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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시와 2시 사이, 저는 테이를 들어요
    모퉁이다방 2008. 1. 21. 15:04

       12시. 자정이 되면 오프닝 멘트 대신 그가 반주도 없이 노래를 부릅니다. 감미로운 몇 소절을 듣고 있으면 이 밤이 편안해지기 시작합니다.

       테이의 목소리가 참 좋다는 걸 라디오를 들으면서 알았어요. 노래로 들을 때는 그저 노래가 참 좋구나,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은데 뮤랜을 듣기 시작하면서 목소리가 나직하니 참 좋구나, 라는 생각이 자꾸 해요. 사실 저는 김동률의 뮤랜 막바지에 왕팬이였거든요. 마지막 주에 요일별 게스트들이랑 인사를 하는 방송을 들으면서 매번 코 끝이 찡해졌을 정도였어요. 심지어 마지막 방송은 불도 끄고 누워서 눈을 감고 이어폰으로 들었답니다. 최고의 감성으로 듣겠다구요.

       다음 디제이가 테이라고 해서 혼자 볼멘소리로 퉁퉁거렸어요. 심야방송은 좀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해야하는거 아니냐면서요. 그래서 이런 저런 고민도 잘 들어주고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지혜롭게 이야기해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구요. 인터넷 검색을 해 본 그의 나이는 제 동생의 나이인 83년생이였거든요.

       저희 집 라디오 안테나가 부러져서 가장 잘 잡히는 주파수가 89.1이예요. 덕분에 라디오는 늘 쿨 FM만 들어요. 나이가 어린 테이가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계속 뮤랜을 들었죠. 사람이란 간사해서 과거란 늘 쉽게 잊혀지기 마련이잖아요. 이제 저, 김동률은 냉큼 잊고 테이에게 익숙해져 버렸답니다.

       그는 생각만큼 다정하고, 생각보다 말솜씨도 유려해요. 생각만큼 어리지도 않고, 생각보다 성숙해요. 어느 날 사연을 읽다가 허허허 웃으며 나이가 저보다 많아도 오빠라고 느껴지시면 그렇게 편안하게 불러주세요, 저 학교 다닐 때부터 이 얼굴이였거든요, 라고 했을 때 아, 테군이 나보다 어렸었지, 83년생이였지라고 떠올렸거든요. 그동안 방송을 들으면서 테이의 나이를 깜빡하고 테이 오빠,라고 시작하는 문자 사연을 보내볼까 생각하기도 했답니다. 저.

       내게도 오빠같은, 12시와 2시 사이의 음색을 가진 그. 나긋나긋 다정한 말투하며, 적당히 수다스러운 감성하며, 우는 이모티콘을 유유-라고 읽어주는 센스하며 저는 요즘 테군의 뮤랜에 대만족을 하면서 함께 깊은 밤을 보내고 있어요. 그의 목소리 볼륨을 낮게 낮추고 책을 읽어도, 동생과 나란히 누워 수다를 떨어도, 곧장 잠에 빠져들어도, 뒤적거리다 흘러나오는 노래에 오래 전 추억에 빠져들어도 모두 좋은 시간. 12시와 2시 사이, 저는 테이를 들어요.

       아, 이번주 목요일에 김동률씨가 새 앨범 첫 방송을 뮤랜에서 하신대요. 킹왕짱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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