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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서재를쌓다 2012. 5. 28. 13:07

     

       머리를 자르고 이소라의 공연에 갔다. 머리를 자르러구요. 짧은 단발루요. 그러니까 아, 더워 보여서요? 시원하게? 그랬다. 내 머리 더워보였나보다 생각했다. Y언니랑 이대에서 만나 명란젓 스파게티와 오늘의 초밥을 먹고, 걸어서 서강대까지 갔다. 메리홀 앞의 벤치에 앉아 아이스 커피를 마시면서 서강대 축제소리를 들었다. 쟤네들은 젊어서 좋겠다, 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공연을 보고 투다리에 가서 깻잎말이 꼬치에 맥주를 마셨다. 언니에게서 도쿄에 다녀온 이야기, 새로운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또 쓸데없는 말들을 언니 앞에서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여름이 되면 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여기가 전주였음 좋겠다, 언니가 말했다. 걸어서 집에 막 가구요, 내가 그랬다. 아멘, 티어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봄. 이 날 들었던 좋았던 노래들의 제목들도 읊었다.

     

       화장실에 갔는데 곡예사 언니에게 메세지가 왔다. 오늘 김연수의 신작단편을 읽고는 조금 울었어. 이소라는 오늘 너를 울렸을까. 토요일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세계의 문학 봄호를 주문했다. 아침에 주문한 책은 늦은 오후에 도착했다. 일요일 낮. 소나기가 오락가락하는 사이, 김연수의 새 단편을 읽었다. 이소라 공연을 가기 전, 나는 울 준비를 끝냈는데 그 날은 덜컹거리기만 하고 눈물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김연수의 새 소설은. 좋았다. 언니 말대로, 좋았다. 언니에게 나도 메세지를 보냈다. 언니, 내게도 그랬어요.

     

       언젠가, 가까운 날에 뭔가에 덜컹하고 걸려 한바탕 펑펑 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연휴가 가고 있다. 엄마와 돈을 합해 고향의 어느 작은 절에 연등을 하나 달았는데, 직접 보지 못한 그 연등을 생각하고 있다. 연등으로 만들어지는 연등. 절의 작은 마당에 걸리는 연등. 연등 사이에 걸리는 연등. 새벽을 맞이하는 연등. 소나기를 맞는 연등. 5월의 햇살을 받는 연등. 저녁을 맞이하는 연등. 불이 켜지는 연등. 환하게 밝아지는 연등. 밤새 꺼지지 않는 연등. 6월의 어느 날 내려지는 연등. 내려지고 나면 그 연등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 연등 사진 하나를 마음 속에 찰칵 찍어둔다. 아무 날도 아닌데, 생일이 지나고 나니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든다. 오늘은 좀 걸어야지. 

     

     

       그때 내 귀에 그 노랫소리가 들렸다. 분명하게 들렸다. 주쌩뚜디피니라고, 또 쥐빼리다꾸피앙상이라고. 그건 엄마의 목소리가 확실했다. 나도 모르게 소름이 쫙 돋았다. 나는 옆에 앉은 큰누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큰 누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그렇게 눈을 감고는 뭘 하고 있었느냐 하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뮈옴마주뜨빠리라고, 또 너마카르데마샹송이라고. 프랑스 사람들이 들어도 전혀 무슨 소리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겠지만, 이제 나는 분명히 그 뜻을 아는, 그러니까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안다. 사랑은 떠났으니까. 한 번만 더 둘이서 사랑할 수 없을까'라는 내용의 노래를. 터널을 완전히 빠져나오며 나도 주쌩뚜디피니, 하지만 모든 게 거기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고 생각했다. 아니, 노래했다.

    p.321-322, 세계의 문학 봄호.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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