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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의 라디오
    모퉁이다방 2007. 6. 3. 15:54

     

       다시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을 때, 가장 신기했던 건 문자로도 사연과 신청곡을 받는다는 사실이였다. 어찌나 신기하든지. 세상이 변하긴 변했구나, 감탄했었다. DJ들이 읊어주는 휴대폰 끝 4자리의 숫자에 님이라는 존칭이 붙여지는 그 소리의 감촉이 참 좋았다. 특히 조규찬의 조곤조곤한 소리로 발음되어질 때.

       그러던 어느 날, 나도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문자를 보내면 답문이 온다는 사실도 알았다. 비록 미리 저장되어진 멘트가 자동으로 전송되는 것이지만. 어떤 방송의 답문은 계절에 관한 인사였고, 어떤 방송의 답문은 시간에 관한 것이였다. 결국 단 한번도 내 휴대폰 뒷 끝자리의 숫자는 읽혀지지 않았지만, 문자를 보낸 날이면 왠지 나만의 고 4자리 숫자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아 귀를 쫑긋 세우고 긴장하면서 듣곤 했었다.

       약수터까지 산책을 하게 된 토요일 저녁. 나는 이 길을 걷고 있는 나의 기분, 공기의 촉감, 노을이 지기 시작하는 하늘의 색깔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었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길을 걸으면 꼭 라디오의 DJ와 나란히 함께 걷는 것같은 기분 좋은 착각이 들곤 한다. 문자 3통에 글자들을 꾹꾹 눌러담아 평소 저장해 놓은 번호로 전송에 전송을 시도했다. 3통 안에 하고 싶은 단어들을 다 넣으려니 어찌나 한 통당 제한 글자수가 적게만 느껴지는지. 길가에 서서 십여분이 걸려서야 전송완료를 하고 뿌듯해하고 있던 차였다. 이처럼 상콤한 문자는 DJ가 읽어줄 수 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 차에, 동생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 라디오는 주말에는 거의 다 녹음방송이야.

       그 순간, 나는 얼마나 분개했던가. 라디오 DJ들도 작가들도 PD들도 주5일제였단 말인가. 이럴수가 있는가. 생각해보니, 오늘 방송에 신청곡을 받는다는 DJ의 멘트는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사연과 음악 뿐. 일주일동안 도착한 사연들을 녹음방송해주는구나. 라디오마저도 주5일제구나. 그래, DJ들도 주말에는 쉬어야지. PD들도, 작가들도. 그래야지. 그래, '뭐 주말에 우리도 쉬어야 하지 않겠어요? 안 그럼 데이트는 언제한단 말입니까! 라디오, 주5일제입니다'라고 오프닝 멘트를 하고 시작할 수도 없지 않겠어? 미처 모르도 문자질을 해댄 내가 바보지. 마음을 추스렸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주말 라디오 방송은 잘 듣지 않는다. 왠지 주말의 라디오는 가짜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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