀 진도가 쉽게 나가지가 않았다.
책을 읽다가, 놓아두고, 다른 책을 읽다, 놓아두고를 반복한지 한 달만에 다 읽었다.
두꺼운 책을 다 읽고나면 왠지모를 허무함이 느껴진다.
앍는 중에는 끝내고 말았다는 뿌듯함을 얼른 느껴야지 생각하면서 책장을 바삐 넘기는데 말이다.
책의 내용이야 어찌됐든 당분간 이 책의 감촉을 잊어나가야 한다.
이 책을 한 손으로 잡았을 때 두께의 느낌들을.
아무튼 제드 러벤펠드, 이 작가 대단한 것 같다.
수십명의 실존 인물들과 실제의 사건들을 엮고 또 엮어 하나의 소설로 만들어내다니.
쉽지 않은 작업이였을 거라고, 내용이야 아쉬움이 많지만,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요.
일년에 한번씩은 꼭 꺼내서 보고 싶은 영화들이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영화와 책도 그리고 그 속의 주인공들도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마음에 들었던 영화를 시간이 지난 후 여러번씩 보기 시작한 이후에 알게된 사실이지요. 제가 나이를 먹듯 영화와 책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래서 처음 볼 때와 두번째 볼 때, 세번째 볼 때에 공감되는 주인공이 달라지고, 이해되는 그이들의 정서가 달라지고, 눈물이 쏟아지는 순간들이 달라지곤 합니다. 제게 그런 영화가 두 편 있는데요. <봄날은 간다>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입니다.
오늘 저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다시 살포시 꺼내봤습니다. 조제를 처음 만났건, 유난히도 추웠던 작은 종로의 어느 극장에서였습니다. 저는 친구와 영화를 보러 갔는데, 어떤 한 여자분이 혼자 영화를 보러 오셨어요. 토요일 마지막 타임의 영화를요. 그리고 식사를 걸렸는지 햄버거를 영화 시작 전에 허겁지겁 먹고 있었어요. 쫄쫄거리며 콜라를 들이키고, 짭짤한 포테이토도 우걱우걱 씹어가면서요. 그리고 영화 시작했습니다. 제목도 마음에 들고, 배우들도 마음에 드는 이 영화는 무덤덤한'척' 사랑을 시작하고 담백한'척' 사랑을 끝내는 두 사람의 이야기였습니다. 주인공인 조제가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긴 했지만, 그 불편따위는 이 영화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랑하고, 시간이 지났고, 단지 지루해진거죠. 우리들의 사랑이 그렇듯이요. 하지만 그 담백한'척'하는 이별이라는 게 너무나 담담해서 마지막에 남자 주인공, 츠네오가 그렇게 길거리에서 엉엉 울어주지 않았다면 저는 그 두 사람의 사랑의 존재라는 걸 믿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어요. 다행이였어요. 그가 그렇게 엉엉 울어줘서. 츠네오의 동생이 제사에 못 간다는 형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형 지친거야?" 라고 묻고, 이어지던 츠네오가 조제를 바라보던 눈빛은 잊을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옆에 앉았던 그 여자. 버거킹 햄버거 세트로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토요일 마지막타임 영화를 혼자 보러 왔던 옆자리의 그 여자가 영화가 끝나고도 자리에 남아 계속 눈물을 닦아내더라구요. 주루룩 계속 눈물이 흐르는지 자꾸만 휴지로 얼굴을 닦아내던 그 여자분을 뒤로 하고 영화관을 나섰던 왠지 무척이나 쓸쓸한 토요일 그날 밤으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1년 뒤, 광화문의 한 극장에서 재상영을 하였고, 그렇게 두번째 조제를 만났습니다. 역시 추운 겨울이였는데, 영화가 끝나고 광화문에서 종로까지 걸어오면서 저는 처음으로 영화의 끝장면처럼 조제가 이 도시 어딘가를 힘차게 휠체어를 끌고 달려가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조제에게 편지를 썼어요. 쑥스럽지만요.
조제, 안녕? 잘 지내니? 어떻게, 요즘도 휠체어는 몰고 다니니?
너를 만나고 나오는 길에 휠체어를 탄 남자를 만났어.
그 남자애는 커다란 치마입은 여자애를 옆자리에 떡하니 태우고
사람들 보란듯이 신나게 운전해대며 광화문에서 종로까지 질주하더라.
너는 어떠니? 여전히 물고기를 굽고 있지? 맛있는 계란말이와 함께.
그런데 이건 좀 이상하지 않니?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너는 그렇게 물고기를 좋아했으면서
늘 죽은 물고기를 맛나게 굽고 그걸 밥에 얹어 먹어댔잖니.
어쩐지 논리에 맞지 않는 일이라 생각해.
뭐 니가 그게 뭐 어때서, 라고 볼멘소리로 말한다면
나도 할말은 없지만 말이야.
조제, 여긴 이제 겨울이야. 왠지 쓸쓸한 느낌이 들지만 난 겨울이 좋아.
어딘가 니가 나는 한번도 가 본적도 없는 오사카 한 귀퉁이에서
살아가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냥 니가 존재했음 좋겠다.
그렇다면 왠지 마음이 한순간 따뜻해질 거 같애.
조제... 츠네오는 가끔씩 니 생각 하나 보더라.
그때 니네 둘이 찍은 여행사진을 가끔 보나봐.
츠네오는 조제는 두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이래.
조제도 그래? 가끔 생각나?
그런 아이따위, 라며 볼이 퉁퉁 부운채로 말하겠지?
나는 그런 조제가 참 좋아. ^ ^
또 나중에 보러 올께.그때까지 잘 지내고 있어야 해.
겨울냄새와 조제는 닮았어.
-2005년 서울에서
그 이후, 여전히 일년에 한번씩 저는 조제와 츠네오를 만났습니다. 영화 속에서 조제와 츠네오는 늘 그자리에 변함없이 나를 맞이해줘요. 올해 겨울은 우리 세 사람의 네번째 만남쯤 되겠네요.
도서관에 가서 보고 싶은 책을 모두 찾았다.
방각본 살인사건.
로큰롤 보이즈.
뷰티풀 마인드.
1001개의 거짓말.
그리고 2007년 이상문학상 작품집.
아무도 앉지 않은 책상에 자리잡고 앉아
가져온 책을 모두 내 앞에 쌓았다.
조금씩 뒤적거리다가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었다.
내 친구가 한때 열광했던 전경린을 읽고,
요즘 내가 열광했던 김애란을 읽었다.
긴 시간을 들여 한줄한줄 씹어 삼키니
처음에는 조용한 도서관에 쩍쩍거리는 운동화 소리들이 신경에 거슬리고
점점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공허해서 자꾸만 텅 빈 소리가 나던 내 가슴이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도서관이 답답해졌다.
로큰롤 보이즈만 살짝 빼내어 대출을 하고 종합자료실을 나왔다.
도서관 밖으로 나와
50원짜리 동전 네 개를 집어 넣고 고급밀크커피를 한 잔 뽑아마셨다.
얼마전 한 사촌이 내게 말했다.
누나는 작가가 됐음 좋겠어.
왜?
그냥. 누나가 미니홈피에 쓴 글들이 좋아.
나는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 내가 작가가 되었음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사촌언니의 돌잔치를 다녀오며, 또 다른 사촌이 내내 중얼거리던 말.
얼마나 좋아야 결혼이라는 걸 하는걸까?
나는 오늘,
얼마나 잘 써야 작가가 될 수 있는걸까?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