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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타스틱 자살소동 - 반짝반짝 빛나지는 않더라도
    극장에가다 2007. 11. 1. 21:12


       살다가 갑자기 죽고 싶을 때 있잖아요. 자다가 중요한 시험을 놓쳐버렸을 때, 내가 맞서는 세상이 너무나 부조리하게 느껴질 때, 내 생일을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그런 날. 괜히 죽고 싶다, 그래 자살해버리자 생각이 드는 그런 순간들 있잖아요. <판타스틱 자살소동>은 그런 순간들을 독특하고 판타스틱하게 그려낸 옴니버스 영화예요. '암흑 속의 세 사람', '날아라 닭', '해피버스데이' 이 세 편의 단편으로 90여분의 유쾌한 자살소동이 펼쳐집니다.

       이 작은 독립영화가 눈에 띄는 이유는 아무래도 눈에 익은 배우들이 많이 출연해서 그런 거 같아요. '암흑 속의 세 사람'의 첫 영화 출연인 타블로. 김가연, 박휘순. 한여름양은 김기덕 감독님 영화에 많이 출연했었구요. '날아라 닭'의 김남진. 아, 광고로 익숙한 얼굴인 이혜상도 묘령의 여인으로 등장합니다. '해피버스데이'에는 <웰컴 투 동막골>의 백발 할아버지 정재진과 <숨>의 강인형이 등장해요. 그리고 영화 직전에 전단을 보고 알았는데요. 박수영 감독님 작품은 제가 본 적이 없어서. 나머지 두 영화의 감독님이 <피터팬의 공식>의 조창호 감독님과 <거울 속으로>의 김성호 감독님이셨어요. 두 영화 다 제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거든요.

       아무튼 영화는 각각의 주인공들이 순간적으로든 계획적으로든 자살을 결심을 하고 겪게되는 판타스틱한 이야기들이예요. 사실 이야기가 반짝반짝 빛나지는 않아요. 왠지 어떤 인디 영화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해요. 신선하거나 팔짝팔짝 살아 뛰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유쾌해요.

       '암흑 속의 세 사람'은 정말 캐스팅이 잘 되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네 배우의 느낌이 고스란히 영화 속 캐릭터에 녹아 들어가 있어요. 캐릭터들이 엉뚱하고 골 때려요. '암흑 속의 세 사람'의 주제는 그래도 살만하니깐 우리 죽지 말고 살아보자,라는 건데. 거듭되는 반전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래, 정말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날아라 닭'에서 김남진은 부조리한 세상 앞에서 자살을 결심한 경찰로 나오는데요. 전쟁을 겪은 자는 이미 젊은이가 아니다, 이 유명한 문장이 나와요. 김남진이 세 발의 총알을 가지고 와서 해변가에서 자살을 시도하는데 뜻대로 되는 않는 그런 내용인데요. 이 영화에서 김남진은 단 한마디로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요. 닭의 언어를 사용한답니다. 얼마나 유창하게 닭과 의사소통을 하는지. 이 부분이 꽤 웃겨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단편은 김성호 감독의 '해피 버스 데이'였어요. 첫 장면부터 아기자기한 소품이며 할아버지 방으로 꾸며졌던 공간과 빛의 느낌이 좋았어요. 이 영화는 한국판 <메종 드 히미코>라고 생각해도 될 거 같아요. 게이 할아버지가 생일을 맞이했는데, 아무도 축하해주지도 않고 잊어버린 채 지나가서 살만큼 살았다, 확 죽어버리자, 라고 결심을 하게 되는데 한 남자아이를 만나게 되는 거예요. 그애는 무시무시한 악당들에게 뒤쫓기고 있고. 그러니까 이 게이 할아버지가 그래 어차피 죽을 거 내가 니 대신에 죽어줄께, 내 이름과 오늘이 내 생일이었다는 것만 기억해줘라. 그런 내용인데 이 영화에서 게이 할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분의 연기가 정말 자연스러웠어요. 꽃무늬 스카프가 너무 잘 어울릴 정도로요. 엔틱한 소품들과 건물이 등장하고, 할아버지들이 연주하는 음악도 좋아요.

       이 세 편 영화의 공통된 장점이자면 장점이지만, 연달아서 보다보니 단점이 되어버렸는데요. 이 세 편의 영화에는 모두 반전이 있어요. 어떤 영화는 반전의 반전이 있구요. 그 반전이 단편의 매력을 살리는 데 일조한 건 분명한데요. 이게 연달아서 터지니까 식상해지는 감이 있었어요.

       2개관에서 개봉한다고 하는데요. <원스>가 그렇듯이 작은 영화들이 좋은 반응을 얻어서 더 좋은 작은 영화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개성이 다른 세 감독님이 각각 자살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냈는가 세 가지 맛을 음미하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분명 작은 영화들은 작은 영화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상업영화와 같은 정석대로가 아닌 다소 엉뚱하고 독창적이고 기발한 독특한 목소리들을 내잖아요. 가끔 그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 싶어요.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어딘가를 콕 꼬집어주는 묘한 기운이 그 속에 숨겨져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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