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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이 고인다 - 고마운 애란씨
    서재를쌓다 2007. 10. 12. 13:06
    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문학과지성사


       김애란을 읽었다. 첫번째 단편집의 첫번째 단편을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그녀에게 매료되었다. 그녀와 나는, 작가인 그녀와 독자인 나는, 우리는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매일 가는 편의점 직원이 나를 모조리 알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 하숙방도 자취방도 아닌 서울이 고향이 아닌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소통되지 않는 '방'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있다는 것에 놀라웠고, 내가 그녀의 이야기에 동질감을 느끼고 서울 땅 아래서 이런 생각들을 하는 사람이 나 뿐만이 아니였음에 위로받고, 그녀가 예민하고 예리하고 사람의 마음을 뭔가로 쿡쿡 찌르는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김애란을 만났다. 내가 만난 김애란은 내가 생각하고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어느 인터뷰에 표현되어 있기를 그녀는 굉장히 조용하고 하나의 질문에도 여러번을 곱씹어 생각하는 침묵의 시간을 가진 후 한자 한자, 또박또박, 실수하는 말 따위는 내뱉지 않겠다는 듯 느릿느릿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물론 이렇게 그대로 씌여져 있지는 않았지만, 나의 느낌은 그랬다. 인터뷰 사진 속  그녀의 머리는 쭈빗쭈빗 뻗쳐있었고. 나는 왠지 그녀가 조금은 시니컬하고 까다로운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홍대의 한 카페, 낭독의 밤에서 만난 그녀는 부드러웠다. 따뜻했다. 머리도 그 때보다 길어졌고 차분하고 빛났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단번에 마음에 들었다. 낮고 나긋나긋하고 다정한 목소리. 나를 닮은 듯,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닮은 듯, 어디선가 들어본듯한 낯익은 목소리. 그리고 여러번 준비를 해 왔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라는 것이 준비한다고 그대로 내뱉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도 않지만, 그녀는 따뜻하고 깊은 말들을 사람들에게 건네고, 손가락이 떨고 있었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말들은 굉장히 유머러스했다. 나는 자신의 글로 인해 위로 받는다는 말을 듣고 위로를 받았다는 그녀의 말에 반했다. 소설가의 상상력은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것이라는 그녀의 말에 반했다. 커트 보네커트의 그래프에 반했다는 그녀의 말에 반했다. 이쁜 글씨는 아니었지만 정성스럽게 싸인을 해주며 눈을 맞춰주는 그녀의 따뜻함에 반했다. 그리고 점점 그녀와 나는, 서울 아래서 살아나가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그녀가 글을 쓰고, 나는 그 글을 읽을 뿐인 사이지만 참 많이 닮은 시간들을 견뎌왔고, 살아나가고 있으며, 그려나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김애란을 읽었다. 이번 소설집을 읽으면서, 첫번째 소설집을 읽으면서 느꼈던 동질감에 따스함이 더해졌다. 이렇게 따스한 사람이었구나, 이렇게 따스한 글을 쓰는구나. 언제 어디서 이런 생각을 할까, 메모는 어떤 식으로 할까, 작업실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소설집을 읽으면서 그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졌다. 언니와 오빠라는 관계가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그녀는 막내인 것도 같고,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쳤을 것 같고, 어머니가 음식을 자주 만드셨을 거 같고, 몇 년동안 짝사랑한 선배가 있었을 것 같은 그런 무모하고 무례하고 의미 없는 상상들을 이어나간다. 그녀가 쓴 표현들이 좋아 그대로 따라해기도 한다. 마트에 가서 변기 청정제를 사서 변기 안의 파란 물을 깨끗하게 바라보고, 버리지 못한 델몬트 쥬스 병을 소독해 보리차를 끓이기도 한다. 샤워를 하면서 내가 뜨거운 물로 몸을 씻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거품을 잔뜩 만들어 샤워를 한다.

       나는 김애란에게 반했다. 그녀에게 반했고, 그녀의 글에 반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위로받았고, 또 위로받아갈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다음 장편에도, 다음 단편에도 나의 이야기가, 그녀의 이야기가 들어있을 거고 나는 그녀에게 고마워할 거다. 그냥 스쳐지나갈 뻔했던 기억들을, 감정들을 붙잡아 주어서 고맙다고. 좋아하는 잡지에서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에 대한 감상평에 그녀의 이름이 박혀있는 것이 고맙고, 그렇게 또 하나의 짧은 그녀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고맙고. 그녀가 나와 동갑이라서 고맙고. 아, 나는 그녀에게 고마운 거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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