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박쥐 - 이건 멜로영화구나
    극장에가다 2009. 5. 6. 22:38
    (이를테면, 스포일러가 있어요)



        <박쥐>를 봤다. 좌석을 쭉 둘러보니 매진이었다. 누군가는 개봉 첫 날 벌써 보았다고 했고, 누군가는 '이러다 우리 지옥가요'라는 대사를 미리 메신저에 등록시켜놓았었다.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 <박쥐>를 봤다.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라고 하는데, 나는 괜찮았다. 두 시간 넘는 상영시간 내내 긴장하며 봤다. 송강호가 너무나 맛나게 피를 소리내서 쪽쪽 빠는 장면에 침이 꿀꺽, 신부 박인환이 아무렇지도 않게 팔에 칼을 대며 '드세요' 할 때도 꿀꺽, 김옥빈이 옷을 벗을 때도 꿀꺽꿀꺽, 야한 장면이 나올 때는 꿀꺽꿀꺽꿀꺽, 송강호가 충분한 양식을 섭취하지 못해 징그러운 뽀드락지가 솟아날 때도 꿀꺽. 긴장의 연속이었다. 영화 보는 내내 뒷목이 뻐근할 정도로 바짝 긴장하고,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는 뭔가 충만한 기분으로 극장 문을 나섰다. 뭔가 자알 봤다, 라는 느낌이었다. 이상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을 탔는데 기분이 좋았다. 정말.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구나, 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건 '욕망'에 대한 영화구나, 생각했다. 똥강아지같은 삶을 살던 김옥빈 앞에 송강호가 나타난다.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김옥빈은 매일 밤 맨발로 아스팔트 위를 뛴다. (이쁘다) 송강호는 어떠한가.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고 싶어했던 신부 송강호는 뱀파이어가 되고 욕망에 충실한 인간 아니, 뱀파이어가 된다. 하지만 그는 신부였기에,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고 싶었던 성직자였기에 신부복을 벗은 뒤로도 살인'만'은 할 수 없다. 다른 욕망은 따라도, 그것만은 할 수 없다. 그런 송강호가 김옥빈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김옥빈에게 '욕망'에 대한 본능을 일깨워준다. 예쁘고 새하얀 김옥빈은 신부도 아니고, 희생하는 삶도 살고 싶지 않았던 그냥 인간이었기에, 그녀는 '욕망'에 충실한다. 매일 밤 즐기고, 구미호처럼 날아서 송강호는 절대 할 수 없었던 살인까지 서슴치 않는다. 순순히 내준 피는 맛이 없다나. 살아 날뛰는 피가 맛있다나.

        그렇게 영화를 보고 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였다. 죽음을 코 앞에 둔 김옥빈이 가방을 뒤지더니 송강호의 낡은 구두를 꺼내와 송강호 옆에 앉는다. 그 구두는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된 바로 그 순간의 구두. 그래, 사랑. 송강호는 욕망을 못 이겨 매일 밤 아스팔트 위를 전력질주하는 김옥빈을 찾아간다. 그리고 송강호를 보고 도망가는 김옥빈에게 달려가 그녀를 살포시 들어올리고 자신의 구두에 그녀의 몸을 옮겨 넣는다. 아주 가볍게 그녀를 들어올려 자신의 낡은 구두 안으로 살포시 집어 넣는다. 그리고 사라진다. 바로 그 구두. 김옥빈이 태양이 떠오르는 바다 앞에서, 그러니까 자신의 마지막 순간에 그 구두를 꺼내서 자신의 작은 발에 끼어넣는데, 그 순간 이건 멜로 영화구나, 이건 사랑 영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을 만나기 전 비루했던 나. 그 사람을 만나 두근거렸던 나. 그리고 사랑. 행위. 말. '내가 이 지옥에서 데리고 나가줄게요'. 집착하게 되는 우리. 더 많은 것을 욕심내는 너와 나. 결국 오래오래 함께 살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우리. 슬프지만, 아프지만, 마음이 몸이 찢어질 것만 같지만 헤어져야만 하는 너와 나. 그 구두를 끼워 신는 김옥빈의 손이 참 예뻤다.

        나는 괜찮았다는 이야기다. 좋다 싫다를 굳이 나눠야한다면 좋다는 쪽에 가서 서겠다. 어쨌든 간에 배우들 연기 보는 맛부터 쏠쏠하니까. 송강호는 말할 것도 없지. 김옥빈의 대발견. 오달수 아저씨도 나오고 (캬오). 김해숙 아줌마는 어떻고 (하지만 제발, 아침 드라마의 표독스럽기만 한 일관된 연기는 별로예요. 미안요. 전 당신의 팬인데도 그래요), 그리고 지못미. 신하균. 처음에 신하균이 그런 모습으로 등장했을 때 깜짝 놀랬었는데, 적응이 되니깐 그 연기가 무척 멋져 보였다. 내 주위에 신하균 좋아하는 이양과 임언니, 깜짝 놀랐겠어요. 헤헤 :p 멋졌다. 이 배우들의 앙상블. <7급 공무원>에 이어서 계속 한국 영화를 보고 있구나. 한국 영화 만세. 그러니깐 좋은 영화 만들면, 극장에 많이들 간다니까요. 이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차례. 완전 기대만빵이다. 김배우님. 으흐흐- :D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