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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사람, 잘 지내고 있을까?
    모퉁이다방 2007. 7. 3. 19:17


    여름, 겨울의 버스정류장을 생각하다.


        스물 한 살의 늦가을이였나, 초겨울이였나. 그 사람을 만났다. 울퉁불퉁한 골격에 어울리지 않게 수줍게 고개를 숙이며 웃어대던 그 사람. 이제는 성이 조씨였나, 이씨였나 기억이 희미한 그 사람.

        한 가지 또렷한 기억은 버스정류장에 서 있던 그 사람의 뒷 모습이다. 담배를 피웠던 그 사람은 제법 쌀쌀한 버스정류장에 서서는 자꾸만 타야할 버스를 그냥 보냈다. 한 대를 보내고, 두 대를 보내고, 세 대를 보냈을 때, 피우던 담배를 발 끝으로 껐다. 금방 차를 마셨으면서 한번 더 커피숍에 들어가자고 했다.

        따뜻한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시킨 그 사람 손이 떨렸다. 찻잔을 잡은 그 커다란 손이 덜덜덜 떨렸다. 담배를 한 대쯤 더 피웠던 거 같다. 그리고 그 사람이 말했다. 그 몇십여분의 행동들이 얼마나 옆에 있는 사람을 설레이게 만들었는지 나는 다시 커피숍을 나와 버스정류장을 지나 지하철역까지 걸으면서 그러자고 말했다.  

        나는 서툰 사람이 좋았다. 능숙하게 고백하거나 멋진 말을 건네는 것보다 서툴게 건네는 마음이 좋았다. 나도 서툰 사람이였으므로.

       그 사람은 그날 나를 덕수궁 돌담길로 데려갈 작정이였다고 했다. 그 길을 나란히 걸으면서 이 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걸으면 결국 깨지게 된다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자, 라고 말할 작정이였다고. 그랬다면 나는 와르르 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너무 촌스럽잖아. 나는 그 사람의 떨리는 손이 훨씬 좋았다. 초조하게 담배를 피워대던 정류장의 뒷모습이 훨씬 좋았다.

       결국 그 사람과 나는 그 뒤 딱 한번 더 만났을 뿐이지만, 조씨인지 이씨인지 모를 그 사람의 뒷 모습과 그 때 내가 살던 춥고 조용했던 곳의 버스 정류장, 그리고 설레였던 나의 마음은 아직도 생생하다. 특히 오늘같이 더이상 버스정류장에서 담배를 피지 못한다는 뉴스를 접한 날에는.

       그 사람, 잘 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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