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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
    서재를쌓다 2011. 6. 5. 14:55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
    알프레드 랜싱 지음, 유혜경 옮김/뜨인돌



        지난 겨울, 친구와 나는 모험 이야기에 빠져 있었다. 겨울은 어김없이 추웠다. 눈도 많이 왔지. 늘 그렇듯이 별달리 할 일은 없었다. 친구는 내게 <희박한 공기 속으로>를 권했고, 나는 친구에게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를 권했다. 우리는 각자 책을 읽고 만나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마시며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 이야기하고, 서로 조금 울었노라고 고백했다. 우리가 왜 이렇게 극한에 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뭐 그건 우리의 겨울이 별볼 일 없었기 때문. 맥주를 마신 홍대의 술집에서는 계산을 하는 우리에게 여자 둘이 이렇게 맥주 많이 마시는 건 처음 봤다고 했다. 우리는 오늘은 양껏 못 마신 거라 얘기해줬다. 책을 읽고 맥주를 마시는 동안 봄이 왔다. 그리고 어느새 여름.

        20세기의 영국, 어니스트 섀클턴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모험가였다. 섀클턴이 살았던 시대는 탐험의 시대였다. 남극 탐험에 열을 올렸던 사람 중에 섀클턴이 있었다. 1914년 8월 섀클턴은 인듀어런스 호를 타고 남극 횡단 탐험에 나선다. 27명의 대원과 함께. 그들의 도전은 634일간 계속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그들은 항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단단한 얼음 빙판을 만났고 배는 얼음과 얼음 사이에 갇히고 말았다. 기다렸지만 배는 움직이지 않았고, 그들은 고립됐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생존과의 싸움. 그들은 계획했던 남극 탐험에는 실패했지만,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을 버텼다. 그들은 실패했지만, 실패하지 않았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배를 버렸다. 식량이 있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언제 구조될 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들은 이동했다. 빙판 위를 걸었다. 육지에 가까워지고자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식량이 떨어지자 남극에 사는 펭귄과 물개들을 사냥했다. 어떤 날은 그들이 이동하는 거대한 빙판이 깨어질까 불안해했고, 어떤 날은 남극의 바다 위를 부유하는 빙판 때문에 그들이 이동한 거리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침울해했다. 매일 먹는 것과 추위를 걱정했다. 집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할까봐 걱정했다. 오직 그것뿐이었다. 책은 거의 대부분이 사냥 이야기, 먹는 이야기, 이동하고 실패한 이야기이다. 식량이 부족해 함께 데려간 개들을 잡아먹기도 했다. 개들에게 먹일 먹이도 먹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2년 여를 버틴 그들. 이 부분이다. 이 구절이 나를 행복하게도, 슬프게도 했다. 별일없이 고만고만한 겨울날들을 보내고 있는 나는 순간 그들이 부러워졌다. 얼마나 추울지 상상이 갔다. 얼마나 배고플지, 얼마나 외로울 지 상상이 갔다. 그리고 얼마나 무서울지도 상상이 갔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런 일기를 남겼다. "연기에 찌들고 꾀죄죄하며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비좁은 오두막에서 우리는 콩나물 시루처럼 서로 뒤엉켜 살고 있다. 한 솥의 물을 마시고 종기가 난 사람 옆에 바짝 누워서. 정말 끔찍한 생활이다. 여기서 인간의 존엄성을 깨닫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는 행복하다."

        더이상 버틸 수 없던 섀클턴은 최정예 멤버를 꾸렸다. 배를 만들었다. 마지막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남겨진 대원들과 이제 영영 못 볼 수도 있었다. 배가 남극바다를 못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러면 모두가 다 끝장이었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방법 밖에 없었다. 책의 표지가 바로 그 모습이다. 남겨진 대원들과 구조요청을 위해 떠나는 대원들.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 불안하지만, 기적이 일어났으면 하는 손짓들. 그리고 기적은 일어났다. 구조대원들이 육지에 도착했다. 쉽지는 않았다. 

        "너무도 황홀해서 믿어지질 않는군요."
      워슬리가 말했다.
      그들은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800여 m쯤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잠시 멈추었다. 워슬리와 크린이 스토브를 넣을 구멍을 파는 동안 섀클턴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발 디딜 곳을 파가며 올라간 언덕 위에서의 풍경은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았다. 단정짓긴 어려웠지만 경사가 끝나는 곳에 또 다른 절벽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한숨을 쉬며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어떤 소리가 귓가에 들려 왔다. 희미하고 불확실했지만 기적소리 같았다. 섀클턴은 지금이 6시 30분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포경 기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는 시각이었다. 

        기적소리가 그대로 그들에게 기적이 되었다. 섀클턴은 남은 대원들을 구하러 갔다. 그들은 모두 구출되었다.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이 책의 부제는 '살아있는 한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책 날개에 있는 정보에 따르면, 섀클턴은 다시 탐험을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 탐험에서 죽게 되었다고. 그의 생애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에 대한 후세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사람들은 그를 실패한 사람보다 성공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이 책의 제목에 있는 수식어처럼 '위대한' 성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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