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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날, 타이페이
    여행을가다 2015. 1. 10. 18:46

     

     

     

     

     

     

     

     

        2014년 11월 1일 토요일의 일. 대만에 가기 전, 검색을 하면 제일 처음에 나오는 회원수가 가장 많은 대만 여행 카페에 가입을 했다. 출퇴근길 카페에 들어가 사람들이 어딜 가는지, 뭐가 맛있는지 들여다 봤다. 가장 많이 본 건 날씨에 관한 글이었다. 도쿄에 갔을 때 있는 내내 날씨와 다르게 옷을 입어 고생을 했다. 이번 여행에는 기필코 날씨에 맞는 옷을 입으리라. 10월 말의 타이페이 날씨는, 카페 사람들이 올리는 글에 의하면 무척 더웠다. 낮에는 짧은 바지에 반팔을 입고 다녀야 할 정도라고 했다. 그런데 또 날이 어두워지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무척 쌀쌀하단다. 도대체 어떻게 옷을 챙겨야 할지. 친구에게 이 소식을 전하니, 친구는 11월의 타이페이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가을날씨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타이페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사과했다. 타이페이는 아직 늦여름 날씨였다. 무척 더웠다. 그래서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사람들 땀내가 진동했다. 나는 도쿄에서와 마찬가지로 타이페이에서도 5일 내내 날씨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다녔다. 혹시 추워질까 해서 무겁게 입고 나갔지만, 내내 더웠고, 오늘도 덥겠지 가볍게 입고 나가면 칼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첫 날을 제외하고는 흐리거나 비가 왔다. 일본이며, 대만이며 섬나라는 비가 참 자주 오는구나 생각했다.

     

       숙소는 우리나라의 명동과 같은 번화가 시먼딩. 햇볕이 쨍쨍했다. 우리는 날씨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긴 상의와 하의를 입고, 짐을 끌고 시먼딩 거리를 헤맸다. 한 할아버지와 한 젊은이에게 길을 물어봤는데, 두리뭉실하게 얘기를 해줘 여기다 싶은 곳에 가보면 건물이 없었다. 그러다 (무척 저렴하고, 타이페이에 온 사람들은 누구나 산다는 데이터 무제한 유심칩을 우리도 구입했는데, 괜히 샀다. 이 때 빼곤 꺼내질 않았다) 인터넷으로 정확한 위치를 찾아보려고 멈췄는데, 혹시 옆이 아닐까 하고 모퉁이를 슥 돌아보니 거기 숙소 건물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운이 풀리려는지, 숙소에서 공짜로 방을 업그레이드해줬다. 입실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아 짐을 맡기고 주변을 돌아봤는데, 일본식 소바와 닭튀김을 파는 가게에 사람들이 많았다. 거기서 풍겨져 나오는 냄새가 무척 좋았는데 (우리는 라운지에서 뭘 좀 챙겨 먹고, 비행기 타자마자 기내식도 먹고, 겨우 3시간 정도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배.고.팠.다) 대만까지 와서 일본 음식을 먹을 수 없다 하고 옆가게에서 망고 주스를 샀다. 그런데 이것도 생망고 주스인 줄 알았는데 제조과정을 지켜보니 그냥 망고액 슬러쉬였다. 그런데 맛있었다. 시원했고. 식욕이 더 돌았다. 그렇다면 소바도 먹어볼까, 배도 고픈데. 해서 소바와 닭튀김을 시켜서 가게 앞 작은 벤치에 앉아 먹었다.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있었다. 맛있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열쇠를 받고 방으로 들어왔는데, 방이 너무너무 넓었다. 대만 숙소는 좌변기만 있는 화장실, 샤워를 할 수 있는 샤워실이 각각 있고, 세면대는 밖으로 나와 있었다. 5일동안 있었던 두 숙소가 모두 그랬다. 업그레이드된 방은 넓고 쾌적하고 시원했다. 아직 이른 오후인데도 너무 피곤했다. 생각해보니 우리 새벽 5시부터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러니 좀 쉬고 나가자며 폭신폭신한 침대에 누웠다. 이렇게 누웠있다가는 내일 아침에 일어나겠다 싶을 때 몸을 일으켰다. 오늘의 계획은 용산사에 들렀다 스린야시장에 다녀오기.

     

       용산사까지는 한 정거장. 지하철 역을 나오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우산을 하나만 가져와서 그것도 숙소에 있어서 제일 싼 노란색 장우산을 하나 샀다. 결국 이 우산도 이 날만 썼다. 가이드북에 의하면 용산사는 밤에 더 근사하단다. 불빛들 때문에. 여행 전에 본 대만 여행 프로그램에 의하면, 대만 사람들은 큰일을 앞두거나,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신에게 찾아가 기도를 한단다. 그게 일상이란다. 용산사에도 다양한 신들이 모셔져 있었다. 임신을 관할하는 신, 학문을 관할하는 신, 자손의 번영을 관할하는 신, 연애와 결혼을 관할하는 신 등. 기도를 해보려고 기도하는 법을 따로 적어왔다. 향초를 사서 각 신전 앞 향료에 향초 하나씩 불을 붙여 꽂고 이름, 출생지, 생년월일을 속으로 되뇌이며 소원을 빈다. 그리고 출구 앞으로 다시 와서 반달 모양의 패 2개를 들고 소원을 빌고 바닥에 던진다. 패 2개가 각각 다른 방향이면 신이 '너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의미. 그 전에 큰 통 안에 있는 길다란 막대기를 하나 뽑아 나오는 숫자를 기억해둔다. '신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패가 나오면 한약방 서랍 같은 곳에서 그 숫자의 칸에 들어있는 종이를 가지면 된다. 그 종이에는 매우 좋음, 좀 좋음, 일부는 좋고 일부는 별로임, 안 좋음. 이런 운이 적혀 있다. 친구는 하지 않기로 했고, 나는 향초를 샀다. 신전들을 돌며 향초의 불을 붙이고 향료에 꽂았다. 나는 어느 신에게 내 소원을 강력하게 빌지 미리 정해왔다. 월하노인. 연애와 결혼의 신. 그래, 이제 연애를 해보자. 그래보자. 그리고 단번에 다른 방향의 패가 나왔다. 흐흐. 친구랑 대박을 외치며 관광객과 현지인으로 인산인해인 용산사를 빠져나왔다.

     

        용산사에서 나와서 바로 야시장으로 갈까 하다 다른 날 일정을 생각해보면 E가 그렇게 극찬하고, 가이드북에서 타이페이에서 꼭 먹어봐야 할 것이라고 강추했던 천싼딩의 쩐주나이차, 그러니까 버블티를 마시지 못할 거 같아 버블티를 먹으러 야시장과 방향이 정반대인 공관역에 갔다. 여행가기 전까지 이번 가이드북에 대한 만족도가 굉장히 컸는데, 직접 와서 다녀보니 설명이 두리뭉실해 꽤 헤맸다. 여기서도 '직진하다 왼쪽 골목'이 도대체 어느 골목인지 헷갈려 헤맸다. 어찌어찌하여 찾은 천싼딩. 역시나 줄은 길었지만, 버블티 나오는 속도가 빨라 줄은 금방 줄었다. 버블티를 마시기 시작하는데 생각났다. 아, 우리 밥 먹고 3시간도 안 지났지. 처음에는 달작지근하니 맛있었는데, 이 커다란 우유차를 끝까지 마시자니 배가 터질 것 같았다. 그래서 온전히 맛을 음미하지 못했다는. 여기까지 와서 먹는데 조금만 먹고 버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다 마시고, 배를 꺼뜨리기 위해 걸었다. 우린 또 야시장에 가서 먹어야 하니. 걷다 보니 대학교가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타이완 대학교였다. 어두워서 아무 것도 안 보였는데, 교내에 아주 커다란 야자수 나무들이 줄지어 길게 심어져 있었다. 어두워서 나무의 실루엣만 보였는데도 근사했다.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귀교하고 있었다. 어둠이 내려 앉은 학교는 조용했다. 걸으면서 하와이 여행을 함께 가자고 한 친구 이야기를 했다.

     

        스린 야시장은, 흠. 그러니까 토요일의 스린 야시장은, 그러니까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2014년 11월 1일 토요일의 스린 야시장은, 그러니까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아 후덥지근한데다 비까지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한 2014년 11월 1일 토요일의 스린 야시장은, 그러니까 (마지막이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아 후덥지근한데다 비까지 보슬소슬 내리기 시작한 '타이페이에서 가장 붐비는 야시장'으로 유명한 2014년 11월 1일 토요일의 스린 야시장은, 오래 머무를 데가 못되었다. 사람들이 미어터졌다. 그래서 더 더웠다. 이걸 좀 먹어볼까, 이건 뭘까 구경하려고 하면 뒤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앞에도 사람들이 우르르. 결국 사람들에 밀려 이리저리 다니다가 원래 목표로 했던 시장 초입의 대왕 치킨까스 두 덩이를 포장해 왔다. 아, 시식하다 맛있어서 산 돼지고기포도. 시장에서는 도저히 무얼 먹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먼딩 역에서 숙소까지 걸어오다 소세지도 샀다. 먹음직스럽게 보였던 평범한 소세지 하나랑 정체모를 하얀 소세지 하나. 편의점에서는 타이완 맥주와 물을 사고, 키티 스티커도 받았다. 그리고 사람이라곤 우리 둘 뿐이고 에어컨 덕분에 무척 시원한 숙소로 들어와 씻고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치킨까스, 소세지도 먹었다. 정체모를 하얀색은 밥이었다. 밥을 소세지 모양으로 만들어 짭잘한 양념을 발라 구운 것이었다. 그거랑 돼지고기포가 제일 맛있었다. 맥주를 2캔쯤 마시니 눈이 저절로 감겼다. '이래서 좀더 젊을 때 여행을 많이 다녀...', '저질 체력...' 이딴 생각들 틈도 없이 눈이 감겼다. 그래서 우리 자자 하고 양치하고 잤다. 타이페이에서의 첫날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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