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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프 로드 - 평범한 사람들은 길을 떠나지 않는걸까?
    극장에가다 2007. 8. 28. 01:54


        <오프 로드>의 주인공은 '총'이다. 총 한 자루가 길을 떠나는 로드무비. 방아쇠를 당길 수 밖에 없게 생겨먹은 총 한 자루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정에 관한 영화다. 

       돈이 필요한 첫번째 남자가 있다. 지하주차장에서 문을 따며 푼돈을 챙겨 먹고 있던 중에 한 경찰관이 자살을 한 차를 발견한다. 원래 총은 경찰관 소유였다. 범죄를 저지른 악한 사람을 잡지 위해 주어진 총. 그 총에 번쩍한 첫번째 남자는 총을 훔쳤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그 총을 휘두르며 은행을 털었다.

       두번째 남자 역시 돈이 필요했다. 아버지는 병상에 계시고, 택시로 하루 벌어 살기가 힘들다. 죽을 결심으로 생명보험까지 들어놓은 남자. 남자의 여자는 자신이 근무하는 은행에서 돈 5억을 빼돌리겠다고 한다. 은행 앞에서 망설이며 주저하고 있던 찰라, 첫번째 남자가 총과 함께 택시에 탄 후 총을 들이밀며 위협한다. 빨리 출발해.

       세번째 여자는 모텔에서 몸을 파는 여자다. 피범벅이 된 첫번째와 두번째 남자를 보고 관심없는 듯 태연한 척 했지만, 여자는 그들에게서 본능적으로 돈 냄새를 맡았다. 아무도 모르게 돈가방과 총을 챙겨 트럭을 얻어타고 모텔을 빠져 나온다. 나도 이제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다구.

       총의 여정은 이 세 사람의 손을 거친다. 총을 쥔 자는 권력을 가지게 되고,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며, 동시에 돈 가방 즉 부를 손에 쥐게 된다. 그래서 세 사람은 끊임없이 총을 탐하고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 갈등한다. 살아오면서 한번도 권력을 쥔 적도 부를 가진 적도 없다. 왠지 곧 내 손을 모두 빠져나갈 버릴 모래인 것만 같고,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 만들어진 이것이 곧 자신을 해치게 만들까봐. 내 스스로 내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게 될까봐.

       영화는 지루하지는 않지만 왠지 식상한 면은 있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의 로드무비는 늘 실패하거나 실패하고 있는 중인 사람들이 등장하며 결국 비극으로밖에 끝날 수 없는 걸까? 그래서 로드무비는 왠지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보고나면 무작정 우울해진다. 언젠가 실패할 수도 있지만, 아직은 실패하지 않은 길 위에 서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나, 영화를 보고나면 절망적이지 않은 따뜻한 기운을 로드무비에서 기대하기가 힘들다. (평범하진 않았지만 <미스리틀선샤인>은 보고나서 정말 따뜻해졌다) 늘 만신창이의 인생들이 등장하고 그들은 한 쪽 눈이 멍들어있거나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로드무비. 평범한 사람들은 길을 떠나지 않는걸까? 너무나 평범해서 매일매일이 지루하고 좀더 특별해지고싶어 떠날 수밖에 없는 나와 닮은 주인공의 따뜻한 우리 땅의 로드무비도 한 편 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당장이라도 그 길을 따라 떠나고 싶은. 왠지 그런 이야기는 영 색다를 게 없어서 주인공이 될 수가 없나보다.

       아무튼 <오프 로드>의 전라도 길은 푸르른 나무들과 누렇게 익은 논과 창문을 내리고 뺨에 찰싹거리는 바람만큼 싱그러웠으나, 그 길에 있는 사람들의 삶이 너무 무거워서 당장 그 길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한 사람은 죽어가고, 한 사람은 자살을 결심하고, 한 사람은 돈가방을 들고 다시 되돌아갈 곳도 없는 길을 떠나야 하는 마지막 장면. 결국 총과 돈을 끊임없이 차지하려고 바둥거렸던 이 나빠보이지만 실은 착한 이 사람들.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두 사람도 비극이지만, 살아남았지만 더군다나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기회인 돈 가방도 쥐었지만 그 사람, 결국 불행해지겠지? 결국 평범해질 수는 없는 거겠지?

       윈도 피리어드(window period). 두번째 남자가 말한 이 증상처럼 말이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았을 때 그 직후에는 별로 아프지 않고 고요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갑자기 너무나 커다란 통증이 찾아 오는 그런 증상.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끔찍한 길의 끝을 맞은 세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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