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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싸움 - 시계추로부터 시작된 사랑과 싸움
    극장에가다 2007. 12. 8. 13:51

      
        가끔 길을 가다보면 우두커니 서 있는 남녀를 발견하곤 해요. 왜 저렇게 가만히 마주보고 서 있나 유심히 쳐다보면 두 사람은 서로를 잔뜩 짜증나는 얼굴로 마주선 채 시선을 돌려 외면하고 있거나, 너보다 짜증나는 사람은 내가 세상 살면서 본 적이 없다는 투로 매섭게 서로를 째려보고 있어요. 이런 이들은 누구봐도 연인임이 분명해요. 싸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거죠. 그런데 왜 하필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오가는 한 가운데에서, 지하철 입구나 거리 한복판에서 꼭 그러고 있냐는 거죠. 지나가면서 사람들이 대놓고 힐끔거리면서 쳐다보는 게 그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 거예요. 사랑에 빠진 순간도 그러하듯 그렇게 서로에게 화를 낼 때도 다른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오직 나의 연인만 보이는 거죠. 모든 세상이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는 지금 열렬한 연애중이다, 그런 말씀인 거죠.

       사실 그들도 별 심각한 문제로 그렇게 사람들이 오가는 한복판에서 그러고 으르렁대고 있는 건 아닐 거예요. 아주 사소한 문제일지도 몰라요. 내가 잡은 손을 그이가 잠깐 뺐다던지, 매일 열 번씩 해주던 사랑한다는 말을 오늘은 아홉 번만 해줬다던지.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 때문에 세상이 무너진 듯 그 곳에 정지한듯 서 있는 거였는 지도 몰라요. 여기 또 그런 커플이 있거든요. 한 때는 유리창 너머로 똑같은 내가, 나의 반쪽이 존재하는 듯 세상을 다 가진 듯, 니가 없이는 1초도 살아갈 수 없다며 연애를 했지만 결국 이혼에 골인한 두 사람. 결국 그들을 니가 죽고 내가 살자는 막장의 싸움으로 이끈 건 시계추, 딸랑 이 사소한 시계추 하나때문이였어요. 물론 표면적으로 그런 거지만요. 아무튼 영화 <싸움>의 설경구, 김태희 커플은 이 시계추 하나 때문에 1시간 40분 가량을 죽일듯이 할퀴고 도망가기 위해서 뛰고 또 뜁니다.

       설경구가 연기하는 상민은요. 결벽증에 소심한 남자예요. 곤충학 강사로 김태희 말로는 '예민결벽과다집착형 새가슴증후군' 증상이래요. 하긴 이 사람, 이혼할 때도 무조건 반반으로 딱 나눴어요. 함께 찍은 사진도 딱 각자의 부분으로 세밀하게 가위질해서 나눴구요. 시계추도 자기가 반반으로 나누자면서 줘버린 거였는데 늘 있던 그 시계추 소리가 자신의 공간에 없어진 것 깨달은 순간 이 소심새가슴은 그걸 견디지 못하고 다시 돌려달라고 하는거죠. 상민의 그런 성격을 잘 아는 진아는 잘 됐다, 당해봐라, 면서 당연히 돌려줄 생각을 하지도 않는 거구요. 소심한 상민에 비해서 대범하다고 할까요, 무서울 게 없는 대담한 진아를 연기하는 김태희는요. 유리공예를 하는 작가예요. 자신이 다루는 재료의 특성을 닮아 언제든지 조금만 실수하거나 방심하면 깨지기 쉽고, 또 깨질 땐 와장창 이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내는 유리같은 여자예요. 그래서 매순간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일을 망가뜨리는 상민을 세상 끝까지 달려가서 죽일거라는 태세로 달리고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분노의 검은 마스카락 눈물을 흘리죠.


       정말 기대를 하지 않고 영화를 보러 갔었거든요. <중천>은 보지 않았지만 김태희의 연기에 대해서도 일말의 기대도 가지지 않았고, 사실 캐스팅 발표되었을 때부터 설경구와 김태희는 너무나 안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한지승이라니. 왜,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왜, 이 영화를 안 어울리는 세 사람이 모여서 만들었을까. 그런데 그런 기대가 없어서 그런지 영화는 재밌었어요. 1시간 반 넘게 웃으면서 유쾌하게 보았고, 김태희의 연기도 어색한 부분이 여러 군데 있긴 했는데 극을 완전히 방해하는 정도는 아니였어요. 뭐 우는 연기는 정말 예쁘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아직 멀었지만 점점 연기가 좋아지게 되면 언젠가 좋은 연기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 영화에서 클로즈업 된 김태희는 정말 예뻤거든요. 연기만 잘하면 완벽하겠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리고 설경구는 말할 것도 없지요. 애드립이 아닐까 예상되는 몇몇 장면에서는 까르르 웃어넘기면서 저런 연기는 설경구가 아니면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가볍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예요. 큰 기대없이, 깊이를 바라지 않는다면 유쾌하게 즐길 수 있을 거예요.

        초반에 김태희가 화가 나서 설경구를 도끼로 머리를 내리치는 부분이 있는데요. 물론 상상이지만요. 설경구가 도끼를 머리에 꽂힌채로 피를 철철 흘리면서 자기 할 말을 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러니까 이 영화는 한 때 사랑했지만 지금은 죽이고 싶을만큼 미운 너,라는 현실적인 설정에 자동차 추격신이나 도끼장면 등등 비현실적인(현실에서는 상상에서만 그치고 마는, 그래서 영화로 표현되었을 때 후련한) 하드보일드한 장면들이 연출되요. 그 속에서 빛나는 비현실적인 조연들이 있구요. 김태희의 선배언니로 등장한 전수경도 유쾌했지만요. 제일 유쾌했던 조연 남녀는 소를 사람처럼 끔찍하게 사랑하는 태화와 언니 남편은 내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줄테니 내 남편은 언니가 좀 죽여줘라 하며 개를 앞장서우며 희미한 미소를 날리던 진숙이예요. 어찌나 웃기던지요. 많이 웃었어요. 아,  PPL은 지나쳤어요. 김태희가 광고한 걸 모든 국민이 다 아는 싸이언도, 마지막의 노골적인 서울우유 광고도 정말 비호감이였습니다.

       결국에는 표면적으로는 시계추때문이였잖아요. 이렇게 스펙타클한 싸움의 원인이요. 왜 시계추일까 생각을 해 봤어요. 뭐 마지막에 이 시계추를 감동의 반전으로 재탄생되게 만들기 위한 것 때문이기도 하겠지만요. 많은 것들을 반반씩 나눴을텐데 왜 하필 시계추에 상민은 그렇게 못 견뎌했을까. 왜 하필 시계추일까. 시계추가 왼쪽으로 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오른쪽으로 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째각째각거리잖아요. 결국 소심새가슴 상민은 헤어져도 다시 돌아가고 피터지게 싸움해도 다시 돌아가면서 아웅다웅거리고 싶었던 거 아닌가, 결국 사랑이든 애증이든 시계추와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봤어요. 시계추는 떼어놓으면 그냥 밥숟갈을 닮은 금속일 뿐이지만 시계 안에서는 언제든, 어떤 실수를 해도 제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이니까요. 정확하게 말하면 시계지만 시계추를 사면서 시작된 사랑과 그것을 잃어버리면서 시작된 싸움이 결국엔 제자리로 돌아가길 바라는 모든 연인들의 바램이랄까요. 아, 뭐라해도 이별은 너무 아픈 거니까요. 뭐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즐겁게 극장 문을 나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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